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쾌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락해준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거기에 더 놀란 것은, 묘하게 부끄러워 하는 소녀스러운 분위기 였던 것이다. 어, 뭐야 이거? 나 뭔가 부끄러운 말 한거야? 아무 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좀 부끄럽다.
"아, 아니, 뭐, 이상한 짓 할 생각은 없는데....."
말하는걸 보면 뿔에도 감각이 있는건가. 그렇다면 엄연히 신체의 연장선이라고 봐야할지도. 어?? 그럼 혹시 나는 지금, 눈 앞의 여자애한테 '네 몸을 만져봐도 되겠니' 라고 물어본건가?? 자, 잠깐, 잠깐, 오해다, 별로 그런 생각은....적어도 음흉한 의도 같은건 전혀 없었다. 맹세해도 좋아. 아니, 아니지? 아까도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이상한 의미부여라고 경멸 당했다. 똑같은 패턴에 넘어가지 말자. 이것도 별 것 아닌걸테다. 내가 혼란에 빠져 과하게 해석하고 있을 뿐.
따라서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한답시고 쓸모 없는 소리를 하는 대신, 손을 뻗어서 뿔을 만져봤다. 솔직히 뭐 어떻게 만져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매우 조심스러운 손길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만 일단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의 감각이면 아파하진 않겠지......나는 그런 방향으로 잠깐 뿔을 쓰다듬는 것이다.
......
"........좋아! 이 노래로 부를까!"
뿔 쓰다듬기가 끝나고 상대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급격하게 어색함이 몰려오는걸 느꼈기 때문에 기세 좋게 번쩍 일어나는 상대에 맞춰 힘차게 일어서며 질풍가도를 틀기로 했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체 조용히 기다리던 썬더. 뿔을 만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끊임이 없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뿔을 만지려 했고 개중 몇몇은 성공하였으니 익숙할법한 일이었음에도, 매번 긴장 되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좀 덥고 좁은 방이어서 더 그랬을수도 있고... 이윽고 뿔에 손길이 느껴졌을 때,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타인이 뿔에 닿는다는 것은 묘한 기분이다. 그래서 저번에 태식이가 눈으로 유하의 뿔을 밀었을 때도 경악한거고.
" 좋아...! "
어정쩡한 자세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른다. 한번더~~~ 나에게~~~~~ 질풍같은용기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대뜸 아닌밤에 홍두께와 같이 너는 이러한 사람이다라 줄줄이 분석당했때 흔히들 할 법할 길길이 날뛰거나 불쾌함을 내보이는 행동을 하는 대신 소녀는 그저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는 확신에 아무러 대꾸도 없이 차분하게 웃는다.
"시윤씨가 보는 저는 세상의 불합리함에 울분을 감추고 애써 다 자란 사람처럼 구는 천성은 선량한 어린아이로군요. 세상풍파에 휩쓸려 원래 제 나이라면 몰라도 될 세상만사를 보고 느끼고 이에 덩달아 다른 사람들이 하듯 처세술을 익혀 실리에 따라 움직이지만 속으로는 이러한 행동을 얄팍하고 가식적으로 여겨 상대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고 숨김이라. 더하여 누군가에게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도 그리고 웃어른께 잘 보이고 싶어하는 모범생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남아있어 이것이 호승심과 섞여 어설프게나마 대응을 하고 이것이 역으로 유도심문에 걸려 되려 나름 영악하지만 불운한 꼬마를 어르고 잘 지내고자 한 어른의 심계에 넘어간 셈이 되어버렸겠네요."
몇 마리의 햄스터가 견과류의 냄새를 맡고 주변에 모여 킁킁거린다.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예상했다는 얼굴로 다른 손의 해바라기 씨에 씌운 환각의 의념을 지워 이를 보여준다. 자신을 따라 느긋하게 손을 내미는 옆의 소년의 모습을 한 오지랖 넓은 어설픈 어른의 얼굴을 보고 미동없이 눈웃음만을 머금는다.
"시윤씨가 그리 저를 여기신다면 그 것 또한 하나의 정답일 것이에요. 애초에 사람을 봄에 정답이란게 존재하지 않고 누군가 무어라 하더라도 대부분은 보고 싶은 면만 보기 마련이니까요. 지금 제가 시윤씨를 판단함도 지휘관이라는 지위 자체는 객관적인 사실일 수 있으나 만일 지위를 언급하지 않고 단지 좋은 사람이라 말하였다면 이는 필히 누군가에게는 거짓이 될테니까요."
착한아이의 가면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녀에게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해주었다. 차분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세상사에 휘말린 어린 희생양이라는 인상 또한 그리 나쁘지 않다. 특히나 상대가 동정심일지 아니면 자신의 과거 경험에 의한 후회일지 모를 감정으로 다른 사람의 일에 이것 저것 훈계하기 좋아하는 마음씨 좋은 어른이라면 말이다. 자신을 철저하게 가리고 숨는다. 가면에 가면을 덧씌우고 이것또한 환각으로 흐려 진실과 거짓을 섞어 경계를 분간함을 헛되게 보이도록, 그 속에 담긴 켜켜이 쌓인 악의를 눈치채지 못하게 그리하여 방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찰나를 노린다. 암살이란 단순히 목표물을 제거함이 아닌 결정적인 한 순간을 위한 끝없는 인내이니.
그러니 피식자가 저를 포식자라 착각하게 만든다. 지금에 있어 마츠시타 린이라는 인물의 목적은 후일 꽤 높은 확률로 저와 저의 신께 도움이 될 특별반의 인물들과 좋은 관계를 다지는 것이니 괜히 날을 세워서 남는 것은 없기에 착한 아이라는 평가에 고맙다는 행위로 보일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한다. 상대가 원하는대로 그를 온전히 진실로 어른으로 받아들여 경계를 허문다. 살기 위해 사람을 재어야 했던 소녀는 상대의 말에서 그가 보여지길 원하는 자아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까지는 인정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이를 파고들기 위해 자신이 해야할 행동을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그의 말에 의해 단순히 15살 소년이 아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음도 꽤 큰 지분을 차지하였으나 단순히 속으로 15살 애는 아니라 생각함과 진실로 웃어른처럼 대우함은 다른 말이다. 그가 어떠한 경험을 하여 지금에 이르렀음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연륜이 제게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다.
"음, 하지만 제가 특별반 사람들을 적대할 일은 없을테고 저도 그렇고 지금의 시윤씨도 그러하듯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하니 적어도 시윤씨에게 있어서 저는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할거에요. 저는 정신과 겉모습의 연령이 일치하는 편이라 여기고 있으니 시윤씨의 상황에 대해 이렇다할 조언을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외관으로 인해 곤란할 일이 있을때 조금의 도움은 드릴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성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가부키쵸에 위치한 길드에서 자란 사람이 으레 그러듯 배배꼬인 본능이 중얼거리는 속삭임에 따라 그녀는 지금까지 보인 차분함을 지우고 짓궂은 미소를 짓는다.
"예를 들어 아마도 꽤나 그리울 것 같은 주류의 문제라던가 말이에요. 만 19세면 법적으로는 문제 없는 성인이니 아마도 현재 시윤씨가 겪을 생활상의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을거에요."
코인 노래방은 원래 좁다. 그리고 우린 아까부터 노래를 열창하느라 열기도 덥다. 그런 공간에서 눈을 감고 얌전히 긴장하고 있는 여자애와 접촉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다. 왜 아무말도 안하는거야. 평소의 밝고 쾌활함을 보여줘야 하는 때가 아닌가. 가볍게 슥슥 쓰다듬고 넘어갈랬는데, 상대의 긴장이 옮아서 이쪽도 덩달아 긴장해버렸다. .......내가 순수한 15세 청소년이었으면 무조건 오해했다고 이거.
"좋아!!"
묘한 감상을 떨치기 위해, 그 뒤론 나도 생각 없이 신나게 열창하려 노력한다. 질풍 가도는 그런 의미에서 몹시 적절한 곡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