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확실히 그 말대로지....만. 자네쪽도 분명히 궁수였지. 그것도 유령마를 타고 다니는 기마궁수였지. 실력도 대단한 녀석이니까 고전하겠군. 적어도 자네가 원거리 대응이 가능한 마도사용자여서 망정이지, 근접 무기 사용자였다면 끔찍했을테니."
이 쪽의 대전 상대를 언급한 답례로 나도 기억을 더듬어 상대의 대진을 떠올려냈다. 64강에 올라온 녀석 치고 나약한 놈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반 중에서 가장 강적을 만난 것은 필연 반장일 것이고 그 다음으론 눈 앞의 빈센트일 것이다. 비행이 가능하고 지형 지물을 자유롭게 무시하는 유령마를 타고 다니는 원거리 궁수인가. 상상만 해도 꽤 끔찍하다. 그런데 빈센트란 인물은 내 생각보다 훨씬 격식있는 인물인가보군. 전생자 운운 얘기도 안했는데 저렇게 정중하게 대해주는걸 보면 말이야. 뭐 싫은 기분은 아니다.
"아하."
나는 사정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물론 폐공장과 도심은 차이가 꽤 난다고는 생각하지만, 예의를 갖춰 말해주는 상대에게 굳이 딴지를 걸 정도로 엉뚱한 설명도 아니었으니까.
"상대는 기동력이 뛰어나고, 지형 지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던가. 건물 자체를 날려버릴 화력이 없는 이상은 일단 명중 부터가 난이도가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해둔 대비책이라도 있나?"
유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얼굴 표정을 보건데 적어도 틀린 답을 고르진 않은 것 같아서 내심 안도했다. 왼손 약지에 끼웠다면 어떻게 될지 솔직히 흥미는 있다만....그것은 언젠가 직접 준 반지로 알아보도록 할까.
".........."
어쩐지 달콤한 기분이다. 자기 위해선 무언가를 끌어안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데 왠지 모르게 알 것 같다. 압박감이라고 말하면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위를 덮은 그녀가 전해오는 묘하게 눌리는 감각이 역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과거의 나는 이렇게 끌어안을 상대가 있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없었을 것도 같다. 있었어도 이런식으로 자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득 라임에게 단순히 노래부르고 게임했을 뿐이라고 답했던게 떠오른다. 껴안고 잠에 드는건 그녀가 말한 '즐거운 시간'의 범주에 포함될까. 음.....그런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라임과도 끌어안고 잠에 든 적이 있었으니까. 화내진 않겠지. 이 정도면 건전한 교제니까.
잠이 오긴 하는가보다. 정신이 몽롱하고 생각이 난잡해지는걸 보니까. 나는 느릿하게 눈을 감으며, 의식이 가라 앉기 직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는다.
"........언젠간 반지, 제대로 주고 싶네....."
.....
그 말을 끝으로 윤시윤은 완전히 잠에 들었다. 그것 또한 잠버릇일까, 정말 죽은 것처럼 고요한 모습이었다. 다만 방금전 구경하였을 때 처음부터 조금 찡그리고 있던 표정은, 이번엔 반대로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윤시윤이란 인물이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 라는 인상을 주는 요인에는, 눈과 표정이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언가를 신중히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 여유를 쉽게 무너뜨리지 않는 차분한 표정이 평소의 그를 대표하는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 유하의 밑에서 눈을 감고 부드럽고 곤히 자는 얼굴은. 어른스럽다는 인상이 옅게, 생각보다 귀여운 느낌이 나는 소년의 맨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부끄럽다' 라고 말한 것에는 이런 요소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몰느다.
그가 발하는 불길을 구경하며, 솔직한 대답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할법도 하것만 대책 같은게 없다고 시원스레 말할 줄이야. 그래도 뭐, 대책이라고 허황된 소리나 자만을 늘어놓는 것보단 담백하니 좋았다. 내 시궁창 경험에 비춰보건데, 인간은 그럴듯하고 편의적으로 자신이 부족한 것을 자리에서 채워넣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바라기보다, 가진것으로 요령껏 싸울 수 밖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도 있지."
나는 자신 없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며 말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싸워 위태로울 일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적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해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속담에선 반반은 간댔다.
"적에 대해 몰라도 자신에 대해 안다면 반반은 간다는 의미기도 하다. 모르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해봤자 어쩔 도리가 없으니,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잘 파악하기만 해도 좋겠지. 보아하니 자네는 불과 폭발의 마도가 특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