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군은 말씀을 들어보면 꼭 1세대 분들 같사와요. 소녀가 그분들을 실제로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온전히 먹음을 축복할 세대라면 현대와는 조금 거리가 있으니 말이와요."
아저씨라 부르면 손사래를 치며 오빠라는 되도않는 호칭을 고수하다 나이값 못한다는 시선을 받곤 했던 전 길드원들을 떠올린다.린 본인도 그들에게 어이없다는 시선을 던지곤 했지만 그 풍경엔 나름의 긴장을 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해학과 유쾌함이 자리했기에 그들의 그런 너스레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어요. 소녀가 만일 1인칭으로 어르신이나 노야와 같은 단어를 썼다면 그런대로 다른 분들이 의아해 하셨을 것이와요."
젊다 못해 저와 똑같이 새파랗게 어려보이는 외관이지만 린은 이를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어리면 보여지는 그대로 최대한 어려보이는 것이 남들의 방심을 이끌어내어 약점을 파고들기에 좋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진실인지 아니면 애써 어른인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굳이 나이가 있음을 드러내는 시윤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기는 다른 이들과 매한가지였다. 이와 별개로 나이든 사람들 특유의 아집은 보이지 않으니 이를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며 시윤의 웃음에 맞추어 저도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아, 이종족분이라 듣기는 하였으나 용족일 줄은. 소녀는 되도록이면 반의 모두와 잘 지내고 싶사오니 너무 염려치 마시와요."
묘하게 영월 작전이후로 분위기가 가라앉아 제가 들어올때만 하더라도 반쯤 초상집 같았던 특별반의 분위기를 떠올린다. 확실히 밝고 기운찬 사람이 한 명쯤 들어온다면 다른 사람들도 조금은 기운을 차리겠지 전혀 나쁘지 않은 인선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긋나긋하게 웃는 얼굴을 만들고 대화를 이어간다.
"들어오자마자 저와 다른 분들은 신고식을 치러야 했지만 나름 좋은 경험이었기에 이제 마음에 크게 남은 앙금은 없사와요. 지금 들어오신 분들은 이미 저희와 같은 편입생들이 몇 있으니 마뜩찮은 시선은 덜 할것이라 생각하여요. 그러고 보니 시윤군은 어쩌다 편입하게 되셨는지요?"
situplay>1596528066>801 그는 잊은 감을 되찾고 싶다 했다.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미경험의 것들이 내 경험의 일부가 되었던 일 말이다. 덕분에 큰 몸살을 앓고 한동안 모든 능력이 상당히 감퇴하기도 했었다. 경외하는 메리 하르트만의 배려로 상태는 모두 회복했지만, 그가 말하는 '전생의 기억'이라는 것도 허구적인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가 제 사정을 본디부터 해명하지 못하는 것은 그 기억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억을 되찾는 일도 몹시 고통스러운 과정일까. 문득 떠올라 겹쳐 보이는 생각에 내심 그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 것은 지금 마시고 있는 음료 탓이었다. 그의 과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당장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래. 같이 다녀줄게."
이것저것 대답의 이유를 대어가며 말을 길게 하지는 않는 편이라서. 신뢰 여부를 떠나, 그가 먼저 협력을 제안해 주었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하고 고마웠다. 지원사격이야 늘상 하던 일이기도 하고, 보물이나 찾는 것보다는 내 실력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밥은 됐으니까, 거기 다녀와서도 친하게 지내자."
갑자기 귀가 가려워서 털을 가다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로 귀를 쓸어내리며, 음료 캔을 입에 문 채로 시윤을 올려봤다.
situplay>1596528066>912 그냥 손이나 씻고 세수나 하려고 했는데, 화단에서 전적으로 흙먼지를 뒤집어쓴 탓에 샤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물로 몸을 씻어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침에 이미 목욕을 했으니까.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휴게실로 향해, 한쪽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다지 비밀스러울 일은 아닌데 이유 모를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고 보니, 뿔을 만져도 되냐고 물었을 때 유하는 왠지 모르게 얼굴에 홍조를 띠었었지. 내가 머리를 만져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드래곤도 뿔을 만져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그런 엉뚱한 생각이나 하면서 소파에 몸을 묻었다.
...
유하가 휴게실에 들어오자, 라임은 여기 앉으라는 것처럼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 탓일까, 샤워까지 하고 온 라임보다 더 늦게 휴게실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종족간의 차이를 고려해 본다면, 뿔을 만지고 싶다는 요청은 분명히 별다른 의도가 없이 신기하고 본 적 없는 녀석과 접촉하고 싶다는 의도 외에 다른 것이 있을리 없다. 휴게실의 문이 열리고, 라임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두드리는 모습도 보인다.
" 마, 만지셔도, 됩니다... "
뻣뻣하게 걸어들어가 라임의 옆자리에 쓰러지듯 앉은 유하는 허리를 쭉 펴고, 양 손을 무릎 위에 얹은 경직된 자세로 대답했다.
>>970 유하는 꽤나 경직된 모습이어서, 어쩌면 뿔을 만지는 행위가 건전하지 않은 일이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뿔이 달린 동물들은 사랑을 나누는 행위로 서로 뿔을 맞대어 비비곤 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강제적으로 뿔을 만지게 해달다고 강요한 것도 아닌걸.
"불편하면 말해줘야 돼."
라임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서 유하의 머리 위에 돋아난 뿔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처음 느낀 감상은 방금 땅에서 뽑은 아주 신선한 당근처럼 생기롭다는 것이었다.
어저께 알렌이 오만하게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거 다시 읽어봤거든!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오만하게 비춰질 수 있겠다는 이야기가 맞지? 무모한 행동을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지만, 포부가 크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냥... 새벽에 내가 정신이 좀 없어서 신경써서 답변해준 거에 반응을 제대로 못했어서!!
갓 뽑힌 당근 같다는 감상을 들려준다면 유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상대방의 급소를 노리고 뿔로 찌를 테였지만, 라임의 생각은 유하에게 닿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뿔이 다른 무언가에 닿는 감각은 인간의 경험으로 표현하기 힘든 녀석이었다. 태식에게는 손톱 위를 눈알로 만지는 기분이라는 설명도 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게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꽤 민감한 기관에 접촉이 이루어지는 것은 정말 묘한 기분이라, 음 흠 큼 하는 헛소리가 중간 중간 세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