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옷을 덮어 가리자 코로리의 머리카락이 이내 검은 빛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그래도 누군가에게 들키면 큰일나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렌은 단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러게요. 저도 순순히 뺏길 마음은 없으니까요.”
렌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뒤 코로리의 이마를 이마로 툭 건들였을 뿐인데 쪽 하고 입맞춤이 되돌아왔다. 렌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상태로 살짝 얼었다가 이내 가라앉았던 열이 다시금 확 올랐다. 렌은 끙끙거리면서 고개를 더 숙여 코로리의 어깨 부근에 이마를 부볐다. 손에 힘이 풀렸는지 렌의 겉옷은 어느새 코로리의 머리에서 흘러내려 코로리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코로리 씨…. 정말….”
삼켜버리고 싶네, 하는 말을 욕망과 함께 삼켜버린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저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니 벅찰정도로 기쁘다. 닿는 것조차 부끄럽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늘 닿고 싶고 끌어안고 싶었다.
“코로리 씨 때문에 하나도 안 추워졌는데….”
겨울이었지만 겉옷 없이도 하나도 춥지 않았다. 오히려 열오른 몸에 찬 바람과 눈이 닿는 것이 기분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겉옷 안에도 옷을 단단하게 겹쳐 입은 것도 있었고 코로리가 매어준 목도리 덕분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코로리가 옷을 입으라고 한다면 실랑이 하다가 슬금슬금 입었을지도. 그렇게 계단참에서 다른 이들 몰래 속닥속닥 밀회를 나누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 쯔음에 찬 기운을 잔뜩 묻힌 채로 따뜻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녕 리리, 이렇게 편지를 쓰는건 정~말 오랜만인것 같은데 말이야. 항상 같이 있으니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얘기할 수 있었잖아. 하지만 지금 너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내 이야기로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아서 편지를 쓰고 있어. 이 편지를 쓰는 시간은 너와 내가 인간들을 위해서 깨어있는 시간이란다.
리리, 내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때 가장 먼저 본 것은 너의 모습이었어. 머리색과 눈의 색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닮은 우리를 주변 신들이 쌍둥이 신이라고 했었지. 그 이후로 우리는 단 한번도 멀리 떨어져본 적이 없잖아? 지금 와서 같이 있던 세월을 생각하려면 손가락으로 세려고 해도 손가락을 몇번이고 접었다 펴야하니까 말이야. 우리는 동시에 서로를 인식했지만 자연스럽게 내가 오빠가 되었고 네가 여동생이 되었어.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우리가 탄생하고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많은 일을 하기도 했지.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며 같이 살았어. 그렇게 오래 같이 있었더니 나도 너도 서로가 무슨 일을 하던 이해해줄 수 있게 되었겠지. 나는 네 오빠로써, 너는 내 여동생으로써 그 누구도 서로를 더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리리, 렌 군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네가 정체를 들켰다고 나에게 온 날 솔직히 화가 많이 나긴 했었어. 물론 단순히 정체를 들켰다는 사실로 협박을 한다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네가 좀 더 조심하기를 바랬으니까. 그리고 그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후에 렌 군을 만나고 어쩌면 정체를 들킨 사람이 렌 군이라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렌 군 이외에도 네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많지만 말이야. 하지만 리리, 좋은 사람이라도 너를 만난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은 사람이야. 내가 너를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이 너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네가 나에게 하듯이 행동을 했을때 렌 군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 물론 내 동생이니까 잘할거라고 생각하지만 내 성격을 잘 알잖니.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거 말이야. 졸업식이 끝나면 너와 나는 처음으로 떨어져 살게 될꺼야. 그리고 너는 이제 나보다 렌 군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지. 나도 너보다 요조라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항상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알겠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나에게 물어봐도 좋아. 물론 나는 네 편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요조라한테도 물어볼께. 리리, 저번에도 말했지만 너랑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더라. 지금까지 네가 없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머리로는 언젠가는 떨어질 날이 올꺼라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그 날이 다가오니 어쩔 줄 모르겠다. 내가 오빠라곤 했지만 나는 내 생각 이상으로 너에게 의지하고 있었나보다. 이런 면에서는 나보다 네가 더 나은 것 같아.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을테니 그 날도 이미 가까이 다가왔어. 이젠 준비를 단단히 해야할 시기라는 뜻이지. 그리고 네가 나보다 더 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편지가 쓰다보니 좀 길어졌네. 이 편지를 네가 읽고 있다는건 학교가 끝나고 책방에서 아르바이트까지 끝내고 집으로 왔다는거겠지? 내가 낮에 네 창문으로 들어가게 손을 써뒀으니까 말이야. 갑자기 왜 편지를 썼냐고 물어보면 새벽 감성 때문에 썼다고 말해줄께. 그리고 괜히 이 편지 읽고 또 나한테 와서 세이~ 내가 없으니까 슬퍼? 하면서 놀리지말고. 대꾸 안할테니까. 그럼 이만 줄여야겠다. 몸도 챙기면서 공부해, 알겠지?
"어머, 그러셨나요? 이 시기가 지나면 덧 없이 사라져 갈 이 아이도 피사체가 되어 누군가의 기억으로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였다는 것을 남기게 된다면 좋아하여 주겠지요"
사쿠야는 그 인물의 대답에 희미하게 미소를 한 번 짓고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녀가 만들어낸 조각상은 얼음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장기 보관이 어렵고 코오리마츠리가 끝나게 된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땅히 전시 되어 보여 질 수 있는 곳도 얼마 없을 것입니다. 굳이 한다면 신사 정도가 있겠으나 그는 얼음이므로... 그렇게 되면 녹아 사라져 버린 다는 것에 다름은 없습니다. 사쿠야로서도 그녀 자신의 피조물이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과 물건에 좋은 의미로 남겨질 수 있다면 좋았습니다
"예, 끼어이."
사쿠야는 부탁에 흔쾌히 승락하고는 상대가 건네준 핸드폰을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는 사진을 찍으려 준비를 취했습니다. 핸드폰의 카메라를 상대에와 '용'을 함께하도록 향하여 그녀 나름의 가장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서 화면을 잡고자 이리저리 조금씩 움직여 보았고 이내 '찰칵-' 이라는 소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 나름의 시도 이였으나...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으니 만큼 살펴보시고 말씀하여 주세요. "
사쿠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으로 다소곤이 손으로 핸드폰을 상대에게 다시 되돌려 주고자 하였습니다. 이왕 사진을 남기고자 한다면 가능한 가장 좋은 것으로 남길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 사쿠야로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용'이 상대에게 그렇게 까지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 이였습니다. 그저 수많은 피조물들의 한켠에 있을 뿐인 것일 수도 있겠고 그것이 보통인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