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매우 시원스럽게 허락해주는군. 근데 아저씨라는 칭호라던가 태도에 대해선 의외로 묻지를 않네. 알렌 녀석처럼 관심이 없는거랑은 느낌이 좀 다르고 언뜻언뜻 놀라는 기색이랑 희미한 궁금증은 느껴진다만, 추측컨데 상대의 예민한 부분을 함부로 묻지 않는건가? 별로 숨길 생각도 없고 물으면 시원스레 말해주는 편이지만 배려해준다면 나서서 '내가 실은 전생자요' 라고 말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
솔직하다고 말한게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친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인물에게 부끄럽거나 밀어낼 법도 한 주제였다고 생각하는데, 시원스레 대답해주는군. 담배 연기를 한모금 입에 물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부터는 어느정도 신중하게 말해야 하는 영역이다. 상대가 '소중합니다' 라고 말한 이상 그 대상을 무신경하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
"자네는.....흠. 그럼, 그녀가 더 이상 피를 보지 못하게 하고 싶나?"
피를 보면 일이 끔찍해진다는건 애매한 표현이었지만, 대체로 짐작은 간다. 피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이거나, 혹은 피에 대한 광증이거나. 뭐 '사연이 많다' 와 '일이 정말로 끔찍해진다' 라는 뉘앙스를 보건데 후자에 가까울 것 같군. 그걸 전제로 방금의 발언을 돌아보면, 베로니카라는 연인이 더 이상 피의 광증에 시달리거나 끔찍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평화에 가까운 삶을 고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세상이다. 무적이 아닌 이상 전선에 참여하고 있다보면, 피는 언제든지 볼 수 밖에 없는 친숙한 것이니까.
"일곱 살에 첫 살인을 저르는 것마저도 삶의 한 형태인게 이 세상입니다. 저조차도 누구에게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충고할 처지는 못 되고요. 그리고, 의념 각성자의 폐는 담배가 아니라 염소 가스를 들이마셔도 견딜 수 있을 텐데 담배 정도가 별것이겠습니까."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며,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빈센트는 남에게 무관심했다. 누군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죽기 적전에 몰린다면, 빈센트는 범죄자를 죽인 다음, 그 사람을 구했다. 만약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면 치료해주고 병원에 보냈지만 거기까지. 빈센트는 그 이상으로 그 사람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쩌다가 범죄자와 엮였는지, 빈센트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그 사람이 빈센트의 도움에 얼마나 감사하는지조차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평범한 상황에서도 그랬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두 발이 아니라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서 있어도, 누군가가 입이 아니라 두 눈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도 빈센트는 신경쓰지 않았다. 빈센트의 무관심은 긍정적 무관심 따위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부정적 무관심도 아니었다.
둘 중 하나도 아니기에, 둘 모두인 무관심이었다.
"네. 모두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에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 하더라도, 피를 보는 순간 주변에 보이는 생명은 다 죽이려 드는 레벨 41의 암살자는 '다양한' 삶의 형태라고 넘어갈 게 아닙니다. 그리고, 불가항력이라고 해도, 피 한 방울만 봤다고 눈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싹 다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리는 감각과 기억을 그대로 느낀다면... 정상적인 인간인 이상 정말로 미칠 것 같은 경험일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상적 인간이고, 미쳐버리고 있지요."
요 근래 여행 다녀오고 쉴 틈 없이 출장 나가느라 되게 피곤할 것 같음. 실제로 피곤하거나 예민하다고도 했고... 그래서 오늘 아프다고 했을 때 내심 꽤 걱정함. 지난번에 피로로 쓰러졌다고 말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진짜 모두가 말하는건데 너무 무리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음! 요 근래는 날이 덥고 그러니까 다들 축 처지거나 기력이 쇠하는듯. 어....그 외에는 평소 이런 이벤트나 있을 때 워낙 솔직하게 말해서 뭐 말하면 좋을지 애매하긴 한데... 일단 캡틴이 울트라 귀엽다는 것은 알겠음. 남친보다 진행을 우선시 해줬을 때 사실 솔직히 기분 좀 좋긴 한데 ㅎ; 그래도 캡틴의 연애 전선은 소중하니까 남친 안 삐질 정도로만....ㅋㅋㅋ...... 부산 여행 재밌었으면 좋겠고 이번주도 어찌어찌 끝나가는데 출장 잘 마무리 되면 다음주는 좀 평온했음 좋겠당
"자네는 꽤 거지같은 일을 많이 겪었나보구만. 준법적인 윤리관보다 현실적인 세상살이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고. 물론 그것을 이래라 저래라 훈계할 생각은 없네."
뭐 누군가는 몰인정하다던가, 매정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무관심일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적당한 감상과 분석을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별로 이쪽에게 시비를 건 것도 아닌데, 관심을 더 달라고 떼쓰기에 가까운 훈계를 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 아니겠는가. 다만 적어도 그의 인식이 준법적임에서 거리가 멀다는 것과, 말하는 것을 보건데 험난한 삶의 여정이 그렇게 무관심에 가까운 달관의 태도에 영향을 조금 정도는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흐릿하긴 하지만 매우 거지같은 삶을 살아온 기억이 있는 입장에서, 가끔은 그런 일들에 무관심해지지 않으면 정신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련할 정도로 인간적인 참견성을 놓지 않고 있지만, 뭐 그것은 그것이다.
"흠. 적어도 그 여성은 자네를 무척 소중히 여기나 보군. 그런 광증에 시달리면서도, 아마도 레벨이 그녀보다 낮아 폭력이나 힘으로 제압할 수 없을 자네의 호감과 신뢰를 얻고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일테니까."
그가 털어놓은 베로니카란 여성의 험난한 상황에 잠깐 인상을 찡그리곤 생각에 잠긴다. 그 말대로 폭주하는 41레벨의 암살자란건 지나치게 위험하다. 매우 냉정한 고견으로 보건데, 과연 UGN 등과 같은 기관에서 그녀의 '평화로운 삶' 을 인정할지부터 의문스러운 수준이다. 다만 그런 위험한 여성이 '지옥 끝까지도 따라올 것이다' 라는 신뢰를, 폭력으로 찍어누를 수 없는 입장인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을 보건데. 분명 그 신뢰와 애정 만큼은 진심일 것 같군. 아아, '그러니까' 허용된건가. 눈 앞의 빈센트를 통해서 제어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져 있으니까 전력으로서 취급 받고 있는건가. 틀릴 수도 있겠다만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은 높아보이는군.
"반대로 그녀를 향한 자네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도 잘 알겠고 말이야. 방금전 그 얘기는 그녀 본인에게도 해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