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얼마나 떨어졌더라. 꽤 어질거리는 걸로 보아서 건강의 강화도 이젠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망념이 목 끝까지 차올라 조금만 더 오른다면 의념각성자로써의 죽음이 느껴질 것 같아서 의념 없는 맨 몸으로 죽음에 가까운 감각을 느껴보고 있다. 언제나 망념이 끝가지 오르기 직전까지 온 상황에서 당신은 우리에게 힘든 티조차 내지 않았다. 단지 아이들을 끌어안고 내게 "다녀왔어."란 말을 하면 나는 말없이 고갤 끄덕이고, 당신을 끌어안았다. 헌터니까, 가족이 있으니까 안전하고 적당히 돈벌이가 되는 일만 해오던 나와는 달리 당신은 이런 일을 몇번이고 당연하다는 듯 견뎌오고 있었구나. 구역질이 난다. 생각과 본능의 점등이 빠르게 이뤄진다. 억지로 혀를 깨물어 느껴지는 고통에 눈을 뜬다. 아직은 죽을 수 없다. 적어도 진실의 일부분이라도, 아니면 그럴싸한 거짓말이라도 들어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 보고싶다. 〃. 그 말을 붙잡지 못한 정신 대신에 너에게 보낸다. 나는 살아있다. 죽은 너를 잊지 못하고, 다른 살아있는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 너의 진실에 닿고 싶어한다. 분명 망가지고 있었고, 분명 안좋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당신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탈 것도 없는 재이기에. 잿불 속에 남은 미련에 타오른다. 이 불이 꺼지는 날이면, 바람에 흩날려 잊혀질 수 있을테니까.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만 해도 오늘의 하루가 행복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공터까지는 한걸음만 더 가면 됐고, 가기만 하면 신나게 폭죽을 쏘며 하루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니까. 나름 기분이 좋아지면 저녁밥도 같이 먹고 자기 몫을 살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길을 걷던 유하를 튀어오르게 만든 마수를 뻗은 것은 윤시윤... 꼬리 끝이 쥐어지는 감각에 가볍게 폴짝 뛰며 뒤를 돌아보니 꼬리를 잡고있는 시윤이 눈에 보였다.
엎드려서 자세를 취한뒤에 동의한다는듯 대꾸한다. 비에 푹 젖어 전신은 축축하고, 바닥을 기느라 전신은 진흙 범벅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는 불쾌한 경험일지도 모르나, 시윤은 투덜거리기는 커녕 매우 덤덤하고 익숙하게 행하는 것이다.
"그래도 꼭 안좋은 것만도 아니다. 짐승형 몬스터의 후각도 이런 날씨에선 둔해지니까."
오히려 분명 기록상으론 연하에다가 경험도 적은 신입에 가까울텐데도 수수께끼의 신빙성있는 조언도 하는 것이다.
나는 준혁이 지시하는 타이밍에 맞춰 고블린 한마리를 더 격추했다. 곧 있으면 대운동회다. 신병의 입장에서 파악하기에, 이 부대의 지휘관은 이 놈인 것 같다. 물론 대장은 달리 있는 모양이지만. 저격수 입장에서는 지휘관과 호흡을 맞추는건 필수적이니까. 이렇게 게이트에 동행해서 훈련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스코프로 고블린의 동향을 살핀다. 지능이 아주 높은 적은 아니지만, 원거리 암살을 당하고 있음은 눈치 챘을거다. 아직 까진 당황하며 찾는 모양새다만, 이 위치에서는 이미 몇발 쐈다. 적이 의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쏘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오토나시는 학교라는 장소를 썩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에 수련과 같은 ' 외부 '에서 하기 힘든 일이라면 가급적이면 밖에서 처리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아무래도 미리내 고교의 교육은 헌팅 네트워크를 통해서 원격으로도 이루어지기 마련이기에 그렇게 나돌아다니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큰 상관은 없을 겁니다. 그런 오토나시가 오늘 있는 곳은 미리내 고교의 옥상입니다. 손에는 정체 불명의 로프 하나와 투박한 벽돌을 들고 있네요.
" GPS를 통해 길을 찾는건 너무 비합리적인 행동이야. "
중얼거리는 내용을 봐서는 오늘도 또 학교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헌팅 네트워트 안에 있는 GPS기능은 충분히 성능이 좋을텐데요. 그 기능을 온전히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이해조차 하지 못한 것인지... 그러면서도 오토나시는 착실하게 투박한 벽돌에 로프를 단단히 묶어 고정하고, 자신의 한 쪽 발목에도 로프의 반대편 부분을 묶고 있네요.
" 흠. 이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 "
발을 툭툭 옥상 바닥에 내리찍어 로프가 잘 묶였는지 확인하는 듯한 행동을 취해보인 오토나시가 그 다음으로 하는 것은... 옥상 난간위로 올라가려는 동작을 취하는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언제나의 오토나시식 ' 누구보다 빠르게 학교 정문으로 내려가는 초-심플한 방식 '이네요!
다시 잘 닫아두었다고 생각한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지만 말입니다.
옥상은 내 영역이다. 아니 내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만큼 자주 가는 사람은 없을거다. 내가 자주가면 특별반이니 특별반 아닌 사람들은 꺼려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나 말고는 사람들이 잘 안오게 되는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옥상문을 열자 이상한 짓을하고 있는 토리가 보인다. 폴짝 뛰어서 옥상 난간 위에 균형을 잡고 쪼그려 앉고는 토리를 향해 말한다.
"뭐해"
얘가 전투전문은 아니어도 각성자인 이상 뛰어내려도 죽진 않을테니 뭔가 목적이 있겠지 그도 아니면 진짜로
옥상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무리 기억력이 안 좋은 오토나시라고 해도 ' 특별반 '인원 중 한 명이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리본의 형태를 한 머리끈.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면 보이는 아주 짧은 수염. 태식 또한 인상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니까요.
" ' 번지점프 '인거야. "
뭔가 엄청난 오해를 산 것 같은 느낌인데요 이거??? 오토나시는 벽돌과 로프를 향해 검지손가락을 가리킵니다.
" 음. 줄도 똑바로 있고 ' 안전장치 '도 있어. "
이게 정말로 ' 안전장치 '로 작용을 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태식도 알고 있다시피 오토나시는 ' 힐러 '이니까요. 조금 다치더라도 스스로는 수복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학교에 들어오면 다시 입구로 나가기 힘들단 말이지. 응. 이쪽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니까. "
그렇게 말하면서 태식을 바라보는 오토나시의 자색 눈동자는 분명 그렇지 않냐는 의미를 담고 있는것만 같습니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 보다 옥상에서 떨어지는게 그 외 부가요소를 빼놓고 스피드 만으로 따지자면 ' 확실히 ' 빠르긴 하잖아요? 오토나시의 사고방식에서는 그것이 최선일 겁니다...
새삼스러운 소리에 피식 하고 웃으며 대답하곤, 포인트로 함께 걷는다. 이 쪽으로 함께 걷는 와중에서도 시윤의 태도는 차분했다. 15살 어린 나이에 막 특별반에 편입한 신입생이 분명할 터인데. 자신의 실력에 대한 과신도, 혹은 미지의 게이트에 대한 불안도 없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처럼 매우 차분하게 자신이 해야되는 일만을 수행한다. 그 실력이나 움직임 자체는 특출나다고 말할 것 까진 없지만, 태도 만큼은 매우 익숙한 것이다.
"지휘관으로써 신병의 파악에 노력한건 좋은 일이군. 자기가 다룰 부대원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좋다.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인간적인 관계도 쌓아올려야 된다고 보는 편이고. 왜냐면 전적인 신뢰란 직위만으로 부여되지 않으니까."
새로운 포인트에서 자리를 잡고 스코프로 지시에 따라 저격을 실시한다. 나를 조사했다는 말에 기분이 나쁘긴 커녕, 좋은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의아하게 여기고 있겠군. 특별한 건 하나도 없는 신병이 얼추의 기초를 갖춰 특별한 비전을 익히고 있다. 그 위화감을."
내가 의념 각성자가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 반대로 말하자면, 나는 어린 나이에 별 다른 계기도 없이, 각성 직후에 지금 정도의 수준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게 특별반에 편입하게 된 원인 중 하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