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576074> [HL/청춘/일상/1:1] Serendipity :: Note 1 :: 124

◆DKrNXmBQas

2022-07-27 21:14:47 - 2022-11-21 08:27:35

0 ◆DKrNXmBQas (1bNlpqKJAs)

2022-07-27 (水) 21:14:47


세런디피티(serendipity, IPA: [ˌsɛrənˈdɪpɪti])는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특히 과학연구의 분야에서 실험 도중에 실패해서 얻은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어느 봄날이었다.

53 도담 - 백담 ◆mZm4g7rP2k (H3k/lLWjEM)

2022-08-07 (내일 월요일) 21:56:37

웃음에는 여러 웃음이 있다. 즐거운 기분에 여물던 봉숭아 씨앗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있고,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얕잡아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것도 있다. 담은 남자아이의 침묵에는 물음을 품고 있던 두 눈동자를 감추려 살며시 눈웃음 지었고, 감사하다는 인사말에는 짓궂게 생긴 호선을 입매로 그렸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니까요─라는 말도, 장난에 돌아온 인사가 조금 낯간지럽고 즐겁다는 기분도 모두 웃음에 담았다. 그렇게 전해질지와 받아질지는 모르는 일이어도 언제나 웃음을 표현 방법으로 삼았다.

숙여준 만큼과 가까워지면 손을 뻗어보지 않아도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덜너덜한 거즈는 새 반창고로 바뀐다. 손톱을 세우지 않아도 쉽사리 떨어져서 실수로 뺨을 긁거나 따갑게 할 일은 없었다. 적어도 이 남자아이가 다음에 새로 거즈를 붙일 때까지는 꼭 붙어있도록 손가락 끝으로 반창고 끝을 지그시 누르며 미끄러진다. 다른 향기나 다른 온기에 껄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가가는 데 익숙하단 게 묻어났다. 또다시 들려오는 감사하다는 인사에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웃음이었다.

"네, 반에 운동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학교가 예고랑 체고를 섞어둔 느낌이라서."

경력 1년 차는 작년의 이야기었다. 멈췄던 걸음은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횡단보도가 보이면, 그 앞에서 왼쪽으로 꺾자마자 하채문화예술고등학교와 백람예술회관이 보인다.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더 이상 같이 가야 할 이유는 없어진다.

"저기, 저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 왼쪽 길로 가면 돼요. 바로 보일 거예요."

문득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냈다. 휴대전화에 꽂혀있던 이어폰 잭을 빼고 잠금화면에 뜨는 시간을 확인해보면 5시 30분 언저리쯤이었다. 남자아이가 길을 헤맨 시간이라든지, 반창고를 붙이겠다고 작은 실랑이를 벌인 시간을 고려하면 조금 늦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늦지는 않았어요?" 물음이 붙었다.

54 도담주 ◆mZm4g7rP2k (h6xUx4w.js)

2022-08-07 (내일 월요일) 22:01:09

백담주의 해석이 정확해 ㅎㅁㅎ 시트 성격란에 있듯 100%에서 시작하니까 웬만큼은 가족, 친구, 지인, 전혀 상관없는 타인 사이 간격이 좁은 편이니까 백담이랑 도담이는 서로 전혀 다른 가드를 치고 있는 것 같네.

도담이는 데이트라고 했지만 전학 상담 때문에 만나는 걸까 생각하고 있는데 맞으려나 ㅎ-ㅎ 백담주도 주말 잘 보내. 이제 일요일도 몇 시간 안 남았네 8-8

55 백담주 ◆DKrNXmBQas (mEuiawM4vU)

2022-08-07 (내일 월요일) 23:22:58

아, 잔인한 타입이네요... 백담이 이 녀석도 벽에 얼쿨 쾅 부딪히고 코피 흘리면서 어? 하고 어리둥절하는 미래가 보인다...

정확합니다. 아버지랑 같이 하문고에 전학상담하러 가는 길이거든요. 아마 다음주 월요일에 선생님이 전학생을 소개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주말은 늘 야속하죠. 제대로 옆에 같이 있어주는 법이 없어요. 그래도 저는 저녁마다 돌아올 테니 백담이에게 궁금한 게 있다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거나 하면 부담없이 갱신해 주세요.

56 도담주 ◆mZm4g7rP2k (MGu46hEKJw)

2022-08-08 (모두 수고..) 00:03:35

햇살캐들의 햇살이 그런 편이라고 생각해서.... ㅎㅁㅎ.... 도담이의 첫 연애는 기타란에 적어놨지. 아마 그 선배가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싶어, 사귀는 사이니까 조금 더 특별해졌을 줄 알았는데 다른 건 없다란 걸 느끼지 않으셨을까.

응, 나도 저녁에는 들어와보도록 할테니까 백담주도 그렇게 해줘. 지금은 자다 깼는데.... 백담주도 자러 누웠겠지. 월요일 힘내자 ㅎ-ㅎ

57 백담주 ◆DKrNXmBQas (UbCf0yXCu.)

2022-08-08 (모두 수고..) 00:05:37

(이거 생각보다 앞으로 더 큰일났다)

답레 쓰던 중이었어요. 이것만 쓰고 자려구요. 3.3 주무시다 깨시면 안되는데... 다시 푹 주무시길 바래요. 좋은 꿈 꾸세요. 월요일도 힘내요.

58 도담주 ◆mZm4g7rP2k (U5WWqn2Y6U)

2022-08-08 (모두 수고..) 00:15:15

월요일이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ㅎ-ㅎ 백담주도 미리 잘 자. 폰 들여봤다고 조금 말똥해졌는데...... 잠들 것 같기는 해서.

도담이는... 내가 보기에는 시간을 많이 써야할 거 같단 느낌이 있어. 도담이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계속 옆에서 일부분을 차지해야 마음을 열 것 같다고 생각해서. 백담이는 어때? 도담이같은 아이가 낯설어서 거리를 두려나, 그러든 말든 방치하려나.

59 백담 - 도담 ◆DKrNXmBQas (xbFcI21plM)

2022-08-08 (모두 수고..) 22:18:23

자신의 회색을 내보이기 싫다. 자신의 회색이 다른 곳에 묻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자신과는 상관없이 맑고 푸르른 봄날에 타버린 잿가루 같은 자신의 삶을 흩뿌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한 자락 웃음을 섞어서 내보내는 이 낯설고도 친절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의 대답은 침묵일 수밖에 없었다. 입을 다문 채로, 허리를 구부려 눈높이를 맞추어준다. 그 움직임마저 어쩌면 그 상냥한 손끝에 잿가루라도 묻어날까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하채문화예고. 도담이 건네준 힌트에 그는 어렵지 않게 도담이 다니는 학교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예고와 체고를 섞어둔 종합예체능고등학교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 하채시에서 그런 고등학교를 찾으라 하면 한 군데밖에 없으니까. 아, 이게 하채문화예고의 교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좀더 실감이 난다. 어제와는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는 것을. 자신이 원하던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놓이게 된 세상이기도 하다. 의구심이 없지는 않다. 여기서라면 조금 다를까. 달라지긴 할까. '달라질 리가 없지'에서, 그래도 한 발짝은 물러섰다.

"여섯 시가 약속시간이니까, 충분할 것 같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모를 낯선 소년과의, 그리고 이름 모를 낯선 소녀와의 첫 만남은 여기서 마무리될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웃음을 아까 지은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역시 하교길을 그만두고 자신의 길안내를 해준 점에 대해서는 감사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 정도의 예의범절까지- 아니, 고맙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감정까지 분실하지는 않았다.

60 백담주 ◆DKrNXmBQas (xbFcI21plM)

2022-08-08 (모두 수고..) 22:25:53

거짓말같이 잠들었네요... 33 도담주는 좋은 하루 보내셨나요?

옆에서 일부분을 차지해야 마음을 연다고 한다면, 정말로 꽤 장기전을 각오하거나, 오너인 제가 힘내서 이런저런 상황을 만들어서 엮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백담이는 모두에게 거리를 두는 타입이니까요. 도담이가 모두에게 그렇게 상냥하다고 한다면 더더욱 그럴 테고요.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질 수 있다는 자신이 없는데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런 고통을 겁내는 거죠.

(원래 격투기반에서 에이스였던 아이가 백담이에게 밀려나 앙심을 품고 도담이에게 투덜대는 장면이 생각나 킵해두기)

61 도담주 ◆mZm4g7rP2k (x2gYw11/PA)

2022-08-08 (모두 수고..) 23:44:02

답레 잘 받았어, 답레는 내일 가져올 것 같아 ㅎ-ㅎ 백담주는 하루 잘 보냈어? 나는 잘 보냈고 잘 쉬고 있어.

세렌디피티라는 제목에 걸맞은 사건은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천천히 스며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한 번 바닷물에 빠질 일이 없지는 않겠지. 이런저런 상황을 만들어 엮는 것에 찬성하다 못해 함께 하고 싶어 ㅎㅁㅎ 백담이랑 도담이는 같은데 다르네. 도담이는 사람에게 거리두기에는 사람이 고픈 아이거든. 그래서 내가 먼저 너를 소중하게 여길테니까 너도 날 소중하게 여겨달라고 생각해. 소중하게 여기기 어렵다면, 널 소중해하는 날 싫어하고 미워하지는 말아달라까지도.

도담이한테 투덜거리면 응원과 위로가 튀어나올텐데, 백담이가 그 장면을 보게 되는거야? 도담이 반응에 따라 백담이 반응도 나뉘는걸까 ㅎㅁㅎ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장면 중에는.... 백담이가 도담이를 위로해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열린 후 이야기지만, 방과후 혼자 눈물 흘리는 연기를 하던 것 뿐인 도담이에게 백담이가 위로하는 장면이 있어. 위로에 연기 아닌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ㅎ-ㅎ

62 백담주 ◆DKrNXmBQas (vW2br.6GM.)

2022-08-09 (FIRE!) 00:27:33

누워도 잠이 안 오길래 폰을 봤더니.. 잘 쉬고 계시다니 다행이네요. 지금쯤 주무시려나요? 평안한 밤이 되기를 빕니다.

어쩌면 그래서 세렌디피티라는 제목을 짓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헛도는 톱니바퀴 같은 백담이가 맞물려 돌아가려면 그만한 긍정적 우연이 필요할 테니까요. 빗속에 멀거니 서 있는 백담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도담이라거나, 북적이는 인파 사이에서 무덤덤하게 손을 내밀어 맞잡았을 때 도담이의 눈에 들어오는 백담이의 빨간 귓바퀴라거나... 망상이지만, 그런 장면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걸 백담이한테 목격시킬 생각까지 하시다니 과연 저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말씀 나눌 때마다 절감합니다... 백담이는 아마 그 당시에는 반응이 없을 텐데, 연습경기에서 펀치가 매서워지거나 하지 않을까 싶네요. 당연히 유치한 화풀이입니다만, 철없는 소년이라는 게 그런 존재니까요.

백담이가 눈물흘리고 있는 도담이를 위로하려고 할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면... 백담이는 뭐라 말을 하기보다 다가와서 티슈팩을 하나 내밀고, 핸드폰으로 음악 하나 틀어서 도담이 귀에 이어버드를 꽂아주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쁜 장면이네요... 오늘 꿈은 행복할 것 같아요.

63 도담 - 백담 ◆mZm4g7rP2k (wZoj/nw7hk)

2022-08-09 (FIRE!) 22:06:43

여섯 시. 벌써 몇 번 들었는지 모를 감사하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맺음. 우리 둘 다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몇 학년이라는 물음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모자란 것 같다. 우연에서 비롯된 만남이 질문 하나로 더 이어진다고 한들 헤어지면 안 볼 사이가 되고 말테니까 인사치레해야 한다.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까지도 보이는 표정은 웃음이었다.

"별 거 아니니까요."

남자아이와 또래 친구일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통성명한 마디하지 못해 허리를 숙여 인사해야 하는 게 맞는지 헷갈렸다. 그래서 담은 배꼽 인사라기에는 손을 바로 모으지 않았지만, 아예 동그라니 두기에는 어색해 허리쯤 어정쩡하게 손을 가져왔다. 허리 숙여 인사할 때였다. 카디건 주머니에서 툭 이어폰이 떨어졌다.

"데이트 즐겁게 하세요!"

숙였던 허리가 곧게 펴지고, 담은 주머니가 허전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휴대전화는 주머니에, 이어폰은 바닥에. 이내 거슬러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야 하니 등을 돌려 걸음을 디뎠다. 낯선 온기와 향기는 머문 자리에 살짝 남았을까.

64 도담주 ◆mZm4g7rP2k (Qx8zxr3zFU)

2022-08-09 (FIRE!) 22:20:44

답레 가져왔어 ㅎ-ㅎ 백담주 평안한 하루 보냈을까? 비가 많이 안 온 지역이길. 푹 쉬어. 답레는 막레로 가져왔고 오늘도 수고 많았어 ㅎㅁㅎ

백담이에게 우산 씌워주려면 파들파들 까치발 들고 있을 것 같아서 예쁜 한 장면 같다가도 웃음이 나 ㅎㅁㅎ 귓바퀴가 빨간 백담이는 하얀 편이니까 빨강이 두드러질 것 같아서 눈에 띌 것 같아. 도담이는 백담이에게 여자아이 손이라서 부끄러운 건지 물어볼 것 같고, 그런 이유라면 소매 끝으로 옮겨가거나 백담이가 도담이를 잡게 할테니 덜 부끄러울까 생각하겠지 ㅎ-ㅎ!

학창생활이라면 한번은 나와줘야할 장면이지. 나 없는 자리에서 하는 내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기! ㅎㅁㅎ 사춘기니까 귀엽다고 생각해 ㅎ-ㅎ

백담이는 이어버드 파인가! 요즘 이어폰은 거의 다 들어가긴 했지만. 도담이 반응은 단계별로 다양해서 모르겠네. 제일 높은 단계가 품에 파고들어 안기는 거려나 ㅎ-ㅎ

65 백담주 ◆DKrNXmBQas (QW6yImJB8s)

2022-08-09 (FIRE!) 22:44:09

애매하게 중간에 낀 지역이라, 비가 평소보다 많이 오긴 했지만 다행히 수해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도담주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도담주에게도 별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백담이가 눈치좋게 우산 받아들어서 오히려 도담이한테 씌워주는것이... 도담이한테 손을 내밀었는데 귀가 빨개질 정도로 마음이 열렸다고 한다면... 네 손이라서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요즘 핸드폰이라는 것들이 아예 이어폰 홀을 빼버리는 추세니까요. 백담이는 더군다나 운동하는 아이라서, 와이어리스 이어폰이 더 유용하기도 할 테ㄱ마지막단계가 뭐라구요? 꼭 찍는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66 도담주 ◆mZm4g7rP2k (3FE4ulQ7z2)

2022-08-09 (FIRE!) 23:42:55

나는 해당 지역을 출퇴근시 지나쳐갈 뿐이라 괜찮았어. 우회해서 가느라 통근 시간이 길어졌지만 아무 일 없었어 ㅎ-ㅎ

백담이가 우산 들어줘도 키차이 때문에 비바람이 다 들어와 젖는 도담이가 생각났어 ㅎㅁㅎ 다 젖었다고 장난스레 툴툴댔을 때 백담이 반응이 보고 싶어서일까! 그때의 도담이는 어떤 상태일까... 너랑 똑같은 손이니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할 것 같기도 하고, 덩달아 부끄러워할 것 같기도 하네. 도담이는 연기하면서 닿는 건 예삿일이었을테니까.

그래서 도담이 폰은 의도치 않게 나온지 좀 된 기종이라는 설정이 붙었지 ㅎ-ㅎ 운동할 때는 선 거추장스러우니까 그렇겠다! 이렇게 키차이, 덩치차이가 나면 작은 쪽이 큰 쪽을 안았을 때 큰 쪽이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는 장면을 귀엽다고 생각해서... 아마 백담이가 도담이를 안아줄 수 있는 것보다, 도담이가 백담이를 안아줄 수 있는게 먼저일 거라고 생각해서 (적폐주의) 백담이는 도담이가 울면서 안아버리면 굳는 걸 볼 수 있을까란 소망도 있어 ㅎㅁㅎ

67 백담주 ◆DKrNXmBQas (Pnmo3AKpI2)

2022-08-10 (水) 00:00:45

출근시간이 길어진 것으로 끝난 게 천만다행인 일이죠, 이번은...

아마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주지 않을까요? 운동부 애들은 보스턴 백에 수건같은 걸 챙겨서 다니기 마련이니까요. 반대로 백담이가 우산을 도담이 쪽으로 기울여줘서 백담이 한쪽 어깨가 홀랑 다 젖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로 해요. 진짜 굳었다가 눈 깜빡이면서 토닥토닥(+현재 심리상태에 따라 같이 그렁그렁)해주지 않을까요. 운다니 가슴아픈데 예쁜데다 안겨오는 게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68 백담 - 도담 ◆DKrNXmBQas (Pnmo3AKpI2)

2022-08-10 (水) 00:17:37

"데이트가 아니라니까요..."

도담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이름 모를 소년은 손을 흔들어 웃는 얼굴이 예쁜 소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우연한 잠깐의 만남은 그 잠시간의 동행으로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도담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테고, 아직 통성명도 못한 이 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 소년은 앞으로 오며가며 도담을 종종 마주칠지도 모르겠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어줄 사실을 하나 알고 있긴 했으나, 말 그대로 오며가며 마주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도담이 멀어져 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소년의 눈에, 우연히도 또다른 힌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까 도담의 핸드폰에 달려 있던 이어폰이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브랜드 로고 덕분에 기억하고 있었다.

"아."

소년은 그제서야 이어폰을 주워들고 네가 멀어져간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그 너머의 갈림길에서 도담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알 수 없어 허망하게 눈을 깜빡였다. 일단은 어쩔 수 없다. 오늘 해야 되는 상담은 절차상으로 아주 중요해서, 빠지거나 늦으면 곤란한 상담이니까. 내일, 이름도 모르는 너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저 스쳐가는 우연한 순간일 뿐이라 생각해서, 네게 이름도 물어놓지 않았는데 새삼 이제서야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것은 짓궂은 장난꾸러기 아이 같아서 때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까지 사람을 끌고 갈 때도 있는 법이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언제나와 변함없는 등교길과, 조례 전의 왁자지껄한 아침 반. 평소와 똑같다. 몇 가지 빠진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몇 가지 더해진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고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평소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새 연도가 시작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봄날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기대감을 더해주는 법이지만, 한 반이 정해지면 그대로 졸업까지 죽 가는 하채문화예고 특성상 작년에 본 얼굴들을 계속 봐야 되니 오히려 변화에 대한 기대값이 다른 학교보다 적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조례를 치르러 들어온 선생님이 경례가 끝나고 나서 꺼낸 말은 반에 적잖이 신선한 화젯거리가 되었다.

"주목. 오늘은 우리 반에 전학생이 있다. 이종격투기 학과에 소속된 아이인데, 알다시피 이종격투기과에 소속된 아이들은 일괄적으로 5반에 소속되니까 우리 반이 됐어. 작년도 전국체전 복싱 부문에서 우승했고, 학생 선수권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신체적으로 약간 너희들과 다른 점이 있긴 한데, 백변증이 조금 있어. 그거 말고는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착한 아이니까 친하게 지내라."
"쌤, 백변증이 뭐에요?"
"만나보면 알게 될 거야."

하고, 선생님은 출입문으로 고개를 돌리고 앞문 앞에 서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들어와라."

그리고, 어쩌면, 도담에게는 어제의 그 순간이 플래시백되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교실 앞문을 지나쳐 들어온 아이는, 어제의 그 잊지 못할 정도로 새하얀 색을 하고 있는 그 아이였기 때문이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말간 피부, 보라색의 눈을 한 채로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어제 도담이 자신의 손으로 뺨에 붙여준 반창고까지 아직 그대로 붙이고 있는, 어제 도담이 백람예술회관 앞까지 길을 안내해 준 그 아이가 맞았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교복 바지와, 가디건 대신 하얀 저지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술렁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 하얗다."
"저 정도면 피도 흰색인 거 아니냐."
"잠깐만, 작년에 전국체전 우승이면..."

그러나 그 술렁이는 소리가 그의 귓전에도 들렸을지는, 모르겠다. 그 소년도 도담과 눈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첫눈에 지금 이 반에 어제의 그 상냥하고 웃음 많은 그 소녀가 앉아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그는 도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선생의 "자, 조용히." 하는 구령이 들리고서야 소년은 시선을 반 아이들에게로 뿌렸다. 선생은 소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백 담이라고 합니다. 백은 성이고, 외자 이름 담입니다.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대로, 이종격투기과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년, 백담의 조금 서먹서먹한 인사가 건네어졌다. 의례적인 박수가 이어졌다. 박수 사이로 섞여드는 웅성이는 소리.

"담? 우리 반에도 담이 있잖아."
"이러면 하얀 담 까만 담인가?"
"긴 담 짧은 담 아님?"
"야, 하다못해 큰 담 작은 담이라고 해라. 너도 키 작은 게..."
"조용히 하라니까 이녀석들. 그러면, 어디, 빈 자리가─"

선생님은 반에서 비어있는 자리가 있는지 가볍게 반을 둘러보았다.

69 백담주 ◆DKrNXmBQas (Pnmo3AKpI2)

2022-08-10 (水) 00:19:28

(반 아이들의 회화가 작위적인 느낌이 있어 답레를 쓰면서도 이게 맞나 머리를 싸쥔 도자기가 된 백담주)
자리는 도담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정해주시면 될 것 같아 저기에서 끊었습니다. (정하기 고민되시면, 사심 가득 담아 옆자리 해도 될까요...) 생각해보니 반의 책상과 의자 배열도 생각하지 않았군요. 옛날처럼 2열씩 배치하는 게 아니라 요즘은 5열배치로 바뀌었다고 하던가요?

70 도담 - 백담 ◆mZm4g7rP2k (chT82AJOaw)

2022-08-10 (水) 22:33:48

잘 모르는 브랜드 로고. 이름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년, 열세 살 먹은 동생이 생일 선물이라며 사다 준 이어폰은 보물이 되었다. 이어폰을 잃어버렸단 걸 알게 된 건 오늘 아침에서였다. 어제의 번복하고 번복한 하굣길에서 만난 친구와 재잘재잘 떠들다 이어폰을 찾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그대로 있겠거니 한 이어폰은 등굣길에서 쓰려고 보니 사라졌었다. 그래서 기분이 한 꺼풀 정도 가라앉고 말았다. 미묘하게, 눈치채기 어렵게. 혼자 앉는 자리에서야 표정에 조금 드러날까 싶지만, 누가 담아─다미야─야, 도담─하고 부르기라도 하면 은방울꽃에 맺힌 이슬이 톡 떨어지듯 작지만 분명한 움직임이 웃음을 그렸다.

조례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침 인사를 하는 동안 담임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동생이 슬퍼하지 않도록 같은 것이나 비슷한 것을 몰래 사야 할 것 같았다. 이어폰을 어디서 사야 하나, 하굣길을 찾아보면 나올 수도 있지 않나, 솔직하게 잃어버렸다고 알려주는 게 나으려나─꼬리 물어 기차놀이를 하는 생각을 끊은 것은 전학생이라는 단어였다. 3년 내내 같은 아이들과 보낼 예정이었던 학창 생활에 변수가 하나 튀어오른 것이다. 운동하는 아이, 백변증이 있는 아이. 검은 아이도 흔하지는 않았지만 하얀 아이는 드물었다. 어제 만난 남자아이를 그리면서, 전학생도 그 아이처럼 하얀 구름을 닮았을지 궁금했다. 앞문으로 들어오는 아이를 눈여겨보게 되는 건 어쩔 도리 없는 호기심이었다.

전국체전 우승이라든지 하얀 색깔에 술렁이는 소리가 조용했다. 무대 위에서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단둘에게 켜진 것 같았다.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 눈이 마주쳤을 때 담은 이 작은 우연들이 빚은 인연에 놀라서 어제처럼 웃지 못하고, 동그랗게 뜬 눈을 몇 번인가 깜빡여가며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어제만 해도 모르는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오늘은 담과 다를 게 없는 차림이 낯설다. 머무는 시선은 남자아이도 어제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담이었다. 담의 첫인사에 환영한단 의미로 반 모두가 손뼉을 치는데 아이의 손바닥은 부딪치는 게 작았다. 얼이 빠진 듯 맞부딪치는 소리는 탁하고 흐리다. 반 친구 중에서도 더 친한 사이로 지내는 몇몇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웅성거리는 대화들처럼 둘의 이름이 똑같아 까만 담, 짧은 담, 혹은 짧은 담이 될 친구를 보며 놀리듯 웃으면서 장난치는 시선이었다.

"여기, 제 옆자리 비었어요."

아이는 손을 들어 올렸다. 반을 훑던 담임 선생님의 시선은 아이에게 꽂혔다. 같은 반에 동명이인이야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옆자리 나란히 앉는 우연이 한 번 더 겹친다. 아이는 담을 바라보았다.

71 도담주 ◆mZm4g7rP2k (XWwIryU7PA)

2022-08-10 (水) 22:50:48

좋은 저녁이야, 백담주는 오늘 잘 쉬고 있어? ㅎㅁㅎ

운동부 계열 하면 생각나는 가방 이름이 보스턴 백이구나 ㅎ-ㅎ 수건 뒤집어쓰고 안경도 빗방울 튄 것 때문에 벗겠다. 백담이 어깨... 우산을 둘이서 쓰면 아무래도 한명은 젖고 말텐데, 백담이 어깨 넓단 묘사 때문인지 기울여주지 않아도 젖을 것 같아 ㅎㅁㅎ...... 둘 다 다음날 감기 걸리면 어쩌나.

나중에, 아직 먼 이야기니 돌리다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ㅎㅁㅎ 회화는 별로 어색치 않다고 생각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잇대 아이들 같고, 자리는 옆 자리로 가져왔어. 자리는, 난 중학교 때는 짝꿍이 있고 고등학교 때는 없기도 하고 있기도 했는데..... 어떻게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ㅎ-ㅎ

72 백담주 ◆DKrNXmBQas (atyVi3ib36)

2022-08-13 (파란날) 01:19:13

조그만 퍼즐의 한 귀퉁이가 맞춰지는 듯했다. 어제 그 아이는 아버지와 만난다고 했다. 백람예술회관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목적지는 백람예술회관이 아니라고 했던가. 데이트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그건 아니라는 듯 떨떠름해하는 반응을 보였고. 어제, 저 하얀 소년은 아버지를 만나 백람회관 근처의 고등학교- 도담이 다니는 고등학교로 전학 수속을 밟으러 온 것이다. 확실히, 학교에 방문하여 상담 및 전학 수속을 밟는 것이 데이트라고 부르기에는 떨떠름한 일이긴 할 것이다. 사실 소년이 떨떠름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적어도 도담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흔히들 전학생을 향해 보내곤 하는 호기심과 신기함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부릅뜬 눈으로 전학생을 쏘아보는 시선도 있었다. 마치 이상한 우연이 순전히 도담의 몫만은 아니라는 듯이. 그러나 그는 그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의 이름을 소개해 주었다. 백담. 도담과는 성씨 하나가 다르다. 하얀 담, 긴 담, 큰 담이 될 새 친구는 도담이 들어올린 손에 다시 도담과 눈을 마주쳤다. 또 만나네, 하고, 보라색의 눈으로 그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딱 도담이 옆자리가 비었구나. 저기 앉으면 되겠다."
"네."

소년, 백담은 별 거부를 하지 않고 보스턴 백을 옆에 낀 채로 담임 선생님이 지시해주는 대로 도담의 옆에 비어있던 자리의 걸상을 빼고 앉았다. 일단은 아직 선생님께서 조례를 마치지 않았으므로, 다른 아이들과 같이 교탁 쪽으로 시선을 둔다.

보통, 지금까지 다니던 환경과는 생소한 환경에 노출된 전학생은 여러 가지로 긴장하게 마련이고 그런 긴장이 태도며 눈빛에 드러나보이기 마련인데 가만히 앉아 있는 백담은 별로 긴장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사람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기색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고나 할까, 마치 아무것도 없이 의자 하나만 덜렁 놓인 텅 빈 교실에 앉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림자마저도 하얗게 보이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조례는 머지않아 금방 끝났다. 오늘의 조례는 예기치 않은 전학생 한 명을 빼면 별 것 없었다. 간단한 공지내용 몇 가지를 일러주신 뒤에 수업 잘 받으라는 말을 끝으로 담임 선생님은 조례를 마치고 교실에서 떠나셨다.

그리고 그제서야, 백담은 도담에게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렇지만 이내 전학생에게 흔히 있는, 교실의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 세례가 소년을 덮쳤다. 키가 몇이냐느니, 작년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게 맞냐느니, 아버지는 무얼 하시냐느니, 집은 어디냐느니, 어떤어떤 게임 하냐느니, 취미같은 게 있냐느니... 도담도 거기 합류하거나 귀를 기울였다면, 아버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집은 도담의 집과 같은 방향에 있는 단독주택 단지이며 딱히 즐겨하는 게임이나 취미 같은 게 아직 없다는 말도 들어볼 수 있었겠다. "산에서 살다 왔냐?" 하는, 반에서 알아주는 개구쟁이의 장난스러운 핀잔까지. 한 차례 호기심에 가득찬, 이제 같은 반 친구들이 된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내자 1교시 시작 직전이 되었고 그제서야 아이들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제."

그제서야 백담은 말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걸까? 그는 잠시 옆에 내려놓았던 더플백을 열더니, 가방 안쪽에 달려 있는 작은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떨어뜨리고 갔더라, 이거."

그것은, 어떤 상표인지는 잘 모르지만, 도담이 잘 기억하고 있는 상표가 새겨져 도담이 잘 기억하고 있는 색깔과 모습을 한, 도담의 이어폰이었다. 돌돌 말린 채로 깔끔하게, 그는 그것을 도담에게 내밀어왔다.

73 백담주 ◆DKrNXmBQas (atyVi3ib36)

2022-08-13 (파란날) 01:23:56

>>72 나메 실수... 백담 - 도담으로 읽어주세요 88

어렸을 적에 전학을 자주 다녔기에 그때 상황을 떠올리면서 쓰다 보니 답레가 장황해졌습니다. 분량에 개의치 마시고 쓰시고 싶은 느낌대로 답레를 써주세요. 이번 주는 잘 보내셨으려나요. 여유롭고 느긋한 연휴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짝꿍은... 있다고 하죠.(사심) 초중고 모두 5열식 배치라서 짝꿍이 있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청춘광인의 입장에서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신경쓰이는 아이랑 우산 같이 쓰고 가다 감기 걸리는 것도 청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답레를 남겨두고 자러 가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74 도담 - 백담 ◆mZm4g7rP2k (H7Emn2hXzw)

2022-08-13 (파란날) 22:19:41

제비꽃을 닮았다고 느꼈던 눈을 다시 마주칠 일은 아마 없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는 마주친 눈을 피하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웃기만 했다. 살가운 눈웃음은 어제 보았던 것과 같아서, 우리 또 만났다─하고 속삭이듯 했다. 담임 선생님의 지시가 있고 나면 들어 올렸던 손은 아래로 내려갔다. 비어있는 옆자리는 학기 내내, 혹은 1년 내내 그대로 갈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주인이 생겼다. 의자를 끄는 소리와 느껴지는 인기척이 낯설었다. 어제의 봄 내음 사이 섞인 낯선 온기와 향기는 이제 익숙해져야 할 것이 되었다.

조례, 그리고 조례가 끝나고서 찾아온 반 아이들의 질문 세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동안 구름 한 자락이 교실에 잘못 내려앉은 것 같단 느낌은 이상하리만치 지워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이어지고 이어진 우연이 현실 같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어림짐작해 본다.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로 바뀌고, 버스 정류장에서 타야 할 버스가 바로 도착하는 소소한 행운이 이어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그 비스름한 것일 거라고. 그저 직접 해주는 이야기가 아닌 옆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을 조금 흘려보내고, 조금 담아두었다. 반 아이들이 떠나고 가면 인사를, 어제 하지 않아 다시는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말들을 건네려 기다림을 보냈다. 봄기운 완연한 날씨에 봄꽃 피길 기다리는 기분과 조금 닮았나. 먼저 말을 건넨 건 담이었다.

"어─응!"

놀란 목소리는 더 크게 비집고 나오기 전에 입을 다물었다. 둥글게 맺힌 눈이 동그랗게 깜빡였다. 동시에 끄덕이는 고갯짓은 크고 명확해서 담이 주워준 이어폰이 아이의 것이라는 게 확실했다. 내민 이어폰을 받아서 내려다보던 눈은 다행이라고 안심하고 있었고, 곧 담을 보며 환히 웃었다. 역시 웃음이 헤펐다.

"고마워, 이거 소중한 거라서."

어제 담을 처음 만났을 때 이어폰을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던 것처럼 똑같이 그러려던 아이는 멈칫했다.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다가 잃어버렸으니 가방에 넣으려고 몸을 틀었다. 의자에 걸어둔 가방에 이어폰이 들어간다.

"아까 이름 들었어? 나도 담이야, 도담."

어제보다도 더 사근거리는 건 어제 만났던 반가움과 같은 반 짝꿍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어폰을 찾아준 감사 때문이기도 했다.

"교과서는 받았어? 없으면 같이 보자."

75 도담주 ◆mZm4g7rP2k (vFtQfc7HdE)

2022-08-13 (파란날) 22:27:13

집이 같은 방향이란 것도 의도한걸까 ㅎㅁㅎ 둘이 같이 등하교할 수 있겠다. 근데 도담이는 버스탄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아? 백담이도 버스 탄다고 하면 하교하던 버스에서 어깨에 기대 잠드는 걸 볼 수 있을까 기대되기도 해 ㅎ-ㅎ

감기를 얕게 앓아 둘이 나란히 약기운과 컨디션 저조로 꾸벅이는 장면 귀여울 것 같아. 크게 앓아 등교도 못하면 서로 집에서 담이는 괜찮을까 생각하는 것도 ㅎㅁㅎ 백담주도 좋은 주말 보내고 있어? 무던한 하루 보냈길 바래 ㅎ-ㅎ

76 백담주 ◆DKrNXmBQas (tVLeSjyNP.)

2022-08-14 (내일 월요일) 19:21:54

잠깐 둘이서 평소의 하교길을 벗어나 어디 들러갈 일이 생겼는데 하교시간이 조금 어긋난다거나 하면, 어디어디의 사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버스 내용도 편안하고 포근하니 좋습니다. 찬성입니다. 백담이가 종종 체력 관리한다고 뛰어서or자전거 타고 등하교할 때가 있는데 하교하던 버스에서 어깨 기대고 잠들어버리면 앞으로 그냥 쭉 버스 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반대로 도담이가 자전거 뒷자리에 탄다던가도 좋은 장면일 것 같지요.

앓아눕는... 마음은 아픈데 꼬닥거리는 건 상상하니 귀엽네요. 수업 시간에 서로한테 기대서 잠들어버린다던가, 선생님에게 지적받고 나란히 양호실행이라거나.

연휴의 둘째날은 푹 쉬고 계신가요? 좋은 연휴 보내고 계시길 바라겠습니다.

77 도담주 ◆mZm4g7rP2k (7K7ubou14o)

2022-08-14 (내일 월요일) 21:32:06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고 꾸벅이다가 의도치 않게 기대게 되겠다 ㅎ-ㅎ 내릴 때 백담이가 깨워주면 도담이는 놀라서 마저 집 가는 내내 사과하려나. 자전거 태우는 것도 청춘이다 ㅎㅁㅎ 날이 지날수록 백담이를 붙잡는 자세가 바뀌게 되겠지. 처음에는 자전거나 옷자락 잡을 것 같고, 나중에는 허리쯤를 안지 않을까 ㅎㅁㅎ

오후 내내 과 수업에 참여할 상태가 아니라 양호실 신세를 지는걸까? 도담이는 양호실 이불 크기가 넉넉할텐데 왠지 백담이는 뒤척거리면 이불 아래로 발이 나올 것 같아 ㅎ-ㅎ 난 잘 보내고 있어. 백담주도 연휴 즐기고 있어?

78 백담 - 도담 ◆DKrNXmBQas (h7KFWdeugs)

2022-08-15 (모두 수고..) 18:18:51

백담이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랬다. 자신의 삶이 마냥 버스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번호도 노선도 모르고, 값도 내지 않고 올라탄 버스. 운전대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승객의 자리에 하릴없이 앉아서, 어디론가 달리고는 있는데 운전석은 비어 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하염없이 어디인지도 모를 지평을 하염없이 가로지르고 있다고. 내 인생인데, 스스로의 인생에 「밀항」 해버렸다고.

밀항자가 어느덧 내린 곳이- 스스로가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린 곳이, 도담의 옆자리였다.

아직은 조금 얼떨떨하다. 익숙한 낯섦,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이전과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를 지금은 분명히 다른 것이니까. 그러나 우왕좌왕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우왕좌왕할 만한 힘이나 의욕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린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냥 정류장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 이러다가 또 언젠가 다른 버스에 멍하니 올라타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백담이 꺼낸 이야기는 또 만났네 하는 인사라거나, 앞으로 잘 부탁해 하는 붙임성있는 접근이라거나, 너도 궁금한 거 있어? 하고 요령좋게 내미는 손길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름모를 이국의 나비 날개 같은 자색의 눈동자를 하고서 그가 내밀어온 것은 또다른 작은 우연의 조각, 도담이 떨어뜨린 무언가였다. 돌려줘야 하기에 돌려주는 것. 다른 어떤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그런데도 도담의 미소는 환했다. 그래서 백담은 응, 하고 무언가 구체적인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정신을 차린 것은 교과서는 받았어? 하는 도담의 질문이었다. 같이 보자, 하는 말에 백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보스턴 백 가방이 두둑했다. 아이들의 질문 세례를 받느라,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미처 사물함에 넣어두지 못한 교과서들이 묵직하게 들어차 있다. 그 외에도 갈아입을 체육복이라던가, 수건이라던가 하는 게 보인다.

"필요없어. 괜찮아."

하는 조금 나직하고 조금 쌀쌀한 대답으로, 소년은 쌓여있는 교과서들 중에서 1교시 수업 과목에 해당하는 교과서를 꺼내들었다.

이제 와서 무언가 조금 기대해보거나, 무언가에 이끌리기에는 자기에게 자신 스스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구름 한 자락이 교실에 잘못 내려앉은 것 같단 느낌은, 잘못 느낀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얗게 바래인 삶에 이제사 이변 같은 게 있을 리가.
열여덟 청춘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꽃송이처럼 품고 있어야 할 아름다운 것이, 이 소년에게는 퍽 결여되어 있었다.

79 백담주 ◆DKrNXmBQas (h7KFWdeugs)

2022-08-15 (모두 수고..) 18:20:53

(답레를 쓰고 보니 이 녀석 생각보다 아직 껍질을 단단하게 여미네요...) 그래도 언젠가는 도담이랑 같이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는 날이 오리라고, 연신 사과하는 도담이에게 사과하지 않아도 돼. 하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날이 오리라고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녀석 꽤 기니까요. 음, 연휴인데 연휴답게 보내지는 못했네요. 도담주는 조금 어떠셨나요?

80 도담 - 백담 ◆mZm4g7rP2k (vL3b9YqAhA)

2022-08-15 (모두 수고..) 21:18:00

담이 고개를 가로저으면 도담은 고개를 갸웃댔다. 처음 등교한 오늘 교과서가 어디 있을는지 고개가 기울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왔는지, 아니면 벌써 교과서를 다 배부받은 건지 갸우뚱거린 고개. 이내 가방에서 꺼내지는 교과서를 보고 풀렸지만, 이번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한 학년 치의 교과서가 전부 저 가방 안에 들어있다면 그 무게가 상당할 테니 놀라서 눈을 깜빡깜빡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문득 연기과 아이들이 무대 소품을 옮기고 있으면 오늘 안에 다 옮기겠냐고 나서서 도와주는 체육과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종격투기과이며 전국체전 복싱 부문 우승을 했다던 담임 선생님의 소개, 어제 반 아이들과 똑같은 소리를 한다며 붙여주었던 반창고. 반창고를 붙여줄 때만 해도 같은 반 친구가 될 줄 몰랐는데, 미리 같은 반 친구가 될 걸 알고서 그런 것만 같아 작은 웃음을 머금는다.

"반창고 붙여줄 애가 늘어버렸네."

필요 없어. 괜찮아─반창고 붙여줄 애가 늘어버렸네─듣기에는 퍽 이상한 대화였다.

"점심 같이 먹어줄 친구도 괜찮아?"

전국체전 우승을 한 담이니, 체육과 아이들이 진짜 작년에 우승했냐─하며 말을 붙이면 점심때까지 같이 밥을 먹을 친구가 생기기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고, 몸 관리를 위해 식단에 맞춰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아이도 있고는 했으니 거절을 염두에 두었다. 민들레 씨앗 같다. 선뜻 날라와 앉더라도 후 불면 다시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거절해도 괜찮다는 말을 말없이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 질문 후에 바로 타종이 울렸다.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수업 종이다. 길어도 몇 분 후면 1교시 과목 선생님이 올 테니 계속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 도담은 필기용 노트의 맨 뒷장을 펼쳤다.

'학교 길 알려줄 사람 필요하면 말해!
어제처럼 에스코트해 줄게.'

작은 글씨로 적어 담의 책상 쪽으로 슬쩍 밀어두었다.

81 도담주 ◆mZm4g7rP2k (lEb2gHJ1MQ)

2022-08-15 (모두 수고..) 21:22:00

단단한게 맞지 ㅎ-ㅎ 도담이는 전혀 개의치 않아서 단단하다고도 생각 못하고 있는 듯 해. 그러고보니 백담이는 도담이가 연기과일 거 알까?

연휴 못 쉬었나 보네 ㅠㅁㅠ 난 잘 쉬었어. 백담주의 내일은 여유로우면 좋겠다.

82 백담 - 도담 ◆DKrNXmBQas (1yd3.AIfJU)

2022-08-19 (불탄다..!) 03:21:42

이런저런 문학작품이나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곳으로 전학온 인물들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전학을 왔다는 사실 그 자체를 향해서 설레임을 표현하곤 하던데, 책상이 조금 달라졌고, 햇살이 들어오는 방향이 조금 달라졌고, 반의 풍경이 조금 달라졌고... 물질적인 변화가 감정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그저 물질적인 변화로 인식되는 선에서 끝난다. 마음을 느끼는 법을 잊기라도 한 듯이. 그런 그에게, 소녀의 목소리가 팔랑이며 날아온다. 까만 담이 꺼내어놓는 말에 하얀 담은 초점 흐릿한 자색의 시선을 다시 도담에게로 돌린다.

"......"

눈을 깜빡이다가, 백담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매만져본다. 여전히 뺨에는 어제 도담이 붙여준 반창고가 남아있다. 반창고 붙여줄 애가 늘어버렸네- 하는 말에 그는 고개를 들어 새삼 타종 직전의 교실을 한 번 휘 둘러보았다. 운동부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 지정 교복이나 체육복이 아니라 사비로 마련한 체육복 차림이기에 반에서도 눈에 띈다. 운동부 아이들에게 이따금 한두 개씩 붙어있는, 반창고들. 그의 뺨에 붙어있는 것과 같은 것도 있고, 평범히 쓰이는 민무늬 반창고도 보인다.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소년은 무덤덤하게 안심했다. 낯설어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 역시 다른 일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깊은 밑바닥 한가운데 물결이 일어 물 속에 흙먼지를 일으키는 것 같아 깜짝 놀랐지만, 수면을 스쳐지나가는 산들바람에서 비롯되었을 뿐이었음을 알게 되자 한결 편해졌다. 편해지는 한편으로, 조금 심술이 나서,

"네가 그러고 싶으면."

하고 백담은 도담이 건네준 선택권을 다시 도담에게로 쏙 돌려주었다. 민들레 씨앗더러 원하는 대로 날아보라고 하는 억지다. 그런 억지를 쓰면서도 떨어지는 곳이 자기 옆이라면 그건 막지 않겠다는 조그만 가능성을 굳이 열어둔 게 얌체같다. 민들레 씨앗도 구름도, 어느 것 하나 자기 원하는 대로 가지 못하고 바람 부는 대로 쓸려다니는 것들이니. 타종음이 울린다.

타종음 중에 갑자기 또, 자상한 글씨를 한 점 내밀어오는 도담의 공책을 백담은 바라보았다. 에스코트- 이미 집과 학교를 어떻게 오가면 되는지, 버스 노선은 어떻게 되고 어디서 타서 어디서 내리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또 도보로 걸어가거나 뛰어간다면 얼마나 걸릴지도 이미 다 파악해둔 상태라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등하교길의 상당 부분이 도담의 등하교길과 겹치게 되어, 본의 아니게 결국 도담의 에스코트를 받게 될 테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아직 모른다. 모르는 채로, 백담은 자기 교과서 모퉁이- 저번 학교에서 쓰던 것과 같은 교과서였는지 사용한 흔적이 꽤 있는 교과서를 대강 한 쪽 펼쳐 한 귀퉁이에다 대답을 적어주었다.

'괜찮아. 고마워.'

잘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곧고 부드러워 알아보기가 쉬운 글씨체다. 우연일까, 두 마디 중에 고마워 쪽의 글자가 약간 더 크다.

1교시 담당 선생님은 얼마 안 있어 들어오셨고, 오전 인문학 수업이 시작됐다.

83 백담주 ◆DKrNXmBQas (1yd3.AIfJU)

2022-08-19 (불탄다..!) 03:22:37

늦은 새벽에, 두고 가겠습니다... 저도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를 못했어요. 88

84 도담 - 백담 ◆mZm4g7rP2k (LFz4Z3YiOw)

2022-08-21 (내일 월요일) 22:45:40

"그럼 같이 먹자."

타종이 울리기 직전에 도담의 목소리가 바로 답을 했다. 담은 선택권을 넘긴 것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고 돌려준 답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교복을 입은 낯선 남자아이에게 반창고를 붙여줄 수 있고, 먼저 같이 점심을 먹어줄 친구는 필요 없냐고 물어보았던 아이. 그런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긴 것은 선택권을 넘긴 것이 아니었다. 불어내지 않아서, 바람이 오질 않아서 민들레 씨앗은 앉은 자리에 그대로 머무른다.

'고맙기는 별거 아닌데!'

선생님이 교실에 올라왔지만, 작게 적힌 동글동글하니 주인을 닮은 글씨는 몇 자씩 더 노트에 자국을 남긴다.

'오늘부터 바로 방과 후 훈련도 해?'

개학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지만, 자리만 바뀐 반은 익숙하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어제 만났던 아이가, 잃어버렸던 이어폰까지 찾아주며 짝꿍이 되었으니 이런 저런 질문이나 선뜻 호의를 내미는 건 그 탓일까. 어제보다 조금 더 사근거리는 건 그 탓이 맞았겠지만, 도담은 원래 그런 아이였다. 담이 오늘 갑자기 나타난 짝꿍이었어도 이름이 같다며, 신기하지 않냐고 쉽사리 말을 붙여 웃음지었을 아이다. 언젠가 반 아이들에게 도담을 물어볼 일이 생긴다면 아, 걔? 원래 그래─맞어, 작년에 화이트데이라고 반 애들한테 사탕 줬잖아─너 평생 여자한테 뭐 받은 거 그때가 처음이라 설렜지? 형이 다 안다─자기소개하고 자빠졌네─그렇게 시답잖게 흘러가 버릴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담이, 나와서 이것 좀 도와줄래?"

오늘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나눠줘야 할 프린트물이 차곡차곡 교탁에 교차로 쌓여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나눠줄 양이 꽤 되어 보였다. 때문에 학생의 손을 빌리려는 선생님은 작년에도 그런 역할을 맡아주던 도담의 이름을 익숙하게도 불렀다. 도담도 이름을 불리는 게 익숙해서, 쥐고 있던 펜을 책상에 내려놓으면서 의자를 뒤로 드르륵 밀며 일어났다. 평소와 같았다면 교실 앞으로 걸어 나가 선생님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또 다른 담이 있어서 문득 자신의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담도 자리에서 일어났을까 봐, 일어나려고 할까 봐.

85 도담주 ◆mZm4g7rP2k (LFz4Z3YiOw)

2022-08-21 (내일 월요일) 22:46:59

고생 많았어 ㅎ-ㅎ 주말동안 잘 충전할 만큼 푹 쉬었길, 내일부터는 좀 더 나은 하루이길! ㅎㅁㅎ

86 백담주 ◆DKrNXmBQas (HjGIw0Jfdo)

2022-08-21 (내일 월요일) 23:40:51

백담이가 조금 위기감을 느껴서 슬슬 발을 빼려고 하고 있는데 도담이가 왜 이리 솜사탕같은지......

도담주도 한 주 동안 고생하셨고 즐거운 주말 보내셨기를 바라요. 저도 도담주의 다음 한 주가 도담주에게 좋은 날이기를 빌겠습니다.

87 백담 - 도담 ◆DKrNXmBQas (oirMGhe9zc)

2022-08-26 (불탄다..!) 12:41:47

네가 그러고 싶으면- 하고 대답한 것은, 분명히 툴툴대는 것이었다. 다만 스스로 얼굴에 이렇다 할 표정을 의식적으로 짓는 법도 잊었고, 어조에 힘을 주는 것도 어색해서 그만둔 관계로, 정작 백담의 입에서 나온 툴툴대는 소리가 도담에게 가 닿았을 때는 틀림없이 그건 전혀 툴툴대는 소리가 아니라 무덤덤하게 맥빠진 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소리가 그리되었으니 마음도 김이 빠진다. 애초에 왜 툴툴대고 싶어했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무뎌진다. 생각해보면 툴툴거릴 이유도 없었지 않나. 그의 마음은 잔잔히 가라앉는다. 그래서 그의 말소리는 딱히 바람이 되지 못했고, 민들레 씨앗을 어디 달리 멀리 날리지도 못했다. 옆에 톡 떨어진 씨앗. 그냥, 아무 상관도 없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에 백담은 그걸 그대로 두기로 했다.

바로 방과 후 훈련도 해? 하는 조그마한 필담에 백담은 뭐라 대답을 하려 샤프를 집어들었으나, 담아, 이것 좀 도와줄래? 하는 말이 먼저 귀에 들렸다. 자연히 백담은 도담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의자를 조금 들어다가 뒤에 내려놓고선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옆에서 들리는 드르륵 소리에 도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반쯤 일어나다 만 어정쩡한 자세로, 두 담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1교시 수업을 들어온 선생님도, 자신이 익히 알고 있던 학생 말고도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의 학생에 어리둥절한 모양새였다. 상황을 정리해준 건 반에서 까불거리기 좋아하는 친구였다.

"쌤, 이제 우리 반에 담이가 둘이에요."

담이가 둘이라니? 하는 말에 선생님은 새로 갱신된 출석부를 들쳐보고는 아! 하고 깨닫는 소리를 낸다. 그러고 보니 5반에 전학생이 왔다고 했던가- 같은 담이 둘. 선생님이나, 같은 반 친구들이 보기에는 조금 재밌는 신기한 우연. 그래서 선생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두 사람 중에 누가 도와줄래? 하고 가볍게 질문을 건네어온다. 백담은 도담을 마주본 채로, 고개를 조금 기울여보인다. 잠깐 동안 눈을 마주치다가, 백담은 툭 말을 꺼냈다.

"같이 가자."

딱히, 그 동안의 몇 차례의 예기치 않은 '접근'을 염두에 두고 한 대답은 아니다. '네가 가'라고 하기에는 그의 성격이 그렇게 뻔뻔하지가 못했고, '내가 갈게'라고 고집을 피우기에는 도담 역시도 만만해 보이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도담이 먼저 '내가 갈게'라고 말하길 기다려 고마워, 하고 대답하고 뻔뻔하게 앉자니, 귀찮아서. 그뿐이다.

88 백담주 ◆DKrNXmBQas (oirMGhe9zc)

2022-08-26 (불탄다..!) 12:42:32

하다못해 1일 1답레는 드리고 싶은데 자꾸 늦어지게 되네요... 88 이번 주는 잘 보내셨나요?

89 도담 - 백담 ◆mZm4g7rP2k (cT/prKbCPk)

2022-08-26 (불탄다..!) 21:58:02

도담이 옆을 돌아보자마자 보랏빛 눈을 마주했다. 한 명은 바로 서 있고, 다른 한 명은 아직 일어나다 말아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시선이 똑 맞아떨어졌다. 무엇이 웃음 짓게 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눈이 마주친 잠깐에 푸스스 웃고 말았다. 서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서 일어나면서도 똑같이 옆자리의 또 다른 담을 의식하고 눈 맞춘 게 반가워서일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마른 손바닥으로 쥐었던 모래알들처럼 속절없이 흩어지는 미소였다. 그리고 1교시 과목 선생님이 지금 무슨 상황인지를 파악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응?"

선생님이 원래 찾은 담은 도담이었다. 누가 도와줄래?─라고 물으면 당연히 자신이 도우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니 담이 눈을 조금 더 맞추더니 툭 건네는 말은 예상 밖의 일이라서 반문하고 말았다. 안경 아래로 까만 눈동자가 깜빡깜빡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기를 몇 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은 미소로 화답한다.

"그래─담이들이 돕는대요!"

담에게 답하면서, 이후에는 밝고 짓궂은 목소리가 선생님에게 닿을 만큼 크기를 키웠다. 톳톳톳 가벼운 발소리를 남기고 먼저 교실 앞으로 향한다. 선생님이 도움을 청하는 게 익숙한 듯이 쌓여있는 프린트물 두 뭉치를 집었다. 곧 앞까지 나왔을 담에게 그중 한 뭉치를 건네었고, 앉아있는 반 아이들이 뒤로 돌리면서 나눌 양만큼만 개수를 세어 앞자리 아이에게 건넨다. 그 잠깐 사이에도 농담을 주고받거나, 인사를 주고받으니 까르륵거리는 소리가 난다. 프린트물을 다 나누면 새로 다시 한 뭉치를 집고, 뭉치는 크게 대여섯밖에 없었으니 두 사람이 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선생님이 느끼기에도, 반 친구들이 느끼기에도 두 담이 이름만 같고 너무 대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왔던 하얀 담, 까만 담이라든지, 짧은 담, 긴 담이라든지, 큰 담, 작은 담이라든지.

"담이들, 너희를 어떻게 구분해 부르면 좋을까?"

도담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담을 바라보았다. 구분할 거리야 많았지만, 어떻게 보면 별명을 짓는 일이라서 멋대로 붙여버리면 담이 곤란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따스함이 시선에 어렸다.

90 도담주 ◆mZm4g7rP2k (cT/prKbCPk)

2022-08-26 (불탄다..!) 22:00:55

괜찮으니까 잘 보냈길 바래 ㅎ-ㅎ 난 괜찮게 보냈어!

솜사탕이라니 귀엽게 봐주고 있구나! 햇살캐 어필을 하다보니까 그런 거 같아. 첫일상이 포근하고 뭉실해서 다음 일상은 어떤 풍경일까 기대되기도 해 ㅎㅁㅎ

91 백담 - 도담 ◆DKrNXmBQas (zI.kqlR.fI)

2022-09-01 (거의 끝나감) 21:37:24

호의어린 웃음은 백담이라는 소년에게는 꽤 낯선 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접근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그저 귀찮아서, 라고 백담은 스스로 생각했지만, 역시 그 파스락 하고 봄날 햇볕에 까스라지듯이 부드럽게 웃는 미소에 대한 반작용이 없지는 않다. 낯선 것에 맞닥뜨리면 화들짝 놀라서 움찔 물러서는 것처럼, 어쩌면 같이 가자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가, 라던가 내가 갈게, 같은 말을 하기엔 접촉이 길어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것을 피해서 꺼낸다는 말이 같이 가자, 라니 아이러니했지만. 응? 하고 되묻자 그는 시선을 피해버리고 만다. 물론 시선을 피했다고 도담의 미소가 백담의 시선 모서리로 들어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프린트물을 나누어주는 과정은 평소와 같았다. 그 평소와 같은 것이 그에게는 약간 버거운 것이었지만. 적대적으로 쏘아보는 눈길도 없고, 기피하듯이 눈치를 살피는 기색도 없다. 그저 오늘 처음 보는 급우의 새하얀 모양새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선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떻게 구분해서 부를까, 하고 걸어온 말에 그는 오히려 시선을 선생님에게로 돌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선을 돌리고 보니, 이것도 함부로 말하기 힘든 문제다. 도담을 한 번 돌아보았다가, 따스한 시선에 다시 선생님에게로 시선을 피한다. 멋대로 붙여버리면 담이 곤란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물론 도담뿐 아니라 백담도 똑같이 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무난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그러면 앞으로, 저 부르실 때만 백담이라고 불러주세요. 외자 이름이고..."

딱히 거리를 의식한다던가 거리를 두고 싶다던가 같은, 같은 이름으로 엮이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거부감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자기의 별명을 자신이 고르라는 것 같은 그런 어색함이 있어서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까만 담, 하얀 담, 작은 담, 큰 담... 다른 이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부르게 되겠지.

92 백담주 ◆DKrNXmBQas (zI.kqlR.fI)

2022-09-01 (거의 끝나감) 21:38:37

화요일에 드리고자 했던 답레가 컴퓨터가 일으킨 말썽으로 지연되었네요... 햇살이 곱습니다. 비 오는 날에도 비 오는 날의 고운 색깔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고 있네요. 도담주께서도 몸 관리 잘 하시길 바라요. 답레를 올려두고 전 감기약 좀 먹고 오겠습니다...

93 도담 - 백담 ◆mZm4g7rP2k (qk3ucGb7.k)

2022-09-08 (거의 끝나감) 01:22:15

"어─그건 내가 싫어!"

담이 하는 말을 듣자마자 늘 웃고 있던 도담은 조금 다른 표정을 그렸다. 상냥하거나 부드러운 감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싫은 티가 얼굴 위에 만연했다. 성씨를 붙여 부를 때와 이름만 부를 때 어감 차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건 절대 싫다는 듯이 선생님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럴까─라고 대답하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시선이 선생님의 시선과 마주치고 나면 다시 담을 향한다.

"너만 그렇게 부르면 정 없잖아."

누군가에게는 사소하다면 사소할, 누군가에게는 거창하다면 거창한 이유.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푸른 하늘을 덮은 연둣빛 잎 사이로 내리는 햇빛의 반짝임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보랏빛 눈에서 제비꽃을 찾았다면 어느 쪽 사람인지는 가르기 쉬웠다.

"이미 하얀 담이니까, 큰 담 하자!"

담이 가진 성씨의 백이 하얗다는 뜻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하얗다는 뜻을 가진 글자도 있다. 말장난이 교실 안을 톡 데구루루 굴러다닌다. 구슬과 구슬이 부딪쳐서 튕겨 나가고, 또 부딪치는 것처럼 작은 담 말고 초소형 담으로 하자─내년에 중간 담 전학 안 오냐?─장난이 번진다. 웃음소리가 섞이고 수업 분위기가 붕 떠버리기 전에, 선생님은 프린트물 나눠주기와 장난을 마무리 지었다. 도담은 자리에 돌아와 앉았고, 담도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살짝 몸을 기울이고서 소곤거린다.

"나는 그냥 담이라고 불러도 돼?"

민들레 홀씨가 또 살랑거렸다.

94 도담주 ◆mZm4g7rP2k (qk3ucGb7.k)

2022-09-08 (거의 끝나감) 01:24:27

늦은 시간에 갱신하고 갈게 ㅎㅁㅎ 바람도 선선하고 기온도 낮아지고 있는데 감기 걸렸던 건 나았길 바래. 태풍이 한바탕 지나갔는데 피해없길 바라고 좋은 밤 보내 ㅎ-ㅎ

95 백담 - 도담 ◆DKrNXmBQas (/HRrttirxo)

2022-09-10 (파란날) 16:46:51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자신이 제안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은 그런 것을 정하기에는 그럴 만한 입장도 성격도 아니었기에 침묵보다 차라리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제안을 내어놓은 것이었으니까. 가장 정석적인 대답이었으나 또한 회피이기도 했다. 그래서 도담이 다른 제안을 하더라도 그건 그럴 만하다, 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백담에게 낯선 것은, 그 뒤에 따라붙는 정 없잖아, 하는 이유였다. 정. 애매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는 퍽 익숙한 개념이었지만 그에겐 많이 낯선 개념이었다. 회색의 땅에 눈을 둔 채로 그늘 사이만을 거닐던 하얀 소년에게 햇살은 낯설었다. 지금 이 순간, 그냥 담이라고 불러도 되냐며 살랑이는 민들레 홀씨마저도.

─그러나 괜찮다. 얼어붙어 메마른 땅에 굳이 뿌리내릴 민들레는 없다. 언젠가, 아마 조만간 다시 살랑살랑 날아가겠지. 누군가에게 정을 받기엔 자신은 서투르고 잘못된 부분이 많아서, 백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백담은 잠깐 도담을 곁눈으로 바라보다가,

"응."

하고 나직이 대답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나는 널 도담으로 부를 거야, 라는 말은 선생님이 교과서 페이지를 피라는 말에 가로막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마 널 담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아서, 라는 말은 굳이 선생님의 말이 가로막지 않아도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잠깐, 별나고 다정한 짝꿍을 바라본 뒤에 백담은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뒤로 별 사건이 없었다면, 매 쉬는 시간마다 전학생의 책상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 말고는 4교시에 걸친 인문학 수업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을 것이다.

#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무언가 특별한 사건을 더 덧붙이고 싶으시면 원하시는 대로 덧붙여주세요.

96 백담주 ◆DKrNXmBQas (/HRrttirxo)

2022-09-10 (파란날) 16:48:36

너무 늦은 시간에 주무신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 감기는 얼마 안 가 나았습니다. 방심해서 너무 얇은 이불을 덮었다가 가볍게 걸린 것일 뿐이니까요. 오히려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선선해져서 활동하기 편해진 게 제게는 더 좋습니다. 도담주께서도 별 피해 없이 넘기셨길 바라고, 즐거운 추석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97 도담 - 백담 ◆mZm4g7rP2k (9ucYSUlUhQ)

2022-09-18 (내일 월요일) 22:33:17

"응!"

담의 답을 듣고서 조그만 답을 돌려주며 소리 없이 웃음 짓는다. 보드랍고, 으레 사람들이 생각하는 봄날과 맞는 웃음이었다. 뺨에 이채가 어리는 게 쉬워 보였다. 도담은 나도 담이라고 불러달라거나, 너는 날 어떻게 부를 거냐는 둥 다른 질문은 없이 기울였던 몸을 바로 했다. 이제는 앞으로 기울어서 사각사각, 수업을 따라갈 뿐이었다. 필담을 계속지 않는 이유는 쉬는 시간이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4교시 이후에 물어봐도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필담했다가는 전학하러 온 첫 날부터 전학생과 함께 나란히 교실 뒤라든지, 복도 밖으로 나갈 것만 같기도 했다.

시간은 똑똑 흘러갔고, 4교시의 끝을 알리는 타종이었다. 3학년보다는 늦게 먹지만, 1학년보다는 일찍 먹는 중간의 2학년.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마냥 느긋이 있지도 못한다. 같은 학년 중에서라도 제일 일찍 먹겠다고 뛰어가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라 순식간에 교실과 복도는 소란스러워진다.

"우리도 가자. 오늘 맛있는 거 나오나 봐!"

자리에서 의자를 끌며 일어난 도담은 담을 내려다보았다. 급식실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 않을까─생각하니 학교 안의 작은 에스코트 같이 느껴졌다. 소리를 낮춰서 작게 웃고 나서, 별일 아니라는 듯 흩뜨려 버린다. 이제 점심을 같이 먹고 나면 짝꿍과는 헤어질 시간이었다. 과별로 전공 수업이 시작되니 우연히 마주치지라도 않는 한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담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물음이 하나 톡 굴러간다.

"담아, 너─ 나 무슨 과인 줄 알아?"

98 도담주 ◆mZm4g7rP2k (vw3tQ1BLG.)

2022-09-18 (내일 월요일) 22:45:45

감기 나아서 다행이야 ㅎ-ㅎ 늦은 답레 올려두고 가볼게. 너무 늦었지만 추석 잘 쇠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갑자기 날이 더운데 날씨 조심해 ㅎㅁㅎ

99 백담 - 도담 ◆DKrNXmBQas (YuH0cD1StY)

2022-09-21 (水) 07:46:48

봄날다운 웃음이었기에 더더욱 그 미소가 백담과는 멀게 느껴졌다. 그는 이제 자신이 더 이상 봄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닿지도 못할 이채가 눈에는 고운 것이 무심하다 못해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걸 「야속하다」고 칭하는 것 또한 결국 그 봄날이라는 것을, 그 색채를, 그 고운 온도를, 부드러운 산들바람을 잊지 못하고 그 흔적을 기억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손을 뻗지는 않는다. 손끝에 남은 아픔을 헤아릴 필요도 없이, 애초에 어제서야 처음 만나 오늘에야 같은 반 친구인 걸 알게 된 사람이다. 그저 저렇게, 자신과 달리 봄날에 발을 디디고 서서 봄처럼 웃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스스로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까불지 마, 하고, 문득 가슴 속에 남은 봄을 꿈꿨던 자국을 꾹 즈려밟는다. 밀지도 당기지도 않고 묵묵히, 그렇게 4개 교시를 흘려보내기로 한다. 점심시간의 타종은 느긋이 찾아왔다. 느긋이 찾아온 것에 비해 그 메아리는 왁자했지만.

주변 아이들이 후다닥 의자를 밀치고-몇몇 극성맞은 아이는 거의 의자를 뒤로 내던지다시피 하고 일어나기도 했다-일어나는 모습과 달리 백담은 소리없이 의자를 살짝 들어서 뒤로 옮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가?"

딱히 메뉴가 맛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흥미 없다. 점심을 거를 이유가 없을 뿐이다- 그리고 점심을 먹을 이유는 있다.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지 않은가. 이 친절한 짝꿍이 급식실까지 따라가 주려는 모양이기에, 백담은 에스코트에 순순히 응하기로 했다. 다만 역시 톡 굴러온 질문은 상정범위 밖이다. 새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반에 대해서 들은 바는 있었다. 열대여섯 명 남짓의 연극과 학생들과, 운동부의 소수 과 몇 개가 모여서 만들어진 반이라고. 그리고 이 짝꿍의 체격은 체육을 전공하는 학생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대답은 쉽게 나왔다.

"연극과라고 생각해."

100 백담주 ◆DKrNXmBQas (YuH0cD1StY)

2022-09-21 (水) 07:50:17

추석은 좋았습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고요. 지금 시점에서는 갑자기 또 추워졌네요. 이번에는 대비를 해두었기에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지만요. 도담주도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도담이가 살랑살랑 귀여워서 백담이도 문짝 열고 뛰쳐나가 맞이하고 싶은데 꾹 참고 있습니다 u''u

101 도담 - 백담 ◆mZm4g7rP2k (sQtqHqPy4I)

2022-09-23 (불탄다..!) 21:02:58

소란스러운 소리에 그러다 다친다고 한마디 외치려다 말고, 뛰어가는 모습을 살짝 찡그리며 쳐다보았다. 의자에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고, 다른 학생이랑 부딪칠 수도 있지 않을까─소리치지 않는 건 뛰어가는 등에 대고 소리쳐봤자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이기도 했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도담은 반 아이들이 붙이라고 반창고를 갖고 다니고 붙여주기도 하지만, 다치지 않으면 반창고가 필요 없으니, 갖고 다니고 싶지 않다는 게 예전의 진심이었다. 지금은 반창고로 막을 수 있는 상처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몸을 쓰면 다치는 일이 정말 쉽다는 걸, 지금 옆의 짝꿍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짝꿍이 들려주는 흥미 없어 보이는 울음소리에 눈웃음 짓는다.

"오므라이스랑 새우튀김 나온다는 거 같았는데."

반 아이들 말하는 소리 한 자락을 주워들었을 뿐이어서 고개가 갸웃대며 기울었다. 담이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찬찬히 걸음을 떼었다. 교실 밖으로 나가고, 1층까지 내려가면 이미 먼저 튀어 나간 학생들로 건물 밖까지 생긴 긴 줄이 보일 테니 그 뒤에 서면 된다. 도미노처럼 옹기종기, 검은 조각도 꽤 눈에 밟히는데 오늘부터는 하얀 조각이 톡 자리 잡을 것이다.

"와아, 정답! 짝짝짝─"

손바닥을 맞부딪치지만, 박수 소리는 나지 않고 시늉만 하고 있었다. 소리의 공백은 목소리에 섞인 환한 반가움이 채웠다.

"5교시부터는 과별로 수업 듣는 거 알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5반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다른 반은 처음부터 같은 과끼리만 같은 반을 하니까, 다른 과가 섞여 있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다른 과가 수업하는 실습실이나 교실에 일부러 찾아가는 걸 막지는 않으니까 아예 못 만나는 것은 아니긴 했지만, 보통은 굳이 그럴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따 인사하면 놀라지 말고 받아줘야 해?"

이따 보자, 내일 보자─작은 작별인사의 예고였다.

102 도담주 ◆mZm4g7rP2k (I2BF0xMh2s)

2022-09-23 (불탄다..!) 21:13:10

추석 잘 보낸 것 같아 다행이네 ㅎ.ㅎ 나도 잘 쇠었어. 염려 고마워, 밖은 춥지만 돌리고 있는 일상 답레를 받거나 답레를 줄 때면 훈풍이 불어오는 기분이라 감기는 안 걸릴 것 같아 ㅎㅁㅎ

과대표도 있을까? 과대가 있다면 과대끼리 모일 때가 있을테니까. 미술과 2반, 음악과 2반, 연기과+체육과 1반, 체육과 1~2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연기과 2학년 과대는 도담이가 할 수 있을 것도 같거든. 체육과 과대가 백담이가 된다면... 둘이 만날 일이 잦으려나 싶어서 ㅎ.ㅎ

103 백담 - 도담 ◆DKrNXmBQas (9pvTHyuoTY)

2022-09-29 (거의 끝나감) 19:52:21

다른 아이들에게로 걱정스러운 시선을 분주하게 돌리고 있는 새 짝꿍을 보다가, 백담은 무심결에 도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돌아보았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피딩 프렌지feeding frenzy의 현장이 눈에 담긴다. 백담은 새삼 도담이 새로 붙여준 반창고가 아직도 자신의 상처 위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머리로는 알 것 같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전혀 모르겠기에, 도담이 왜 그리도 주변의 아이들이 상처입는 것에 전전긍긍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나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처라는 개념에 퍽 무감각해지는 삶을 살아왔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것이 여태껏 말했듯 도담이 백담에게 생소한 자극인 이유였다.

"그렇구나."

그런가? 하는 질문만큼이나 무미건조한 대답이다. 앞서 말했듯 메뉴 자체에는 흥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잘 익은 오므라이스와 바삭하고 기름진 새우튀김의 풍미가 백담에게 갖는 의미는 오므라이스는 단백질이 얼마나 있겠고 새우튀김은 지방은 괜찮지만 껍질의 탄수화물에 주의해야겠다는 정도의 영양학적 의미뿐이었다. 식사의 맛이라는 것이 백담에게서 그 가치를 잃은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집에 돌아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닭가슴살이니 두부니 삶은 계란이니 하는 투박한 것들만이 그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나마도 입으로 내는 박수소리에 쓸데없는 생각은 다시 뇌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알고 있어."

대답을 내어놓는 백담의 얼굴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도담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발과는 퍽 딴판이었다. 그래, 과별 수업이 시작되면 한 반의 인원들도 각 과의 수업을 들으러 산산이 흩어진다. 도담이 연극과라는 사실은 좀전에 도담의 질문에서야 구체적으로 추론해낸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새 짝꿍이 자신과 같은 과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는 추측 정도는, 그리고 과별 수업이 시작되면 갈라져서 수업을 듣게 될 것이라는 추측까지도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어렴풋한 직감이 하나씩 하나씩, 도담이 건네어주는 대단히 생소한 종류의 예고와 함께 사실로 구체화된다. 만남도, 작별도, 정겨운 인사라는 게 역시 퍽 낯설었다.

"상냥하네, 너."

조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뜬금없이 툭 꺼낸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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