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576074> [HL/청춘/일상/1:1] Serendipity :: Note 1 :: 124

◆DKrNXmBQas

2022-07-27 21:14:47 - 2022-11-21 08:27:35

0 ◆DKrNXmBQas (1bNlpqKJAs)

2022-07-27 (水) 21:14:47


세런디피티(serendipity, IPA: [ˌsɛrənˈdɪpɪti])는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특히 과학연구의 분야에서 실험 도중에 실패해서 얻은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어느 봄날이었다.

23 도담주 ◆mZm4g7rP2k (ZZBNYNrzrU)

2022-07-28 (거의 끝나감) 23:54:00

도담이가 데려다준다고 할 것 같은데 백담이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네 ㅎ-ㅎ 예쁘게 느껴져서 기쁘다. 답레는 내일 가져와볼게.

24 백담주 ◆DKrNXmBQas (nmb7cZ6Mv2)

2022-07-28 (거의 끝나감) 23:58:15

예 ?
(넋나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만나서 기뻤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바라요. 저도 눈을 감아보겠습니다.

25 도담 - 백담 ◆mZm4g7rP2k (1sSwOJPzqE)

2022-07-29 (불탄다..!) 21:00:01

담은 모르는 사람이어도 아는 사람이어도 언제나 웃는 얼굴을 그렸다. 남자아이가 잠깐 바라볼 동안, 그 잠깐에도 조금 더 상냥하고 친절하게 웃음을 새로이 그렸다. 뺨에 든 꽃잎 그림자가 한층 짙어지고 눈썹도 부드러이 휘었다. 처음 보는 교복을 입은 또래의 남자아이가 모르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할 만큼의 일이라면,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으니 편하게 말해도 괜찮다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특별할 일이 아니라 우연히 겹쳤을 뿐인 순간의 만남에도 사람 좋아하는 성격을 감추지 않았다.

"아─네!"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서 다행이라고 느낀 후의 웃음에는 자신감도 깃들었다. 백람예술회관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바로 앞에 있을뿐더러, 연기과 재학 중이며 연극부 활동을 하는 담에게는 그곳에서 공연해본 적도 있었다. 가는 길을 찾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회관 안에서 가고 싶어 하는 곳도 찾아줄 자신이 있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눈길을 사로잡고 마는 하얀 남자아이는 이곳 지리에 어두워 보여 길을 알려주는 것보다 같이 가는 편이 좋겠단 것이다. 반 정도 몸을 틀어서 여태 걸어왔던 하굣길을 뒤돌아보았다가 다시 남자아이를 바라본다. 마주친 때부터 계속 웃고 있었지만 제일 말갛게 웃을 필요성을 느꼈다. 봄날 하늘에 없는 구름을 남자아이가 대신해주듯 새하얗다면, 길가 보도블록 사이에서라도 피어나는 봄꽃처럼 소소하지만 간지러운 웃음을 짓는다.

"같이 가도 될까요? 데려다줄게요."

낯선 이지만 이 친절을 덥석 받아들여도 해는 없으리란 믿음을 위한 웃음이었다. 사부작거리며 날려갈 듯한 목소리와 웃음은 친절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무겁지 않도록 조심했다.

26 도담주 ◆mZm4g7rP2k (5F9OsXS2GM)

2022-07-29 (불탄다..!) 21:01:56

도담이의 강아지스런 성격이 잘 드러나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네 ㅎ-ㅎ 아무쪼록 좋은 저녁이야.

27 백담주 ◆DKrNXmBQas (/n/5llG1M2)

2022-07-29 (불탄다..!) 22:19:05

(영혼 됐음) (어?)
좋은 저녁입니다. 오늘 하루 평안하셨나요.

28 백담주 ◆DKrNXmBQas (/n/5llG1M2)

2022-07-29 (불탄다..!) 22:43:40

사실은, >>21을 쓸 때 백담이 며칠 전에 경기를 치른 상태였다는 설정으로 얼굴 한편에 거즈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몰골을 하고 있다고 묘사하려다가 첫 만남부터 그런 설정 써먹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멀쩡한 상태로 등장시켰는데, 도담이의 저런 모습 볼 수 있어서 그냥 평범하한 첫만남으로 하길 잘했다는 감정과 백담이 감정선 어쩌냐는 감정이 맞부딪혀서 대혼돈의 멀티버스네요.

답레 쓰다 말고 하염없이 주접 떠는 모습 보여드려 부끄럽습니다만, 그만 아득히 좋다고 느껴버려서...

29 백담 - 도담 ◆DKrNXmBQas (/n/5llG1M2)

2022-07-29 (불탄다..!) 23:01:17

이채를 띈다. 곱게 웃는 얼굴은 그랬다. 웃는 얼굴 위에서 환히 빛나는 살구꽃 빛깔이 문득 소년의 얼굴에 비치는 것 같아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객관적으로 말해 자신을 향해 이리 웃어보는 웃음을 마주한 적이 별로 없기에, 이런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오는 사람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잠깐 갈피를 잡지 못했을 뿐. 하얀 얼굴은 변함이 없이 무심하다. 마치 마음 갖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만, 없는 마음에도 색채가 퍽 고와서. 그래서 그는 낯선 빛에도 불구하고 자색의 시선을 담에게서 떼지 않는다.

그러나 예의 갖는 법은 잊지 않았고, 어디로 몇 블럭 가서 어느 쪽으로 돌아 어느만큼 가면 된다고 설명해주는 것보다 같이 발품을 파는 게 더 고단한 일임을 알 만큼의 생각머리도 잊지 않았다.

"괜찮을까요? 안내."

그래서 소년은 정중하게 되묻는다. 그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다. 사양지심이나 배려가 아닌 조금 다른 각도에서 기인한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약간 표현되었기에, 한번 사양하는 모습에 정중하게, 뿐만 아니라, 조심스레, 까지- 생경해서 생소해하는 모습이 조금 섞였다는 것을.

길은 오래전부터 잃었고, 도달하고자 했던 곳이 어디인지도 잊었다. 스스로가 지금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도 지금 자신의 발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잠깐 이 순간,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보이는 것도 같아서. 그 느낌이 낯설다고 느껴져서.

한번 더 이끌어보자.

30 도담주 ◆mZm4g7rP2k (e0cSDGxXLE)

2022-07-29 (불탄다..!) 23:42:41

거즈 붙이고 있었어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은데 ㅎㅁㅎ 도담이가 웃는 건 모두에게 그런거고 잦은 일이니 자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거즈 붙이고 있었다면 안내를 하는 동안 적막을 유지할 수는 없으니 스몰토크하려할 때 거즈 하나가 떨어질 것 같다고 반창고 주려는 상황이 있을 수 있었으려나 싶다 ㅎ-ㅎ

31 백담주 ◆DKrNXmBQas (p6tXk291J.)

2022-07-30 (파란날) 21:56:06

좋은 저녁입니다. 갱신할게요.

>거즈 하나가 떨어질 것 같다고 반창고 주려는 상황<

정말... 저엉말로 아쉽지만 이후의 일상을 기약하는 것으로...!

32 도담 - 백담 ◆mZm4g7rP2k (yCePvjqg0I)

2022-07-30 (파란날) 22:09:37

시선이 머무르는 것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무대 위에서는 시선을 사로잡기 위하여 몸짓 하나조차 계산하여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담아냈다. 그러기 위해서 몇 번이고 읽었던 대본을 다시 읽고 등장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녹여내는 동안에는 풍경 속에 녹아있었다. 무대 아래에서는 시선이 머무르는 것이 낯설었다. 머리카락과 눈의 색이 남들보다는 조금 희소성 있는 편이었지만 완전히 드문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마주하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미소는 여전했고 보랏빛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제비꽃이 저런 색이었던 것 같은데─담은 새하얀 눈을 머금은 구름 남자아이에게서 봄빛을 찾았다.

"네! 혼자 갔다가 더 헤맬 수도 있잖아요."

나란히 서는게 앞서 걷다 놓치게 되는 일을 방지하기 좋을 것 같았다. 걸어오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 등 지고 있던 풍경이 시야의 앞이 되었고, 위치는 남자아이의 옆이 되었다. 마주보고 있던 남자아이를 옆에서 올려다보니 키가 생각보다 더 크다는 것을 느꼈다. 인원이 적어서 같은 반으로 지내고 있거나, 학교를 다니며 마주친 몇 체육과 친구들이 생각났다.

"갈까요?"

남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답을 주든 출발해도 된다는 신호를 준다면 걸음을 뗄 것이었다. 육교를 왼쪽으로 내려가서 그 방향으로 한 블럭을 곧바로 걸어가고, 그 다음은 오른쪽으로 꺾어 횡단보도가 나올 때까지 걸어가 왼쪽으로 쭉 걸으면 됐다. 담의 느긋하고 작은 걸음으로는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길지는 않지만 적막으로 유지된다면 어색하게만 느껴질 시간은 100분처럼 느껴질테니, 담은 걸으면서 건넬 질문들을 생각했다. 백람예술회관에는 무슨 일로 가냐거나, 똑같이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몇 학년이냐는 정도의 것들로.

33 도담주 ◆mZm4g7rP2k (BXAY3aas0o)

2022-07-30 (파란날) 22:13:51

안녕, 백담주 ㅎㅁㅎ 방금 전에 왔다갔네. 아쉬운 상황은 다음 일상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 난 둘이 통성명하는게 제일 보고 싶어, 귀여울 것 같아서 ㅎ-ㅎ 전학오는 날 일상에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 중이야.

34 백담주 ◆DKrNXmBQas (p6tXk291J.)

2022-07-30 (파란날) 22:14:59

오후쯤부터 답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가 갱신하는 걸 기다리고 계셨던...? 😨
다음부터는 제때 갱신하는 버릇을 들여야겠네요 으악

그 와중에, 예쁘다 ㅇ>-<

35 도담주 ◆mZm4g7rP2k (5WeaqQ4T8g)

2022-07-30 (파란날) 22:17:45

아냐, 우연이야!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오후 9~10시쯤 오니까. 기다리고 있었다니 미안해지네 8-8

36 백담주 ◆DKrNXmBQas (p6tXk291J.)

2022-07-30 (파란날) 22:21:03

아, 그런가요...! (안도!)
괜찮아요. 기다린다고 해도 정말로 노트북 앞에 부동자세로 붙어앉아서 기다리거나 그런 게 아니라, 창만 띄워두고 다른 집안일이나 취미생활 하면서 이따금 한 번씩 새로고침해보는 그런 거니까요.
그리고 기다리는 것도 즐거우니, 미안해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37 백담 - 도담 ◆DKrNXmBQas (JIBLQD9S.2)

2022-07-31 (내일 월요일) 01:23:47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무의식적으로 따라 고개가 움직여진다. 같은 각도에서 다시 눈이 마주친다. 잠깐 잠기는 낯선 기분. 그러나 고개를 기울임에 따라 한쪽 뺨에 당기는 것이 느껴진다. 한쪽 뺨에 붙어있는 손바닥 절반보다 좀 더 작은 거즈가 이제서야 도담의 눈에도 보이겠다. 아무 이상 없는, 보통의, 또래를 바라보는 또래의 눈길. 문맥 그대로의 의미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의 눈길. 께름칙함 가득 어린 배척의 시선과는 다른 그 차분한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기울게 했다. 새삼, 아버지의 말마따나 상당히 머나먼 곳으로 떠나온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소년은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원래대로 바로 세웠다.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건지. 딴생각하지 말고, 그는 다시 도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혼자 갔다가 더 헤맬 수도 있잖아요, 하는 그 말간 목소리. 배려심에서 나온 말일 텐데, -그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배려심뿐만 아니라 무엇이라고 딱 짚어 말하기 힘든 밝은 기색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까지 그 말을 거절하면 정중한 사양이 아니라 야멸찬 거절이 될 것 같아서. 이름 모를 소녀에게도, 그 스스로에게도.

"감사합니다."

아직은 서먹한 목소리로, 하얀 머리 소년은 도담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갈까요,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발을 내뻗었다.

야멸찬 거절이라니.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웃긴 소리를 참 쉽게도 꺼낸다고,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 아래 보이지 않는 자조를 머금었다. 뭐가 낯설고 뭐가 달라진다는 건지. 청춘이라는 것에서, 자신은 논외다. 지금까지 길을 잃었던 방식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길을 잃었다고 해서,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를 길을 조용히 걸어서, 그렇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이 이상한 순간은 끝나리라고 소년은 의심치 않았다.

다만 도담이 그 생각대로 되도록 둘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38 백담주 ◆DKrNXmBQas (JIBLQD9S.2)

2022-07-31 (내일 월요일) 01:26:54

답레가... 늦었습니다 3.3 쓰다가 스르륵 잠들었다가 으악 하고 깨니 시간을 달리는 참치가 됐어요... 。゚(゚´ω`゚)゚。

백담이가.. 원래 좀더 그늘진 쓴맛 캐릭터인데 도담이 선레에 콰아아아아 하고 정화돼버릴 것 같아서 감정선의 고삐를 놓쳐버릴 것 같기에 이번 레스에서 좀 황급히 잡은 감이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독백이라던가 하는 것도 좀 쓰면서 백담이와 제대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쯤 주무시고 계시겠지요. 좋은 꿈자리 되시길... 저도 다시 누워볼게요

39 도담 - 백담 ◆mZm4g7rP2k (OUguAHJ5RY)

2022-07-31 (내일 월요일) 22:05:37

고개의 끄덕임을 놓치지 않고 발은 앞으로 나아간다. 육교 아래로 하교하는 학생들의 물결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이제부터 거슬러 가야한다. 웬일로 일찍 하교를 하나 싶었는데 다시 학교 앞까지 돌아갈 일이 생겼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소극장에 가볼까 말까 고민을 하려다 혼자가 아닌 것을 잊지 않았다. 동행하는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말을 먼저 걸어왔고, 말을 주거든 받아주니까 몇 마디 말을 붙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생각해둔 질문거리도 있었으니 따스한 바람에 사근거리는 목소리를 실어 보낸다.

"괜찮아요. 백람예술회관이랑 학교랑 가깝거든요."

지금 이 시내 거리에 제일 많이 보이는 교복과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목 끝까지 채워진 와이셔츠 단추, 흐트러짐 없이 매인 리본, 곧은 치마주름에 무릎 위에 똑 떨어지는 길이, 같은 배색의 조끼와 카디건. 교복점에서 마네킹에게 입혀둔 것처럼 단정한 차림새에 명찰까지 달고 있었다. 육교의 계단을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는 올라올 때와 달리 두 사람의 소리가 울린다.

"백람예술회관에는 무슨 일로 가요?"

학년 말이었다면 졸업에 맞추어 졸업 전시회와 무대가 무료 입장으로 꾸려져 있었을텐데, 다른 공연과 전시가 있는 지는 알지 못했다. 적어도 아직 하문고와 관련된 일정은 없었을 뿐이다. 연극부만 해도 새로 들어온 1학년들의 입부 오디션을 준비 중이었으니, 다른 과도 비슷하게 바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구성원의 일부가 바뀐 채 합을 맞추는 것은 중요한 것이었다. 같은 반 체육과 친구들은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더 그래보였다. 담은 부상이란 단어가 떠오르니 문득 남자아이의 뺨에 시선이 올라갔다. 거즈가 붙어있던 것이 생각나서였다.

"아프겠다."

문득 소리내버린 말은 봄이 되니 꽃이 피어나는 향이 퍼지는 마냥 당연하단 듯 다가간다.

40 도담주 ◆mZm4g7rP2k (OUguAHJ5RY)

2022-07-31 (내일 월요일) 22:08:11

좋은 밤이야, 갱신할게 ㅎ-ㅎ

난 황급히 잡았다고 못 느꼈는데 백담주가 그렇다고 느끼면 그런 거려나. 뜬 구름 분위기를 계속 느끼고 있어서 묘사력이 굉장하구나, 느꼈는데 ㅎㅁㅎ

41 백담주 ◆DKrNXmBQas (nrIiwE3V8Q)

2022-07-31 (내일 월요일) 22:53:12

좋은 저녁 보내고 계신가요. 늦게 갱신입니다.

묘사력은 나름대로 최악은 아니지 않나? 하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도담주 앞에선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코끝에 봄바람이 걸리는걸요. 녹느니 마니 하며 건방진 발언을 일삼았던 과거의 저를 반성하는 오늘입니다...

42 백담 - 도담 ◆DKrNXmBQas (Da1KnwOz72)

2022-08-01 (모두 수고..) 22:56:55

다리의 길이가 달라, 보폭이 조금 차이난다. 티가 날 정도로 거리가 멀어지기 전에 발걸음 속도를 조금 늦추고, 보폭을 조금 좁힌다. 어찌됐건 낯선 것보다 더 낯선 이 이상한 하늘 아래서, 신용을 갖고 따라갈 만한 게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하게 낯선 이 소녀, 너, 도담밖에 없으니까. 문득 봄바람이 가볍게 살랑살랑 부는 것 같다. 앞머리가 조금 흔들린다. 소년은 바람에 대답했다.

"백람예술회관이 아니라, 그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요."

아, 그는 백람예술회관에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백람예술회관을 이정표로 삼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년은 나직이, 조심조심 말을 골랐다. 아무래도, 낯선 일에는 서투르다. 이것은 낯선 일 중에서도 가장 낯선 일이다. 아, 여기가 어디지, 또 길을 잃은 걸까 하고 생각하던 그 때에, 육교에서 유일하게 내려오고 있던 도담에게 말을 붙인 것이 어쩌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이것은 불편하고 거북살스러운 낯섦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 정말로 자신이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경한 감각이라, 세간에서 이것을 '쑥스러움'이라 부르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소년은 혹여나 모를 말실수를 피하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입을 뗄 것도 없는 별 것 아닌 내용이었지만.

"거기서 아버지와 만나기로 해서."

그 때에 낯선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소년에게 유일하게 낯익은 부분 하나를 톡 짚어주었다. 아프겠다.

덕분에 조금 침착해졌다.
도담에게는 붕 떠있던 소년이 조금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괜찮아요. 익숙해서."

거즈를 붙여놓고 있는 반창고 한 쪽이 꽤 너덜너덜했다. 턱관절 쪽에 붙어있어, 소년이 말을 할 때마다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한 흔적이려나.

43 백담주 ◆DKrNXmBQas (Da1KnwOz72)

2022-08-01 (모두 수고..) 22:58:51

어제는 답레를 미처 올려드리지 못하고 잠에 들었네요. 시간을 쪼개 답레로 갱신해둡니다. 한 주의 시작 잘 보내셨을까요. 잠자리에 드셨다면 푹 주무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답레는 나중에 주셔요!

44 도담 - 백담 ◆mZm4g7rP2k (mh3/NuRHSs)

2022-08-02 (FIRE!) 21:52:30

육교의 계단을 다 내려오면 보도블록이 발에 닿는다. 하늘이 조금 더 멀어졌고, 시야에는 학생들이 바로 앞에 있었다. 뒤늦게 학생들이 가는 방향을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라고 알려주었다면, 그럼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백람예술회관을 만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면 찾아가기 쉬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확실하게 길을 알려주려면 동행하는 게 걱정될 일은 없을 테니 후회는 없었다.

"데이트하시는 거예요? 좋겠다─ 꼭 데려다드려야겠네요."

하교하는 시간은 곧 저녁 시간으로 흐른다. 부자끼리 외식이라도 하려나 보다 어림짐작하여 이야기한다. 보통의, 평범한, 평균의, 대부분의 이야기 혹은 누구나 바라는 이상적인 이야기. 말간 하늘 아래 피크닉 돗자리를 깔고 있으면 작은 새가 지저귀는 풍경처럼, 그곳으로 남자아이를 데려다주는 것처럼. 길잡이라고 된 듯 장난조 섞어 웃었다. 찾아가기는 길이 어렵지 않은데도 사명감이라도 품은 듯한 말이 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소리가 섞였다. 처음 만난 길 잃은 남자아이를 위해 하굣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더라도 다름없이 웃을 있는 건 연기를 배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꾸며내지 않아도 웃음이 헤프고 쉬워서 누구의 앞에 있든 어디에 있든 웃을 수 있는 성격이라서였다. 그러니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거즈를 보고서 반창고를 꺼내는 것도 그랬다.

"아, 우리 반 애들이랑 똑같은 말!"

다친 게 보여서 상처 난 걸 모르고 있냐고 물어보면 익숙하다고 하던 반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런 체육과 친구들 덕분에 반창고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 것 같다. 보건실에 가자고 해도 안 가는 건 체육과 애들끼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고는 했으니까, 반창고라도 발라주려고. 반창고를 꺼낸 손은 남자아이에게 향해 있다.

"반창고 떨어질 것 같아서."

반창고를 내밀고 보니 얼굴에 난 상처는 거울을 보지 않는 이상 붙이기 어려워 보인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휴대전화나 거울에 비춰주는 것보다는 남이 붙여주는 게 편할 것 같아 말이 나온다.

"붙여드릴까요?"

45 도담주 ◆mZm4g7rP2k (L9PpaI7.KU)

2022-08-02 (FIRE!) 21:56:54

도담이가 구상한 것보다 더...... 강아지 같아. 초면인 백담이에게 이렇다는 건, 더 치한 사이일 때는 어떨지 감이 안 와 ㅎㅁㅎ 어제는 자고 있었어서 지금 답레 가져왔어. 백담주도 하루 잘 보내고 쉬고 있길 ㅎ-ㅎ

46 백담주 ◆DKrNXmBQas (r1PbjrJ2zU)

2022-08-02 (FIRE!) 22:17:01

오늘 하루도 잘 보내셨나요? 푹 주무셨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라고 한 것도 잠시, 느슨해진 백담주의 마음에 긴장감을 주는 것 같은 답레...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첫일상에 녹아버릴 것 같아요...

47 백담 - 도담 ◆DKrNXmBQas (95RgzQQJ2s)

2022-08-05 (불탄다..!) 21:12:38

데이트? 소년은 도담을 멀거니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그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를 고려해보자면, 그건 대단히 낯선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적의에 찬 부성애로 물든 갈색의 눈동자가 문득 떠올랐다. 그래, 아버지와 같이 가야 하는구나. 낯설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낯선 잠깐의 순간 때문에 잊어버린 사실이 떠오르는 것 같아, 문득 심장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적의와 부성애. 양립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버지 되는 자에게 양립하고 있는 것이 어째서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셈이네요."

소년의 표정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말을 얼버무릴 때 쓰는 전형적인 애매한 수긍. 지금 여기서 도담이 이 화제를 더 파고들려고 하면 소년은 드물게도 곤혹스러운 처지에 처할 것이다. 분위기가 싸해진다- 소년의 공감능력은 남들보다 조금 붕 떠 있을지언정 멀쩡했고, 아마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화제로 삼으면 어떤 달변가가 오더라도 분위기가 냉랭해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도담이 반창고 쪽으로 화제를 돌려준 덕분에, 소년은 내심으로 자신도 직면하기 두려운 주제를 피해간 것을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이것도 그렇게 대수로운 주제는 아니었지만.

"아뇨, 정말로 괜찮아요."

소년은 가볍게 도리질을 쳤다. 그 바람에 툭 하고, 그의 뺨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반창고 모서리가 떨어지고 거즈 너머에 숨겨져 있던 상처가 반쯤 드러났다. 보랏빛- 그의 눈과 비슷한 색이었지만, 그의 눈의 색에 비해서 좀더 칙칙하고 좀더 불길한 색상이 그의 뺨에 번져 있었다. 무언가 찢겨나가듯 쓸린 자국의 딱지 위로 남아 있는 청보랏빛은 흡사 무슨 병을 보는 것만큼 흉했다. 다행이라면, 쓸린 자국의 딱지도 이미 치유가 상당히 진행되어 슬슬 떨어져나가려 하는 모양이었으며 흉한 멍도 서서히 피부 밑으로 사그라들고 있는 것이 명백해보인다는 점 정도일까. 생긴 지 하루이틀 된 상처는 아닌 듯하다. 소년은 황급히 손을 들어 반창고를 다시 붙였다. 그래도, 한 번 떨어진 반창고는 이미 그 접착력을 거의 잃어버려 아슬아슬한 모습이 됐다. 도담의 호의가 기분나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수락해서 손해볼 것은 없겠지. 하지만 역시, 초면에 만난 사람이라는 염치와 쑥쓰러움이 없잖아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소년은 낯을 꽤 가리는 편인 모양이니까.

48 백담주 ◆DKrNXmBQas (95RgzQQJ2s)

2022-08-05 (불탄다..!) 21:15:56

답레와.. 갱신합니다... 갱신은 답레로 하고 싶어서 답레 다 쓰고 답레로 갱신하려 했는데, 현생이 급하다고 갱신 한 번은 해드릴 걸 그랬네요. 8.8 좋은 저녁 보내시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쓰다 보니까 백담이가 낯을 많이 가리네요. 얘 왜 이렇게 부끄럼이 많아. 붙여주면 또 시선 슬쩍 피하겠지 좋아서...

49 도담 - 백담 ◆mZm4g7rP2k (51Kblr2KAU)

2022-08-05 (불탄다..!) 22:25:17

이상,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사람을 그렇게나 좋아하니까 그만큼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멀거니 바라보는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꼈지만, 마주친 까만 시선은 땅을 딛고 하늘을 이는 것처럼 당연하게 살짝 웃는 눈매였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 있어요?─물음 그 의미뿐인 목소리가 사그라질 듯한 상냥한 표정.

"그쵸! 에스코트 열심히 할게요."

누가 누구를?─지나가던 행인의 귀에 들렸다면 바로 그런 의문이 돋았을 말을 태연스럽고 능청스럽게, 장난이라는 것을 알 수는 있도록 작은 목소리에 담는다. 남은 듣지 못하게 가만가만하니 중요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발에 맡긴 걸음과 방향은 오른쪽으로 꺾어야 할증이었다. 그러나 꺾기 전에 한 번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괜찮다는 거절은 반창고를 받지 않겠다는 것인지, 반창고는 받되 붙여주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인지 모호했다. 명확하게 된 것은 손에 여전히 남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의 도리질에 떨어진 거즈 아래로 상처와 마주쳤다. 생각보다 큰 상처에 눈이 동그랗게 뜨였고 눈썹이 올라갔다. 깜빡거리는 눈꺼풀은 쥐고 있는 반창고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다 너덜너덜해진 반창고를 다시 덧붙이면 발걸음을 세우며 입을 열었다.

"상처는 안 괜찮아 보이는데─ 저 반창고 붙여주기 경력 1년 차라 믿어도 돼요."

멈춘 걸음으로 인해 남자아이와 거리가 벌어졌다면 다시 좁혔다. 걸음을 멈춘 건 반창고를 붙이기 위해서였다. 걸으면서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처음에는 빌려주는 것으로도 괜찮았지만 붙여주기로 고집한 건 상처를 보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고집은 고집뿐 남자아이의 허락이 필요했다. 허락은 구태여 말로 하지 않아도 괜찮은 허락은 행동 하나로 충분했다. 손이 닿을 수 있게 높이를 맞춰줄 필요가 다분했다.

"숙여주기만 하면 되는데. 엄청 쉬운데~."

별것 아니라는 듯 가붓하다.

50 도담주 ◆mZm4g7rP2k (TtheTgUh42)

2022-08-05 (불탄다..!) 22:31:23

이틀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 ㅎ-ㅎ 갱신하면 재촉처럼 보일까봐 안 했는데 갱신하는 편이 좋다면 갱신할게. 백담주도 바쁜 나날 잘 보내고 좋은 저녁 보내고 있으면 좋겠다 ㅎㅁㅎ

낯 가리는 건가? 보통이라고 생각했는데. 또래라고는 해도 길 물어봤을 뿐인 모르는 사람이 저러면...... 도담이가 너무 치대는게 맞으니까. 강아지였다면 지나가는 모두에게 애교부리는 강아지가 아니었을까 ㅎ-ㅎ...

51 백담주 ◆DKrNXmBQas (kausnQIZQg)

2022-08-06 (파란날) 20:45:45

갱신은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현생이 현생이고 손도 곰손이지만, 조금만 돌렸을 뿐인데도 이런 은은한 청춘향기가 너무 좋아서... 도담주께서도 좋은 저녁 보내시고 계시다면 좋겠어요.

그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이것대로 가드가 높다는 느낌이네요. 누구를 대하건 상당히 높은 호감도로 시작하지만, 그 시작 호감도가 딱 상한선이라는 느낌이랄까.

52 백담 - 도담 ◆DKrNXmBQas (kausnQIZQg)

2022-08-06 (파란날) 22:22:50

말하지 않았지만 들렸다.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또랑또랑 빛나는 까만 눈이 질문을 던져온다. 마치 살가운 개나 고양이, 혹은 토끼가 다가와서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는 것 같다. 소년에게는 낯선 느낌이다. 그는 동물과 그렇게 친하지 않았으니까.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꼬리를 치며 다가오는 강아지라는 존재를 난생 처음으로 만난 것만 같은 그런 긍정적인 생소함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충분히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거기에 그렇게 밝은 대답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침묵으로 대답했다. 아무 일 없어요. 거짓말이다. 검은 거짓말, 하얀 거짓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회색 거짓말.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인생이 퍽이나 회색이었으니, 진실을 말해도 거짓을 말해도 텁텁한 회색. 생경스러운 봄 햇살이 비쳐들고 있지만, 햇살 아래에서도 회색은 회색이다. 다만 소녀의 쾌활한 말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합니다." 하고, 작은 목소리로. 지나가던 행인이 어떻게 여긴다던가 하는 것은 딱히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다만 이것은 역시, 생소하다. 여태껏 그 누구도 발자국을 들일 일 없었던, 자신의 주변에 조심스레 둘러쳐 놓은 원형의 금 안으로 발자국이 찍힌다. 발자국의 주인이 별생각없이 들어와 별생각없이 떠나가고도, 곧 지워질 발자국을 물끄러미 들여다볼 자신이 싫어 멈칫한다. 그러나 그 멈칫하는 움직임은 도담을 멈추기에는 너무도 미약했다. 소년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가볍게 손을 뻗어서 떨어져나간 거즈 대신 새 반창고를 붙여주면, 그는 이내 감사합니다, 하고 짧은 목례를 해보이겠지. 그러면 이제 못다 돈 코너를 마저 돌 수 있을 것이다. 백람예술회관이 눈에 보이려면 얼마를 더 가야 할까.

"반 친구들한테도 이렇게 해주시는 거에요?"

의외로, 먼저 말이 걸렸다.

53 도담 - 백담 ◆mZm4g7rP2k (H3k/lLWjEM)

2022-08-07 (내일 월요일) 21:56:37

웃음에는 여러 웃음이 있다. 즐거운 기분에 여물던 봉숭아 씨앗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있고,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얕잡아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것도 있다. 담은 남자아이의 침묵에는 물음을 품고 있던 두 눈동자를 감추려 살며시 눈웃음 지었고, 감사하다는 인사말에는 짓궂게 생긴 호선을 입매로 그렸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니까요─라는 말도, 장난에 돌아온 인사가 조금 낯간지럽고 즐겁다는 기분도 모두 웃음에 담았다. 그렇게 전해질지와 받아질지는 모르는 일이어도 언제나 웃음을 표현 방법으로 삼았다.

숙여준 만큼과 가까워지면 손을 뻗어보지 않아도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덜너덜한 거즈는 새 반창고로 바뀐다. 손톱을 세우지 않아도 쉽사리 떨어져서 실수로 뺨을 긁거나 따갑게 할 일은 없었다. 적어도 이 남자아이가 다음에 새로 거즈를 붙일 때까지는 꼭 붙어있도록 손가락 끝으로 반창고 끝을 지그시 누르며 미끄러진다. 다른 향기나 다른 온기에 껄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다가가는 데 익숙하단 게 묻어났다. 또다시 들려오는 감사하다는 인사에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웃음이었다.

"네, 반에 운동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학교가 예고랑 체고를 섞어둔 느낌이라서."

경력 1년 차는 작년의 이야기었다. 멈췄던 걸음은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횡단보도가 보이면, 그 앞에서 왼쪽으로 꺾자마자 하채문화예술고등학교와 백람예술회관이 보인다.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더 이상 같이 가야 할 이유는 없어진다.

"저기, 저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 왼쪽 길로 가면 돼요. 바로 보일 거예요."

문득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냈다. 휴대전화에 꽂혀있던 이어폰 잭을 빼고 잠금화면에 뜨는 시간을 확인해보면 5시 30분 언저리쯤이었다. 남자아이가 길을 헤맨 시간이라든지, 반창고를 붙이겠다고 작은 실랑이를 벌인 시간을 고려하면 조금 늦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늦지는 않았어요?" 물음이 붙었다.

54 도담주 ◆mZm4g7rP2k (h6xUx4w.js)

2022-08-07 (내일 월요일) 22:01:09

백담주의 해석이 정확해 ㅎㅁㅎ 시트 성격란에 있듯 100%에서 시작하니까 웬만큼은 가족, 친구, 지인, 전혀 상관없는 타인 사이 간격이 좁은 편이니까 백담이랑 도담이는 서로 전혀 다른 가드를 치고 있는 것 같네.

도담이는 데이트라고 했지만 전학 상담 때문에 만나는 걸까 생각하고 있는데 맞으려나 ㅎ-ㅎ 백담주도 주말 잘 보내. 이제 일요일도 몇 시간 안 남았네 8-8

55 백담주 ◆DKrNXmBQas (mEuiawM4vU)

2022-08-07 (내일 월요일) 23:22:58

아, 잔인한 타입이네요... 백담이 이 녀석도 벽에 얼쿨 쾅 부딪히고 코피 흘리면서 어? 하고 어리둥절하는 미래가 보인다...

정확합니다. 아버지랑 같이 하문고에 전학상담하러 가는 길이거든요. 아마 다음주 월요일에 선생님이 전학생을 소개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주말은 늘 야속하죠. 제대로 옆에 같이 있어주는 법이 없어요. 그래도 저는 저녁마다 돌아올 테니 백담이에게 궁금한 게 있다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거나 하면 부담없이 갱신해 주세요.

56 도담주 ◆mZm4g7rP2k (MGu46hEKJw)

2022-08-08 (모두 수고..) 00:03:35

햇살캐들의 햇살이 그런 편이라고 생각해서.... ㅎㅁㅎ.... 도담이의 첫 연애는 기타란에 적어놨지. 아마 그 선배가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싶어, 사귀는 사이니까 조금 더 특별해졌을 줄 알았는데 다른 건 없다란 걸 느끼지 않으셨을까.

응, 나도 저녁에는 들어와보도록 할테니까 백담주도 그렇게 해줘. 지금은 자다 깼는데.... 백담주도 자러 누웠겠지. 월요일 힘내자 ㅎ-ㅎ

57 백담주 ◆DKrNXmBQas (UbCf0yXCu.)

2022-08-08 (모두 수고..) 00:05:37

(이거 생각보다 앞으로 더 큰일났다)

답레 쓰던 중이었어요. 이것만 쓰고 자려구요. 3.3 주무시다 깨시면 안되는데... 다시 푹 주무시길 바래요. 좋은 꿈 꾸세요. 월요일도 힘내요.

58 도담주 ◆mZm4g7rP2k (U5WWqn2Y6U)

2022-08-08 (모두 수고..) 00:15:15

월요일이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ㅎ-ㅎ 백담주도 미리 잘 자. 폰 들여봤다고 조금 말똥해졌는데...... 잠들 것 같기는 해서.

도담이는... 내가 보기에는 시간을 많이 써야할 거 같단 느낌이 있어. 도담이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계속 옆에서 일부분을 차지해야 마음을 열 것 같다고 생각해서. 백담이는 어때? 도담이같은 아이가 낯설어서 거리를 두려나, 그러든 말든 방치하려나.

59 백담 - 도담 ◆DKrNXmBQas (xbFcI21plM)

2022-08-08 (모두 수고..) 22:18:23

자신의 회색을 내보이기 싫다. 자신의 회색이 다른 곳에 묻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자신과는 상관없이 맑고 푸르른 봄날에 타버린 잿가루 같은 자신의 삶을 흩뿌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한 자락 웃음을 섞어서 내보내는 이 낯설고도 친절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의 대답은 침묵일 수밖에 없었다. 입을 다문 채로, 허리를 구부려 눈높이를 맞추어준다. 그 움직임마저 어쩌면 그 상냥한 손끝에 잿가루라도 묻어날까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하채문화예고. 도담이 건네준 힌트에 그는 어렵지 않게 도담이 다니는 학교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예고와 체고를 섞어둔 종합예체능고등학교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 하채시에서 그런 고등학교를 찾으라 하면 한 군데밖에 없으니까. 아, 이게 하채문화예고의 교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좀더 실감이 난다. 어제와는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는 것을. 자신이 원하던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놓이게 된 세상이기도 하다. 의구심이 없지는 않다. 여기서라면 조금 다를까. 달라지긴 할까. '달라질 리가 없지'에서, 그래도 한 발짝은 물러섰다.

"여섯 시가 약속시간이니까, 충분할 것 같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모를 낯선 소년과의, 그리고 이름 모를 낯선 소녀와의 첫 만남은 여기서 마무리될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웃음을 아까 지은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역시 하교길을 그만두고 자신의 길안내를 해준 점에 대해서는 감사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그 정도의 예의범절까지- 아니, 고맙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감정까지 분실하지는 않았다.

60 백담주 ◆DKrNXmBQas (xbFcI21plM)

2022-08-08 (모두 수고..) 22:25:53

거짓말같이 잠들었네요... 33 도담주는 좋은 하루 보내셨나요?

옆에서 일부분을 차지해야 마음을 연다고 한다면, 정말로 꽤 장기전을 각오하거나, 오너인 제가 힘내서 이런저런 상황을 만들어서 엮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백담이는 모두에게 거리를 두는 타입이니까요. 도담이가 모두에게 그렇게 상냥하다고 한다면 더더욱 그럴 테고요.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소중히 여겨질 수 있다는 자신이 없는데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런 고통을 겁내는 거죠.

(원래 격투기반에서 에이스였던 아이가 백담이에게 밀려나 앙심을 품고 도담이에게 투덜대는 장면이 생각나 킵해두기)

61 도담주 ◆mZm4g7rP2k (x2gYw11/PA)

2022-08-08 (모두 수고..) 23:44:02

답레 잘 받았어, 답레는 내일 가져올 것 같아 ㅎ-ㅎ 백담주는 하루 잘 보냈어? 나는 잘 보냈고 잘 쉬고 있어.

세렌디피티라는 제목에 걸맞은 사건은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천천히 스며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한 번 바닷물에 빠질 일이 없지는 않겠지. 이런저런 상황을 만들어 엮는 것에 찬성하다 못해 함께 하고 싶어 ㅎㅁㅎ 백담이랑 도담이는 같은데 다르네. 도담이는 사람에게 거리두기에는 사람이 고픈 아이거든. 그래서 내가 먼저 너를 소중하게 여길테니까 너도 날 소중하게 여겨달라고 생각해. 소중하게 여기기 어렵다면, 널 소중해하는 날 싫어하고 미워하지는 말아달라까지도.

도담이한테 투덜거리면 응원과 위로가 튀어나올텐데, 백담이가 그 장면을 보게 되는거야? 도담이 반응에 따라 백담이 반응도 나뉘는걸까 ㅎㅁㅎ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장면 중에는.... 백담이가 도담이를 위로해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열린 후 이야기지만, 방과후 혼자 눈물 흘리는 연기를 하던 것 뿐인 도담이에게 백담이가 위로하는 장면이 있어. 위로에 연기 아닌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ㅎ-ㅎ

62 백담주 ◆DKrNXmBQas (vW2br.6GM.)

2022-08-09 (FIRE!) 00:27:33

누워도 잠이 안 오길래 폰을 봤더니.. 잘 쉬고 계시다니 다행이네요. 지금쯤 주무시려나요? 평안한 밤이 되기를 빕니다.

어쩌면 그래서 세렌디피티라는 제목을 짓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헛도는 톱니바퀴 같은 백담이가 맞물려 돌아가려면 그만한 긍정적 우연이 필요할 테니까요. 빗속에 멀거니 서 있는 백담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도담이라거나, 북적이는 인파 사이에서 무덤덤하게 손을 내밀어 맞잡았을 때 도담이의 눈에 들어오는 백담이의 빨간 귓바퀴라거나... 망상이지만, 그런 장면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걸 백담이한테 목격시킬 생각까지 하시다니 과연 저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말씀 나눌 때마다 절감합니다... 백담이는 아마 그 당시에는 반응이 없을 텐데, 연습경기에서 펀치가 매서워지거나 하지 않을까 싶네요. 당연히 유치한 화풀이입니다만, 철없는 소년이라는 게 그런 존재니까요.

백담이가 눈물흘리고 있는 도담이를 위로하려고 할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면... 백담이는 뭐라 말을 하기보다 다가와서 티슈팩을 하나 내밀고, 핸드폰으로 음악 하나 틀어서 도담이 귀에 이어버드를 꽂아주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쁜 장면이네요... 오늘 꿈은 행복할 것 같아요.

63 도담 - 백담 ◆mZm4g7rP2k (wZoj/nw7hk)

2022-08-09 (FIRE!) 22:06:43

여섯 시. 벌써 몇 번 들었는지 모를 감사하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맺음. 우리 둘 다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몇 학년이라는 물음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모자란 것 같다. 우연에서 비롯된 만남이 질문 하나로 더 이어진다고 한들 헤어지면 안 볼 사이가 되고 말테니까 인사치레해야 한다.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까지도 보이는 표정은 웃음이었다.

"별 거 아니니까요."

남자아이와 또래 친구일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통성명한 마디하지 못해 허리를 숙여 인사해야 하는 게 맞는지 헷갈렸다. 그래서 담은 배꼽 인사라기에는 손을 바로 모으지 않았지만, 아예 동그라니 두기에는 어색해 허리쯤 어정쩡하게 손을 가져왔다. 허리 숙여 인사할 때였다. 카디건 주머니에서 툭 이어폰이 떨어졌다.

"데이트 즐겁게 하세요!"

숙였던 허리가 곧게 펴지고, 담은 주머니가 허전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휴대전화는 주머니에, 이어폰은 바닥에. 이내 거슬러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야 하니 등을 돌려 걸음을 디뎠다. 낯선 온기와 향기는 머문 자리에 살짝 남았을까.

64 도담주 ◆mZm4g7rP2k (Qx8zxr3zFU)

2022-08-09 (FIRE!) 22:20:44

답레 가져왔어 ㅎ-ㅎ 백담주 평안한 하루 보냈을까? 비가 많이 안 온 지역이길. 푹 쉬어. 답레는 막레로 가져왔고 오늘도 수고 많았어 ㅎㅁㅎ

백담이에게 우산 씌워주려면 파들파들 까치발 들고 있을 것 같아서 예쁜 한 장면 같다가도 웃음이 나 ㅎㅁㅎ 귓바퀴가 빨간 백담이는 하얀 편이니까 빨강이 두드러질 것 같아서 눈에 띌 것 같아. 도담이는 백담이에게 여자아이 손이라서 부끄러운 건지 물어볼 것 같고, 그런 이유라면 소매 끝으로 옮겨가거나 백담이가 도담이를 잡게 할테니 덜 부끄러울까 생각하겠지 ㅎ-ㅎ!

학창생활이라면 한번은 나와줘야할 장면이지. 나 없는 자리에서 하는 내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기! ㅎㅁㅎ 사춘기니까 귀엽다고 생각해 ㅎ-ㅎ

백담이는 이어버드 파인가! 요즘 이어폰은 거의 다 들어가긴 했지만. 도담이 반응은 단계별로 다양해서 모르겠네. 제일 높은 단계가 품에 파고들어 안기는 거려나 ㅎ-ㅎ

65 백담주 ◆DKrNXmBQas (QW6yImJB8s)

2022-08-09 (FIRE!) 22:44:09

애매하게 중간에 낀 지역이라, 비가 평소보다 많이 오긴 했지만 다행히 수해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도담주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도담주에게도 별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백담이가 눈치좋게 우산 받아들어서 오히려 도담이한테 씌워주는것이... 도담이한테 손을 내밀었는데 귀가 빨개질 정도로 마음이 열렸다고 한다면... 네 손이라서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요즘 핸드폰이라는 것들이 아예 이어폰 홀을 빼버리는 추세니까요. 백담이는 더군다나 운동하는 아이라서, 와이어리스 이어폰이 더 유용하기도 할 테ㄱ마지막단계가 뭐라구요? 꼭 찍는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66 도담주 ◆mZm4g7rP2k (3FE4ulQ7z2)

2022-08-09 (FIRE!) 23:42:55

나는 해당 지역을 출퇴근시 지나쳐갈 뿐이라 괜찮았어. 우회해서 가느라 통근 시간이 길어졌지만 아무 일 없었어 ㅎ-ㅎ

백담이가 우산 들어줘도 키차이 때문에 비바람이 다 들어와 젖는 도담이가 생각났어 ㅎㅁㅎ 다 젖었다고 장난스레 툴툴댔을 때 백담이 반응이 보고 싶어서일까! 그때의 도담이는 어떤 상태일까... 너랑 똑같은 손이니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할 것 같기도 하고, 덩달아 부끄러워할 것 같기도 하네. 도담이는 연기하면서 닿는 건 예삿일이었을테니까.

그래서 도담이 폰은 의도치 않게 나온지 좀 된 기종이라는 설정이 붙었지 ㅎ-ㅎ 운동할 때는 선 거추장스러우니까 그렇겠다! 이렇게 키차이, 덩치차이가 나면 작은 쪽이 큰 쪽을 안았을 때 큰 쪽이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는 장면을 귀엽다고 생각해서... 아마 백담이가 도담이를 안아줄 수 있는 것보다, 도담이가 백담이를 안아줄 수 있는게 먼저일 거라고 생각해서 (적폐주의) 백담이는 도담이가 울면서 안아버리면 굳는 걸 볼 수 있을까란 소망도 있어 ㅎㅁㅎ

67 백담주 ◆DKrNXmBQas (Pnmo3AKpI2)

2022-08-10 (水) 00:00:45

출근시간이 길어진 것으로 끝난 게 천만다행인 일이죠, 이번은...

아마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주지 않을까요? 운동부 애들은 보스턴 백에 수건같은 걸 챙겨서 다니기 마련이니까요. 반대로 백담이가 우산을 도담이 쪽으로 기울여줘서 백담이 한쪽 어깨가 홀랑 다 젖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로 해요. 진짜 굳었다가 눈 깜빡이면서 토닥토닥(+현재 심리상태에 따라 같이 그렁그렁)해주지 않을까요. 운다니 가슴아픈데 예쁜데다 안겨오는 게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68 백담 - 도담 ◆DKrNXmBQas (Pnmo3AKpI2)

2022-08-10 (水) 00:17:37

"데이트가 아니라니까요..."

도담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이름 모를 소년은 손을 흔들어 웃는 얼굴이 예쁜 소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우연한 잠깐의 만남은 그 잠시간의 동행으로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도담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테고, 아직 통성명도 못한 이 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 소년은 앞으로 오며가며 도담을 종종 마주칠지도 모르겠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어줄 사실을 하나 알고 있긴 했으나, 말 그대로 오며가며 마주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도담이 멀어져 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소년의 눈에, 우연히도 또다른 힌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까 도담의 핸드폰에 달려 있던 이어폰이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브랜드 로고 덕분에 기억하고 있었다.

"아."

소년은 그제서야 이어폰을 주워들고 네가 멀어져간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그 너머의 갈림길에서 도담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알 수 없어 허망하게 눈을 깜빡였다. 일단은 어쩔 수 없다. 오늘 해야 되는 상담은 절차상으로 아주 중요해서, 빠지거나 늦으면 곤란한 상담이니까. 내일, 이름도 모르는 너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저 스쳐가는 우연한 순간일 뿐이라 생각해서, 네게 이름도 물어놓지 않았는데 새삼 이제서야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것은 짓궂은 장난꾸러기 아이 같아서 때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까지 사람을 끌고 갈 때도 있는 법이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언제나와 변함없는 등교길과, 조례 전의 왁자지껄한 아침 반. 평소와 똑같다. 몇 가지 빠진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몇 가지 더해진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큰 틀은 바뀌지 않고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평소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새 연도가 시작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봄날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기대감을 더해주는 법이지만, 한 반이 정해지면 그대로 졸업까지 죽 가는 하채문화예고 특성상 작년에 본 얼굴들을 계속 봐야 되니 오히려 변화에 대한 기대값이 다른 학교보다 적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조례를 치르러 들어온 선생님이 경례가 끝나고 나서 꺼낸 말은 반에 적잖이 신선한 화젯거리가 되었다.

"주목. 오늘은 우리 반에 전학생이 있다. 이종격투기 학과에 소속된 아이인데, 알다시피 이종격투기과에 소속된 아이들은 일괄적으로 5반에 소속되니까 우리 반이 됐어. 작년도 전국체전 복싱 부문에서 우승했고, 학생 선수권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신체적으로 약간 너희들과 다른 점이 있긴 한데, 백변증이 조금 있어. 그거 말고는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착한 아이니까 친하게 지내라."
"쌤, 백변증이 뭐에요?"
"만나보면 알게 될 거야."

하고, 선생님은 출입문으로 고개를 돌리고 앞문 앞에 서있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들어와라."

그리고, 어쩌면, 도담에게는 어제의 그 순간이 플래시백되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교실 앞문을 지나쳐 들어온 아이는, 어제의 그 잊지 못할 정도로 새하얀 색을 하고 있는 그 아이였기 때문이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말간 피부, 보라색의 눈을 한 채로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어제 도담이 자신의 손으로 뺨에 붙여준 반창고까지 아직 그대로 붙이고 있는, 어제 도담이 백람예술회관 앞까지 길을 안내해 준 그 아이가 맞았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교복 바지와, 가디건 대신 하얀 저지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술렁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진짜 하얗다."
"저 정도면 피도 흰색인 거 아니냐."
"잠깐만, 작년에 전국체전 우승이면..."

그러나 그 술렁이는 소리가 그의 귓전에도 들렸을지는, 모르겠다. 그 소년도 도담과 눈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첫눈에 지금 이 반에 어제의 그 상냥하고 웃음 많은 그 소녀가 앉아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그는 도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선생의 "자, 조용히." 하는 구령이 들리고서야 소년은 시선을 반 아이들에게로 뿌렸다. 선생은 소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백 담이라고 합니다. 백은 성이고, 외자 이름 담입니다.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대로, 이종격투기과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년, 백담의 조금 서먹서먹한 인사가 건네어졌다. 의례적인 박수가 이어졌다. 박수 사이로 섞여드는 웅성이는 소리.

"담? 우리 반에도 담이 있잖아."
"이러면 하얀 담 까만 담인가?"
"긴 담 짧은 담 아님?"
"야, 하다못해 큰 담 작은 담이라고 해라. 너도 키 작은 게..."
"조용히 하라니까 이녀석들. 그러면, 어디, 빈 자리가─"

선생님은 반에서 비어있는 자리가 있는지 가볍게 반을 둘러보았다.

69 백담주 ◆DKrNXmBQas (Pnmo3AKpI2)

2022-08-10 (水) 00:19:28

(반 아이들의 회화가 작위적인 느낌이 있어 답레를 쓰면서도 이게 맞나 머리를 싸쥔 도자기가 된 백담주)
자리는 도담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정해주시면 될 것 같아 저기에서 끊었습니다. (정하기 고민되시면, 사심 가득 담아 옆자리 해도 될까요...) 생각해보니 반의 책상과 의자 배열도 생각하지 않았군요. 옛날처럼 2열씩 배치하는 게 아니라 요즘은 5열배치로 바뀌었다고 하던가요?

70 도담 - 백담 ◆mZm4g7rP2k (chT82AJOaw)

2022-08-10 (水) 22:33:48

잘 모르는 브랜드 로고. 이름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년, 열세 살 먹은 동생이 생일 선물이라며 사다 준 이어폰은 보물이 되었다. 이어폰을 잃어버렸단 걸 알게 된 건 오늘 아침에서였다. 어제의 번복하고 번복한 하굣길에서 만난 친구와 재잘재잘 떠들다 이어폰을 찾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그대로 있겠거니 한 이어폰은 등굣길에서 쓰려고 보니 사라졌었다. 그래서 기분이 한 꺼풀 정도 가라앉고 말았다. 미묘하게, 눈치채기 어렵게. 혼자 앉는 자리에서야 표정에 조금 드러날까 싶지만, 누가 담아─다미야─야, 도담─하고 부르기라도 하면 은방울꽃에 맺힌 이슬이 톡 떨어지듯 작지만 분명한 움직임이 웃음을 그렸다.

조례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침 인사를 하는 동안 담임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동생이 슬퍼하지 않도록 같은 것이나 비슷한 것을 몰래 사야 할 것 같았다. 이어폰을 어디서 사야 하나, 하굣길을 찾아보면 나올 수도 있지 않나, 솔직하게 잃어버렸다고 알려주는 게 나으려나─꼬리 물어 기차놀이를 하는 생각을 끊은 것은 전학생이라는 단어였다. 3년 내내 같은 아이들과 보낼 예정이었던 학창 생활에 변수가 하나 튀어오른 것이다. 운동하는 아이, 백변증이 있는 아이. 검은 아이도 흔하지는 않았지만 하얀 아이는 드물었다. 어제 만난 남자아이를 그리면서, 전학생도 그 아이처럼 하얀 구름을 닮았을지 궁금했다. 앞문으로 들어오는 아이를 눈여겨보게 되는 건 어쩔 도리 없는 호기심이었다.

전국체전 우승이라든지 하얀 색깔에 술렁이는 소리가 조용했다. 무대 위에서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단둘에게 켜진 것 같았다.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 눈이 마주쳤을 때 담은 이 작은 우연들이 빚은 인연에 놀라서 어제처럼 웃지 못하고, 동그랗게 뜬 눈을 몇 번인가 깜빡여가며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어제만 해도 모르는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오늘은 담과 다를 게 없는 차림이 낯설다. 머무는 시선은 남자아이도 어제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담이었다. 담의 첫인사에 환영한단 의미로 반 모두가 손뼉을 치는데 아이의 손바닥은 부딪치는 게 작았다. 얼이 빠진 듯 맞부딪치는 소리는 탁하고 흐리다. 반 친구 중에서도 더 친한 사이로 지내는 몇몇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웅성거리는 대화들처럼 둘의 이름이 똑같아 까만 담, 짧은 담, 혹은 짧은 담이 될 친구를 보며 놀리듯 웃으면서 장난치는 시선이었다.

"여기, 제 옆자리 비었어요."

아이는 손을 들어 올렸다. 반을 훑던 담임 선생님의 시선은 아이에게 꽂혔다. 같은 반에 동명이인이야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옆자리 나란히 앉는 우연이 한 번 더 겹친다. 아이는 담을 바라보았다.

71 도담주 ◆mZm4g7rP2k (XWwIryU7PA)

2022-08-10 (水) 22:50:48

좋은 저녁이야, 백담주는 오늘 잘 쉬고 있어? ㅎㅁㅎ

운동부 계열 하면 생각나는 가방 이름이 보스턴 백이구나 ㅎ-ㅎ 수건 뒤집어쓰고 안경도 빗방울 튄 것 때문에 벗겠다. 백담이 어깨... 우산을 둘이서 쓰면 아무래도 한명은 젖고 말텐데, 백담이 어깨 넓단 묘사 때문인지 기울여주지 않아도 젖을 것 같아 ㅎㅁㅎ...... 둘 다 다음날 감기 걸리면 어쩌나.

나중에, 아직 먼 이야기니 돌리다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ㅎㅁㅎ 회화는 별로 어색치 않다고 생각해. 장난치기 좋아하는 나잇대 아이들 같고, 자리는 옆 자리로 가져왔어. 자리는, 난 중학교 때는 짝꿍이 있고 고등학교 때는 없기도 하고 있기도 했는데..... 어떻게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ㅎ-ㅎ

72 백담주 ◆DKrNXmBQas (atyVi3ib36)

2022-08-13 (파란날) 01:19:13

조그만 퍼즐의 한 귀퉁이가 맞춰지는 듯했다. 어제 그 아이는 아버지와 만난다고 했다. 백람예술회관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목적지는 백람예술회관이 아니라고 했던가. 데이트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그건 아니라는 듯 떨떠름해하는 반응을 보였고. 어제, 저 하얀 소년은 아버지를 만나 백람회관 근처의 고등학교- 도담이 다니는 고등학교로 전학 수속을 밟으러 온 것이다. 확실히, 학교에 방문하여 상담 및 전학 수속을 밟는 것이 데이트라고 부르기에는 떨떠름한 일이긴 할 것이다. 사실 소년이 떨떠름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적어도 도담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흔히들 전학생을 향해 보내곤 하는 호기심과 신기함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부릅뜬 눈으로 전학생을 쏘아보는 시선도 있었다. 마치 이상한 우연이 순전히 도담의 몫만은 아니라는 듯이. 그러나 그는 그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의 이름을 소개해 주었다. 백담. 도담과는 성씨 하나가 다르다. 하얀 담, 긴 담, 큰 담이 될 새 친구는 도담이 들어올린 손에 다시 도담과 눈을 마주쳤다. 또 만나네, 하고, 보라색의 눈으로 그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딱 도담이 옆자리가 비었구나. 저기 앉으면 되겠다."
"네."

소년, 백담은 별 거부를 하지 않고 보스턴 백을 옆에 낀 채로 담임 선생님이 지시해주는 대로 도담의 옆에 비어있던 자리의 걸상을 빼고 앉았다. 일단은 아직 선생님께서 조례를 마치지 않았으므로, 다른 아이들과 같이 교탁 쪽으로 시선을 둔다.

보통, 지금까지 다니던 환경과는 생소한 환경에 노출된 전학생은 여러 가지로 긴장하게 마련이고 그런 긴장이 태도며 눈빛에 드러나보이기 마련인데 가만히 앉아 있는 백담은 별로 긴장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사람이라면 갖고 있어야 할 기색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고나 할까, 마치 아무것도 없이 의자 하나만 덜렁 놓인 텅 빈 교실에 앉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림자마저도 하얗게 보이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조례는 머지않아 금방 끝났다. 오늘의 조례는 예기치 않은 전학생 한 명을 빼면 별 것 없었다. 간단한 공지내용 몇 가지를 일러주신 뒤에 수업 잘 받으라는 말을 끝으로 담임 선생님은 조례를 마치고 교실에서 떠나셨다.

그리고 그제서야, 백담은 도담에게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렇지만 이내 전학생에게 흔히 있는, 교실의 학생들의 쏟아지는 질문 세례가 소년을 덮쳤다. 키가 몇이냐느니, 작년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게 맞냐느니, 아버지는 무얼 하시냐느니, 집은 어디냐느니, 어떤어떤 게임 하냐느니, 취미같은 게 있냐느니... 도담도 거기 합류하거나 귀를 기울였다면, 아버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집은 도담의 집과 같은 방향에 있는 단독주택 단지이며 딱히 즐겨하는 게임이나 취미 같은 게 아직 없다는 말도 들어볼 수 있었겠다. "산에서 살다 왔냐?" 하는, 반에서 알아주는 개구쟁이의 장난스러운 핀잔까지. 한 차례 호기심에 가득찬, 이제 같은 반 친구들이 된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내자 1교시 시작 직전이 되었고 그제서야 아이들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어제."

그제서야 백담은 말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걸까? 그는 잠시 옆에 내려놓았던 더플백을 열더니, 가방 안쪽에 달려 있는 작은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떨어뜨리고 갔더라, 이거."

그것은, 어떤 상표인지는 잘 모르지만, 도담이 잘 기억하고 있는 상표가 새겨져 도담이 잘 기억하고 있는 색깔과 모습을 한, 도담의 이어폰이었다. 돌돌 말린 채로 깔끔하게, 그는 그것을 도담에게 내밀어왔다.

73 백담주 ◆DKrNXmBQas (atyVi3ib36)

2022-08-13 (파란날) 01:23:56

>>72 나메 실수... 백담 - 도담으로 읽어주세요 88

어렸을 적에 전학을 자주 다녔기에 그때 상황을 떠올리면서 쓰다 보니 답레가 장황해졌습니다. 분량에 개의치 마시고 쓰시고 싶은 느낌대로 답레를 써주세요. 이번 주는 잘 보내셨으려나요. 여유롭고 느긋한 연휴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짝꿍은... 있다고 하죠.(사심) 초중고 모두 5열식 배치라서 짝꿍이 있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청춘광인의 입장에서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신경쓰이는 아이랑 우산 같이 쓰고 가다 감기 걸리는 것도 청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답레를 남겨두고 자러 가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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