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얼마나 떨어졌더라. 꽤 어질거리는 걸로 보아서 건강의 강화도 이젠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망념이 목 끝까지 차올라 조금만 더 오른다면 의념각성자로써의 죽음이 느껴질 것 같아서 의념 없는 맨 몸으로 죽음에 가까운 감각을 느껴보고 있다. 언제나 망념이 끝가지 오르기 직전까지 온 상황에서 당신은 우리에게 힘든 티조차 내지 않았다. 단지 아이들을 끌어안고 내게 "다녀왔어."란 말을 하면 나는 말없이 고갤 끄덕이고, 당신을 끌어안았다. 헌터니까, 가족이 있으니까 안전하고 적당히 돈벌이가 되는 일만 해오던 나와는 달리 당신은 이런 일을 몇번이고 당연하다는 듯 견뎌오고 있었구나. 구역질이 난다. 생각과 본능의 점등이 빠르게 이뤄진다. 억지로 혀를 깨물어 느껴지는 고통에 눈을 뜬다. 아직은 죽을 수 없다. 적어도 진실의 일부분이라도, 아니면 그럴싸한 거짓말이라도 들어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 보고싶다. 〃. 그 말을 붙잡지 못한 정신 대신에 너에게 보낸다. 나는 살아있다. 죽은 너를 잊지 못하고,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 너의 진실에 닿고 싶어한다. 분명 망가지고 있었고, 분명 안좋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당신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탈 것도 없는 재이기에. 잿불 속에 남은 미련에 타오른다. 이 불이 꺼지는 날이면, 바람에 흩날려 잊혀질 수 있을테니까.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그녀 또한 별 달리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옷깃이 붙잡혀, 아래로 끌어당겨졌을 때. 나는 착각으로 인해 괜한 행동을 한건가 싶었다. 그러나 손목은 단단히 붙잡힌체 접히는 팔을 따라 위로 올라가, 천천히 머리로 인도되었다.
나는 조금 놀라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 전만해도 만지지 말라고 그렇게 으르렁 거렸거늘. 지금은 스스로 쓰다듬어 달라는듯, 말은 아니지만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아.
나는 어쩐지 조금 더 눈 앞의 그녀를 이해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싫었던 것이 아니다. 쓰다듬을 받고 싶은 자신 내면 어딘가의 바램이 자극 당하는 것이 싫었던게 아닐까. 어른스럽게 있기 위해선, 아이같은 모습은 눌러둬야 하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느 의미로, 내게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 응석을 부려온단 것이겠지.
"무척 귀여워."
나는 그것이 어딘가 기뻐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놀릴려는 의미는 조금도 없이, 상냥하고 부드럽게, 솔직한 감상을 얘기하며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번에도 많은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따스한 손길속에서 담긴 감정이 전해지길 바랬다.
세계는 험난하다. 아이가 응석을 부리기엔 시련은 많고, 참고 견뎌 이겨내야한다 강요하는 일 투성이다. 아이는 어른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강해지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이가 근심걱정 없이 밝게, 어른에게 응석도 부리는 세계가 될 수 있기를 바랬던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만드는게 어른의 책임이니까. 아니면, '나' 의 바램이니까. 다시 주어진 삶 속에서 아직은 큰 변화를 일으킬 순 없겠지만. 눈 앞의 소녀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면, 분명히 그것만으로도 낯선 새로운 삶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린다. 등줄기를 흘러 넘치는 오한과, 쉴 새 없이 흐르는 식은땀까지. 저격수로서 쌓아온 직감이 외치고 있다. '저 것'은 위험하다고. 당장 물러나야 한다고.
아. 아아. 아...... 아 - .
고통을 호소하듯, 혹은 낮게 탄식하듯, 혹은 울부짖듯, 혹은 상대를 비웃는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뭉쳐있는 살덩이들은 서로 달라붙어 뒤죽박죽 섞여, 기괴쩍은 모양새를 이룬다. 그런 것이 건물만한 크기로 질퍽 질퍽 굴러다니는 광경이란 썩 비위에 좋지 않은 것이다. 더더욱 안좋은 것은, 피투성이의 두 팔로 주변에 잡히는 살덩어리를 낚아채어선 자신의 고기반죽 속에 밀어넣는 것으로 덩치를 불리고 있다. 이미 내가 처음 발견한 시점보다 조금이지만 명백히 커져있다.
"빌어먹을."
나는 한발 더 사격하곤, 녀석이 이쪽으로 느릿하게 걸어오는걸 보고 서둘러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몇번째지? 저 괴물을 발견하고 나서부터 전력으로 견제 중이지만, 얼마나 유효한진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 도망치고 싶지만, 그건 그거대로 짜증날 정도로 직감이 외치는 것이다. '위험해진다.' 고. 지금도 위험하고 미래도 위험하다면, 결국 맞상대 할 수 밖에 없다.
"큭 - !?"
상념을 깨트리듯 거대한 팔이 내가 있는 장소로 손아귀를 펼쳐 다가오는 것을, 옆으로 요란하게 굴러 간신히 회피한다. 엄폐물로 삼던 기둥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마치 꼭꼭 씹어먹는 것 마냥 살덩이 속으로 묻혀 사라진다.
"재활훈련 상대치곤 난이도가 높은데."
아무도 듣지 못할 불만을 중얼거리고 나서, 나는 후. 하고 심호흡을 고른다. 몸에 떨림은 있고, 마음의 동요는 하고 있지만, 역성혁명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이 쪽은 수십번은 공격해야 쓰러트릴 수 있고, 저 쪽은 한번 맞추면 치명타라. 그것 참 합리적이구만. 매우 공평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승부지만, 까짓거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