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로드의 말에 렌은 고개를 다시 끄덕끄덕해보였다. 방금전까지 잘 익은 토마토처럼 빨개져 있던 얼굴이 평소의 색으로 되돌아가 있었지만 귀에는 아직 부끄러움과 쑥쓰러움으로 인한 여파가 남아 있다. 열기가 몰렸다가 빠져나갔지만 아직 뜨끈한 얼굴에 찬물이 담긴 컵을 가져다대며 뭔가를 더 시킬까- 하는 고민했다. 곧 이 시간에 더 먹으면 안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그나저나 국수랑 카레를 파는 노점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공원 근처에 이런 게 있었나? 어라- 왜 못보고 넘어갔지.
"네? 아! 음, 어.. 감사합니다..?"
어지간히 얼굴의 열기가 가라앉자 렌은 컵에 담긴 물을 단숨에 비우고 물을 다시 따라서 마시다가 수줍게 말하는 로드의 반응에 눈을 좌우로 이리저리 굴렸다. 대답인지 물음인지 의아한 반응이기는 했어도 말이다. 미묘하게 올라가버린 말끝을 갈무리하려는 듯 렌은 헛기침을 한다. 컵을 양손으로 쥐고 만지작거린다.
"그래도, 로드씨가 권유하면 같이 동행할 사람은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지 않습니까?"
키득거리며 렌을 바라보았다. 혼자 잇는 걸 선호하지 않았다. 로드에겐 사람, 만남, 사건 같은 통제 할 수 없는 것들이 필요했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모든 게 매일 똑같은 일상을 몇년 동안 지속한다고 하면 직접 행동하는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라는 알아줬으면 한다. 아니, 모르는 게 나으려나.
"하긴 다른 로직 봄 클랜원도 있으니까요! 이젠 다른 사람들이랑 자주 올 수 있겠네요."
렌의 말에 밝게 웃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온 국수와 카레를 받아서 국수에게 렌에게 내밀었다. 숟가락을 들고 카레를 가득 퍼서 입에 넣었다. 혀를 치듯 강하게 느껴지는 매운 맛에 숨을 깊게 내쉬었다. 매운데 맛있다! 컵에 들은 물을 한번에 들이키고 카레를 퍼먹었다. 매운 걸 그리 잘 먹는 편도 아닌데 계속 찾게 되는 건 매운맛이 아니면 이런 짜릿함을 느낄 수단이 없었다. 그리고 건강에 문제없이 오래 즐길 수 있으니까. 사실 노화가 멈춘 상황에서 건강을 그리 챙길 이유가 있을까 싶었지만 말이다
"저야말로 권유해줘서 감사하다는 뜻이라고 받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운동이 끝나면 뭘 먹는 편이 아니니까 말이죠."
친구들이랑은 시간이 맞질 않고, 부모님하도 그렇고. 컵의 물을 한번 더 비워낸 뒤에 다시 물을 채워넣으며 렌은 로드의 말에 대답하고는 베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게다가 극존칭이 한결 편해보이는 존칭으로 바뀐 건 나름대로 친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눈은 제대로 마주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로드씨가 제안하면 거절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편하게 권유해보세요. 다른 사람들한테 말입니다."
국수를 밀어주는 로드에게 감사합니다- 하는 인삿말과 함께 렌은 갓 나와서 뜨끈한 국물을 한번 마시고 면을 숟가락에 올려서 입안에 넣었다. 맛있다. 운동하고 난 뒤에 먹는 거라서 더 맛있을지도 모르겠다. 면치기도 없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서 국수를 먹던 렌은 딱 보기에도 매워보이는 카레를 맛있게 먹는 로드를 바라봤다. 엄청 매워보이는데 괜찮나? 하는 걱정은 덤이었다.
혹시 식단관리까지 하는 걸까. 그렇게까지 하면서 훈련한다고 생각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신은 운동을 하고 나면 뭐라도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운동이 끝나고 먹은 푸딩, 샌드위치, 마들렌... 그만 생각하도록 하자. 세상엔 너무 맛있는 음식이 많다. 죽기 전까지 다 먹어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만약 평생을 산다고 해도 음식은 새롭게 탄생이니 무리지 않을까 싶었다. 렌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아까 전보다는 편안헤보이는 거 같아 안심이 됐다.
"네. 이 노점이 오래 있었으면 좋겠네요."
노점이니 그렇게 오래 자리를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성격대로 단정하게 국수를 먹는 렌의 모습을 지켜보며 빠르게 움직이던 숟가락을 느리게 움직였다. 먹는 속도를 맞추는 편이 좋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릇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그렇게 노력하는 것과 실전은 다르기 때문에 렌은 로드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도 익숙해지기는 했는지 얼굴 전체가 붉어지지는 않았다. 국수를 먹다가 자신을 보는 로드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웃해보이는 건 덤이다.
"맛도 괜찮고,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니까 오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고개를 끄덕인 뒤에 렌은 자신이 먹는 속도를 맞춰주는 로드의 모습에 슬쩍 베시시 웃었다가 국수를 먹는데 집중했다. 금방금방 자리가 비워지고 자리가 차는 속도가 빠른 노점인 만큼 그릇이 바닥을 보였을 때,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져 있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에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렌은 로드를 향해 목례를 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