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이 목구멍에 올라오려는걸 간신히 억눌렀다. 아는걸 굳이 물어보는건 당황에서 나오는 말돌리기 일 뿐이니까. 볼을 벅벅 손으로 문대고 고개를 숙인 너와 반대로, 나는 잠시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굴천장 위에서, 아직도 새하얗게 물든 세상에 거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저씨인체 한 것치고 별로 어른스럽지 않다는건 잘 아는데."
나는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어른인체로 응석을 받아주는걸로 친해졌으면서. 둘만 남아, 두근거릴만한 상황이 되었다고 곧바로 넘어간다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꽤 우스운 일이다. 내가 이렇게 정에 굶주린 성격이었던가.
아직, 방금은 경황이 없었을 뿐이라던가. 그런 의도는 없이 답례를 했을 뿐이라던가. 직접적으로 발언한 것은 없으니, 둘러댈 기회는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아저씨 답게, 어른 답게, 전하기 두려운 솔직한 마음을 미뤄두고, 아이처럼 대하는 것으로. 이성적인 관계가 아니라 자상한 어른과 응석부리는 아이라는 기분 좋은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여기서 '미안해' 라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능글맞게 얘기하는 것으로, 아마도 할 수 있다.
그래.
그렇게 굴다가 결국에 나는, 이미, 전하고 싶었던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한번 비틀려 엇나간 그 끝에, 마지막에 발악처럼 일방적으로 전해, 혼자 울지 않았는가. 나는 사과를 하기 위해 벌렸던 입을 잠깐 다물었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듯 웃었다.
"난 네가 좋은가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는게, 별로 완전히 아이를 대하는 감정만은 아니었나보다."
환멸하거나 거부당할지도 모르겠다만. 그럼, 그걸로 됐다. 적어도 나는 말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눈보라치는 이 좁은 토끼굴 속이 문득, 고맙게 느껴졌다. 이렇게 어른스럽지 못한, 아이같은 솔직한 심정은. 눈 앞의 토끼 소녀 외엔 들려주고 싶지 않으니까.
따져오는듯한 질문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이거다.
"닮았으니까.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른스럽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속에서 어딘가 외롭다고 느끼는 것처럼 부분이. 신경쓰이고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그 말은 거짓이 아니야. 어른스럽던, 아이스럽던, 그것만큼은 진심이야."
그 뒤로 나는 입맞춤을 받았다. 그렇지만, 방금전과 달리 나는 그녀의 몸을 붙잡거나, 상기된 표정으로 흥분하진 않았다. 아마도 전생하고 나서 여자애와 처음으로 한 입맞춤이었을텐데도, 나는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차분했다. 실망감이 담긴 그녀의 얼굴에서 도망치지 않고, 나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여 대답했다.
"그런걸 바랬으면 말이야. 네 말대로, 좀 더 능숙하게 꼬셨어."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다. 누군가의 살이되고 피가되는 조언이 떠오른다. 나도 잘 안다. 바보처럼 모르는체하면서, 계속 시간을 보내, 좋은 분위기에서, 적당히 고백하면. 그야 사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어쩌면 좋은 기회를 발로 걷어차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여자친구를 꼬시고 싶었을 뿐이라면, 더 그럴듯한 말은, 더 그럴듯한 행동들은, 얼마든지 있었어...."
하,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면, 이렇게는 안했을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 너는 뭐라 생각할까. 역시 요령도 없고 답답하게 산다고 고개라도 절레절레 흔들까.
"나는 사실은 대단하고 성숙한 어른이 아니야. 과거의 나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모두 죽어 기억에 남지 않고, 내가 자랑으로 삼던 기술은 잔재만 남아있는. 그냥, 꼬마야. 아무것도 없이,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힘껏 애쓰는."
"그런 꼬마가 어른처럼 굴기 위해 노력한 결과, 간신히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애한테 절교당할 때 까지도.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어."
쓰라린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렸지만. 적어도 여기선, 변명이나 둘러댐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게 맞다 생각했다.
"이번엔 그러기 싫었어. 그게 다야."
나는 애초부터 그녀에게 사귀어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사이가 가까워지면, 언젠간 또 다시 거리를 두어질까봐. 그 순간까지도 어른스럽게 굴기 위해 노력한 나는, 결국 다시금 제대로 본심조차 말할 수 없을까봐. 모든게 끝난 뒤에 홀로 남아 엎드려 울까봐. 그것이, 솔직하게도 두려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