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라는 바다 아래에 가라앉듯 짓눌려버린 마음이였다. 은인의 단 하나의 부탁때문에 실로 끊긴듯 삐걱거리는 몸뚱이를 움직여 살겠다고 클랜에 가입했었지. 스스로가 웃기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불을 질렀다. 이게 정말로 부탁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원동력인지 모르겠지만
클랜에 가입하고 나서 느낀건 어렴풋이 떠오르는 클랜의 분위기였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 한줄로 평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싶어. 멍청하게도 의지도 없고 정처없이 떠다니는 하나의 나뭇잎마냥 흘러가는 느낌으로 눌러앉았다. 스스로가 말을 걸기엔 그들이 너무나도 밝아보여서 역하게도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조소가 띄는 반면 다가가면 죄를 짓는것 같으면서도 다시 관계를 맺는다는것에 두려움을 느껴 외면했다.
오늘도 외면하고 또 외면해서 구석쪽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근처에 누가 온듯 자꾸만 인기척이 느껴져 슬쩍 눈을 돌려 보니 2년정도 선배였던가.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분명 찬란한 빛마냥 밝은 그녀가 보였다. 그러니까 이름이 아도니아 린이였던가. 먼저 말을걸까 하면서도 쉽사리 입이 때어지질 않아 다시 시선을 돌려 그림자로 고양이를 만들어서 놀아주기로 했다.
최근 들어서 죽을 고비를 자꾸 넘기는 거 같은데 이게 보통이려나. 세상이 변하기 전을 떠올리는 것 같지만 글쎄, 제대로 떠오르는 게 있으려나. 아무튼 생각하는 듯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는 제 의지를 가진 듯한 발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누군가가 구석에 앉아 있는 걸 보았다. 시스가 그녀를 보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도 눈이 마주쳤겠지만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의 눈은 마주치지 않았고 결국 이번엔 그녀가 시스를 쳐다보는 상황이 됐다.
"오, 안냐심까~"
눈에 띄었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마치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인사와 함께 그녀는 성큼성큼 시스 쪽으로 다가섰다. 고양이? 랑 놀아주는 것 같은데 고양이 좋지~
보통 먼저 말을 거는편이 아니다보니 만나더라도 짧게 목례만 주고 받고 떠나는게 일상이라 이번에도 역시 말을 안걸면 지나가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다가오듯 걸어오는 그녀는 생각외로 키가 컸다고 해야할까. 외적으로 관심을 잘 안가졌기에 주변인들 역시 흘낏보고 잊고 살았나 싶었다. 말없이 앵기는 고양이를 어루만져주면서 린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무난하면서 짧은 단답 초면에 이정도면 문제없겠지 하면서도 클랜내에서도 조용히 지내 아는사람없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내심 말을 걸어줄준 몰랐던터라 조금 당황했다. 표정이 겉으로 드러날정도는 아니지만, 답변을 무엇으로 해야하나 하고 생각할무렵
야옹-
다시금 우는 고양이의 턱을 긁어주며 골똘히 생각했다. 말주변이 없어 쉬이 말하기가 어렵기도 했고 이토록 밝은 분위기가 어색한터라 멈칫한것 역시 맞았고 내 거리감이 이상한건지 이사람이 이상한건지 모를따름이라
"그저 고양이랑 놀아주고 있었습니다."
분명 연상이였나. 를 짧게 생각하며 어렵사리 생각한게 고작 저 한마디였지만 단순하게도 이게 전부 였던지라 다시 어색하게 말이 끊기는건 아니다 싶어 덧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통성명정도는 하는게 맞겠지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그녀를 보며 이사람 고양이를 좋아하는건가 싶었다. 물론 어림짐작이지만 계속된 관심에 어짜피 상관없다 싶어 고양이를 대충 잡아 올려 그녀에게 내밀었다. 고양이는 불편한듯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애초에 이거 내가 만든 그림자지만 놀랍다고 해야할지 언제부턴가 쓸 수 있게된 능력이였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아 매번 이렇게 탈력감을 느끼게 되버렸달까
"괜찮아요. 이 녀석 문제없으니까." 야옹-
당연하겠지만 이거 살아있는게 아니니까 짧게 통성명을 마치고 웃는 그녀를 보면서 짧은 향수가 느껴졌다. 분명 자신의 소꿉친구 역시 밝은 사람이더라, 라고 이 사람말고도 다들 활기찬 사람은 많이 보였으니까
"그러게요. 다들 좋은사람 처럼 보였어요. 환영인사는... 아마 아직이겠지만"
분명히 인사를 나눴던 사람도 있었고 지금처럼 초면인 사람도 있었지만 보통으로 다들 좋은사람 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인데 다들 밝다. 내면을 감추고 사는것인지 아니면 이겨낸건지 다시금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짧게 상념을 끊고자 고개를 살짝 저었다. 어찌저지 말이 끝나고 고개를 젓는 모양인지라 타이밍이 곂쳤다고 해야할지 약간 곤란해졌지만 남의 속을 알아내는 재주가 없으니 그러려니하고 넘기는게 맞겠지 남은거라곤 치졸한 복수심과 체념 그리고 죄책감밖에 없으니 신경쓰기엔 너무나도 힘들었으니까
넘겨진 고양이를 힐끗 쳐다보곤 다시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일렁이는 작은 죄책감 때문에 살짝 불편해졌다. 단지 살기위해 복수를 위해 단 하나의 망집을 위해 왔건만 주변과 자신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이질적이게 느껴진탓에 주저하고 어색해서 멀어지고 볼품없이 무너지는것같아서 내려놓은 손을 꽉 쥐었다. 이겨내야 한다는걸 알지만 그게 쉽게 될까. 그럴리 없지
"그냥, 제가 자주 움직이는 편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고양이를 만지작대는 그녀를 보았다. 이후에 들리는 말에 살짝 움찔했지만 티가 나지 않게끔 표정을 갈무리한것도 있었고
"..."
이곳에 온 이유 단 하나의 부탁 살아간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일렁이기만 했던 작은 죄책감이 댐이 무너지듯 터져나와 나를 잠식했다. 여기서 끊기면 어색하겠지 슬며시 '네 탓이야' 라며 들리는 환청에 살짝 어지러워진듯하여 눈을 한번 깜빡였다. 마치 밑에서 뒤에서 누군가가 스스로를 옮아매듯 잡아 채는 느낌에 부쩍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이대로 쏟아내면 질척하고 추악한 본인의 감정을 드러낼것같아 둘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