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551083> [1:1/판타지] 조각이 이끄는 연대기 - 1 :: 75

◆CebWZbnr4I

2022-07-02 22:25:02 - 2022-07-12 17:33:26

0 ◆CebWZbnr4I (5Gt9Lr/Cnw)

2022-07-02 (파란날) 22:25:02

"왠지 귀찮은 일이 일어날 거 같네."
- 클레리스 디 파우스티나

"너무 믿기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겠죠."
- 하시현

>>1 클레리스 디 파우스티나
>>2 하시현

53 시현 - ??? (KYcQcJysrI)

2022-07-07 (거의 끝나감) 19:08:38

새가 시선을 돌릴 때가 되서야 시현은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 탓에 시현은 포식자 앞에 놓인 초식동물의 기분을 이해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길들여진 새가 사람을 잡아먹진 않겠지만요.

"아, 네…"

뒤이어 올라탄 붉은 눈의 지시에 시현이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시현은 붉은 눈의 말대로, 고삐를 두 손으로 꾹 잡고 상체를 바짝 엎드렸습니다. 곧 휘파람 신호와 함께 새들이 이륙합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에 시현이 초조하게 침을 삼킵니다. 펄럭이는 날개에서 바람이 느껴집니다. 고도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시현은 최대한 아래를 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도 버거워하는 시현에게 지금 상황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거대 새의 등은 롤러코스터보다 더 위험합니다. 그 생각에 시현의 손바닥이 금세 땀으로 축축해집니다.
새들이 본격적으로 비행하기 시작하자 시현은 아예 눈을 꽉 감아버립니다. 그래도 온 몸으로 느껴지는 높이감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문득 억울한 느낌이 듭니다. 이세계에 떨어져서 이런 고생이나 하고 있다니요.

54 시현주 (KYcQcJysrI)

2022-07-07 (거의 끝나감) 19:09:47

ㅋㅋㅋㅋㅋㅋ 높은곳 평범하게 무서워하지!! 공포증까지는 아니고 보통사람 수준으로!!

55 ?????? - 시현 (8oqhJq/KSQ)

2022-07-07 (거의 끝나감) 20:28:35

지시한대로 새의 등에 바짝 엎드린 시현과 달리 붉은 눈은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있다. 시현이 고삐를 잡고 있긴 하나 방향 지시나 높이 조절은 붉은 눈이 해야 했기에, 뒤쪽 안장에 달린 보조 고삐를 쥐고 앞을 보고 있었다. 로브가 극심한 찬바람이나 추위는 막아주었지만 기류는 타는지라 시현의 로브 자락도 붉은 눈의 후드 부분도 일렁일렁 흔들린다. 일렁이는 후드 속 붉은 눈은 이따금씩 시선을 내려 시현의 뒷모습을 보았다.

시현이 잔뜩 긴장한 것을 알아서였는지 아니면 귀찮아서였는지, 붉은 눈은 가는 내내 말이 없다. 시현이 먼저 말을 걸었다면 대답 정도는 해주었겠지만 그럴 여력은 없지 않았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비행의 시간이 그렇게 오래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오래라는 기준은 붉은 눈의 경험이 기준이었기 때문에, 시현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길고 누군가에겐 짧은, 대략 3-4시간이 지났을 쯤, 붉은 눈이 보조 고삐를 서서히 당기며 새를 무리에서 벗어나게 한다. 수평이던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며 무리에서 벗어난 새는 이내 전방의 어딘가를 향해 고도를 낮추며 활강한다. 중간에 한번씩 날개를 퍼덕이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 끝에 둔탁하게 착지하는 소리와 함께 더이상의 날개짓 소리는 나지 않는다. 더는 부유감도, 로브를 일렁이는 기류도 없는 지상에 도착하자 붉은 눈이 시현의 등을 툭 건드리며 말한다.

"됐어. 일어나서 정신차리고 내려. 내리다 자빠지면 발목 나가니까 조심하고."

그 말을 하고 붉은 눈이 먼저 훌쩍 내려갔을 것이다. 먼저 내려서 새의 목에 걸어둔 짐가방을 내리고 새에게 간식을 챙겨주는 둥 익숙한 행동들을 하며 시현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시현이 새를 탔던 평야와는 전혀 다른 환경- 엷은 보랏빛 하늘과 처음보는 식물들이 펼쳐진 숲 한가운데에서였다.

56 클레리스주 (8oqhJq/KSQ)

2022-07-07 (거의 끝나감) 20:29:54

그래서 비행씬은 짧게 스킵하였습니다아! 어차피 나중에 또 나오니까 이번엔 이러이러하게 이동했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57 시현 - ??? (ZW4YEu5A9w)

2022-07-08 (불탄다..!) 01:34:36

비행 내내 시현은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안전장치라곤 고삐가 전부인 새의 등에서 평정심을 찾기란 힘들었으니까요. 진정됐다 싶으면 자꾸 무서운 상상이 들어 쉽게 떨쳐낼 수도 없었습니다. 붉은 눈이 옷을 씌워줬으니 춥지도 않을 텐데, 몸을 간헐적으로 떨어대기까지 했습니다. 시현은 그 긴 시간동안 안장에 쥐죽은 듯 엎드려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온 몸이 뻐근할 지경이었습니다.
길었던 비행이 끝나고 새가 지상에 발을 딛습니다. 그때까지도 몸을 웅크리고 있던 시현이 붉은 눈의 손길에 몸을 움찔 떨었습니다.

"으으… 네…"

시현은 조그맣게 앓는 소리까지 내며 내릴 준비를 합니다. 몸을 일으켜 안장을 밟고 내려가려는데, 다리가 덜덜 떨려 쉽게 발을 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현은 헛발짓만 계속 이어가다 마침내 땅 위에 내려섭니다. 두 발이 땅에 붙어있다는 느낌이 어쩐지 생경합니다. 시현이 어느새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을 매만집니다. 정말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긴… 어디에요?"

겨우내 진정한 시현이 주변을 돌아보며 묻습니다. 이곳은 방금 전의 호수와는 영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숲처럼 보였는데 사방에는 평생 본 적도 없는 식물들이 있었습니다. 생소한 빛깔을 띤 하늘도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58 시현주 (ZW4YEu5A9w)

2022-07-08 (불탄다..!) 01:35:10

나중에 또...? ㅋㅋㅋㅋㅋㅋㅋ 시현이 또 고생하겠구나!!

59 ?????? - 시현 (hER1eKinf6)

2022-07-08 (불탄다..!) 10:33:07

평야에서 새를 타기 전에는 재촉했었지만 내리는 건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상관없는지 붉은 눈은 잠자코 시현이 내리는 걸 기다려주었다. 이 역시 친절보단 제법 넉넉한 양의 간식을 새에게 먹이고 있었으니 그 시간으로 충분하기도 했을 것이다. 몇 번의 헛발질 끝에 겨우 겨우 새의 등에서 시현이 내려오자, 붉은 눈 또한 마지막 간식- 큼지막한 육포를 새의 부리에 물려주고 목덜미를 툭툭 두드려준다. 거대한 새는 몸집에 맞지 않는 애교를 부리듯 머리를 숙여 붉은 눈의 손길을 만끽하곤 곧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혼자 느긋히 육포를 뜯는다. 새를 그렇게 보낸 뒤에서야, 붉은 눈은 시현을 보았다.

"어디긴. 내가 사는 대륙이지. 네가 있던 곳과 여기는 전혀 다른 대륙이야. 거기서 여기까지 저 새를 타고 건너온 거고. 넌 엎드려 있어서 못 봤겠지만."

붉은 눈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시현에게는 전혀 당연할 리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세한 설명은 미룰 셈인지, 휙 돌아선 붉은 눈은 새에게서 내린 짐가방을 대충 걸쳐메었다. 몸집만한 가방을 가볍게 메는 모습은 어쩌면 붉은 눈은 괴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을지도 모른다. 시현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붉은 눈은 여전히 일방적으로 말하고 행동했다.

"이 숲만 잠깐 건너면 내 집에 도착하는데, 가는 동안 함부로 건드리지 마. 그 로브 벗지 말고 주변에 뭐가 있든 내 뒤만 보고 따라와. 놓치면 그대로 버리고 갈거야."

태도를 바꿔줄 생각은 없는지, 한결같이 까칠하게 말한 붉은 눈은 알아들었어? 라고 재차 확인했다. 지금 여기서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아우라가 붉은 눈의 주변으로 풀풀 풍기는 듯 하다. 대답을 들은 후에는 짐가방을 고쳐메고 성큼 숲 사이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을 것이다. 성큼이라곤 하나 시현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은 아닌 건 확실했다.

60 클레리스주 (hER1eKinf6)

2022-07-08 (불탄다..!) 10:34:17

또라고 할게 있나 앞으로 구르고 갈릴 일이 산더미인데 ㅋㅋㅋㅋㅋ 적응만 하면 편하겠지 시현이도!

61 시현 - ??? (ZW4YEu5A9w)

2022-07-08 (불탄다..!) 17:24:05

어느정도 진정한 시현은 육포를 물고 걸어가는 새를 멍하니 바라봅니다. 보아하니 반쯤 넋을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붉은 눈의 말에 금세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요.

"대륙, 이요…"

시현이 얼빠진 목소리로 대꾸합니다. 새를 타고 대륙을 건너다니, 이만큼 기상천외한 경험이 또 어딨을까요. 부디 대륙을 또 건널 일이 없기만 바랄 뿐입니다.
곧 붉은 눈이 자기 덩치만한 가방을 들쳐멥니다. 그 모습에 잠깐 놀라긴 했지만, 벌써 이세계에서 온갖 일을 겪어버린 시현에겐 그렇게 새로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네, 네…"

앞서 걸어가는 붉은 눈을 시현은 황급히 따라갑니다. 다리가 아직도 덜덜 떨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시현은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금방 입을 다뭅니다. 시현에겐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이 있지만, 지금의 붉은 눈에겐 궁금증을 해소해 줄 생각이 없는 듯했습니다. 시현은 잠자코 붉은 눈의 뒤를 따릅니다.

62 시현주 (ZW4YEu5A9w)

2022-07-08 (불탄다..!) 17:24:23

ㅋㅋㅋㅋㅋㅋ 살아남아라... 시현아...!

63 ?????? - 시현 (hER1eKinf6)

2022-07-08 (불탄다..!) 19:15:38

꽤나 까칠한 붉은 눈이지만 시현의 어벙한 모습을 보고도 별다른 말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시현의 상황 역시 어느 정도 이해는 해주는 듯 하다. 이해라고 할지, 시현의 상황을 시현보다 잘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붉은 눈은 시현의 언어를 이미 알고 있고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던 설명- 집에 가는 길에 눈 떠보니 여기라는 말 만으로 따라오라고 하던 것도 그렇다. 오히려 성가시다는 태도가 물씬 풍겨나오는 붉은 눈의 태도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보인다. 시현 같은 존재를 여러번 대했을 것 같은 익숙함이 말이다.

시현을 이끌고 숲 속을 걷기 시작한 붉은 눈은 너무 멀어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숲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자주 걷다보니 생겼을 것 같은 일직선의 길을 따라 걸으며, 붉은 눈은 역시나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묵묵히 앞을 보며 걸어간다. 기묘한 숲 속은 한번씩 나뭇잎 스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걸 빼면 크게 놀라거나 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해서 이질감을 느끼면 느꼈지, 위험하다는 인상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숲이었을 것이다.

잠깐이라던 붉은 눈의 말처럼 숲을 가로지르는 건 정말 금방이었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정도의 길이었달까. 울창해보이는 숲을 빠져나가면 작은 들판과 들판 한쪽에 세워진 주택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형적인 서양식 외관에 2층으로 보이는 주택은 주변의 풍경에 비해 너무나 평범하다. 붉은 지붕에 갈색 벽돌로 지어진, 외딴 시골집 같을지도. 그곳에 누가 사는지는 생각할 일도 없었다. 붉은 눈은 곧장 그 집으로 다가가 문에 달린 고리를 잡고 세 번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우르르 하는 소리가 잠깐 나고 조용해지자 붉은 눈이 문을 열며 말한다.

"여긴 내 집이야. 신발은 안 벗어도 되니 그대로 들어와. 들어오면 문 닫고, 저쪽으로 가면 거실이니까 소파에 앉아있어. 로브는 이제 벗어도 되니까 마음대로 하고."

딱 적재적소의 말만 남긴 붉은 눈은 먼저 휭 하니 들어가 안쪽으로 사라진다. 덩그러니 열린 문 안쪽은 겉보기처럼 그저 평범한 집처럼 보인다. 단지 내부 역시 서양식이라 시현에겐 낯설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보이는 건 현관에서 이어지는 짧은 복도가 있고 붉은 눈이 말한 거실은 복도 끝에 문이 열린 곳 같다. 그쪽으로 가면 소파와 벽난로, 테이블 등등이 있는 아담한 거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64 클레리스주 (hER1eKinf6)

2022-07-08 (불탄다..!) 19:16:50

에헤이 누가 보면 시현이 골로 보내려는 줄 알겠어! ㅋㅋㅋ 나름 힐링 복지도 해줄거니까 쉽게 죽지 않을거라구(?)

65 시현 - ??? (1p3KYq.A3.)

2022-07-09 (파란날) 16:53:58

가만 생각해보면 붉은 눈도 그렇게 무신경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숲길을 걷는 둘 사이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흐를 뿐입니다. 시현은 그런 분위기에 압도되어 쉽게 말을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숲은 생각보다 고요했습니다. 기묘한 식물들이 자라있는 것과 다르게 위험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걷던 시현이, 들려온 바스락 소리에 몸을 살짝 움츠렸다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닐 겁니다.
계속해서 이어질 것만 같던 오솔길은 금방 끝나버립니다. 대신 그 앞에 우뚝 서있는 집 한 채가 보입니다. 이 집은 그야말로 소박했습니다. 여기가 붉은 눈이 사는 곳일까요? 곧 현관문을 여는 일련의 과정이 이어집니다. 시현은 그에 사소한 궁금증을 품지만 금세 잊어버립니다.

"네, 알았어요."

시현이 붉은 눈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차분해진 목소리입니다. 집 안으로 발을 들인 시현은 문을 닫고 붉은 눈이 말한 거실로 향합니다.
거실의 풍경은 단촐했습니다. 그래봤자 시현이 살았던 자취방보다는 좋은 곳입니다. 분위기도 어쩐지 달랐습니다. 그 사실에 시현은 새삼 놀랍니다.
시현은 쓰고 있던 로브를 벗고 소파에 조심히 앉습니다. 붉은 눈은 어디로 간 걸까요. 시현이 거실 문 너머를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66 시현주 (1p3KYq.A3.)

2022-07-09 (파란날) 16:55:02

아니었어...?!(절대 아님) 힐링 좋지~~ ㅋㅋㅋㅋㅋㅋ

67 ?????? - 시현 (ib6/AMG.vs)

2022-07-09 (파란날) 21:50:31

내부로 들어와 문을 닫자 문에서 작게 잠금쇠 걸리는 소리가 난다. 문손잡이에 잠금장치는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는걸까. 거실로 가는 복도나 이어지는 바닥은 모두 나무로 되어있으며 반질반질 윤이 난다. 당장 들어온 거실도 먼지 쌓인 곳 하나 없이 깨끗하다. 외관처럼 소박하지만 관리가 잘 되어있는게 보이는 집이다. 시현이 앉은 소파 역시 깨끗하며 푹신하다. 이대로 누워서 자도 좋을 만큼.

- 달칵.

시현이 붉은 눈의 행방을 쫓아 문 너머를 힐끔거리던 도중이었다. 희미한 차향기가 시현의 근처를 스친다 싶더니, 소파 앞 테이블에 찻잔 하나가 놓여져있다. 붉은 장미가 그려진 하얀 찻잔은 홍차로 보이는 액체가 담겨있다. 김이 살짝 올라오는 걸 보면 갓 내린 것 같은데, 거실은 물론 문 밖 복도 그 어디에서도 누군가 차를 내리는 소리나 가져오고 나가는 기척 그 무엇도 나지 않았다. 시현이 문을 힐끔거리던 그 짧은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시현의 앞과 반대쪽 소파 앞에 한잔씩 총 두 잔의 홍차가.

그 때였다. 괴이하다면 괴이하고 신기하다면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실에 붉은 눈이 들어왔다.

실내용 슬리퍼를 슬슬 끌며 들어온 붉은 눈 역시 로브를 벗은 모습이다. 붉은 눈의 정체는 여성이었다. 시현보다 한 뼘은 작은 키에 눈보다 붉은 머리카락이 허벅지에 닿을 만큼 길다는 걸 제외하면 지극히 인간처럼 보이는 여성이다. 붉은 눈- 그녀는 시현이 보기엔 화려해보일지 모르는 분홍 원피스 차림으로 설렁설렁 걸어와 시현이 앉은 소파의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털석 하고 소리가 날 만큼 화려하게 앉은 그녀는 앉자마자 다리를 꼬고 소파에 몸을 푹 묻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피로와 일말의 짜증이 담긴 한숨을 그렇게 내쉬고서, 자연스럽게 찻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 시현을 보았다. 첫 만남부터 줄곧 느껴지던 따가운 시선으로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보기만 할 뿐, 먼저 말은 꺼내지 않는다. 말은 하지 않으나 아까처럼 묻지 말라는 분위기는 없었고 묻지 말라는 말 또한 하지 않았으니, 궁금한 것이나 할 말은 지금 해야 할 것 같다.

68 클레리스주 (ib6/AMG.vs)

2022-07-09 (파란날) 21:51:56

ㅋㅋㅋㅋ 그런데 힐링의 의미가 치유물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ㅋㅋ 시현주 좋은 주말일까나!

69 시현 - ??? (3UmuQB5Jvo)

2022-07-10 (내일 월요일) 16:50:52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시현은 고개를 돌립니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들지 않았음에도, 비어있었던 테이블 위로 찻잔들이 놓여있었습니다. 덕분에 시현은 상당히 놀랐습니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주변에 뭐가 있나 살펴보기까지 했죠. 하지만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보았음에도, 시현은 양손을 무릎에 올린 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생각이었습니다. 덕분에 무언가를 입에 털어놓을 정도로 태평한 기분도 아니었습니다.
곧 붉은 눈-적발의 여자가 거실에 발을 들입니다. 시현은 그 모습에 꽤나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녀가 제 맞은편에 앉자 괜히 몸을 움츠리기까지 했습니다.
둘 사이에 잠시간 적막이 흐릅니다. 혼란스런 시현의 마음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짜증 섞인 한숨도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습니다. 시현은 차를 드는 여자를 잠자코 지켜보다가, 그녀가 날선 시선을 보내자 고개를 푹 숙여버립니다.

"저기,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은… 있나요?"

잠시간 여자의 눈치를 살피던 시현이 우물쭈물 말을 꺼냅니다.
시현은 아까부터 줄곧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의한 것입니다. 사람은 제 영역을 벗어나면 불안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시현은 좁은 서울 땅에서 좋은 기억 하나 없이 자랐습니다. 그런 세상에 애착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낯선 이계에서 시현은 원래 살던 곳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똑같은 풍경. 지루한 강의. 좁아터진 자취방. 그 평범한 일상이 그토록 그리웠습니다. 시현이 이세계에 떨어진 지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요.
말을 마친 시현은 손가락을 꼼질대며 여자의 눈치를 살핍니다. 여자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현은 평소보다 더욱 위축된 상태였습니다.

70 시현주 (3UmuQB5Jvo)

2022-07-10 (내일 월요일) 16:52:00

치유물...? 치명적 유해물...?(아님)
좋은 주말이지!! 끝나가긴 하지만!! 클레리스주도 남은 주말 잘 보내길 바래!!

71 ?????? - 시현 (5lonZgkZ3M)

2022-07-10 (내일 월요일) 19:27:01

시현이 마시지 않는 차는 조용히 식어갈 뿐이다. 소리없이 거실을 차향기로 채우며 점점 김이 보이지 않게 되어간다. 그녀의 찻잔도 식어가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눈에 띄게 양이 줄었다. 그녀는 시현에게 질문을 듣고도 차를 마시며 말을 아낀다. 말을 아낀달지, 생각을 하는 중이랄지, 모호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렇게 찻잔이 반이나 비고 나서야 그녀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꼰 다리 위로 두 손을 깍지 끼워 걸쳐놓으며,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연다.

"원래 세계- 네가 살던 세계로 건너가는 방법이라면, 있어. 세계를 건너는 능력자에게 부탁하면 가능은 해. 가는 것 뿐이라면."

그녀는 선홍빛 눈을 천천히 들어 시현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일직선의 찌를 듯한 시선이지만 특정한 악의는 없어보인다. 조금은 진지한 듯 보이기도 하다. 후우. 그녀는 작은 한숨을 쉬고 말을 계속했다.

"나는 딱히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고 네게 배려라는 걸 해줄 의무도 없으니까 까놓고 말하지. 너, 이미 이쪽 세계에 속해버렸어. 이미 네가 살던 세계와는 섭리가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의미야. 그러니까 그 원래 세계로 건너가더라도, 그곳에 네 자리는 없으니 머무를 수 없어. 그러니 포기하고 여기에 적응하는게 좋아."

돌아가고 싶은 시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앞서 약간의 희망이 생길 듯한 말 다음에 그런 말을 하니 더욱 충격적이지 않을까. 단호하게 말을 한 것 치고 그녀도 영 기분이 좋지 않은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더 작은 한숨을 쉬었다. 내려놓았던 찻잔을 다시 들어 한모금 훌쩍 넘긴 그녀는 시현을 향해 그런 물음을 던졌다.

"이쪽에서 눈 뜨기 전에, 집에 가던 길이었다고 했지? 그 길에 아무 일도 없었어? 잘 생각해 봐. 네가 뭘 하다가, 무슨 일이 생긴 다음에 여기에서 정신을 차렸는지."

평야에서 그저 어물쩍 넘어갔던 부분을 다시,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라는 말을 끝으로 그녀는 조용해졌다. 시현이 생각하고 말할 시간을 주듯이.

72 클레리스주 (5lonZgkZ3M)

2022-07-10 (내일 월요일) 19:29:47

내 주말은 나태함으로 대체되었다! ㅋㅋㅋㅋㅋㅋ 지금 전개만 봐도 시현이 멘탈에 치명적 유해물 아닌가 싶고?! 음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시현주는 지금의 전개가 어떤지 궁금하다!

73 클레리스주 (C7f.laxaKQ)

2022-07-12 (FIRE!) 05:42:15

너무 밀려서 갱신 한번 해둘게!

74 시현주 ◆/z6lIp/ywM (RFkab0PoqY)

2022-07-12 (FIRE!) 16:36:13

기다렸을텐데 답레가 아니라 무거운 얘기로 갱신하게돼서 미안해
더이상 상황극을 이어나가기가 힘들거 같아
며칠동안 생각해봤는데 시현이란 캐릭터가 내손에 잘 안맞더라고
사실 처음 굴려보는 타입이기도 하고 그래서 시트 쓸때도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
그때 좀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봐
처음엔 괜찮았는데 언제부턴가 시현이 굴리는것 자체가 버겁고 그랬어
돌리는거도 재미를 못느끼겠고 답레도 거의 의무적으로 잇다시피했고
그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대로 끌고가봤자 나도 힘들고 클레리스주한테도 민폐만 끼칠거 같아서 이렇게 말해봐
클레리스주 탓은 아니니까 자책하진 말았으면 좋겠어
내가 먼저 찔러놓고 너무 무책임하게 행동하는거 같아서 정말 미안해

75 클레리스주 (C7f.laxaKQ)

2022-07-12 (FIRE!) 17:33:26

고민 많이 했을 텐데 얘기해줘서 고마워. 캐릭터가 손에 맞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시트는 하이드 해둘게. 편히 재활용해. 일주일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즐거웠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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