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576074> [HL/청춘/일상/1:1] Serendipity :: Note 1 :: 124

◆DKrNXmBQas

2022-07-27 21:14:47 - 2022-11-21 08:27:35

0 ◆DKrNXmBQas (1bNlpqKJAs)

2022-07-27 (水) 21:14:47


세런디피티(serendipity, IPA: [ˌsɛrənˈdɪpɪti])는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특히 과학연구의 분야에서 실험 도중에 실패해서 얻은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어느 봄날이었다.

74 도담 - 백담 ◆mZm4g7rP2k (H7Emn2hXzw)

2022-08-13 (파란날) 22:19:41

제비꽃을 닮았다고 느꼈던 눈을 다시 마주칠 일은 아마 없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는 마주친 눈을 피하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웃기만 했다. 살가운 눈웃음은 어제 보았던 것과 같아서, 우리 또 만났다─하고 속삭이듯 했다. 담임 선생님의 지시가 있고 나면 들어 올렸던 손은 아래로 내려갔다. 비어있는 옆자리는 학기 내내, 혹은 1년 내내 그대로 갈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주인이 생겼다. 의자를 끄는 소리와 느껴지는 인기척이 낯설었다. 어제의 봄 내음 사이 섞인 낯선 온기와 향기는 이제 익숙해져야 할 것이 되었다.

조례, 그리고 조례가 끝나고서 찾아온 반 아이들의 질문 세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동안 구름 한 자락이 교실에 잘못 내려앉은 것 같단 느낌은 이상하리만치 지워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이어지고 이어진 우연이 현실 같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어림짐작해 본다.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로 바뀌고, 버스 정류장에서 타야 할 버스가 바로 도착하는 소소한 행운이 이어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그 비스름한 것일 거라고. 그저 직접 해주는 이야기가 아닌 옆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을 조금 흘려보내고, 조금 담아두었다. 반 아이들이 떠나고 가면 인사를, 어제 하지 않아 다시는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말들을 건네려 기다림을 보냈다. 봄기운 완연한 날씨에 봄꽃 피길 기다리는 기분과 조금 닮았나. 먼저 말을 건넨 건 담이었다.

"어─응!"

놀란 목소리는 더 크게 비집고 나오기 전에 입을 다물었다. 둥글게 맺힌 눈이 동그랗게 깜빡였다. 동시에 끄덕이는 고갯짓은 크고 명확해서 담이 주워준 이어폰이 아이의 것이라는 게 확실했다. 내민 이어폰을 받아서 내려다보던 눈은 다행이라고 안심하고 있었고, 곧 담을 보며 환히 웃었다. 역시 웃음이 헤펐다.

"고마워, 이거 소중한 거라서."

어제 담을 처음 만났을 때 이어폰을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던 것처럼 똑같이 그러려던 아이는 멈칫했다.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다가 잃어버렸으니 가방에 넣으려고 몸을 틀었다. 의자에 걸어둔 가방에 이어폰이 들어간다.

"아까 이름 들었어? 나도 담이야, 도담."

어제보다도 더 사근거리는 건 어제 만났던 반가움과 같은 반 짝꿍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어폰을 찾아준 감사 때문이기도 했다.

"교과서는 받았어? 없으면 같이 보자."

75 도담주 ◆mZm4g7rP2k (vFtQfc7HdE)

2022-08-13 (파란날) 22:27:13

집이 같은 방향이란 것도 의도한걸까 ㅎㅁㅎ 둘이 같이 등하교할 수 있겠다. 근데 도담이는 버스탄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아? 백담이도 버스 탄다고 하면 하교하던 버스에서 어깨에 기대 잠드는 걸 볼 수 있을까 기대되기도 해 ㅎ-ㅎ

감기를 얕게 앓아 둘이 나란히 약기운과 컨디션 저조로 꾸벅이는 장면 귀여울 것 같아. 크게 앓아 등교도 못하면 서로 집에서 담이는 괜찮을까 생각하는 것도 ㅎㅁㅎ 백담주도 좋은 주말 보내고 있어? 무던한 하루 보냈길 바래 ㅎ-ㅎ

76 백담주 ◆DKrNXmBQas (tVLeSjyNP.)

2022-08-14 (내일 월요일) 19:21:54

잠깐 둘이서 평소의 하교길을 벗어나 어디 들러갈 일이 생겼는데 하교시간이 조금 어긋난다거나 하면, 어디어디의 사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버스 내용도 편안하고 포근하니 좋습니다. 찬성입니다. 백담이가 종종 체력 관리한다고 뛰어서or자전거 타고 등하교할 때가 있는데 하교하던 버스에서 어깨 기대고 잠들어버리면 앞으로 그냥 쭉 버스 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반대로 도담이가 자전거 뒷자리에 탄다던가도 좋은 장면일 것 같지요.

앓아눕는... 마음은 아픈데 꼬닥거리는 건 상상하니 귀엽네요. 수업 시간에 서로한테 기대서 잠들어버린다던가, 선생님에게 지적받고 나란히 양호실행이라거나.

연휴의 둘째날은 푹 쉬고 계신가요? 좋은 연휴 보내고 계시길 바라겠습니다.

77 도담주 ◆mZm4g7rP2k (7K7ubou14o)

2022-08-14 (내일 월요일) 21:32:06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고 꾸벅이다가 의도치 않게 기대게 되겠다 ㅎ-ㅎ 내릴 때 백담이가 깨워주면 도담이는 놀라서 마저 집 가는 내내 사과하려나. 자전거 태우는 것도 청춘이다 ㅎㅁㅎ 날이 지날수록 백담이를 붙잡는 자세가 바뀌게 되겠지. 처음에는 자전거나 옷자락 잡을 것 같고, 나중에는 허리쯤를 안지 않을까 ㅎㅁㅎ

오후 내내 과 수업에 참여할 상태가 아니라 양호실 신세를 지는걸까? 도담이는 양호실 이불 크기가 넉넉할텐데 왠지 백담이는 뒤척거리면 이불 아래로 발이 나올 것 같아 ㅎ-ㅎ 난 잘 보내고 있어. 백담주도 연휴 즐기고 있어?

78 백담 - 도담 ◆DKrNXmBQas (h7KFWdeugs)

2022-08-15 (모두 수고..) 18:18:51

백담이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랬다. 자신의 삶이 마냥 버스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번호도 노선도 모르고, 값도 내지 않고 올라탄 버스. 운전대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승객의 자리에 하릴없이 앉아서, 어디론가 달리고는 있는데 운전석은 비어 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하염없이 어디인지도 모를 지평을 하염없이 가로지르고 있다고. 내 인생인데, 스스로의 인생에 「밀항」 해버렸다고.

밀항자가 어느덧 내린 곳이- 스스로가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린 곳이, 도담의 옆자리였다.

아직은 조금 얼떨떨하다. 익숙한 낯섦,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이전과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를 지금은 분명히 다른 것이니까. 그러나 우왕좌왕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우왕좌왕할 만한 힘이나 의욕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린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냥 정류장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 이러다가 또 언젠가 다른 버스에 멍하니 올라타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백담이 꺼낸 이야기는 또 만났네 하는 인사라거나, 앞으로 잘 부탁해 하는 붙임성있는 접근이라거나, 너도 궁금한 거 있어? 하고 요령좋게 내미는 손길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름모를 이국의 나비 날개 같은 자색의 눈동자를 하고서 그가 내밀어온 것은 또다른 작은 우연의 조각, 도담이 떨어뜨린 무언가였다. 돌려줘야 하기에 돌려주는 것. 다른 어떤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그런데도 도담의 미소는 환했다. 그래서 백담은 응, 하고 무언가 구체적인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정신을 차린 것은 교과서는 받았어? 하는 도담의 질문이었다. 같이 보자, 하는 말에 백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보스턴 백 가방이 두둑했다. 아이들의 질문 세례를 받느라,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미처 사물함에 넣어두지 못한 교과서들이 묵직하게 들어차 있다. 그 외에도 갈아입을 체육복이라던가, 수건이라던가 하는 게 보인다.

"필요없어. 괜찮아."

하는 조금 나직하고 조금 쌀쌀한 대답으로, 소년은 쌓여있는 교과서들 중에서 1교시 수업 과목에 해당하는 교과서를 꺼내들었다.

이제 와서 무언가 조금 기대해보거나, 무언가에 이끌리기에는 자기에게 자신 스스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구름 한 자락이 교실에 잘못 내려앉은 것 같단 느낌은, 잘못 느낀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얗게 바래인 삶에 이제사 이변 같은 게 있을 리가.
열여덟 청춘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꽃송이처럼 품고 있어야 할 아름다운 것이, 이 소년에게는 퍽 결여되어 있었다.

79 백담주 ◆DKrNXmBQas (h7KFWdeugs)

2022-08-15 (모두 수고..) 18:20:53

(답레를 쓰고 보니 이 녀석 생각보다 아직 껍질을 단단하게 여미네요...) 그래도 언젠가는 도담이랑 같이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는 날이 오리라고, 연신 사과하는 도담이에게 사과하지 않아도 돼. 하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날이 오리라고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녀석 꽤 기니까요. 음, 연휴인데 연휴답게 보내지는 못했네요. 도담주는 조금 어떠셨나요?

80 도담 - 백담 ◆mZm4g7rP2k (vL3b9YqAhA)

2022-08-15 (모두 수고..) 21:18:00

담이 고개를 가로저으면 도담은 고개를 갸웃댔다. 처음 등교한 오늘 교과서가 어디 있을는지 고개가 기울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왔는지, 아니면 벌써 교과서를 다 배부받은 건지 갸우뚱거린 고개. 이내 가방에서 꺼내지는 교과서를 보고 풀렸지만, 이번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한 학년 치의 교과서가 전부 저 가방 안에 들어있다면 그 무게가 상당할 테니 놀라서 눈을 깜빡깜빡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문득 연기과 아이들이 무대 소품을 옮기고 있으면 오늘 안에 다 옮기겠냐고 나서서 도와주는 체육과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종격투기과이며 전국체전 복싱 부문 우승을 했다던 담임 선생님의 소개, 어제 반 아이들과 똑같은 소리를 한다며 붙여주었던 반창고. 반창고를 붙여줄 때만 해도 같은 반 친구가 될 줄 몰랐는데, 미리 같은 반 친구가 될 걸 알고서 그런 것만 같아 작은 웃음을 머금는다.

"반창고 붙여줄 애가 늘어버렸네."

필요 없어. 괜찮아─반창고 붙여줄 애가 늘어버렸네─듣기에는 퍽 이상한 대화였다.

"점심 같이 먹어줄 친구도 괜찮아?"

전국체전 우승을 한 담이니, 체육과 아이들이 진짜 작년에 우승했냐─하며 말을 붙이면 점심때까지 같이 밥을 먹을 친구가 생기기도 어렵지는 않을 것 같고, 몸 관리를 위해 식단에 맞춰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아이도 있고는 했으니 거절을 염두에 두었다. 민들레 씨앗 같다. 선뜻 날라와 앉더라도 후 불면 다시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거절해도 괜찮다는 말을 말없이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 질문 후에 바로 타종이 울렸다.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수업 종이다. 길어도 몇 분 후면 1교시 과목 선생님이 올 테니 계속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 도담은 필기용 노트의 맨 뒷장을 펼쳤다.

'학교 길 알려줄 사람 필요하면 말해!
어제처럼 에스코트해 줄게.'

작은 글씨로 적어 담의 책상 쪽으로 슬쩍 밀어두었다.

81 도담주 ◆mZm4g7rP2k (lEb2gHJ1MQ)

2022-08-15 (모두 수고..) 21:22:00

단단한게 맞지 ㅎ-ㅎ 도담이는 전혀 개의치 않아서 단단하다고도 생각 못하고 있는 듯 해. 그러고보니 백담이는 도담이가 연기과일 거 알까?

연휴 못 쉬었나 보네 ㅠㅁㅠ 난 잘 쉬었어. 백담주의 내일은 여유로우면 좋겠다.

82 백담 - 도담 ◆DKrNXmBQas (1yd3.AIfJU)

2022-08-19 (불탄다..!) 03:21:42

이런저런 문학작품이나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곳으로 전학온 인물들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전학을 왔다는 사실 그 자체를 향해서 설레임을 표현하곤 하던데, 책상이 조금 달라졌고, 햇살이 들어오는 방향이 조금 달라졌고, 반의 풍경이 조금 달라졌고... 물질적인 변화가 감정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그저 물질적인 변화로 인식되는 선에서 끝난다. 마음을 느끼는 법을 잊기라도 한 듯이. 그런 그에게, 소녀의 목소리가 팔랑이며 날아온다. 까만 담이 꺼내어놓는 말에 하얀 담은 초점 흐릿한 자색의 시선을 다시 도담에게로 돌린다.

"......"

눈을 깜빡이다가, 백담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매만져본다. 여전히 뺨에는 어제 도담이 붙여준 반창고가 남아있다. 반창고 붙여줄 애가 늘어버렸네- 하는 말에 그는 고개를 들어 새삼 타종 직전의 교실을 한 번 휘 둘러보았다. 운동부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 지정 교복이나 체육복이 아니라 사비로 마련한 체육복 차림이기에 반에서도 눈에 띈다. 운동부 아이들에게 이따금 한두 개씩 붙어있는, 반창고들. 그의 뺨에 붙어있는 것과 같은 것도 있고, 평범히 쓰이는 민무늬 반창고도 보인다.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소년은 무덤덤하게 안심했다. 낯설어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 역시 다른 일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깊은 밑바닥 한가운데 물결이 일어 물 속에 흙먼지를 일으키는 것 같아 깜짝 놀랐지만, 수면을 스쳐지나가는 산들바람에서 비롯되었을 뿐이었음을 알게 되자 한결 편해졌다. 편해지는 한편으로, 조금 심술이 나서,

"네가 그러고 싶으면."

하고 백담은 도담이 건네준 선택권을 다시 도담에게로 쏙 돌려주었다. 민들레 씨앗더러 원하는 대로 날아보라고 하는 억지다. 그런 억지를 쓰면서도 떨어지는 곳이 자기 옆이라면 그건 막지 않겠다는 조그만 가능성을 굳이 열어둔 게 얌체같다. 민들레 씨앗도 구름도, 어느 것 하나 자기 원하는 대로 가지 못하고 바람 부는 대로 쓸려다니는 것들이니. 타종음이 울린다.

타종음 중에 갑자기 또, 자상한 글씨를 한 점 내밀어오는 도담의 공책을 백담은 바라보았다. 에스코트- 이미 집과 학교를 어떻게 오가면 되는지, 버스 노선은 어떻게 되고 어디서 타서 어디서 내리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또 도보로 걸어가거나 뛰어간다면 얼마나 걸릴지도 이미 다 파악해둔 상태라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등하교길의 상당 부분이 도담의 등하교길과 겹치게 되어, 본의 아니게 결국 도담의 에스코트를 받게 될 테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아직 모른다. 모르는 채로, 백담은 자기 교과서 모퉁이- 저번 학교에서 쓰던 것과 같은 교과서였는지 사용한 흔적이 꽤 있는 교과서를 대강 한 쪽 펼쳐 한 귀퉁이에다 대답을 적어주었다.

'괜찮아. 고마워.'

잘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곧고 부드러워 알아보기가 쉬운 글씨체다. 우연일까, 두 마디 중에 고마워 쪽의 글자가 약간 더 크다.

1교시 담당 선생님은 얼마 안 있어 들어오셨고, 오전 인문학 수업이 시작됐다.

83 백담주 ◆DKrNXmBQas (1yd3.AIfJU)

2022-08-19 (불탄다..!) 03:22:37

늦은 새벽에, 두고 가겠습니다... 저도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를 못했어요. 88

84 도담 - 백담 ◆mZm4g7rP2k (LFz4Z3YiOw)

2022-08-21 (내일 월요일) 22:45:40

"그럼 같이 먹자."

타종이 울리기 직전에 도담의 목소리가 바로 답을 했다. 담은 선택권을 넘긴 것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고 돌려준 답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교복을 입은 낯선 남자아이에게 반창고를 붙여줄 수 있고, 먼저 같이 점심을 먹어줄 친구는 필요 없냐고 물어보았던 아이. 그런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긴 것은 선택권을 넘긴 것이 아니었다. 불어내지 않아서, 바람이 오질 않아서 민들레 씨앗은 앉은 자리에 그대로 머무른다.

'고맙기는 별거 아닌데!'

선생님이 교실에 올라왔지만, 작게 적힌 동글동글하니 주인을 닮은 글씨는 몇 자씩 더 노트에 자국을 남긴다.

'오늘부터 바로 방과 후 훈련도 해?'

개학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지만, 자리만 바뀐 반은 익숙하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어제 만났던 아이가, 잃어버렸던 이어폰까지 찾아주며 짝꿍이 되었으니 이런 저런 질문이나 선뜻 호의를 내미는 건 그 탓일까. 어제보다 조금 더 사근거리는 건 그 탓이 맞았겠지만, 도담은 원래 그런 아이였다. 담이 오늘 갑자기 나타난 짝꿍이었어도 이름이 같다며, 신기하지 않냐고 쉽사리 말을 붙여 웃음지었을 아이다. 언젠가 반 아이들에게 도담을 물어볼 일이 생긴다면 아, 걔? 원래 그래─맞어, 작년에 화이트데이라고 반 애들한테 사탕 줬잖아─너 평생 여자한테 뭐 받은 거 그때가 처음이라 설렜지? 형이 다 안다─자기소개하고 자빠졌네─그렇게 시답잖게 흘러가 버릴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담이, 나와서 이것 좀 도와줄래?"

오늘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나눠줘야 할 프린트물이 차곡차곡 교탁에 교차로 쌓여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나눠줄 양이 꽤 되어 보였다. 때문에 학생의 손을 빌리려는 선생님은 작년에도 그런 역할을 맡아주던 도담의 이름을 익숙하게도 불렀다. 도담도 이름을 불리는 게 익숙해서, 쥐고 있던 펜을 책상에 내려놓으면서 의자를 뒤로 드르륵 밀며 일어났다. 평소와 같았다면 교실 앞으로 걸어 나가 선생님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또 다른 담이 있어서 문득 자신의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담도 자리에서 일어났을까 봐, 일어나려고 할까 봐.

85 도담주 ◆mZm4g7rP2k (LFz4Z3YiOw)

2022-08-21 (내일 월요일) 22:46:59

고생 많았어 ㅎ-ㅎ 주말동안 잘 충전할 만큼 푹 쉬었길, 내일부터는 좀 더 나은 하루이길! ㅎㅁㅎ

86 백담주 ◆DKrNXmBQas (HjGIw0Jfdo)

2022-08-21 (내일 월요일) 23:40:51

백담이가 조금 위기감을 느껴서 슬슬 발을 빼려고 하고 있는데 도담이가 왜 이리 솜사탕같은지......

도담주도 한 주 동안 고생하셨고 즐거운 주말 보내셨기를 바라요. 저도 도담주의 다음 한 주가 도담주에게 좋은 날이기를 빌겠습니다.

87 백담 - 도담 ◆DKrNXmBQas (oirMGhe9zc)

2022-08-26 (불탄다..!) 12:41:47

네가 그러고 싶으면- 하고 대답한 것은, 분명히 툴툴대는 것이었다. 다만 스스로 얼굴에 이렇다 할 표정을 의식적으로 짓는 법도 잊었고, 어조에 힘을 주는 것도 어색해서 그만둔 관계로, 정작 백담의 입에서 나온 툴툴대는 소리가 도담에게 가 닿았을 때는 틀림없이 그건 전혀 툴툴대는 소리가 아니라 무덤덤하게 맥빠진 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소리가 그리되었으니 마음도 김이 빠진다. 애초에 왜 툴툴대고 싶어했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무뎌진다. 생각해보면 툴툴거릴 이유도 없었지 않나. 그의 마음은 잔잔히 가라앉는다. 그래서 그의 말소리는 딱히 바람이 되지 못했고, 민들레 씨앗을 어디 달리 멀리 날리지도 못했다. 옆에 톡 떨어진 씨앗. 그냥, 아무 상관도 없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마음에 백담은 그걸 그대로 두기로 했다.

바로 방과 후 훈련도 해? 하는 조그마한 필담에 백담은 뭐라 대답을 하려 샤프를 집어들었으나, 담아, 이것 좀 도와줄래? 하는 말이 먼저 귀에 들렸다. 자연히 백담은 도담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의자를 조금 들어다가 뒤에 내려놓고선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옆에서 들리는 드르륵 소리에 도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반쯤 일어나다 만 어정쩡한 자세로, 두 담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1교시 수업을 들어온 선생님도, 자신이 익히 알고 있던 학생 말고도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의 학생에 어리둥절한 모양새였다. 상황을 정리해준 건 반에서 까불거리기 좋아하는 친구였다.

"쌤, 이제 우리 반에 담이가 둘이에요."

담이가 둘이라니? 하는 말에 선생님은 새로 갱신된 출석부를 들쳐보고는 아! 하고 깨닫는 소리를 낸다. 그러고 보니 5반에 전학생이 왔다고 했던가- 같은 담이 둘. 선생님이나, 같은 반 친구들이 보기에는 조금 재밌는 신기한 우연. 그래서 선생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두 사람 중에 누가 도와줄래? 하고 가볍게 질문을 건네어온다. 백담은 도담을 마주본 채로, 고개를 조금 기울여보인다. 잠깐 동안 눈을 마주치다가, 백담은 툭 말을 꺼냈다.

"같이 가자."

딱히, 그 동안의 몇 차례의 예기치 않은 '접근'을 염두에 두고 한 대답은 아니다. '네가 가'라고 하기에는 그의 성격이 그렇게 뻔뻔하지가 못했고, '내가 갈게'라고 고집을 피우기에는 도담 역시도 만만해 보이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도담이 먼저 '내가 갈게'라고 말하길 기다려 고마워, 하고 대답하고 뻔뻔하게 앉자니, 귀찮아서. 그뿐이다.

88 백담주 ◆DKrNXmBQas (oirMGhe9zc)

2022-08-26 (불탄다..!) 12:42:32

하다못해 1일 1답레는 드리고 싶은데 자꾸 늦어지게 되네요... 88 이번 주는 잘 보내셨나요?

89 도담 - 백담 ◆mZm4g7rP2k (cT/prKbCPk)

2022-08-26 (불탄다..!) 21:58:02

도담이 옆을 돌아보자마자 보랏빛 눈을 마주했다. 한 명은 바로 서 있고, 다른 한 명은 아직 일어나다 말아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시선이 똑 맞아떨어졌다. 무엇이 웃음 짓게 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눈이 마주친 잠깐에 푸스스 웃고 말았다. 서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서 일어나면서도 똑같이 옆자리의 또 다른 담을 의식하고 눈 맞춘 게 반가워서일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마른 손바닥으로 쥐었던 모래알들처럼 속절없이 흩어지는 미소였다. 그리고 1교시 과목 선생님이 지금 무슨 상황인지를 파악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응?"

선생님이 원래 찾은 담은 도담이었다. 누가 도와줄래?─라고 물으면 당연히 자신이 도우리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니 담이 눈을 조금 더 맞추더니 툭 건네는 말은 예상 밖의 일이라서 반문하고 말았다. 안경 아래로 까만 눈동자가 깜빡깜빡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기를 몇 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은 미소로 화답한다.

"그래─담이들이 돕는대요!"

담에게 답하면서, 이후에는 밝고 짓궂은 목소리가 선생님에게 닿을 만큼 크기를 키웠다. 톳톳톳 가벼운 발소리를 남기고 먼저 교실 앞으로 향한다. 선생님이 도움을 청하는 게 익숙한 듯이 쌓여있는 프린트물 두 뭉치를 집었다. 곧 앞까지 나왔을 담에게 그중 한 뭉치를 건네었고, 앉아있는 반 아이들이 뒤로 돌리면서 나눌 양만큼만 개수를 세어 앞자리 아이에게 건넨다. 그 잠깐 사이에도 농담을 주고받거나, 인사를 주고받으니 까르륵거리는 소리가 난다. 프린트물을 다 나누면 새로 다시 한 뭉치를 집고, 뭉치는 크게 대여섯밖에 없었으니 두 사람이 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선생님이 느끼기에도, 반 친구들이 느끼기에도 두 담이 이름만 같고 너무 대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왔던 하얀 담, 까만 담이라든지, 짧은 담, 긴 담이라든지, 큰 담, 작은 담이라든지.

"담이들, 너희를 어떻게 구분해 부르면 좋을까?"

도담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담을 바라보았다. 구분할 거리야 많았지만, 어떻게 보면 별명을 짓는 일이라서 멋대로 붙여버리면 담이 곤란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괜찮으냐고 물어보는 따스함이 시선에 어렸다.

90 도담주 ◆mZm4g7rP2k (cT/prKbCPk)

2022-08-26 (불탄다..!) 22:00:55

괜찮으니까 잘 보냈길 바래 ㅎ-ㅎ 난 괜찮게 보냈어!

솜사탕이라니 귀엽게 봐주고 있구나! 햇살캐 어필을 하다보니까 그런 거 같아. 첫일상이 포근하고 뭉실해서 다음 일상은 어떤 풍경일까 기대되기도 해 ㅎㅁㅎ

91 백담 - 도담 ◆DKrNXmBQas (zI.kqlR.fI)

2022-09-01 (거의 끝나감) 21:37:24

호의어린 웃음은 백담이라는 소년에게는 꽤 낯선 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접근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그저 귀찮아서, 라고 백담은 스스로 생각했지만, 역시 그 파스락 하고 봄날 햇볕에 까스라지듯이 부드럽게 웃는 미소에 대한 반작용이 없지는 않다. 낯선 것에 맞닥뜨리면 화들짝 놀라서 움찔 물러서는 것처럼, 어쩌면 같이 가자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가, 라던가 내가 갈게, 같은 말을 하기엔 접촉이 길어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것을 피해서 꺼낸다는 말이 같이 가자, 라니 아이러니했지만. 응? 하고 되묻자 그는 시선을 피해버리고 만다. 물론 시선을 피했다고 도담의 미소가 백담의 시선 모서리로 들어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프린트물을 나누어주는 과정은 평소와 같았다. 그 평소와 같은 것이 그에게는 약간 버거운 것이었지만. 적대적으로 쏘아보는 눈길도 없고, 기피하듯이 눈치를 살피는 기색도 없다. 그저 오늘 처음 보는 급우의 새하얀 모양새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 가시지 않은 시선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떻게 구분해서 부를까, 하고 걸어온 말에 그는 오히려 시선을 선생님에게로 돌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선을 돌리고 보니, 이것도 함부로 말하기 힘든 문제다. 도담을 한 번 돌아보았다가, 따스한 시선에 다시 선생님에게로 시선을 피한다. 멋대로 붙여버리면 담이 곤란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물론 도담뿐 아니라 백담도 똑같이 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무난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그러면 앞으로, 저 부르실 때만 백담이라고 불러주세요. 외자 이름이고..."

딱히 거리를 의식한다던가 거리를 두고 싶다던가 같은, 같은 이름으로 엮이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거부감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자기의 별명을 자신이 고르라는 것 같은 그런 어색함이 있어서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까만 담, 하얀 담, 작은 담, 큰 담... 다른 이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부르게 되겠지.

92 백담주 ◆DKrNXmBQas (zI.kqlR.fI)

2022-09-01 (거의 끝나감) 21:38:37

화요일에 드리고자 했던 답레가 컴퓨터가 일으킨 말썽으로 지연되었네요... 햇살이 곱습니다. 비 오는 날에도 비 오는 날의 고운 색깔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고 있네요. 도담주께서도 몸 관리 잘 하시길 바라요. 답레를 올려두고 전 감기약 좀 먹고 오겠습니다...

93 도담 - 백담 ◆mZm4g7rP2k (qk3ucGb7.k)

2022-09-08 (거의 끝나감) 01:22:15

"어─그건 내가 싫어!"

담이 하는 말을 듣자마자 늘 웃고 있던 도담은 조금 다른 표정을 그렸다. 상냥하거나 부드러운 감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싫은 티가 얼굴 위에 만연했다. 성씨를 붙여 부를 때와 이름만 부를 때 어감 차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건 절대 싫다는 듯이 선생님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럴까─라고 대답하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시선이 선생님의 시선과 마주치고 나면 다시 담을 향한다.

"너만 그렇게 부르면 정 없잖아."

누군가에게는 사소하다면 사소할, 누군가에게는 거창하다면 거창한 이유.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푸른 하늘을 덮은 연둣빛 잎 사이로 내리는 햇빛의 반짝임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보랏빛 눈에서 제비꽃을 찾았다면 어느 쪽 사람인지는 가르기 쉬웠다.

"이미 하얀 담이니까, 큰 담 하자!"

담이 가진 성씨의 백이 하얗다는 뜻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하얗다는 뜻을 가진 글자도 있다. 말장난이 교실 안을 톡 데구루루 굴러다닌다. 구슬과 구슬이 부딪쳐서 튕겨 나가고, 또 부딪치는 것처럼 작은 담 말고 초소형 담으로 하자─내년에 중간 담 전학 안 오냐?─장난이 번진다. 웃음소리가 섞이고 수업 분위기가 붕 떠버리기 전에, 선생님은 프린트물 나눠주기와 장난을 마무리 지었다. 도담은 자리에 돌아와 앉았고, 담도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살짝 몸을 기울이고서 소곤거린다.

"나는 그냥 담이라고 불러도 돼?"

민들레 홀씨가 또 살랑거렸다.

94 도담주 ◆mZm4g7rP2k (qk3ucGb7.k)

2022-09-08 (거의 끝나감) 01:24:27

늦은 시간에 갱신하고 갈게 ㅎㅁㅎ 바람도 선선하고 기온도 낮아지고 있는데 감기 걸렸던 건 나았길 바래. 태풍이 한바탕 지나갔는데 피해없길 바라고 좋은 밤 보내 ㅎ-ㅎ

95 백담 - 도담 ◆DKrNXmBQas (/HRrttirxo)

2022-09-10 (파란날) 16:46:51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자신이 제안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은 그런 것을 정하기에는 그럴 만한 입장도 성격도 아니었기에 침묵보다 차라리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제안을 내어놓은 것이었으니까. 가장 정석적인 대답이었으나 또한 회피이기도 했다. 그래서 도담이 다른 제안을 하더라도 그건 그럴 만하다, 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백담에게 낯선 것은, 그 뒤에 따라붙는 정 없잖아, 하는 이유였다. 정. 애매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는 퍽 익숙한 개념이었지만 그에겐 많이 낯선 개념이었다. 회색의 땅에 눈을 둔 채로 그늘 사이만을 거닐던 하얀 소년에게 햇살은 낯설었다. 지금 이 순간, 그냥 담이라고 불러도 되냐며 살랑이는 민들레 홀씨마저도.

─그러나 괜찮다. 얼어붙어 메마른 땅에 굳이 뿌리내릴 민들레는 없다. 언젠가, 아마 조만간 다시 살랑살랑 날아가겠지. 누군가에게 정을 받기엔 자신은 서투르고 잘못된 부분이 많아서, 백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백담은 잠깐 도담을 곁눈으로 바라보다가,

"응."

하고 나직이 대답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나는 널 도담으로 부를 거야, 라는 말은 선생님이 교과서 페이지를 피라는 말에 가로막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마 널 담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아서, 라는 말은 굳이 선생님의 말이 가로막지 않아도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잠깐, 별나고 다정한 짝꿍을 바라본 뒤에 백담은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뒤로 별 사건이 없었다면, 매 쉬는 시간마다 전학생의 책상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 말고는 4교시에 걸친 인문학 수업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을 것이다.

#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무언가 특별한 사건을 더 덧붙이고 싶으시면 원하시는 대로 덧붙여주세요.

96 백담주 ◆DKrNXmBQas (/HRrttirxo)

2022-09-10 (파란날) 16:48:36

너무 늦은 시간에 주무신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 감기는 얼마 안 가 나았습니다. 방심해서 너무 얇은 이불을 덮었다가 가볍게 걸린 것일 뿐이니까요. 오히려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선선해져서 활동하기 편해진 게 제게는 더 좋습니다. 도담주께서도 별 피해 없이 넘기셨길 바라고, 즐거운 추석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97 도담 - 백담 ◆mZm4g7rP2k (9ucYSUlUhQ)

2022-09-18 (내일 월요일) 22:33:17

"응!"

담의 답을 듣고서 조그만 답을 돌려주며 소리 없이 웃음 짓는다. 보드랍고, 으레 사람들이 생각하는 봄날과 맞는 웃음이었다. 뺨에 이채가 어리는 게 쉬워 보였다. 도담은 나도 담이라고 불러달라거나, 너는 날 어떻게 부를 거냐는 둥 다른 질문은 없이 기울였던 몸을 바로 했다. 이제는 앞으로 기울어서 사각사각, 수업을 따라갈 뿐이었다. 필담을 계속지 않는 이유는 쉬는 시간이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4교시 이후에 물어봐도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필담했다가는 전학하러 온 첫 날부터 전학생과 함께 나란히 교실 뒤라든지, 복도 밖으로 나갈 것만 같기도 했다.

시간은 똑똑 흘러갔고, 4교시의 끝을 알리는 타종이었다. 3학년보다는 늦게 먹지만, 1학년보다는 일찍 먹는 중간의 2학년.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마냥 느긋이 있지도 못한다. 같은 학년 중에서라도 제일 일찍 먹겠다고 뛰어가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라 순식간에 교실과 복도는 소란스러워진다.

"우리도 가자. 오늘 맛있는 거 나오나 봐!"

자리에서 의자를 끌며 일어난 도담은 담을 내려다보았다. 급식실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 않을까─생각하니 학교 안의 작은 에스코트 같이 느껴졌다. 소리를 낮춰서 작게 웃고 나서, 별일 아니라는 듯 흩뜨려 버린다. 이제 점심을 같이 먹고 나면 짝꿍과는 헤어질 시간이었다. 과별로 전공 수업이 시작되니 우연히 마주치지라도 않는 한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담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물음이 하나 톡 굴러간다.

"담아, 너─ 나 무슨 과인 줄 알아?"

98 도담주 ◆mZm4g7rP2k (vw3tQ1BLG.)

2022-09-18 (내일 월요일) 22:45:45

감기 나아서 다행이야 ㅎ-ㅎ 늦은 답레 올려두고 가볼게. 너무 늦었지만 추석 잘 쇠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갑자기 날이 더운데 날씨 조심해 ㅎㅁㅎ

99 백담 - 도담 ◆DKrNXmBQas (YuH0cD1StY)

2022-09-21 (水) 07:46:48

봄날다운 웃음이었기에 더더욱 그 미소가 백담과는 멀게 느껴졌다. 그는 이제 자신이 더 이상 봄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닿지도 못할 이채가 눈에는 고운 것이 무심하다 못해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걸 「야속하다」고 칭하는 것 또한 결국 그 봄날이라는 것을, 그 색채를, 그 고운 온도를, 부드러운 산들바람을 잊지 못하고 그 흔적을 기억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손을 뻗지는 않는다. 손끝에 남은 아픔을 헤아릴 필요도 없이, 애초에 어제서야 처음 만나 오늘에야 같은 반 친구인 걸 알게 된 사람이다. 그저 저렇게, 자신과 달리 봄날에 발을 디디고 서서 봄처럼 웃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스스로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까불지 마, 하고, 문득 가슴 속에 남은 봄을 꿈꿨던 자국을 꾹 즈려밟는다. 밀지도 당기지도 않고 묵묵히, 그렇게 4개 교시를 흘려보내기로 한다. 점심시간의 타종은 느긋이 찾아왔다. 느긋이 찾아온 것에 비해 그 메아리는 왁자했지만.

주변 아이들이 후다닥 의자를 밀치고-몇몇 극성맞은 아이는 거의 의자를 뒤로 내던지다시피 하고 일어나기도 했다-일어나는 모습과 달리 백담은 소리없이 의자를 살짝 들어서 뒤로 옮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가?"

딱히 메뉴가 맛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흥미 없다. 점심을 거를 이유가 없을 뿐이다- 그리고 점심을 먹을 이유는 있다.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지 않은가. 이 친절한 짝꿍이 급식실까지 따라가 주려는 모양이기에, 백담은 에스코트에 순순히 응하기로 했다. 다만 역시 톡 굴러온 질문은 상정범위 밖이다. 새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반에 대해서 들은 바는 있었다. 열대여섯 명 남짓의 연극과 학생들과, 운동부의 소수 과 몇 개가 모여서 만들어진 반이라고. 그리고 이 짝꿍의 체격은 체육을 전공하는 학생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대답은 쉽게 나왔다.

"연극과라고 생각해."

100 백담주 ◆DKrNXmBQas (YuH0cD1StY)

2022-09-21 (水) 07:50:17

추석은 좋았습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고요. 지금 시점에서는 갑자기 또 추워졌네요. 이번에는 대비를 해두었기에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지만요. 도담주도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도담이가 살랑살랑 귀여워서 백담이도 문짝 열고 뛰쳐나가 맞이하고 싶은데 꾹 참고 있습니다 u''u

101 도담 - 백담 ◆mZm4g7rP2k (sQtqHqPy4I)

2022-09-23 (불탄다..!) 21:02:58

소란스러운 소리에 그러다 다친다고 한마디 외치려다 말고, 뛰어가는 모습을 살짝 찡그리며 쳐다보았다. 의자에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고, 다른 학생이랑 부딪칠 수도 있지 않을까─소리치지 않는 건 뛰어가는 등에 대고 소리쳐봤자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이기도 했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도담은 반 아이들이 붙이라고 반창고를 갖고 다니고 붙여주기도 하지만, 다치지 않으면 반창고가 필요 없으니, 갖고 다니고 싶지 않다는 게 예전의 진심이었다. 지금은 반창고로 막을 수 있는 상처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몸을 쓰면 다치는 일이 정말 쉽다는 걸, 지금 옆의 짝꿍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짝꿍이 들려주는 흥미 없어 보이는 울음소리에 눈웃음 짓는다.

"오므라이스랑 새우튀김 나온다는 거 같았는데."

반 아이들 말하는 소리 한 자락을 주워들었을 뿐이어서 고개가 갸웃대며 기울었다. 담이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찬찬히 걸음을 떼었다. 교실 밖으로 나가고, 1층까지 내려가면 이미 먼저 튀어 나간 학생들로 건물 밖까지 생긴 긴 줄이 보일 테니 그 뒤에 서면 된다. 도미노처럼 옹기종기, 검은 조각도 꽤 눈에 밟히는데 오늘부터는 하얀 조각이 톡 자리 잡을 것이다.

"와아, 정답! 짝짝짝─"

손바닥을 맞부딪치지만, 박수 소리는 나지 않고 시늉만 하고 있었다. 소리의 공백은 목소리에 섞인 환한 반가움이 채웠다.

"5교시부터는 과별로 수업 듣는 거 알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5반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다른 반은 처음부터 같은 과끼리만 같은 반을 하니까, 다른 과가 섞여 있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다른 과가 수업하는 실습실이나 교실에 일부러 찾아가는 걸 막지는 않으니까 아예 못 만나는 것은 아니긴 했지만, 보통은 굳이 그럴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따 인사하면 놀라지 말고 받아줘야 해?"

이따 보자, 내일 보자─작은 작별인사의 예고였다.

102 도담주 ◆mZm4g7rP2k (I2BF0xMh2s)

2022-09-23 (불탄다..!) 21:13:10

추석 잘 보낸 것 같아 다행이네 ㅎ.ㅎ 나도 잘 쇠었어. 염려 고마워, 밖은 춥지만 돌리고 있는 일상 답레를 받거나 답레를 줄 때면 훈풍이 불어오는 기분이라 감기는 안 걸릴 것 같아 ㅎㅁㅎ

과대표도 있을까? 과대가 있다면 과대끼리 모일 때가 있을테니까. 미술과 2반, 음악과 2반, 연기과+체육과 1반, 체육과 1~2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연기과 2학년 과대는 도담이가 할 수 있을 것도 같거든. 체육과 과대가 백담이가 된다면... 둘이 만날 일이 잦으려나 싶어서 ㅎ.ㅎ

103 백담 - 도담 ◆DKrNXmBQas (9pvTHyuoTY)

2022-09-29 (거의 끝나감) 19:52:21

다른 아이들에게로 걱정스러운 시선을 분주하게 돌리고 있는 새 짝꿍을 보다가, 백담은 무심결에 도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돌아보았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피딩 프렌지feeding frenzy의 현장이 눈에 담긴다. 백담은 새삼 도담이 새로 붙여준 반창고가 아직도 자신의 상처 위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머리로는 알 것 같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전혀 모르겠기에, 도담이 왜 그리도 주변의 아이들이 상처입는 것에 전전긍긍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나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처라는 개념에 퍽 무감각해지는 삶을 살아왔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것이 여태껏 말했듯 도담이 백담에게 생소한 자극인 이유였다.

"그렇구나."

그런가? 하는 질문만큼이나 무미건조한 대답이다. 앞서 말했듯 메뉴 자체에는 흥미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잘 익은 오므라이스와 바삭하고 기름진 새우튀김의 풍미가 백담에게 갖는 의미는 오므라이스는 단백질이 얼마나 있겠고 새우튀김은 지방은 괜찮지만 껍질의 탄수화물에 주의해야겠다는 정도의 영양학적 의미뿐이었다. 식사의 맛이라는 것이 백담에게서 그 가치를 잃은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집에 돌아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닭가슴살이니 두부니 삶은 계란이니 하는 투박한 것들만이 그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나마도 입으로 내는 박수소리에 쓸데없는 생각은 다시 뇌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알고 있어."

대답을 내어놓는 백담의 얼굴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도담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발과는 퍽 딴판이었다. 그래, 과별 수업이 시작되면 한 반의 인원들도 각 과의 수업을 들으러 산산이 흩어진다. 도담이 연극과라는 사실은 좀전에 도담의 질문에서야 구체적으로 추론해낸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새 짝꿍이 자신과 같은 과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는 추측 정도는, 그리고 과별 수업이 시작되면 갈라져서 수업을 듣게 될 것이라는 추측까지도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어렴풋한 직감이 하나씩 하나씩, 도담이 건네어주는 대단히 생소한 종류의 예고와 함께 사실로 구체화된다. 만남도, 작별도, 정겨운 인사라는 게 역시 퍽 낯설었다.

"상냥하네, 너."

조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뜬금없이 툭 꺼낸 한 마디였다.

104 백담주 ◆DKrNXmBQas (9pvTHyuoTY)

2022-09-29 (거의 끝나감) 20:19:52

훈풍이 불어오는 기분이라니...... 과찬입니다... 가을도 잘 보내고 계시다니 다행이네요. 조만간 또 짧은 연휴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연휴도 넉넉하고 느긋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과대표요? 인원수가 10명을 넘는 과라고 한다면 반장이나 학생부 위원이라는 느낌으로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학년별 5명 이하의 소수 과라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네요... 있다고 해도 백담이는 성격이 워낙에 특유의 마이페이스가 있어서 리더같은 위치는 본인이 거부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이야기는 예쁜데 받아먹지를 못하네요

105 백담주 ◆DKrNXmBQas (6cTGSvBb8g)

2022-09-30 (불탄다..!) 13:00:49

현생 도중에 '너는 어디까지 친절할 수 있을까?' 하고 심술 비슷하게 나서 도담이한테 치대는 백담이를 떠올려버린 저를 용서하세요..

106 도담 - 백담 ◆mZm4g7rP2k (S.zvtoofJY)

2022-10-03 (모두 수고..) 00:12:39

"아─튀김은 못 먹으려나?"

무미건조한 대답에 식단을 하는 체육과 아이들 몇을 떠올리고서 물어본다. 도담도 식단이라고 할 정도는 못 되지만, 몸을 가꾸기 위해서 먹을 것을 골라 먹거나 적게 먹고는 해서였다. 무대에 오를 일정이 잡히면 그때는 더 신경 쓰기도 했으니, 늘 운동하며 몸을 써야 하는 담이라면 그 체육과 아이들과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상냥하다. 도담은 그것과 결이 비슷한 말을 많이 들어보았다. 뜬금없이 툭 꺼내졌어도 응?─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그랗게 뜬 눈으로 담을 바라보지 않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어제 처음 만나고, 오늘 짝꿍이 된 낯설지만 처음 만나는 남자아이에게서 들은 칭찬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도담도 낯간지러움에 삼켜내지 못한 웃음이 소리로 옮겨졌다. 크게 웃지도 않았지만 작게 웃지도 않아 귓가에 맴돌기 좋은 크기였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대."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가고, 내려가다 마지막 계단에서는 가볍게 뜀 하듯이 톳 발을 디뎠다. 머리카락이나 치맛자락이 잠시 공중에서 부유하다 내려앉기도 전에, 몸이 바라보는 방향을 살짝 돌려서 담을 바라보았다. 너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잘해주는 것이다─라고 느껴지는 말을 하는 표정이라기에는, 칭찬받아 기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봐, 벌써 너한테 난 상냥한 애잖아. 내일이면 친구 될지도 모르지!"

바라는 점이 퍽 봄빛이다.

"인사 안 받아주면 내일 인사안 할거야─"

짓궂은 웃음소리는 밖으로 나가는 걸음에 점점 햇살 아래로 향하면 그 햇빛에 녹아버릴까 싶을 만큼, 사그라들듯 말듯 작게 울렸다. 줄을 서 있는 동안은 또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건넬지 고민하면서 줄의 끄트머리를 이었다.

107 도담주 ◆mZm4g7rP2k (S.zvtoofJY)

2022-10-03 (모두 수고..) 00:18:46

개개별의 과보다는 묶어서 크게 4덩이를 생각한거였어 ㅎ-ㅎ 그래도 백담이는 안 할 것 같다니 상관 없을 것 같지만! 도담이한테 치대는 백담이... 백담이가 치대는게 어떤 느낌일지는 뚜렷히 모르겠어서 도담이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 ㅠㅁㅠ 둘이 어떤 감정을 묘사할지 재밌어보이는데.

백담주는 짧은 연휴를 잘 즐기고 있어? 좋은 시간 보내면 좋겠다 ㅎㅁㅎ

108 백담 - 도담 ◆DKrNXmBQas (TdhnvkddMc)

2022-10-09 (내일 월요일) 16:28:40

"너무 많이 먹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먹은 만큼 운동 더 하면 되지."

아마 복싱에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쉽게 알 수 없을 야사겠지만, 2010년대의 권투계의 왕좌에 군림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는 빅맥을 가장 좋아했다던가. 빅맥을 먹었으면 그만큼 트레이닝을 더 하면 되는 문제라고 일축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백담은 더 많은 트레이닝을 대가로 식탐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남들에 비해서도 식욕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희박했지만, 새우튀김 두어 개 정도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쉽사리 괜찮을 거야, 하는 결론이 자신에게서 나오는지는 모른다. 친절하다거나 상냥하다거나 하는 말이 익숙한 자신의 새 짝꿍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기 싫었음일까. 지난주와는 다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는 도담의 말에 백담은 도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톡, 하고 잠깐의 비행을 마치고 날개를 접으며 내려서서는, 이쪽을 돌아보며 온 얼굴에 기쁜 웃음을 짓는 도담의 모습에 백담의 눈빛이 경계하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 약간 얼떨떨한 눈빛이 되었다. 이게 다 이해득실이 있어서 하는 행동이다, 하고 말해놓고는 그 이해득실이라는 것까지도 여전히 푸근하고 따뜻한 그런 이유라서. 역시, 하루아침에 그렇게 쉽게 적응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인사를 받아달라는 상냥한 엄포에 백담은 도담을 따라 계단을 자박자박 내려오며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받아줄게."

꽁꽁 얼어 있는 손을 미지근한 미온수에 넣은 것 같아, 이렇게 어색한 반응이 나온다. 누간가 이렇게 살갑게 대해주는 게 백담에게는 전연 처음 있는 일이라 그렇다. 두 사람의 아이로 태어나 가장 사랑받아야 할 곳에서조차 거슬리는 짐짝 취급받으며 살아온 삶이었기에, 방치당하다 버려진 유기견이 처음으로 내밀어져오는 따스한 손길에 어리둥절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줄을 따라 서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너는 언제까지 내게 이렇게 친절하고 상냥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나한테 이렇게 살갑게 다가올 수 있을까. 심술맞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들이 마치 얼어있는 손을 미지근한 물에 넣었을 때 손끝에 찌르르 느껴지는 통증마냥 떠오르는 것이다.

109 백담주 ◆DKrNXmBQas (TdhnvkddMc)

2022-10-09 (내일 월요일) 16:31:16

그... 치댄다고 해봐야 별 것은 아니고, 데면데면한 짝꿍 사이라기엔 거리감이 가까운 스킨쉽 정도일까요.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거나...? 딴에는 도발하듯이 하는 깨알같은 그런 소소한 접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쥐구멍) 무례하다 생각하시면 당근으로 저를 때려주세요.

연휴...... (흐릿) 그렇게 잘 보내지는 못했네요. 평일도 폭풍같았고. 답레를 적어도 하루 이내에는 드리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돼서 송구스럽습니다... 😥

110 백담주 ◆DKrNXmBQas (TdhnvkddMc)

2022-10-09 (내일 월요일) 18:48:24

https://www.neka.cc/composer/10073
최근에 알게 된 네카라는 걸 이용해 백담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참 물에 한번 헹군 것같이 나왔네요... ( ..)

111 도담 - 백담 ◆mZm4g7rP2k (nhyQmitMQk)

2022-10-16 (내일 월요일) 15:16:52

"멋있다. 선수 같아! 선수 맞지만."

새삼스럽게 지금 바로 옆에 있는 담이 전국체전 복싱 부문 우승을 했다는 말이 떠올라 대단하게 느껴졌다. 전국의 고등학생 중에서 복싱으로 1위라는 이야기이니 단순히 먹은 만큼 운동을 더 하면 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에도 반짝반짝한 눈길로 바라보는 이유였다. 그러고서는 곧 담이 부담스럽거나 민망해할까 봐서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말을 맺어버렸다. 여름이 푸르고 겨울이 하얀 것처럼 늘 그렇듯이 웃고 있는 모습이 고작 어제 하루, 오늘 하루 겨우 이틀 안에 너무나 잦다.

"응! 근데 우리 소극장이랑 체육관은 가까우니까 하교할 때 또 볼 수도 있겠다."

소극장과 옆으로 바로 체육관이 있어서 거리상으로는 제일 가까웠다. 소극장의 위층에 있는 연습실 창문에 매달리면 체육과 아이들이 체육관에서만 훈련하지 않고 운동장에서 뜀박질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같은 반의 체육과 아이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담을 찾기는 쉬울 것 같았다. 체육과 아이들은 대개 햇볕에 그을린 피부빛을 갖고 있으니 새하얀 담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담을 찾기가 쉽고 체육관과 소극장 사이 거리가 가깝다고 해도 하교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마주칠 수는 없다. 아까 전 수업 시간에 필담으로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오늘부터 바로 방과 후 훈련도 하느냐고 적었던 노트 구석에 적힌 답이 없었던 것 같아 다시 물음이 의미는 같지만 다른 소리로 톡 피었다.

"오늘 언제 집 갈 것 같아?"

어색한 정적이 흐를 새도 없이 물음과 답을 주고받으면 줄의 끄트머리는 더욱 늘어나고, 서 있는 곳은 끄트머리에서부터 점점 멀어진다. 밥을 빨리 먹은 3학년 중에서는 벌써 운동장으로 나와 공을 차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급식실 입구와 가까워질수록 오므라이스와 새우튀김 냄새가 솔솔 풍긴다.

112 도담주 ◆mZm4g7rP2k (nhyQmitMQk)

2022-10-16 (내일 월요일) 15:21:39

백담이가 도담이 어깨에 기댄다면 도담이는 불편하지 않을까 싶고, 졸린 걸까 싶어서 담요 가져올 것 같아. 담요 접어서 베고 자라는 의미로 ㅎㅁㅎ 무례하다 생각한 적 없는걸! 연휴도 평일도 폭풍같았던 모양이네. 나도 이번 한주는 엄청 고됐었어. 이번주는 잘 보냈길 바랄게 ㅎ-ㅎ

새하얀 백담이 이미지를 보면 도화지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칠해주고 싶은 기분이 돼 ㅎ-ㅎ 도담이도 네카로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도담이 분위기라던지 점을 구현할 수가 없어서 못 했다 ㅠ-ㅠ

113 백담 - 도담 ◆DKrNXmBQas (vJHet9Ix0s)

2022-10-21 (불탄다..!) 10:03:39

실없는 소리인데도 방그라니 웃고 있는 도담의 모습이 파랬다. 파랗게 느껴졌다. 무채색의 그레이스케일 같은, 사시사철 말라붙은 잿가루 같은 싸락눈이 흩날리는 나날들을 걸어오던 소년에게 있어 자주 쉽게도 웃어버리는 도담의 미소가 가져다준 파란색이라는 색채의 첫인상이 명랑하고 맑은 여름하늘 같은 그런 파란색으로 와닿는 것만 같았다. 문득 손을 뻗어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더럭 일었다. 거기에 진짜 실재하는가?

그러나, 아직은 도담과 백담의 거리가 멀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아직은 길게 펼쳐진 묵색의 언덕과 잿빛의 하늘 저 멀리 저편에 언뜻 보이는 파란색의 하늘을 우연히 망원경으로 바라본 것처럼. 백담은 닿지 않을 것을 알기에 굳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 섣불리 손을 내밀기 겁이 났다. 환상이라는 것을 앎에도 굳이 그것을 확인받고 싶지 않았기에. 아직은 이른 이야기다. 아직 이 이상할 정도로 하얀 소년- 남들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햇빛 아래서 달리고 때로는 뙤약볕 아래서 죽을 힘을 다했을 텐데 남들과 달리 혼자서만 따사로운 햇살이 예의바르게 비켜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한 치도 그을리지 않은 이 하얀 소년에게는, 아직은.

도담이 건넨 질문에 백담은 문득 미처 대답을 못 했던 도담의 질문이 떠올랐다. 쉬는 시간 동안, 이번 전학생은 딱히 친해질 필요 없는 재미없고 단조로운 녀석이라는 것을 어필하느라 바빴던 탓에(아직은 별 소용이 없는 듯했지만) 이제서야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애들이랑 같은 시간에 마치지 않을까."

백담의 대답이었다. 줄은 어느샌가 제법 바짝 줄어들어, 식판을 집을 차례가 되었다. 백담은 식판 한 장을 집어 도담에게로 내밀고는 자기 것을 집어든다. 아직 도담이 자신에게 내보이는 친절이라는 개념이 생소하지만, 비슷한 행동을 따라해서 돌려주면 답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주먹구구식 계산으로 결정한 행동이었다.

114 백담주 ◆DKrNXmBQas (vJHet9Ix0s)

2022-10-21 (불탄다..!) 10:07:54

순진하고 상냥한데 방어력은 높은 도담이... 10월이 지나가면 꽤 느긋해질 것 같은데, 도담주께서도 11월에는 느긋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답레에는 말씀하신 내용을 조금 반영해보았습니다!
네카는 아무래도 픽크루보다 사용이 불편해서, 알맞은 네카를 찾기도 힘들고 기능을 활용하기도 힘들죠... 시트에 첨부해주신 픽크루만으로 충분히 답레 쓸 때 머릿속에서 장면 연상하면서 흐뭇한 양식으로 삼을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115 백담주 ◆DKrNXmBQas (vJHet9Ix0s)

2022-10-21 (불탄다..!) 10:08:30

백담의 이전 격투기 선생님의 성향

.dice 1 5. = 5
1~2 = 선
3 = 중립
4~5 = 악

.dice 1 5. = 5
1~2 = 질서
3 = 중립
4~5 = 혼돈

완전 중립이 나올 시 리롤

116 백담주 ◆DKrNXmBQas (vJHet9Ix0s)

2022-10-21 (불탄다..!) 11:21:20

이래선 백담이 주변의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아버지 빼고 죄다 인간실격인데 😱 이런 다이스 운이 육성물 할때는 안 나오고...!
(달리 생각해보면, 그만큼 도담이가 백담이의 마음에 어루만져줄 부분이 많아지게 되기도 하겠지만요.)

117 도담주 ◆mZm4g7rP2k (GQYIgqwtLU)

2022-10-27 (거의 끝나감) 17:36:35

잠시 물어보고 싶은게 생겨서 들러 ㅎ-ㅎ 이번 답레에서 도담이가 백담이 손을 잡아도 될까? 손을 맞잡는 느낌은 아니고 단순 우연으로. 완결형이 쓰일테니 불쾌할 수 있을 것 같아 물어보러 왔어 ㅎㅁㅎ

118 백담주 ◆DKrNXmBQas (rhN5qNHkOU)

2022-10-28 (불탄다..!) 21:16:04

확인이 늦었습니다...!
네,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상식적인 선 내에서 쓰이는 완결형이라면 괘념치 않으니 자유롭게 사용해주세요.

119 도담 - 백담 ◆mZm4g7rP2k (AQ6K8h4xZ.)

2022-10-30 (내일 월요일) 15:53:27

"그럼 같이 갈 수도 있겠다!"

도담을 잘 모르는 누군가라고 해도, 한 번이라도 마주해 대화를 주고받고 나면 쉽사리 사랑받으며 맑고 밝게 자란 아이라고 생각해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쉽사리 봄을 맞아 꽃망울을 터트리는 웃음을 짓기 때문일지, 사근사근하고 부드럽게 옆에서 녹아들고 있기 때문일지 고민하다 보면 도담의 모든 것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 반에서는 내가 너랑 제일 먼저 친구 해야지."

장난스럽지만 포근한 말과 함께 담이 건네주는 식판을 건네받았다. 식판을 받을 줄 몰랐단 듯이 둥그렇게 떠졌던 눈은 이내 자신도 담에게 식판을 건네주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깜빡거렸다. 나도 식판 주면서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뻗은 손끝이 식판이라는 딱딱하고 차갑게 식은 촉감 대신 다른 것에 닿아 생각이 멈추었다. 우연히 일어난 사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해프닝. 이미 식판을 집어 들고 있던 담의 손 위로 도담의 손이 겹쳐 포개어졌을 뿐이었다. 실수로 잡아버린 손에 놀라서 잠시 생각과 행동이 멈추었다. 정교하게 만든 인형이라도 된 듯, 찰나 멈춰있다가 손을 떼어냈다. 짧았지만 온기가 옮아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미안! 놀랐지, 손 잡으려던 게 아니라 나도 식판 주려고─"

무대 위에서는 상대방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었다. 무대 아래서 연습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도담은 다른 사람과 온기가 맞닿는 것에 거리감이 없다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대 아이들이 자주 그렇듯, 연기가 아닌 이상 이성인 아이와 닿는 것까지도 그렇지는 못했다. 도담이 아무렇지 않더라도 다른 아이들 눈으로 보기에는 아닐 수도 있고, 부끄럽지는 않더라도 어색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이라든지, 담이 손 닿은 것을 불쾌해할 수도 있든지. 제일 먼저 친구 하겠다는 당당한 포부에 벌써 차질이 생긴 것만 같아 물끄러미 담을 바라보았다. 담의 반응은 어떤지 조심스레 살피고자 했다.

120 도담주 ◆mZm4g7rP2k (fW6/7O8aME)

2022-10-30 (내일 월요일) 16:00:15

혹시나 싶어서 덧붙여 설명하자면 >>112 에서 '도담이는 불편하지 않을까 싶고' 이 부분은 '도담이는 (백담이가) 불편하지 않을까 싶고' 였어 ㅎ-ㅎ 어깨에 기대려면 많이 목이 꺽일 것 같아서. 피곤해서 어깨를 빌릴 정도라면 선뜻 내어줄 수 있기는 한데, 그게 불편할 것 같으니 담요를 베개 삼으라고 갖고오는 거지. 이래도 순진하고 상냥한데 방어력이 높은 건 같은 듯 하지만 ㅎㅁㅎ......

답레에 반영된 것을 보고 짓궂은 짓을 해버렸어 ㅎ-ㅎ 손을 뻗어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이쪽에서 먼저 닿게 해봤지. 백담주의 허락이 있었어서 다행이야. 풋풋하고 귀여운 장면 하나 넣은 것 같아서. 백담주에게도 풋풋하고 귀엽게 느껴지면 좋겠다.

백담이 이전 격투기 선생님의 성향이...... 이번 선생님은 정반대로 좋으신 분이면 좋겠다. 나중에 백담이와 도담이 사이가 깊어지고 난 후 그렇지만서도 사귀기도 전인, 소위 썸타는 상태일 때 장난치는 류의 선생님이라던지. 연기과 선생님한테 전달할 무언가가 있다면 일부러 백담이만 시키면서 가서 한 번 더 보고 오라 하시는 느낌으로 ㅎㅁㅎ? 물론 백담주의 자유지만!

121 백담 - 도담 ◆DKrNXmBQas (sJgJEp/D8k)

2022-11-10 (거의 끝나감) 12:16:57

아무렴, 백담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사랑받으며 자랐을 것이다-라는 추론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그저 함초롬히 피어나는 파르란 웃음이 예쁘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곤 의식적으로, 아니 이젠 거의 반사적으로 거기서 섣불리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를 단호히 잘라내는 것이다. 제때 쳐내지 못한 생각의 가지들은 머리에서부터 가슴으로 거꾸로 자라내려가서는 찔레나무 가시마냥 날큼날큼 가시를 돋혀서 가슴속을 찔러대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저런 것을 가지지 못했을까, 왜 내게 저렇게 웃어주는 걸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언제까지 그렇게 내게 웃어주고 싶어할까... 그런 생각들이 가슴에 입힌 상처는 이내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있느냐,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는 자기혐오로 덧나기가 일쑤였으니.

그걸 알면서도, 포근한 말 때문에 여전히 그런 사근사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도담의 얼굴을 그 자색의 눈에서 밀쳐내기가 어려웠다. 하다못해 왜 굳이- 라고 되물어보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백담은 손등 위를 도담의 손바닥에 쉬이 내주었다. 0.05초 차이로 쏜살같이 쏘아지고 휘둘러지는 주먹들도 느끼고 피할 수 있을 만큼 예리하게 벼려진 반사신경도 나비처럼 나풀나풀 내려앉는 손끝을 피하지 못했다. 백담의 눈이 자신의 손등으로 갔을 때는 이미 도담이 흠칫 놀라 거기서 손을 뗀 뒤였다.

그러나 흠칫 놀라서 눈치를 살피는 도담의 모습에, 오히려 백담은 거기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눈치를 보는 그 모습이 왠지 익숙했다. 그 익숙함이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아직 낯선 짝꿍에 대해 무언가 억측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지만, 왠지 살얼음판 같던 집안에서 짐짝같은 자신이 그 얼음을 깨버릴까 눈치를 보며 노심초사하던 자신의 모습과 조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백담은, 자신이 연상해버린 불쾌한 기억을 얼굴에 떠올리기보다는 도담의 행동이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고 전해주려 했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래살래 가로젓는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굳어버린 얼굴 근육은 웃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그냥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짧게 대답했다. "괜찮아."

그리고 식판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스스로는 조금 뻔뻔한 행동이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들지만, 네 선의를 받아들이고 싶다고. 문득, 다시금 네가 얼굴에 마음껏 띄울 수 있는 그 함뿍 피어나는 웃음이 부러워진다.

122 백담주 ◆DKrNXmBQas (sJgJEp/D8k)

2022-11-10 (거의 끝나감) 12:21:45

지옥주간을 넘기고 갱신입니다...... 많이 늦어졌네요 😥
'도담이는 불편하지 않을까 싶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담주가 의도한 대로 알아들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저 혼자 착각하는 건가 싶어 조금 저어되는 마음이 있긴 했네요. 결과적으로 방어력 높은 건 똑같군요 ^"^ 힘내라 백담

도담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떻게 이런 청춘이 있나 했습니다. 봄날이었다... 그런데 이제 상대가 백담이라 이녀석 받는 뽄새가 엉망이네요.

도담주 말씀을 듣기 전에는, 백담이의 이전 격투기 선생님에 대한 설정을 써봤더니 한마 유지로 비슷한 캐릭터가 나와서 질겁을 했습니다만 도담주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냥 이대로 진행해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네요. 역시 포근한 썰의 달인이셔

123 도담 - 백담 ◆mZm4g7rP2k (A2IzLXVjaI)

2022-11-21 (모두 수고..) 08:19:17

미소가 없다고 해도 괜찮다는 대답을 들은 도담의 표정은 녹아내렸다. 이른 봄날에 잘못 내린 눈송이가 햇살에 사르르 녹아버리기라도 하듯 눈치 보는 표정은 오래갈 수 없었다. 배를 꾹 누르면 바로 소리가 나는 곰 인형 같았다. 괜찮다는 대답이 배를 꾹 누른 것이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곰 인형이 아니라 방긋 웃음을 머금는 도담인 것이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조금 걱정스러워 있던 눈이 꼭 접혀버린다. 부드러이 휘어서 담을 비추던 까만 눈동자를 감추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어서, 담이 내민 손에 톡 답을 올려두었다.

"여─기!"

담의 손이 먼저 닿았던 식판을 집어서 건네었다. 혼자 집어 들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부러 손을 내밀어준 게 상냥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손이 겹칠 일이 없게 조금 재빠르게 굴어보았다. 담이 식판을 건네주었던 것처럼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어서 건네본다. 담이 받아주고 나면 도담도 자신이 쓸 숟가락과 젓가락을 집어 들었을 것이고, 그러고서는 줄을 따라가면 식판의 비어있던 칸들이 하나둘씩 채워진다. 오므라이스, 새우튀김, 일회용의 작은 케첩, 유부 된장국, 깍두기, 방울토마토, 사과 맛 주스. 유달리 밥을 많이 달라는 말이 자주 들릴 것 같은 메뉴였다. 도담은 그런 말보다는 안녕하세요─잘 먹겠습니다!─같은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

"자리, 구석이 좋아? 창가도 있고."

마지막 한 칸까지 채우고 나면 도담은 일부러 걸음을 재촉했든, 아니면 반대로 걸음을 멈추고서 기다렸든 담과 나란히 서려고 했다. 어느 자리에 앉을지를 소곤소곤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이미 자리 잡아먹고 있는 학생들 사이로 비어있는 자리도 있었고, 아직 아무도 앉지 않아 구석부터 가운데 자리까지 다 비어있는 곳도 있었다. 어느 자리도 상관없으니 마음껏 원하는 자리로 고르라는 듯이 담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마디를 덧붙인다.

"자리 앉고 나면 케첩으로 그림 그려줄까?"

이미 무엇을 그려줄지는 정해진 듯 허락을 구하고 있다. 새하얀 눈밭을 처음 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124 도담주 ◆mZm4g7rP2k (Wu72J31gqY)

2022-11-21 (모두 수고..) 08:27:35

어제 올리려 했는데 잠들었네 ㅜ-ㅠ 지옥주간 고생많았어. 앞으로는 여유로워지면 좋겠다.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이번 답레 쓰면서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고 어라? 했어. 새하얀 눈밭을 처음 봤다는게 꼭 백담이를 처음 봤다는 것처럼 쓰인 것 같아서. 의도치 않았는데 친구하고 싶어하는 걸 은유로 담아낸 것 같은 느낌이니까 ㅎㅁㅎ

포근한 썰 좋지 ㅎ-ㅎ 사실 백담이가 식판 건네받으려고 손 내밀었을 때 잘못 알아듣고 도담이 손을 폭 건네게 하려다가, 도담이가 그걸 못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고 일부러 그런 장난을 치기에는 아직 많이 친하지 않아서 못 했거든 ㅎ"ㅎ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좋겠어.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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