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의 반응에서 서늘한 날, 혹은 그에 준하는 기분을 느꼈지만, 요조라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시선도 태도도 그대로였으니, 상대에 따라선 시비가 붙어 말싸움으로 번졌을지도 모를 순간이었으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키라가 고개를 젓든 한숨 비슷하게 숨을 내뱉든 상관없이, 요조라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요조라가 조금만 말을 순화했더라면 이렇게 날 선 분위기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태도도 조금만 유순하게 했더라면, 분명 좋은 대화가 되었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요조라의 사교력은 그래주지 못 했다. 아직은 그 정도로 순응하지 못 한 탓이지만, 그럼에도 이 분위기의 책임 대부분은 요조라인 것이 맞다. 맞지만, 요조라의 생각은 아무렴 뭐 어때, 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가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당연히도 변명이나 상황을 무마해 보려는 말은 안 한다. 돌아서는 아키라를 보고도 잡기는 커녕 물끄러미 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봐도 더 이야기할 것은 없다는 말에, 요조라는 조용히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요조라는 자신의 말을 마치고 마저 휘익 돌아선다. 묶지 않은 머리 길게 흩날리고, 여름용 원피스자락 시원하게 흔들린다. 아키라와는 등진 채, 다른 말도, 붙잡지도 않는다면, 그대로 천천히 걸어 서서히 멀어졌을테다. 헐거워진 안경 한번 슥 올리고, 잘 다져진 산책로를 따라 흔들흔들, 유유자적 걸어나갔을테지.
이 이야기는 더 안 할래! 코로리는 이 주제로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녀에게서 인간의 다리와 목소리를 맞바꾼 인어공주도 아니면서 고개만 끄덕끄덕 몇번 흔들어서 대답했다. 토와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게 참 다행이었다.
"응, 타타!"
안고 있던 인형을 흔들어보인다. 이름을 불러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인형이 반갑게 구는 것 같은 모양이다.
"바로 앞에서 나와도 괜찮으니까ー"
답답해서 거북하다는데, 억지로 끌고 갈 생각도 이유도 없다. 코로리는 토와가 힘들어한다면야 타타도 품에 안겨줄 각오를 끝냈다. 풋사과 씨 지금도 시들었는데 더 시들면 큰일이라구. 역시 아쿠아리움은 무리라는 말이나 꺼려하는 행동이 없었다면 코로리는 아쿠아리움으로 발을 옮겼을 것이다. 거북하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기대된다거나 신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만 발걸음까지도 감추지는 못한다.
나는 네가 어렵다. 물론 태초부터 인간들은 어려운 존재이긴 했으면서도... 원하는대로 (아님) 물고기도 내쫓아 줬는데 왜 울상인 건지. 아니면 역시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한 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이쯤되니 의문인 것이 '왜 나에게 화를 내지 않지'였다.
"슬플 땐 울어주고, 화날 땐 짜증내고, 행복할 땐 웃어주고. 난 그런 거 잘 몰라.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어떻게 알아. 너는 그럼 언제 행복한데?"
그렇지만,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를때에는 어쩐단 말인가. 도무지 필설로는 이해되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는데, 나는 오래전에 그러한 것들을 죄다 덮어버리고 삼켜버려서 아픈 배 붙잡고 무시해버렸다. 나는 너의 말을 복습하려는 듯 중얼거리다 이어지는 말에 또 괜히 마음이 찔려서...
"...그정도로 싫어하진 않아. 그냥, 그냥. 네가 잘 행동하면 나도 안 싫어 했거든. 그런 걸로 신경쓰지마. 사람이 살다보면 미움 좀 받을 수 있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러는 것도 필설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였는데 불연듯 짜증이 나다가 화가 풀리고 괜히 가시 세우는 이것의 근원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고, 또 무던한 축생이었을 뿐인데 최근 들어 -그게 100년 전쯤인가- 자꾸만 바뀌려 든다. 코노에가 나의 몸 일부를 돌려주며 함께 놓고간 감정 부스러기들도 설명되지 않을 무언가였는데, 나는 얻고도 상실한 듯 여즉 길을 헤메고만 있다.
"...정말? 외할머니 이야기를 했어? 또 무슨 말 안하디?"
분명한 것 하나,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기쁠 수 있는 생명이더라. 나는 턱을 지탱하던 손을 의자에 짚고 자세를 바로했따. 너를 향한 몸은 수면 위에 머리 올린 물뱀이다. 녀석이 나를 보는 시선이 어째 곱지 않다. 굳이 다지자면 다수의 의구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닌지라, 너에게 되물었다.
"왜, 그냥 궁금할 수도 있지. 빨리 말해봐. 원래 내가 남의 집 사정에 궁금한 게 많아."
...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변명거리를 더 생각해보았다. 내가 가적이 없어서? 아니면 원래 태생이 좀 음침하다? 나는 상식이 없다? 전부 괴상하고 기이한 말뿐이라 생각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