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눈빛이 된 도마뱀. 하루에 몇끼나 먹고 걷는 것 보다 뛰어다니는 이에게 이 이상 허망한 이야기가 없었다.
" 아닌가? 내가 생각보다 더 적게 먹어서 그런가? "
고민을 하던 찰나에 상대방에게 대답해줄 차례였음을 떠올린다.
" 그래! 머리카락에 풀잎이 묻은 이유! 그것은 음료수 캔이 도망갔기 때문이야. 우리 학교 근처에 파는 피카츄돈까스 사서 가고 있는 길이었거든? 한 손에는 돈까스에 다른 한 손에는 콜라, 이렇게 해서 가는 길이었는데 내가 돈까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인도 턱에 걸려서 몸이 휘청~ 한거야! 그래서 손에서 캔이 날아가고 근처 수풀 안으로 떨어졌는데 그거 사냥하느라고 그만 이렇게 된 것 같은데.. "
기다린다. 당황했는지 딸꾹질을 하는 여성을 바라보다 이번에는 전처럼 납득하는 방식으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듯 팔짱을 끼고 적당히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꼰다.
"상황과 심정을 고려하여 조금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드리겠어요. 제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실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검은 모발이 조금씩 부는 미풍에 휘날려 소년의 모습을 한 그녀는 눈을 깜박인다. 비가 왔는지 옆에 고인 웅덩이에 비친, 윤곽이 또렷하고 반듯하지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곱다는 느낌을 주는 단정한 인상의 소년이 가라앉은 짙은 붉은 눈을 반쯤 뜨고서 따분하다는 얼굴로 저를 마주본다. 아련하게 기억에 남은 혈육의 따스한 노을빛 눈빛이 아닌 차갑게 고인 핏물같은 빛깔이 서럽기도 하고 묘하게 울화가 치밀어 마음에 들지 않아 소년은 수면에 맺힌 상을 바라보다 금새 눈을 감고 눈길을 멀리 떨어진 곳에 둔다.
"진정하셨는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도 흥분한 것이 분명해 속으로 이를 질책하며 잠시 치밀어 오르는 역정을 삭히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돌리다 소녀의 모습을 한 동료를 본다. 심호흡하자 아무리 짜증나도 화를 내면 내 손해야.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돌아보지만,
'하?'
"알렌씨, 지금 뭐하는 거에요?"
전과 같이 눈꼬리가 올라갔지만 많이 둥글어지고 크기도 커져 날카롭다기보다는 순한 고양이같이 보이는 눈에 투명한 액체가 아롱진다. '지금 우는거야? 내가 뭘 했다고?'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평소 욱하던 성격과 여태 참아 쌓아둔 찝찝함이 달라진 호르몬 반응과 맞물려 평소처럼 사고를 거치지 않고 바로 심중에 둔 말을 내뱉도록 한다.
"하 진짜, 정말. 제가 이런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이 특별반은 각자의 목적을 가진 헌터들이 제대로된 인맥도 아닌 임의로 모여 형성된 집단인 만큼 저 또한 그에 걸맞게 직장의 동료를 대하듯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알렌씨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렌씨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제게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보인적이 없어요. 뭐,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아무 이유도 없이 싫증도 날수 있고 좋을수도 있는 그런 변덕스러운 종자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 곳은 공적인 장소이고, 상황이며, 단체입니다. 그러면 알렌씨도 제가 불편해도 좀 참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이유라도 설명하던가 그도 싫다면 아예 무시를 하던가 왜 좋은 사람처럼 행동하는지 도저히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리고 덧붙여서..."
바위에서 내려와 뚜벅뚜벅 걸어가 히끅히끅 우는 소녀와 눈높이를 맞춘다. 항상 방긋방긋 웃던 미소를 거두고 2년 전, 길드원들의 죽음 이후로 어떤 표정도 짓기 힘들어져 절로 냉담한 무표정으로 굳어진 얼굴로 눈물이 맺힌 푸른 동공을 마주한다.
"저희가 이런 모습이기는 하나 본디 제가 여성인 만큼 '여자의 눈물'에 약할거란 생각은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난 별거 아닌데 눈물부터 흘리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 알겠어?"
자연스럽게 몸에 벤 예의범절에 따라 품에 넣어둔 손수건으로 뺨을 쓸며 눈물을 닦는 동시에 목소리를 낮추어 짓씹듯이 속삭인다. 어릴때, 겨우 저의 아버지와 좋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을 붙잡아 건너 건너 도피생활을 하다 마침내 보호막이 사라졌을때도, 길거리를 헤메며 의념각성자라는 신분 하나만을 들고 험난한 가부키쵸를 돌아다니며 겨우 끼니를 떼웠을 때도 비명을 지르던 눈물을 흘리던 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소녀를 이용하는데 혈안이 되었이었지 운다고 봐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으며 겨우 신의 도움으로 찾은 좋은 사람들은 모두 스러져버렸다. 그러니까 나도 봐주지 않아. 나만 당하면 억울하니까. 더 이상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을거야. 어차피 다시 사라져 버릴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