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복잡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상황을 어지럽게 만들어서 해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꿈이 여러 모습으로, 우리들의 무언가를 충족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적으로, 그 말은 가장 어려운 말이야. 우리들에게는 말야. 당장 살아온 시간에서도 인간과 차이가 나고 가치관과 판단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들은 결국 좋아도 싫어도 인간이 되어야만 해. 우리들의 정신이 오르기 위해서는 가둬진 육체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할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 신인의 굴레를 넘어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적을 수밖에 없는 거야. 인간적이란 말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인간의 실수도 배우게 된단 얘기거든.
" 호포나무 껍데기로구나. "
어두운 밤에 대비되도록 모닥불이 즐겁게 춤을 췄다. 그 빛이 작은 움막에 가득 차 있었다. 메마른 나무 껍질에 손을 올린 채, 허리가 한참이나 굽은 노인은 호호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옛 추억이 깃든 물건이었다. 한참 전에 벗겨진 껍질이었지만 노인의 손에서 껍질은 마치 생기를 가진 듯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듯 움직이곤 했다.
" 허허허. 오냐. 옳지. 어이구 잘한다.. "
그런 나무의 움직임에 고개를 주억이며 좋아한다. 그렇게 한참을 노인의 손 안에서 애교를 부리던 나무껍질이 천천히 힘을 잃고 바스러졌다. 노인은 손 위에 남은 나무껍질의 감촉을 새기려는 듯 손을 비비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호포나무는 부끄럼이 많지. 동물을 아주 좋아하지만 열매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동물들이 잘 찾지 않는단다. 그러니 가끔 동물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놀라선 가시를 세우기까지 하니 동물들이 호포나무를 무서워하지. 하지만 녀석은 몸통을 잘 쓰다듬어주면 제 가지를 흔들어 열매를 주곤 한단다. 이 열매는 즙을 짜내어 입술에 묻히면 심하지 않은 독을 막아주는 힘이 있단다. 다만 불과 섞이면 금방 굳어버리는 성질이 있으니 불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지. 알았니? "
그런 노인의 곁에 앉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두드리는 신인들을 곁에서 모시는 연월족에게 신인들은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내어주곤 한다. 늙은 신인은 '나'가 아주 어렸던 시절 '나'를 가르켜 말했다.
' 이 아이를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려보려 한다. '
그 뒤로 노인을 모시는 것은 '나'의 역할이었고, 그런 '나'에게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 다양한 지식들을 알려주었다. 그는 '수림'의 신인이었다. 살아오던 중에 문턱을 넘었고, 그렇게 굴레를 씌었다. 수백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그는 자신의 역할처럼 문을 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왔다. 그 시간동안 그는 수림의 지식을 자신을 수백년간 돌보아준 연월족에게 내려주었다. 처음 연월족이 날풀가시돌을 찾아 짐승과 싸울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을 때면 많은 연월족이 노인을 찾았다. 그럴 때면 그는 자신의 지식을 전해주며 연월족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차즘 노인의 존재는 연월족에게 당연한 존재가 되었고, 노인이 없는 연월족의 풍경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 내일이로구나. "
이따금 그는 몸을 휘청거리고, 바닥에 쓰러지듯 하곤 했다. 마치 인간 노인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처럼 말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당연한 것을 겪는다는 듯이 웃었다. 단지 한 번이었던 것이 수 번이 되었고, 가끔 오랜 시간 일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런 그가 '나'를 불러 이것들을 알려주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제 노인의 지식은 오직 '나'를 통해서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을 내려주던 노인은 문을 두드리기 위해 떠날 것이고, 인간인 '나'는 여기에 남을테니까.
" 얘야. "
노인은 손을 뻗어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힘없는 노인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뭉클한 온기가 한가득 손을 타고 흘러들었다. 곧 그는 제 품을 뒤져 사탕수수 몇 개를 꺼내며 해맑게 웃었다.
" 사탕수수 줄까? "
여전히, 나이가 꽤 들었음에도 '나'는 노인에게 어린 아이였다. 하나를 받아들어 그것을 햝는 동안 노인은 나뭇등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가만히 느끼며 웃음을 지었다.
" 알겠지? 사탕수수들은 수다쟁이라 서로 모여있어야만 잘 자란단다. 활발한 아이들이니 잘 챙겨주렴. "
불편한 거동을 움직이려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의 숨이 가팔라진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팔을 쥐어 천천히 몸을 눕히고, 하늘을 바라본 노인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뱉었다.
" 올해 봄은 시끄럽겠구나. 새 '사람'이 올 게야. "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얘야. "
'나'를 불렀다.
" 잘 돌봐주렴. 아주 어린 아이란다. "
노인은 굳게 눈을 덮고, 온 몸에 힘을 뺐다. 마치 축 늘어지는 듯이 몸을 늘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동물 가죽을 잘 다듬은 이불을 그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입을 크게 두 번 다시곤 몸을 길게 늘여트린 그가 천천히 잠에 들었다. 인간의 '노인'은 이 곳에 몸을 남기고 떠났다. 저 먼 문을 향해서 말이다.
혹시 알고 있니 라임아. 정말 어른스러운 사람이면, 저런 말에 별로 불쾌하지 않는다는 것을. 왜냐면 정말 현명한 사람이 바보라고 비난하는 것에 그저 웃는 것처럼, 정말 성숙한 사람은 아이라고 얘기하는 것에 그저 웃기 마련이다. 조금도 마음에 와닿지 않으니까. 거기에 무언가 화나고 찔리는 감정이 있음은, 사실 내심 어딘가에선 그 말이 충분한 영향력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말해주고도 싶었지만, 이미 한계인 지금의 그녀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도, 이제 그만해달라고 언급한 상대를 가지고 더 몰아붙이는 것은 지독한 행위지. 따라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비스듬히 돌려 앉아 꽁꽁 웅크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쉰다. 까다로운 아이들과의 교류가 어려운건, 실은 나도 똑같은 것이다. 잔뜩 화나고 풀죽게 만들어버렸으니, 다음에는 좋아할만한 선물이라도 줘야할까..... 여자 아이가 좋아할만한 선물이 뭐가 있을까.....아저씨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