-다음은 날씨 소식입니다. 오늘은 대체로 맑고 화창한 날씨가 기대되겠습니다. 평화시는 밤 사이 내린 소나기로 인해 오전 중 습도가 높겠으며, 오후 2시 경 최고 기온 30도 내외의 무더위가 찾아올 전망입니다. 수분 보충과 야외 활동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날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상 캐스터의 음성이 낡은 차량 내장 라디오 스피커에서 거슬리지 않을 만큼 낀 노이즈와 함께 흘러 나온다. 동시에 햇빛을 가리던 꼬마 구름이 바람을 타고 물러나자 안팎을 가리지 않고 지저분하게 찍힌 순찰차 유리창의 손자국들이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
핸들에 손을 올린 채 이른 아침 뉴스에 귀를 기울이던 양장은 감히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뿌옇고 난잡한 손자국의 향연에 난감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여간 창에 손 좀 올리지 말라니깐 들어먹질 않네요. 아아~ 또 내가 닦아야 하잖아, 이거. 어쩜 좋아."
아무튼 닦는 사람 따로 어지르는 사람 따로인 건 어딜 가도 비슷비슷 하다니까. 이런 게 눈에 보이는 유전자가 정해져 있기라도 한 건가? 톡톡톡, 인간이 타고날 수 있는 색상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하얀 손가락이 핸들을 가볍게 두드린다. 뭐. 까짓 수고 좀 더 하면 되는 일이지. 이왕 하는 거 세차까지 할까? 지난밤에 저놈 잡아라 하면서 달렸더니 그새 더러워져서는, 이래서야 시민들에게 신뢰의 시옷 자도 못 얻을 꼴이 아닌가. 잠시나마 툴툴거린 게 무색할 만큼 본인이 당장 취해야 할 액션과 가장 가까운 세차장까지의 경로를 머릿속으로 신속히 정리 완료한 양장은 이윽고 기어를 바꿨다. 타이어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도로로 나아간다.
양장이 근무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손세차장은 연배를 따지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퇴락했다 싶을 정도로 시설이 근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테리어 값을 아낀 덕인지 가격은 근처의 모든 세차장을 통틀어 가장 저렴했고, 구둣발 닳도록 드나드는 경찰들을 한결같은 단골 대우로 반겨주는 주인장이 운영하는 곳이라 양장을 포함한 그의 동료들이 자주 애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비록 혹사당하던 민중의 지팡이가 가끔 일그러진 보닛이라던지 정체 알 수 없는 물질을 타이어에 달고 문턱을 드나들어 어느순간부터 자연스레 일반 차량의 방문이 뜸해지긴 했지만.
-이잉, 여기 파리가 날리네, 파리가 아주 훨훨 날아다녀. 아주 윙~윙 거리는 게 시끄러워서, 에잉. 쯧.
그래서 가끔 이렇게 에둘러 타박도 듣지만 어쨌거나 양장은 이곳이 좋았다.
쪽빛이던 하늘이 물을 탄 듯 연한 색으로 변해갈 때 쯤 양장은 세차를 마쳤다. 커튼 같은 앞머리 아래로 드러난 입매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맺혀 있다. 사실 그는 이런 걸 꽤 즐기는 편에 속했다. 보람 있지 아니한가. 축축해진 손을 구석에 마련된 개수대에서 꼼꼼히 씻은 뒤 양장은 다시 순찰차에 올라탄다.
엑셀을 밟는다. 깨끗해진 차 표면 위로 아침 햇살이 구슬 마냥 구른다. 타이어가 구른다. 출근길 정체 도로를 피해 샛길로 들어가며 무전기를 집어든다.
안녕 무격주! 그러치ㅋㅋㅋㅋ 스테레오 타입 오피서! 좋아하는 건 딱히 없는 애지만 편식도 안 하니까 언젠가 진짜 그런거 먹고 있을 수도 있겠다ㅎㅎ 평화? 의 물음표가 너무 웃겨 그치 아무래도 평화?시니까ㅋㅋㅋㅋㅋㅋ 굴러라 양장! 언젠가 무격이랑 술잔 기울이는 것도 해보고 싶어 술 좋아하고 잘 이죽거리는 중도의 무당 캐릭터... 케미가 기대돼~
가재주도 어서와!! 당근 있음 나도 이제 여유로워진 참이라 기다리고 있었지롱^^ 가재 도넛 좋아하는 거 재밌어 어제 시트 읽다가 히죽이처럼 웃었다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근손실땜에 술 안먹는다니... 멋진걸... 역시 근육은 대충 만들어지지 않지...
아 그러네 스테레오타입즈ㅋㅋㅋㅋㅋ 귀엽다 현경찰과 전 경찰대생(추정)조합ㅎㅎ 옹 내가 막연히 생각한 상황이랑 겹치는 건 3번인데 2번도 재밌을 것 같다!! 1번도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양장이 집이 나오는 상황은 좀만 더 나중에 하고 싶어서ㅋㅋㅋㅋ 2번이랑 3번 중에 다이스로 골라볼게!
범법자가 난무하고 시스템이 애매해진 가운데 유난히 이름값을 못 하는 도시에서 발로 뛰는 경찰은 장기적인 시스템 유지를 위해 교대 원칙을 공고히 하려 갖은 노력을 가했으나 그럼에도 주야휴비의 보장이 확실히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잦았다. 그리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일부는 휴무나 비번일 때조차 심심찮게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홀로 벌처럼 뛰쳐나가 제지하곤 했다. 바로 지금의 양장처럼.
가로등이 듬성듬성 깔려 평균치 보다 더 짙은 어둠이 깔린 골목길 안으로 옆구리에 가방을 낀 채 어두운 색 후드를 눌러쓴 한 사람이 재빠르게 뛰어들었다. 누가 봐도 수상하다 여겨질 법 한 인상착의였으나 웬만큼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면 치안이 좋지 않은 도시에서 이런 인물을 공들여 붙잡아 줄 리 없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 목격하고 신고 정도는 넣어줄 수 있겠으나 그런 걸 기다리기에는 당장이 급하다. 게다가 지금 양장이 도망치는 상대방을 몰아가는 곳은 아예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을 법한 외진 곳이라서 더더욱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양장은 편의점을 털어 나오다가 마주친 이래로 앞모습을 도통 보여주지 않는 저 좀도둑의 뒷모습을 보고, 이어 주변을 훑는다. 보자, 인구 밀집 지역에서 이만큼 멀어졌으면 된 것 같다. 가능하면 능력은 쓰지 않을 예정이지만 최후의 수단으로서 사용할 때 엄한 민간인이 휘말리지 않게 하려면 이정도로 번거로운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양장은 보통의 경찰들보다 더 집요하게 평화시의 온갖 외진 곳을 탐색하곤 했고, 감사하게도 이 추격전은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자. 여기에서 슬슬... 막다른 길.
-...젠장...!!
담벼락으로 막힌 길을 맞닥뜨리자 쫒기던 좀도둑은 가쁜 숨이 섞인 낭패감을 드러낸다.
"그러게 왜 도망을 가고 그러시나요? 날도 더운데. 어서 이리 오세요. 좋게 가요, 우리."
당연하지만 뒤돌지 않는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자존심이라는 게 우습지. 양장은 천천히 다가가 상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꺼져!
그러면 잔뜩 곤두선 현행범은 으레 그렇듯이 손부터 올리는데, 어이쿠, 이제 보니 커터칼까지 있네. 그럼 이쯤에서 양장이 취할 태도는 비교적 명확해진다.
"이러면 아주 곤란하답니다. 아무한테나 흉기를 휘두르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순식간에 칼을 뺏고 팔을 꺾은 뒤 바닥에 눌러 제압해버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도둑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으로 양장을 노려본다. 정작 당사자는 적의 어린 눈길을 한몸에 받으며 경찰서까지 혼자 연행하긴 힘들겠지, 그나저나 이 사람 코가 깨졌네, 이따 치료해 줘야지... 따위의 딴생각이나 하는 중이었지만.
으악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아까 정신없어서 감상을 못남겼으니 지금 남기는 걸로~ 양장씨는 말투부터 단호함과 친절함...복실복실함?이 공존하는 게 아주멋ㅎ지네요 최곱니다 평화시의 평화를 지키는 양장! 몽유아갓시는 먼가 아갓시 같아요 네. 음. 아니 이게아니고 말에서 뭔가 은은하게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게 좋네요, 입이 작으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그런거 볼 수 있능걸까요 기대해도 될까요. 또 어째서 인류의 끝이 보이는 시간대로 가고 싶어할까 저도 궁금하네요. 딜리버리군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게 믿음직스럽네요, 뭔가 거래를 트면 두고두고 할 거 같은 느낌? 말투를 보면 묘하게 가벼운 거 같으면서 일처리는 확실하다는 언밸런스함이 매력적이네요 흐흐
비록 지금은 구제불능하다 여겨지는 실태로 조롱만 받고 있는 처지였으나, 한때는 희망과 평화를 타이틀로 내걸고 오픈되었던 화려한 위성도시인 만큼 평화시 내부에는 볼만한 편의시설이 많았다. 물론 치안을 염려하며 조정된 이용 시간 탓에 전체적인 유동 인구의 수는 전성기에 비해 떨어졌지만, 어쨌거나 거주하는 사람이 있는 한 방문자가 0에 수렴하지는 않기 마련. 때문에 스스로 철수하지 않는 이상 명맥을 이어가는 편의시설은 규모를 막론하고 유의미하게 존재했는데 개중에서도 대규모 편의시설에 속하는 이 쇼핑몰은 팍팍한 현실을 잊기 위해 찾아드는 사람들로 붐벼서 인구 밀집도가 높은 곳이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더더욱.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 곳이라면 으레 사고가 따르는 법이다.
"1층 중앙 엘리베이터 인근 구역 제외하고 전부 대피 완료됐습니까?" -완료됐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무전하기 전에는 지정된 포인트 이상으로 접근하지 마세요."
무전기를 도로 홀더에 끼워 넣은 양장은 기둥 뒤에 숨어 엘리베이터 몇 대와 인접한 1층 중앙 로비의 동태를 살핀다. 수많은 방문객이 어지럽게 오가던 그곳은 더이상 단단하고 균일한 정사각형 타일의 군집이 아닌 물컹한 늪지대가 되어 있었다. 패닉에 빠져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 대던 사람들은 끝내 기력을 소진해 적게는 가슴팍까지, 가장 많게는 입까지 빠진 채로 침묵 중이거나 심하게는 실신했다. 더 문제인 점은 느릴지언정 가라앉는 게 멈춘 건 아니라는 거다. 방치하면 분명 익사하겠지. 도심지 한가운데에서.
-짭새는 어디에 숨었나~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저 자를 제압해야만 한다. 양장은 양 손의 엄지만 올린 채 손목을 틀어 방향을 아래로 틀고 가라앉힌 사람들의 어깨며 머리를 밟으며 돌아다니는 범죄자, 자칭 악어라는 이의 등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삼단봉을 들었다. 그리고, 능력을 펼쳤다.
.dice 1 4. = 3 (1오른팔 2왼팔 3오른다리 4왼다리 마비)
-어디에~... 억?!
징검다리를 걷듯 잔망스럽게 폴짝거리던 그는 순간적으로 근육이 컨트롤 되지 않는 감각 그리고 이에 동반된 저릿하고도 뻐근한 느낌에 발을 삐끗한다. 그대로 고꾸라지면서 본인이 만든 늪에 스스로 얼굴을 처박는다. 이윽고 온갖 짜증을 부리며 고개를 드는데 이미 넘어지며 능력을 발동하기 위한 조건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손동작은 풀려 버린지 오래라 늪에 묻혔던 사람들은 바닥이 제 형태를 찾음에 따라 다시 뭍으로 떠오른다. 동시에 시야의 사각에서 충분히 강하게, 정확히 급소를 겨냥하고 날아든 삼단봉은 난장판의 주역을 깔끔히 엎어뜨리기 충분했다. 생각보다 맷집은 약하네요. 심심한 감상을 곱씹은 양장은 비로소 상대의 손목에 수갑을 건다.
오늘은 무얼할까, 오로지 그 생각만이 가득찬 이 남자는 그야말로 폭탄이나 다름없어서 지독하게도 위험한것이었다. 간혹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때도 있지만 그것은 정말 드문일이었다. 아무튼간에 사색에 잠겨서 거리의 벤치에 앉아있던 그의 방아쇠를 당겨준것은 지나가던 양아치 무리의 시끄러움이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건지 여럿이서 거리를 차지해서는 하는 말이. 클럽에 간다던가, 오늘 뭘 했다던가. 정말 영양가도 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균열로도 그는 움직였다. 그래! 오늘은 클럽에 가보자! 하고 머리속에 들어온 전구를 반짝이며 그는 벌떡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 이후로는 망설임없이 클럽에 갈뿐이다.
토요일이라는 시간과 시각과 맞게 시끌벅적한 음악에 맞춰 클럽안의 인원은 한가득 들어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그는 천천히 클럽에 들어서서는 귀가 아플 정도의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천천히 심해로 묻어버리고 있었다. 주변의 배경색이 바랜다. 웃고, 춤추고, 뭐라고 소리치고 있으나 지금의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와 행동들이다. 이미 그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누가 뭐라고하든 주변이 아무리 시끄럽든 아무것도 그의 세계를 깨부수지 못한다. 분명히 같은 공간인데도 마치 동떨어져있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이 제일 고조되었을때 그는 눈을 떴고 어느새 변한 옷과 씌여진 가면이 그의 모습을 감췄다. 다음순간 울려퍼지는 비명소리가 그것을 더욱 도왔겠지.
불이 난것이다. 그의 능력에 의한 거짓 화재지만 뇌는 저것을 진짜 불이라고 인지하기에 뜨겁고, 숨이 막힌다. 일개 시민들이 그것이 환상이라고 눈치챌리도 만무하고 클럽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번에 그는 직접적으로 누굴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만 둬도 도망치면서 밟혀죽는 사람, 밀려죽는 사람이 나온다. 심지어 방금전까지 입맞추고 있던 남녀들조차 서로를 밟고있다. 이것 참 재밌는 광경이 아닌가.
멜로디를 만끽하며 그는 천장이 무너지는 환상을 추가한다. 가짜 잔해에 깔려서 바둥거리는 꼴이 가관이다. 거기에 이어서 그런 사람조차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 아까까지만 해도 락(樂)이 가득찼던 공간이 어둡게 물들고 있다. 자신만만하게 디제잉하던 저 사람도, 여자에게 작업을 걸던 저 남자도, 술마시며 떠들던 저 무리도. 마치 그것이 환상이었던것처럼 간단히도 무너져버린 시간이 되어버렸다.
"만족."
가볍게 숨을 뱉으며 입꼬리를 올린 그는 발걸음을 돌리려했다. 누군가 자신을 붙잡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살려 주 세 ..
간신히 바지자락을 잡은 손에선 힘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뿌리치면 간단히 놓아버릴 손. 그러나 그의 시선은 다른곳에 박혀있었다. 거짓된 잔해에 깔려있는 여성은 무언가를 감싸고 있었다. 친구일까? 다른 여성을 감싼채로 ㅡ 그 여성은 기절한듯했다. ㅡ 잔해에 묻혀 옴싹달싹 못하는 여성.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감싸고있는 여성을 놔버리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흠.."
그의 마음은 언제나 가볍게 변하곤했다. 어차피 거짓된 잔해지만 이미 속아버린 뇌는 저 여자를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거짓된 열기에 콜록거리는 여성은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거 같았다. 이 상황에서 이곳을 망가트린 주범인 그는 모순되게도 손을 뻗어 그 둘을 구해냈다. 어떤 심경의 변화일지는 그 자신밖에 모른다. 더불어 그들을 데리고 나가며 가는길에 또 몇몇을 구하곤 했는데.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또라이도 이런 또라이가 없을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내 그곳을 떠나고, 그는 소방차와 구급차가 도착했을때 마술마냥 사라진 불과 잔해들을 본 그들은 또 뭐라고 할까 기대하며 골목길로 사라졌다.
양장의 사생활은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호불호 또한 극히 단편적인 것들만 공개되어 있다는 건 그를 알 만 한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안이다. 이는 몇 번의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던 언론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생활했던 경찰 동료나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들에게도 어느정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불투명함에 가려진 존재는 아무리 선량한 행위만을 반복하고 공익에 도움 되는 일을 한다고 해도 결정적인 부분에서 크고 작은 구설수를 낳는다. 소위 말하는 거리감이라는 것이었다. 좁힐 수 없는 간극. 그로 인해 솟아나는 호기심, 의문, 결과적으로 한 인간을 외롭게 만들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장은 스스로 만든 선을 지켰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도 사람인지라, 양장의 이런 특징은 몇 안 되는 호감의 대상에게 더욱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자면, 지금 당신 눈 앞에 펼쳐진 이 상황처럼.
"여기 보자. 착하다, 이리 와, 옳지..."
복잡하게 얽힌 길과 갑갑한 담벼락이 환상의 콜라보를 이루는 뒷골목은 미디어 속에서 간혹 로망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그려지기도 하나, 치안이 나쁜 평화시의 경우에는 온갖 불순하고 위협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범죄의 온상일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노는 공간이 많아 도시 동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어주기도 했는데, 능력과 직업의 특성 상 도시의 외진 곳을 체크해 두어야 하는 양장으로서는 그야말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길고양이나 새의 물을 챙기고 아픈 개체가 있으면 병원에 데려가거나 잠시 보호하며 입양을 보내는 일 따위도 서슴지 않았다.
"잡았다."
지금 이 상황 또한 그런 일의 연장선에 있었다. 담벼락 사이에 잘못 빠진 고양이를 간식으로 유인해 어떻게든 끄집어낸 것이다. 그러는 과정 중에 높은 담 위에 올라가 앉게 되면서 영락없이 시선을 끌기 좋은 꼴이 되어버렸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팔을 덕덕 긁는 고양이를 양팔로 붙잡고 뒤늦게 어떻게 내려가지, 고민하던 차에 당신과 눈이 마주친 순간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뻘쭘한 정적이 흐른다.
여느때와 같이 뒷골목을 거늘던 그는 애옹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미 한번 내키는걸 했으므로 비교적 안전한 상태인 그였지만. 뜻밖의 상황과 마주치고 만다. 여자들중에선 비교적 큰 키의 누님 ㅡ 본인이 그렇게 말할뿐 나이를 가늠한건 아니다 ㅡ 이 높은 담위에 앉아서 고양이를 유괴(?)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가 도착했을땐 이미 고양이 붙잡고있던 그녀였으므로 그는 전후상황까진 알지 못한채 빤히 당신을 바라봤다.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유괴범인가.."
턱을 매만지며 범인을 찾은 형사의 눈을 하는 그. 그러나 의외로 순순히 당신쪽으로 다가가며 뭘 그리 번거롭게 하냐는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그냥 들고 내려와요. 그게 나을거 같은데."
고양이만 받았다가 고양이가 놀라서 할퀴고 도망갈지도 몰랐고. 일단 이미 붙잡고 있으니 그게 나을거 같았다. 상대방은 키가 큰편이긴했으나 그래도 한명과 한마리 못받을 정도의 약골은 아니었다.
저 사람, 말 하나 하나가 촌철살인이다. 연달아 정곡을 찔린 양장은 머쓱하게 웃는 것 외에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눈이 마주친 시점에서 모르는 척 각자 갈 길 가는 건 이미 물 건너 갔고, 어쨌거나 고양이의 완전한 안전을 위해선 정말로 도움은 받아야 했다.
"으음..."
키는 대충 엇비슷 해 보이지만 체격은 글쎄. 하지만 너무 오래 보면서 판단하는 것도 도움을 청하는 입장에서는 웃기는 일이며 결정적으로 예의에 어긋난다. 게다가 이 날카로운 사람은 갈수록 첩첩산중이라 내려오지 않으면 신고를 하겠다는데, 문제될 게 있고 없고를 떠나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선택지고. 이 와중에 팔 안의 고양이는 양장의 팔을 긁다 못해 몸부림을 치고 있고.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양장은 직관적인 선택지를 집어들었다.
"그럼 바로 내려갈게요. 조심해요."
다치면 미안할 것 같은데. 끝내 놓지 못한 염려와 함께 양장은 담 위에서 뛰어내린다. 실시간으로 긁히는 팔뚝에서 몽글몽글 튀어오르는 붉은 핏방울과 함께.
생각 이상으로 안정적인 착지였다. 못 미덥게 본 게 미안할 정도로 단단하게 받아내자 양장은 조금 더 머쓱해졌고, 그만큼 고마워졌다. 이 밤중에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수상쩍은 비주얼의 인간을 도와달란다고 도와주는 사람이라니, 순진하다 여길 만큼 친절하지 않은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다던가. 뭐, 어느 쪽이든 당장은 상관 없다. 이능력자가 넘쳐나는 세상에 수상한 인간은 많지만 모두가 나쁜 사람은 아니고, 무엇보다 저쪽 입장에선 양장 또한 수상한 인간이다. 피차 수상한 마당에 굳이 이것저것 재고 따질 필요가 있을까.
"음? 아, 팔이... 어쩐지 좀 아프더라. 그새 많이도 긁었네요."
이 녀석~ 이러면 곤란하답니다~ 말마따나 피가 흐를 기세인데도 팔을 다 긁은 범인에게 너그럽기 짝이 없는 말투다.
"아뇨, 일단 내려왔으니까 내려두면 될 것 같아요. 당신도 긁히면 안 되죠. 사실 아까는 이렇게 긁어댄 줄 모르고 받아 달라고 한 건데 정말 얘만 내려보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한껏 몸부림을 치던 고양이는 양장의 말이 맺어지고 팔이 느슨해지기 무섭게 품을 탈출해 다른 샛길 안으로 사라진다. 멀리서 들려오는 다른 고양이들의 소리와 함께. 가족을 만난 건지, 뭔지. 다행이지만 조금 얄미울 만큼 빠르다.
"감쌀 게... 음~ 당장은 뭐가 없네요.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아요~ 돌아가서 소독하고 붕대 감으면 되니까. 아까부터 느꼈지만 참 친절하네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무감각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상이 일상인 만큼 통증에 무뎌지기라도 한 걸까? 다만 양장은 하하, 웃음을 흘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머, 그건 어디서 나온 거예요? 신통방통해라~"
사실, 이 시점에서 양장은 더이상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 없었다. 상처는 집에서 치료하든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치료하든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나 당신이 곧이어 어디선가 꺼낸 구급상자는 빠져나갈 틈도 주지 않고 그의 걸음을 붙든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쯤 되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섬세하네.
"좋은 가르침을 받았네요. 맞아요, 모든 건 돌고 돌죠. 요즘 같은 때에 이런 친절을 받을 수 있다니 기뻐요~"
피는 슬슬 굳어서 피부 위에 달라붙는다. 양장은 붕대와 소독약을 꺼낸 당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어른이 치료마저 남에게 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어딘가에서 구급상자를 꺼낼 수 있다가 면접에서 유리하게 적용하는가는 둘째치고,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꾸한뒤 자신에게 손을 뻗은 당신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생각난게 있지만, 적당히 넘긴 그는 당신에게 붕대와 소독약을 건네고서 적당히 거리를 두며 반대편 벽에 기댔다.
"어쩌면 다른곳에선 이 정도 친절은 친절취급도 안해줄지도 모르지만."
뭐 그건 거기 이야기고~ 그는 과장스럽게 이야기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정상이 아닌 도시이지 않은가, 이러고 있는 자신도 정상이 아니고, 어쩌면 당신도 정상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는 그저 느긋하게 당신이 치료하는것을 구경할 뿐이다. 지금의 그는 친절하니까.
희망하는 분야가 응급실 같은 곳일까? 농인 줄이야 알지만 실없게도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만약 진짜라면 준비성에 친절함까지, 면접은 무난하게 패스 하겠거니 싶은데. 소독약과 붕대를 건네받은 양장은 즉시 상처를 소독하고 신속하게 붕대를 감았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는 이러한 응급처치에 익숙했다. 머잖아 상처는 붕대 뒤로 자취를 감추고, 말끔히 처리를 마친 양장은 당신에게 소독약과 붕대를 다시 돌려주었다.
"이렇게 친절한 걸 친절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음이 너무 좁은 게 아닐까요?"
그건 좀 슬픈걸요~ 상대의 말은 과장스러운데다 실없는 소리인지 아닌지도 모를 모호한 어조였으나 양장은 그저 진심으로 떠오르는 말로 대꾸했다.
"그럼 늘 이렇게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건가요? 꼭 의사 선생님 같네요~ 고마워 하는 사람이 많겠어요. 그치만 밤에 이런 곳을 자주 다니면 위험한데. 조심해야 해요. 다친 사람 중에도 위험한 사람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또한 진심.
"그런 의미에서~ 슬슬 큰길로 나가도록 할까요? 너무 오래 머무르면 치료하는 입장에서 치료 받아야 할 입장이 될 지도 몰라요."
되게 잘 하네. 그는 머리속으로 그런 감상을 남기고 있었다. 역시 그냥 소시민같은 느낌은 아니란 말이지. 그러나 지금은 딱히 뭘 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그는 얌전하게 치료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의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런 도시가 있다면 어쨌든 이곳보단 낫겠지. 친절이라는게 기본 베이스로 장착되어 있는 곳이 정말로 있을진 몰라도. 길가다 사람이 다치거나 하는것따윈 놀랄거리도 안 되는 이곳보다는 훨씬 나을것이다. 이내 치료가 끝나고 건네주는 소독약과 붕대를 다시 구급상자에 봉인한 그는 그것을 또 어디론가로 슥 넣고 하품을 했다.
"산책하는김에 겸사겸사죠. 아무나 다 해주는것도 아니고요. 뭔가 다쳤다는데 딱 봐도 수상한 사람도 있고요."
당신의 말에 긍정하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단 말이지, 근처에 가면 안될거 같은 분위기를 뿜뿜하고 있는 녀석들이. 물론 그는 그 상황에서 당당하게 다가가는 타입이었으나 말이 길어질게 뻔하므로 굳이 대꾸하진 않은뒤 벽에서 등을 뗐다.
"그렇게치면 누님도 같은 입장이지 않은가 싶은데,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신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으나 그는 대답을 원하는건 아닌지 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큰길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친절한 사람이 오히려 등쳐먹히는 시대인 만큼 걱정이 앞섰는데 그나마 이런 말을 하는 걸 보아하니 사리분별이 안 될 수준은 아닌 것 같아 안심이다. 애당초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을 두고 무슨 안심이네 걱정 같은 걸 되뇌며 유난인가 싶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안면을 튼 상대가 어느날 불상사에 휘말려 있는 꼴을 보는 건 사양이었던 까닭이다. 다만 양장의 눈에는 이 남자가 여전히 퍽 무모하고, 다소 의뭉스럽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시간에 이런 장소에서 누군들 그렇게 비춰지지 않겠느냐만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나요?"
그러나 지금은 심문이 어울리는 타이밍이 아니고, 때문에 양장은 무던히 웃으며 그렇게만 답을 달아 두었다. 확실한 대답을 바라지도 않는 사람에게 상세 정보를 먼저 털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럴 필요성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는 죽기 직전까지 사방팔방을 쏘다니며 일할 예정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 남자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다. 제대로 된 자기 소개는 그 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게 한낮 햇볕 아래 평화로운 순찰 중의 재회가 될 지, 아니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나쁜 상황에서의 재회가 될 지는 지금으로선 모르는 일이지만.
"골목 끝나는 곳 까지만 같이 갈까요? 혼자보단 둘이 나으니까요."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지금으로 충분할 것이다. 양장은 발걸음을 돌린다. 골목 어딘가에서 고요히 울리는 고양이들의 야옹 야옹 소리를 뒤로 한 채.
[인터뷰①] 사이코 범죄자? 허당 도둑? 상반된 별명의 ‘핑키(Pinky)’. 그녀는 누구인가?
“그 사람 범죄자 맞아요? 아니, 맞긴 하지만…… 도둑질하는 걸 봤는데 글쎄 허점투성이더라니까요. 도둑질을 꽤 오래 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봤었는데 옆집 벽을 줄로 타고 올라가다 발이 미끄러져서 떨어지질 않나, 자물쇠 부순다고 뭔 무기로 두들기다가 안되니까 은밀 행동도 집어치우고 동네 떠나가라 쾅쾅 내려치질 않나……경찰차 소리가 들리는데도 오기가 생겼는지 계속 내려치다가 잡히더라니까요. 반나절도 채 안 돼서 탈출했다고 들었긴 하지만.” - 범행 목격자, A.
“아, 걔요? 등교를 잘 안 하긴 했는데 그거 때문에 더 기억에 남기도 하고, 머리카락 색부터가 눈에 띄잖아요. 근데 워낙 결석을 많이 해서 어떤 애인지는 잘...... 그래도 애가 이쁘장하니 생기고 성격도 괜찮아서 올 때마다 잘 녹아들었어요. 나중에 가선 좀 노는 애들하고 어울릴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애들이 피하더라고요. 그 애들 중 몇 명이 맞았댔나, 걔네들이랑 나란히 멍 주렁주렁 달고 등교했었나? 그러기도 해서 싸웠나 싶었죠.” - 고등학교 동창, B.
“엄청 조용했는데 그 여자애가 핑키라고요?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만 하다 갔어요.” - 아르바이트 동기, C.
“나쁜 사람인가요? 우리 애가 납치당할 뻔한 적이 있었는데 구해줬었거든요. 저한테 귀를 막고 떫은 표정으로 한 손으로 애를 데려다줬던 거 보면 그냥 애 우는소리가 싫었던 것일까요? ……어쨌든 구해준 건 사실이에요.” - 핑키에게 도움을 받은 시민, D.
. . .
(유리창 안쪽에서 광분하며 험악하게 얼굴을 구긴 사내의 사진)
“뭐? 핑키? 지금 핑키라고 했냐? 그 미친 핑크 안개?! (“그렇게까지 말은 안 했-”) 망할 녀어어어어언—!!!!!!!!! 보고있냐?!! 야이 ****!!! **!!”
- ‘■■동 일대 보석상 절도 사건’의 공범, N.
. .
(다음 단락, 어째서인지 찢어져있다)
. . .
(멀리서 뒤돌아보는 연분홍색 머리카락 여성의 사진)
“어? 내 인터뷰? 좋아. 자료조사비나 인터뷰료 같은 거 줘? 아 없어? 없으면 주지 마. (감흥없는 표정) 줘도 시원찮을 것 같네. 근데 물어볼 거 있으면 빨리해주지 않을래…?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위를 살핀다) 곧 경찰이 올 것 같아. 오기 전에 몇 군데 털었거든. 오늘 치 안 해도 쫓길 테지만 아무튼. (주절주절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사실 그건 가짜였거든. 뭐? 아, 질문? 뭔데? 근데 잠깐만, 이것만 들어봐 봐.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나 그거 금고 푼 거 아니었어. 턴 건 맞지만 암호 풀고 그런거~ 다 무기로 쾅쾅! 해버린 거야! 뭐? 다 알고있다고?! 에이씽… 쪽팔리게. ……나 갈래. (확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다급히 붙잡으려는 인터뷰어의 목소리가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동그랗게 내려 묶은 머리를 감싸는 남색 캡 모자, 얇은 후드집업에 반바지, 운동화, 검은 마스크, 간식들이 담긴 검은 비닐 봉지. 일(도둑질을 일이라 할 수 있다면) 할 때와는 달리 집 앞 마실 나온 차림새를 한 핑키는 집 앞이 아니라 꽤 멀리 떨어진 마을에 와있다. 삼 주 전쯤인가에 이 동네 은행을 털다가 멀리서 본 여자가 눈에 든 까닭이었다.
복식도 독특했고, 대충 봐도 안단 말이지. 이 정도까지 좀도둑 생활 좀 했으면. 까득, 까득. 입안에 문 딸기 소다맛 사탕을 씹어대며 느긋이 생각한다.
핑키는 편안한 차림으로 주민 행세를 하며 자료 수집을 이어나갔다. 밝은 웃음, 맑은 목소리, 어딘가 푼수적인 면모를 보이며 주민들의 경계를 푼다. 제가 최근에 이 동네에 왔는데, 라고 서두를 떼며.
독특한 옷을 입은 여자분이 있더라고요, 체구가 작고 전통적인 옷 같던데.
누구냐 직접적으로 묻지 않으며 대답을 유도한다. 답에 주거지 정보가 포함되지 않았다면 한번 더 물을 것이다. 정말요? 어디 집 아가씨인데요?
핑키는 주민과의 질답들을 되새기며 걸음을 옮긴다. 그들이 알려준 정보를 따라(알려주지 않았다면 감을 따라) 점점 주거지의 근처로. 심심한 손으로 비닐 봉지를 붕붕 휘두르며 타겟 위치와 마을 구조, 도주 경로를 구상하는 가운데 툭 하고 봉지에서 간식들이 하나 둘 튕겨져나갔다. 데구르르. 몇개는 상당히 길게 굴러간다. 아, 정말! 봉지로 장난치지 말걸! 한숨을 푹 쉬며 일일이 간식을 줍는데 시야에 저 멀리 간 간식들이 보인다. 헨젤과 그레텔마냥 사탕, 초콜릿, 젤리 등을 주우며 점점 앞으로 나아가다 보이는 자그마한 발에 멈칫하고, 줍던 손을 거두어 발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기 위해 고개를 든다.
"그런 사람 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이 동네에 새로 오셨다고요? 독특하시네요..."
"아, 그 여자애? 몰라요, 어린애인지 좀 더 나이 먹었는지. 어디 사는지도 짐작 안 가구. 외출하면 눈에 띌 텐데도 그렇게 자주 안 보이던데요."
"내 생각하는 사람이 맞다면 저쪽 거리 자주 돌아다니는 것 같수다. 이 근방에 워낙 이상한 놈팽이들이 많이 싸댕겨서, 여자 혼자 산책하긴 어려워 보이던데."
당신은 물어물어 찾아가려 했지만 대략적인 위치 정보만 들었을 뿐, 정확히 어느 집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녀에 대해 아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어 보이는 탓이었다. 이쪽 동네는 부자들이 산다기엔 다소 초라했다. 골목마다 뵈는 건 인생 포기한 듯한 불량배들이요, 그저 하루하루 살아 있을 뿐인 백수들. 그런 거리에 몸집 작은 젊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거나 말이다.
"...주워요, 마저."
그 자리에 다소곳이 멈춰 선, 검은 나막신 신은 버선발. 시선을 위로 올리면 통 넓은 일본풍 바지-하카마라 하던가-에 한복처럼 보이는 저고리를 걸친 여성이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가 작게 목소리를 내며 당신을 기다려 주는 것은 섣불리 걷다가 주변에 떨어진 간식을 밟을까봐- 같으나, 그것이 당신을 배려한 것인지 혹은 그저 밟았다가 신이 더러워질까 염려해서인지는 모른다.
끙, 내 성능좋은 후각이 퇴화하기 시작했나. 가도 가도 추레한 골목길에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입맛만 다실 참이었다. 저놈들 주머니 뒤질 바엔 근처 편의점을 터는 게 낫겠다 싶었다. 분명 귀해 보였는데-. 부잣집 한번 잘 털면 대박 치는 거라 여기서 물러나긴 아쉬워 마을 탐색을 지속했던 것이 행운을 불러왔던 걸까. 자신의 실수로 마주친 여자, 아니 여자아이? 동그랗게 떠진 다홍색 눈이 의뭉스러운 흑안을 마주하며 스쳐간 찰나의 기억을 되새겼다.
정답! 속으로 럭키를 외친 핑키는 자신의 위로 떨어진 목소리에 아, 그래, 잠깐만요 하고 잽싸게 주운 뒤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니 올려다보던 시선이 이제 내려가 인형 같은 조막만 한 머리통이 눈에 들어왔다. 어려 보이고, 위험해 보인다. 그런데도 여길 돌아다니는 건 집이 근처인가? 마스크와 모자로 인해 유일하게 보이는 눈을 접어 웃었다. 다홍색 눈동자가 숨겨졌다.
“우와-,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아 참, 이거 먹을래요? 안 떨어진 거예요!”
살가운 목소리를 내며 손을 내밀었다. 손 안에는 사탕처럼 포장지에 감싸인 초콜릿 뭉치들. 핑키는 다양한 제스처를 취하며 재잘재잘 떠들어댄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좀 얘기할까요. 나 지금 심심해서. 단 거는 좋아해요? 옷이 특이하고 이쁘네요, 맞춤옷? 등등등……. 마지막에는 결국 본론이 나오기 마련이고. “근데 여기 살아요? 어려 보이는데, 혼자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해 보여서.” 난 정말 순수한 걱정만을 하고 있어, 라는 듯한 무해한 눈웃음을 꾸며내는 것이었다.
“오면서 봤거든요. 불량배들이 엄-청 많던데!”
데려다줄까요? 까지 나오려 근질근질한 입술을 꾹 문 것은 마스크 속에 감춰져서 다행이었다.
이 맛있는 걸 거절한다구? 표정으로 말하듯 눈이 크게 뜨였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렇지, 배고프지 않으면 맛있는 것도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지. 제멋대로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운 듯 초콜릿 뭉치들을 다시 비닐 종이에 넣었다.
돕기 어렵다는 말에 눈썹을 팔자로 휘며, “괴로울 정도의 심심함도 있다구요-”라고 울상을 짓는 듯 하다가 “지금은 아니지만.”하고 맹랑한 표정을 짓는다. 다만 간결한 말투로 거절을 하여 단호한 구석이 있다 생각했으나 제 재잘거림의 꼬박꼬박 대답해준 것은 의외였다. 대답해 주지 않았어도 혼잣말은 그녀의 특기었으니 아랑곳 않고 중얼댔을 테지만.
그래서 단순히 말수가 적고 단호하다 생각했던 여자아이가 길거리에 살지 않는다고 답했을 땐 눈을 끔뻑끔뻑하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엉뚱한 면이 있네. 핑키는 정정하려다 그럴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아 “으응? 그렇구나아... 가끔, 그렇지, 길거리에 살 것 같지는 않지, 응.”하고 허허실실 웃어넘겼다.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니 치안이 괜찮은 곳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요. 여기도 많더라구요. 조심해요. 이제 갈 거예요? 데려다줄까요?”
다시금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핑키, 수락한다면 데려다주며 경로를 알고, 거절한다면 몽유가 가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린다.
/ 내일 평일(ㅠㅠ)이라 일찍 일어나야해서 이제 가야되네요 ㅜㅜ 막레로 주시거나 좀 더 이을 거리가 있다면 퇴근 후 짬짬히 잇도록 할게요 :> !
1번은 백수였을 가능성이 매우매우매우 높지 않았을까 싶네요, 의외로 능력 생기기 전부터 무당이었을지도 몰?루요! 2번은 막연하게~ 평화시 출신이라는 생각도 해봤네요! 이렇게 되기 전에는 바깥에도 몇 번 나갔겠지만 아무튼 평화시 출신일듯! 3번! 학교에선 뭐든 적당한 학생이었을거 같네요, 불량학생까진 아니지만 소소한 일탈도 하고... 뭔가 모범생 그룹에도, 불량학색 그룹에도 발을 걸치고 있는 느낌? 양 쪽에서 배척받지는 않았을 거 같네요, 예나 지금이나 가벼워 보이면서도 입이 무거운건지,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그런건지 같이 있으면 이득이 있었으면 있었지 나쁠 건 없었던 학생입니다!
1. 능력이 생기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 이전에도 경찰이었고 지금 사는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을 것 같다. 2. 평화시에는 언제 오게 됐는지 : 지금 사는 곳으로 온 건 신축 올라가고 한 직후였을 것 같고... 그러기 전에도 근처에 살았을 것 같네. 토박이? 일 듯? 3. 학창시절엔 어떤 사람이었는지 : 겉모습이 튀어서 본인은 조용했지만 학교 사람들은 양장의 존재를 대부분 알았을 것 같아. 모난 돌 걷어차듯 괴롭히는 애들도 있었고 막연히 동경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가까운 친구는 없었을 것 같네. 제일 먼저 등교해서 제일 늦게 하교하는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