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밟았다느니, 오로라를 만나면 말해준다느니, 희안한 언동들이지만 왠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진다. 이상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이 하나의 개성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표현이 좀 독특하구나 싶을 뿐이다. 저렇게 말해도 대화는 문제가 없으니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론 요조라는 코로리에게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다. 느슨하지만, 완전히 풀어놓지도 않은,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기억, 하죠... 이자요이, 코로리 씨..."
이름으로 불러달라 한게 그렇게 기뻤는지, 슬쩍 본 얼굴은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욱 크고 동그래져서 요조라를 보고 있다. 그런 눈으로 보면서 이름을 기억하냐고 묻길래, 요조라는 당연히 기억한다고 대답했다. 첫만남이 워낙 여러 의미로 임팩트 강렬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하듯 누구세요를 시전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저 눈이 실망하는 걸 보면 어쩐지 죄책감이 2인분으로 밀려올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순순히 대답해주고 앞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후 현관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요조라는 코로리를 다시 바라보았을 것이다.
머뭇거리며 들어온 코로리에게 방으로 갈지 거실로 갈지 물으니, 코로리는 올라가도 되냐고 되묻는다. 방으로 가겠다는 의미겠지. 선택지를 내준 건 요조라였으니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안내를 하려는데, 느닷없이 덧붙인 말에 요조라의 표정 또다시 의문에 빠진다. 아까부터 나온 저 A/S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뭐, 방에 가보면 알겠지, 속으로 자문자답을 한 요조라는 현관 옆 계단을 가리키며 여기로 올라가면 된다고 말했고, 가는 길 작게 중얼거린 말 있었다.
"유령 남매려나..."
작은 혼잣말이었지만 코로리가 못 들을 만한 음량도 아니다. 그렇지만 요조라는 들었는지 아닌지, 딱히 눈치 보는 기색 없이 느긋히 걸어 코로리를 방으로 데려갈 뿐이다. 길지 않은 2층의 복도 끝, 왼쪽 방, 굳게 닫힌 방문엔 밤 야(夜) 자 먹으로 적힌 동그란 나무패가 걸려있어 누구 방인지 알 법 하다. 그 방 문을 연 요조라는 잠시 흠칫, 했다가 빠르게 체념한 듯 짧은 한숨 내뱉는다. 그리고 코로리를 보며 들어오세요, 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한발 앞서 들어가서 좌식 테이블 위에 펼쳐진 스케치북, 채색 도구 등등을 솜씨 좋게 모아 별도의 책상 위로 옮겨 놓고, 깨끗해진 테이블 앞에 푹신한 방석 놓아주며 여기 앉으라 권한다.
"마실 거... 좀, 가져올, 테니까... 쉬고 계세요..."
앉을 자리를 만들어 준 뒤 요조라는 다시 방을 나가 곧 계단 내려가는 소리 날 것이다. 코로리 혼자 남겨졌을 방 안은 혼자 쓰기엔 좀 큰 크기지만, 이것저것 있는게 많아 결코 휑한 느낌은 없다. 책장엔 책과 그림도구로 빼곡하고, 잘 접은 이젤이 빈 캔버스와 함께 한구석에 세워져 있고, 벽은 갖가지 사진집을 잘라 낸 페이지들로 면마다 다른 풍경화 마냥 채워졌다. 특히 천장은 다수의 밤하늘과 별 사진들로 천장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를 만들어 놓았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상이 강렬한 방이다. 그 속에서 코로리의 드림캐쳐는 침대 옆 창틀에 있었다. 잘 다루었는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깃 하나 망가진 거 없이 온전한 드림캐쳐는 전용 아크릴 받침대에 걸어져서 다소곳이 놓인 모양새다. 유독 그 하나만 특별 취급 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 이 요란스럽다면 요란스러운 방 안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내어 찾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방 구경을 한차례 할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계단 오르는 소리 나고 곧 방으로 요조라가 들어온다. 팔로 받친 작은 쟁반엔 길쭉한 유리컵 두개와 접시 하나 있다. 가게의 점원복 차림으로 그런 걸 들고 들어오니 꼭 이 집의 메이드가 된 듯 해 보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요조라는 좌식 테이블에 쟁반을 올리고 각자의 앞에 유리컵 내려놓는다. 빨대가 꽂힌 투명한 유리컵 안은 얼음과 초록색 청포도 사이 노란색 레몬 한조각 섞인 에이드가 담겼고, 테이블 중앙에 놓인 접시엔 주먹만하게 큼직한 슈크림 서넛 듬성하게 쌓였다. 자신도 방석 하나 끌어와 앉은 요조라는 아이고, 하듯이 날숨 한번 내뱉고, 코로리에게 음료와 슈크림을 권한다. 그리고 자신 몫의 컵 가져와 빨대로 휘휘 젓고, 한모금 짧게 마셨겠지.
"인간도 게으른 자 있고 무엇이든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도 따로 있듯이 신도 신 나름인 것입니다. 저는 이리하길 좋아하는 신일 뿐이고 말입니다."
다른 신들이 대체로 어떤지는 그도 확언하지 못한다. 신들이란 워낙 제각각으로 생겨먹은 존재고, 아마츠코토시로는 그간 남에게 깊이 관심 있던 신이 아니었던 탓이다. 아무튼 그게 지금 중요할까. 그는 몸을 조금 옆으로 물려 자리를 내주었다. 그렇게 반딧불 형형히 빛나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보다 눈앞의 게임에 정신을 판 신이 2주(柱: 일본어로 신을 세는 단위) 되셨다. 세속화된 신의 행태를 보여주기에 이보다 더 좋은 광경이 없을 듯했다.
"네, 그랬습죠. 지금은 휴직 중이지만 말입니다. 저 역시 추론을 해보자면, 뱀으로 형상화된 강의 신이십니까?"
이름에 바다가 들어가니 오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큰 강을 용이나 뱀의 형상과 연결짓는 것은 인간의 모든 문명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비슷하다면 비슷한 경우라 그는 제 쪽을 가리키며 이렇게 덧붙였다. "비슷하군요. 저는 은비늘 번쩍이는 물고기입니다."
그는 순순히 폰을 넘겨주었다. 설마하니 별 일이 있지도 않을 테고, 있더라도 자신에게는 큰 문제 되지 않을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령신이 입꼬리를 길쭉하게 당기며 씩 웃는다. 그는 성격에 조금 고약한 기질이 있어서 누군가를 골리길 좋아하는 신이다. 그는 '事'의 흐름을 보아 많은 것을 아는 능력이 있지만, 타자의 생각까지 훤히 읽지는 못한다. 그러나 미즈미의 그 반응으로부터 어떤 심리─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를 톡 건드렸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놀려먹으려는 심산을 굳이 숨기지도 않고 미즈미의 시야 안에서 공연하게도 얼쩡거린다. 몸 가까이 했다가 멀어졌다가 반대편으로 옮겨갔다가 아주 정신 사납다.
"예, 처음이란 다 그런 법이니 당신 말씀 굳게 믿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라는 말은 참 무섭습니다. 일언이 중천금이라는 말은 남아나 장부에게만 그치는 격언이 아니니 말입니다. 장담한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해 제가 사이카와 씨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린다면 그만한 큰일이 없을 텝니다. 신인神人 막론하고 첫인상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한데 말입니다……."
그러는 저도 첫인상 좋게 남기는 그른 것 같은데. 미즈미의 귓가에 대고 쉴틈없이 쫑알거린다. 대놓고 훼방을 놓지 않는다 뿐이지 정신 산만해지는 짓이라고는 아주 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