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처음가보는건가. 흐음,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굳이 채근하지는 않고. 어이없다는듯 덧붙였다. 누가보면 사춘기 소년이 또래 여자애를 밤중에 문자하다가 놀러 나가자고 꼬신 다음 자연스럽게 노래방으로 데려가는 줄 알겠다. 만약 그런 놈이 있다면 어지간히도 능글맞은 녀석일 것이다. 아저씨와는 다르다.
"음....? 뭐 가게마다 다르지. 그치만 좀 음침한 느낌 나는건 노래방이라기 보단 단란주점을 겸하는 경우가 많고, 애들이 찾아가는 곳은 뭐 평범하게 2층이나 3층에 있기도 마련이야."
'노래방' 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느낌이 좀 다르다. 무슨 아가씨들이 접대해주면서 술마시고 노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끼리 말 그대로 순수하게 노래 부르려고 찾는 곳이 있는 법. 여기는 학교 근처니까 상점가로 가면 후자쪽의 노래방도 어련히 보이겠지 싶어서 어슬렁 어슬렁 걷고 있는 것이다.
답지 않게 시니컬한 농담을 하길래, 나는 대답하기전에 흘끔 유하의 얼굴을 봤다. 애초에 농담이 맞기도 한건지. 역시 하프 애들은 그런 걱정 조금 정도는 하는건가? 놀리는 의미가 아니라 진지하게 찾아본 바로, 드래곤이란 본래 성정이 흉폭한 존재니까. 뻔히 의미를 유추했는데 '너 그게 무슨 의미냐' 하고 정색해봤자 분위기만 험악해질 것 같아서 나는 한숨을 내쉬곤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다. 최근만 해도 같은반 남자급우가 너 귀엽고 취향이라더라. 의외로 또 모르는 노릇 아니냐. 사춘기 남학생이 좋아한다고 고백하는건 생각보다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이유로 일어난다고."
누가 그렇게 얘기했는지는 착한 급우 태명진이의 명예를 위해 내 직접 언급할 생각은 없다만. 그걸 제외해도 쬐깐하고 밝고 친근하게 구는 여자애는 또래 소년들의 착각을 부르기 쉬움은 분명하다. 의외로 이성적인 의미로 '헌팅' 당할 가능성이 아주 적지는 않겠지.
탁 하고 손으로 쳐내지 않고 바둥거리는거 보면 자기도 눌림 당할만 했다고 여기고 있는걸까. 피식 하고 웃으면서도, 나는 몇번 슥슥 쓰다듬곤 이내 손을 떼줬다. 눈치 없게 너무 오래 꾹꾹 누르면 친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법이니까. 애초에 이렇게 머리를 눌러댈 수 있는 것 부터가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면 못할 짓이다.
"꼬리 조심하고."
동전노래방이라는, 정말로 노래만을 부르기 위한 비교적 공간 가성비가 좋은 형태의 곳이기 때문에. 입구는 생각보단 조촐한 편이었다. 나는 문을 열어주면서 유하가 꼬리에 끼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본인의 신체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지식을 늘어놓다니. 하지만 저 말이 진실이긴 하다. 정말로 키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분적으로 작아질것 같은 행동들도 해서는 안 되는거야!!
" 오- 좁아- "
아주 좁은 장소, 들어가서 꼬리를 말고 나서야 자리에 겨우 앉을 수 있었다.
" 저기에 돈 넣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 "
작은 박스 안에서 울리는 소리들이 신기한지 여기저기 눈을 굴리다, 마이크를 집어와서는 아 - 아- 하고 전원도 안 켜고 소리를 냈다. 뭐야 이거 고장난건가, 하는 생각으로 마이크를 이리 저리 들어서 관찰한 결과 전원 버튼은 하단에 있었고 버튼을 누른 후에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무언가 해낸게 뿌듯한 표정의 썬더.
뭐 물론 머리도 좋은 애가 진지하게 키가 작아지겠냐고 말하겠냐마는. 작은 키를 자극하는 것에 대한 비유에 가까운 항의 표시겠지.
"여기는 노래만 부르는 곳에 가까워서 말이다. 넓은 곳이 좋았나?"
좀 더 넓은 노래방으로 가면 아마 꼬리를 편하게 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전 노래방은 어디까지나 공간 가성비를 중시하기 때문에, 방 하나 하나가 꽤나 좁다. 특히나 꼬리를 가진 유하랑 같이 쓰려면, 좁다를 넘어서 비좁다는 느낌도 있다. 꽤 붙어 앉아야 한다. 나야 그래도 별 생각은 없지만, 상대는 첫경험이라는데 불편함을 느끼게 해도 미안하다. 싫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편이 좋겠지.
"아아. 그 다음엔 여기 전화번호부 같은게 노래의....코드? 같은게 적혀있어. 그 번호를 입력하거나, 아님 이 기기로 검색해서 찾으면 된다."
나도 오랫만이라 비교적 더듬더듬 거리며 유하에게 설명해준다. 어쨌건 큰 방식은 아마 안바뀌었겠지.
여기도 엄연한 사업장. 굳이 인사를 받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 다음에 다시 나가는건 눈치가 보인다. 다음번에 노래방을 가게 된다면 더 큰 공간이 있는 곳을 고르겠지만, 어디가 그런곳인지는 잘 모른다. 코인노래방만 아니면 돼! 를 외치면 되는건가? 하여튼 좁기는 많이 좁다. 의자에 걸터 앉고도 꼬리를 둘 장소가 마땅치 앉아서 무릎 위에 두고 있는데도 좁을 정도로! 옆 사람이 재채기 하면 블래스유를 말할 정도로!!
" 아? "
그런 방식. 유하는 기계를 들고 이리저리 만지더니 금방 적응해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다음번엔 좀 더 넓은데 데려다 줄테니까. 근데 여기는 시간제로 돈을 내는게 아니라, 곡마다 돈을 넣고 다 부르면 나가는 방식이야. 그래서 불편하면 몇곡 부르다 나가도 상관 없어. 그런 형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좁게 설계된 것이기도 하고."
유하가 답답하니까 당장 나가자고 말하는게 아닌 이상, 나는 조금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노래방 문화는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부연으로 설명해준다. 일반적으로 주인장과의 교류가 적지 않게, 따라서 '서비스' 란 개념이 존재하는 노래방과 별개로 동전 노래방은 좁은 방에서 원하는 만큼 돈을 넣어 부르고, 만족하면 알아서 나가는 형식에 가까운 것이다. 오자마자 나가는 것은 좀 그렇지만, 몇곡 불러보고 불편하면 슬쩍 나간다한들 눈치볼 이유는 없다.
"오."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가 이내 요령을 찾곤 슥슥 검색하는 유하가 뭘 부르나 잠깐 지켜봤더니 깜짝 놀랄 정도의 고전 노래가 들려온다. 아니 얘는 도대체 어떻게 아저씨 입장으로도 고전곡을 부르는거람? 그러나 사실 나에겐 오히려 좋았다. 전혀 모르는 최신 여자 아이돌 노래가 나왔으면 오히려 당황했을거다. 나는 눈치껏 탬버린을 들어, 탕, 탕, 눈치좋고 요령 좋게 박자를 넣어주는 것이다. 노래방을 즐기는 요령은, 자신이 부르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 것. 상대가 부를 때에도 열심히 들으며 호응해줘야, 상대도 내 노래에 그렇게 호응하고, 분위기가 사는 법이다.
열창 끝에 나온 점수에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너무 신랄하게 비웃지 않고 나는 상쾌하게 웃으며 박수를 쳐줬다. 점수가 왜 나왔는진 대충 짐작이 간다. 아마 완전 신나게 부르느라 음정이나 박자가 도중도중 엇나가서 그럴 가능성이 높지. 사실 자주 노래를 불렀다는 것치곤 조금 어색한 감도 있긴 하고.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린 뭐 가수가 아니다. 여기엔 즐기러 왔다. 녀석은 힘껏 즐기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100점 어치는 한거다.
나는 마이크를 잡으며
"그러고 보면 아까 스릴 얘기 했던가. 아저씨 이 곡 부르면, 서로 점수 대결이라도 할까?"
퉁명스럽게 얘기하는 것 치곤 열심히 부른 노래가 평가 절하 당해서 삐진게 눈에 보여서,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놀렸다. 뭐 이런 일도 있는게 노래방의 묘미라는 것이다.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그러고 보면 이렇게 소리지르는건 나도 참 오랫만이다. 기억을 되찾은 이후 어른스럽게 행동하다보니 언성 높일 때가 잘 없기도 했고. 힘차게 노래 부르다보면, 새삼 스스로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많이 여리다고 느낀다. 그렇군. 15살이면 아직 변성기도 제대로 안왔을 때지. 자기 몸이지만 좀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