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움직이는 편은 아니라 그렇다. 움직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까, 아니면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전자라면 개인의 성향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후자라면 그 이유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지 않으려나. 그녀는 흥미가 있는 듯 미소지으며 고양이를 만졌다.
"움직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심까?"
궁근하면 물어봐야지. 그렇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건넨 그녀는 어째서 로직 봄에 와 있는지 물었던 이전의 질문에 시스가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하자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심까? 확실히 클랜에서 일을 해나가는 게 돈도 되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긴 함다만."
어째 좀 불편해 보임다? 분명 분위기를 읽었고 상대방이 그다지 쉽게 대답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런 부분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듯 말을 뱉어냈다. 오늘 처음 본 거 맞나?
불안정해졌는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사라졌다. 미숙했기에 능력이 생긴건 꽤나 오래전이거늘 쓸생각조차 하지 않고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헤치며 그저 인형마냥 보내선지 아직도 능력을 다루는건 어색했다 사소한 흔들림에도 불안정하다니 이건 써먹지도 못할 폐기물이 아닌가. 자조하면서
"활동적인편은 아닙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움직이기 시작했고"
실제로도 이곳에 오기전까진 폐인같이 지냈으니까 그럼에도 자신을 챙기고 돌봐준 바보같이 착한 그 사람이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어서 일까? 사실 살아달라는게 뭔지 이마저도 이렇게 나이를 먹고 알아낸것이 없어 무작정 들어왔으니 알턱이 있을까 새가 새장에서 나온다 한들 평생을, 아니 생에 반절 이상을 새장에서 보냈건만 새장에서 나온다 한들 아는게 있을까 무수한 위험에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건만 클랜장이 아니었으면 사실 이곳에 가입한다고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렇겠죠. 저는 아직 일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곧 하겠죠"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라는게 정말이겠지 내가 역시 이상한걸까. 다들 이겨낸거겠지 마음 속 깊이 빠져든다 스며들듯 내리는 어렴풋한 원망과 죄책감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어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어찌됐거나 평범하게 넘기자 이것 역시
갑자기 잘 만지던 고양이가 사라져 버렸다. 뭐지? 인간 말고 고양이도 OS를 가지고 있는 건가? 뭔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일지도. 어쨌든 그녀는 갑자기 사라진 고양이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손을 꼼지락댔다. 잘 만지고 있었는데, 아쉽다.
"그건 꽤 좋은 일 같슴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움직이게 된다면, 멈추는 순간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면... 이건 상어 같은 거지만 어쨌든. 움직일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인지 그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웃었다. 상대가 그다지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지만.
"별로 어렵진 않을 검다. 다른 사람들도 최근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주려고 할 테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됨다."
그 전까진 어땠던가~ 솔직히 기억에 팍 하고 남아 있는 건 없는 거 같다. 그만큼 별 일 없이 살았다는 얘기가 되려나? 아무래도 좋지만. 시스의 분위기를 읽고 그걸 그대로 말해버린 그녀는 시스가 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화제를 새로 꺼내자 더 캐묻는 대신 그 화제에 신경을 옮긴 듯 보였다.
"대략 2년 정도 됐을 검다, 그래도 아직 이야기를 진득하게 나눠 본 사람이 많지는 않슴다."
사람 숫자가 많지도 않은데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건지 알 방도는 없다. 그녀는 그냥 웃을 뿐이었다.
"뭐 꼭 하고 싶은 거라도 있슴까? 단순히 살아남으려는 사람들도 점점 여유가 생기면 더 바라는 게 생기지 않슴까, 적어도 클랜 바깥에서 지낼 때보단 여유로울 거라고 생각함다."
도와준다라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해 잠깐의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역시 나를 제외하고도 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들고 있겠지 같은 느낌의 동질감같은 걸 느낀다 라는게 아닌 그저 이곳은 정말로 아무나 자유롭게 받는다.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덧붙이듯 말했다.
"그런가요. 저 역시 자주 다른분을 만나 뵙게되겠죠."
상대를 마주보며 하는것이 대화라지만 남을 바라본다라는것이 퍽이나 어려웠던지라 시선은 여전히 허공을 바라본채였다. 이것이 올바른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지라도
"2년... 진득하게 대화라..."
곰곰히 생각이 들었다. 대화상대를 두고 갑자기 혼자 상념에 빠진다라니 정말로 상대에게 예의가 아니겠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어떤느낌의 사람인가에 대해 짧게 정의를 내렸다고 해야할까. 계속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생각할때쯤 들려오는말에 정신을 차렸다. 하고싶다. 라는게 목표점이라는게 달랑 살아간다 라는 한 문장이여서 무엇을 해야되는지 원하는지 길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백지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미래에 대해서는"
대화한다는거 사실 굉장히 어려운게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이렇게 단답형으로 말해도 괜찮지 않을텐데 계속해서 받아주는 그녀가 상냥한거겠지
어쨌든 여기 모인 사람들은 서로 어느 정도 좋게 생각하는 것 같고, 동료라고는 생각하는 것 같으니 쉽게 버리는 일은 없을 터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인연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다른 클랜과의 분쟁을 경험한 입장에서 모두가 도와가며 살아간다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돈 알았지만 최근에 다른 클랜을 도와주기도 했고, 그 댓가로 잔뜩 물자를 받기도 했으니 또 아니라고 보기에도 뭣한 그런 상황. 모순이라는 게 바로 삶인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웃던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것 같다는 시스의 말에 고갤 끄덕인다.
"좋든 싫든 마주치게 될 검다. 아무쪼록 좋았으면 하지만."
생리적으로 싫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걸 좋아해야 한다고 말해줄 수는 없는 법.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지 않긴 했지만 수줍음이 많은가 보다~ 하고 넘기면서 그녀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는 시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누군들 쉽겠슴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은 하지 마심다?"
심각하게 생각하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질문으로 심각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한 그녀는 잠시 동안 시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씨익 웃더니 기지개를 폈다.
폐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도와준 그 사람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겠지 이런 부숴지고 남은 기계 부품마냥 삐걱거리면서 불협화음만 만들듯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겠지 하염없이 틀어박혀 죽을 수도 있었건만 반응조차 하지 않고 있는 시체처럼 가만히 있던 자신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준 은인마냥 할 수 있을거란 생각따윈 전혀 들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불안감과 좋지 못하 생각만 계속되었다.
"그렇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러든 저러든 누굴 만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을 신경쓰기엔 스스로 조차 담기엔 버겁지 않은가. 자신이라는 그릇조차 흘러넘쳐서 담을 수가 없는데 누굴 신경쓸 수가 있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죽지 못해 사는것처럼... 아니 또 나쁜 생각이 들어버려 찾아오는 느낌에 손목을 슬며시 긁어냈다.
"네, 조언 감사드립니다."
딱딱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 하나 이정도면 유연하게 대처했겠지 라고 하나 생각이 점점 맞물리면서 어지럽혔다. 칙칙한 자신과 다르게 너무나도 밝아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기에 마음속으로 한숨을 한번 푹 쉬고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랄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약하다. 맨몸으로 바깥에 던져지면 혼자 얼마나 살아남겠어. 지금이야 OS라는 게 있다지만 그만큼 바깥에는 디스포라는 게 우글우글하다. 디스포 사이에 혼자 떨어지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면 가능한 사람이 있긴 할지도. 입 밖으로 냈던 말을 수정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뭐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도 있잖슴까~"
그런 말이 있었나? 아무렴 어때. 그녀는 웃으면서 시스를 쳐다보다가 고양이와 노는 걸 방해한 건 아니냐는 질문에 전혀 문제없었다는 답을 들었다. 뭔가 힘을 다해서 아무런 문제 없었다는 걸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약하단 이야기 정론이다. 그러니 전부 죽어버린거겠지 아니 그건 내가 약해서 지키지 못해서 내 잘못이다. 그 빌어먹을 괴물들만 없었으면... 전부 죽여버려야만... 짜증날정도 올라오는 감정들 탓에 암울한 전망밖에 떠오르지 않아 억지로 생각을 끊었다. 또 가라앉은채로 시간을 보낼뻔했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건 좋은 이야기네요."
겉으로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 그럴리가 없지. 기워붙인 상처따윈 잠깐의 자극만으로도 다시 터질 수 있다는걸 알고있다. 수도없이 느껴봤고 그사람 마저 그런게 있었으니까 분명 해결해주는 일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분명히 좋은말로서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비틀리고 추악하게 받아들인 스스로가 너무나도 역해서 심장이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