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도 생각한 것이었으나 딱히 자신 쪽에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같이 탄다면 자신이나 그녀나 더 빨리 탈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한 가지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다음에 또 볼지도 알 수 없는 이였다. 그렇기에 굳이 문제는 없겠거니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줄을 서자고 하는 그녀의 말에 아키라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줄로 향하는 그녀를 따라 그녀의 옆자리에 섰다. 그러고 보니 2인용과 1인용은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2인용 그네는 나란히 두 명이서 같이 타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와중 그녀의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역시 가미즈미 고등학교 학생이었나요? 그렇지 않을까 예상하긴 했지만요. 아무튼 학생회 멤버들과 같이 다니긴 했지만 오늘은 따로 다니기로 했거든요. 이것저것 서로 하고 싶은 것도 있고 가끔은 서로 따로 움직이는 것도 좋을 것 같으니까요."
최근 연애를 시작했다는 부회장과 회계를 떠올리며 아키라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눈치껏 빠져줬으니 이제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다시 앞을 바라보면서 그네 쪽을 바라봤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살며시 꽉 쥐다가 놓으면서 침을 삼킨 후, 아키라는 이내 미소지어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름.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시미즈 아키라. 이상한 별명만 아니면 편하게 부르세요. 학생회장님도 괜찮고요. 학생회장이니까."
"과찬이에요. 학생회장이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기간내의 직함일 뿐, 제가 특별한 것은 아니니까요. 가미즈미 마을 내에서 도련님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도련님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에요."
확실히 쉽사리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말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키라는 난감한 웃음소리를 냈다. 학생회장이라는 자리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높게 보이는 것일까. 적어도 자신은 그러진 않았기에, 작년 학생회장도, 재작년 학생회장도 그렇게 높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기에 잘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입장에선 그런가 싶어 그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으나 그 끄덕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내 그의 고개는 좌우로 흔들렸다.
"이타니 아미카.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타니 씨라고 부를게요. 아미카라는 이름이 좀 더 예쁜 것 같지만... 그래도 저는 성으로 부르는 것이 편하고, 후배라고 해서 요비스테를 바로 하는 편은 아니어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는 이들은 있었으나 아키라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에 대해선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딱히 선을 긋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의 방침이 있었고, 그 방침을 굳이 어기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렇게 중요한 방침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작은 고집이었지만. 그래도 요비스테보다는 성으로 부르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짧아지는 줄에 따라 살며시 앞으로 한 걸음을 딛었다.
"...잘 타냐라. ...좋아해요. 이런 놀이기구."
잘 타냐라는 물음에는 살며시 답을 회피하며 아키라는 그저 좋아한다라고만 대답했다. 어쩌면 그게 또 답 중 하나일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아키라의 입이 열리진 않았다. 그러는 와중 점점 줄은 줄어들었고 마침내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이어 아키라는 프리패스권을 보여주며 안으로 들어섰고 놀이기구를 바라봤다. 저기에 있는 2인용 의자에 앉으면 되는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아미카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대모신은 본래 파충류인데다, 열대성 기후에 서식하는 동물이었다. 더위를 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몸이 데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인간보다 길다. 후미카는 의표를 정확하게 찌른 사실 간파에 느릿이 두 눈을 깜빡였다.
"……오키나와 출신이거든."
둘러대는 말치곤 거짓말은 아니었다. 생물학적으로는 그곳에서 태어난 게 맞다. 다만 대부분의 인간이 그러듯 병원 수술대에서 눈이 아플 정도의 조명을 받으며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한밤중 퍼석거리는 모래 속에서 알껍질을 찢고 나왔다는 점이 상대와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후미카는 옆으로 슬금슬금 몸을 물려 벤치 위에 미미하게 진 그늘 아래로 몸을 반 들여놓았다. 느리지만 조금씩 더워지려 했기에 테츠야의 지적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
"플라네타리움이라는 것은 처음 보아서 그랬단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이해하려면 오래 두고 뜯어보아야 하지 않겠어."
사람도 그렇고 사물도 그렇다. 인간이 새로이 만든 개념과 산물이라면 더더욱 여러 의미로 바라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보고 경험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후미카는 대화를 받아 같은 물음을 던진다.
둔감하다고 한다면 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릴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스릴을 느껴도 태연하다는 의미인걸까? 마치 인터넷 짤에 나오는 그 무표정하게 후룸라이드를 즐기는 그런 부류인걸까? 머릿속에 여러 궁금증이 떠올랐으나 어차피 곧 보게 될테니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굳이 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니요. 안쪽에 앉을게요. 저는 어느 쪽도 상관없어서."
무엇보다 그녀가 그곳에 앉으려고 했던 것 같았기에, 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안쪽에 앉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아키라는 가만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숨을 약하게 내쉰 후 바로 있는 힘껏 줄을 꽈악 잡았다. 누가 봐도 다른 이들이 잡는 것보다 훨씬 더 세게 잡는 모습이 누가 봐도 힘을 꽉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뒤이어 숨을 괜히 더 크게 내쉬면서 아키라는 앞만 바라봤다.
"슬슬 움직이려는 모양이네요. 서로 각자 알아서 잘 즐겨보도록 해요. 가능하면 앞만 바라봤으면 하고."
이내 천천히 놀이기구가 작동하고 어트랙션이 회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네는 당연히 천천히 떠올랐고 그에 따라 아키라의 손에 쥐어지는 힘도 더더욱 커졌다. 손목에 핏줄이 잔뜩 설 정도로 아주 꽈~악 잡으면서 아키라는 이내 으아아아아. 소리를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자세히 보면 눈도 아주 살짝 감고 있는 모습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미카는 평균적으로 밤에 9시간, 낮의 쪽잠은 합계 3시간으로 보통 12시간은 잤다. 하지만 지금은 수학여행이 아닌가, 아미카는 자신의 친구들과 놀러다니느라 낮잠을 잘 겨를이 없었다. 결국 아미카는 하루종일 돌아다녀 피곤한 상태에서 8시간밖에 자지 못한 것이다.
아침에 힘겹게 일어난 아미카는 세안을 하고 아침을 먹는등 일정을 소화했지만 친구들과 다시 같이 놀러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아미카가 워낙 피곤해보였던 터라 친구들도 내심 미안했는지 어디 가서 좀 쉬고 있어도 괜찮다고 아미카에게 권유했다. 아미카는 자신의 상태를 한탄하면서도 이를 따랐다. 그래도 일단 이곳저곳 즐겨보는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아미카는 여유롭게 쉴만해 보이는 플라네타니움으로 가보기로 했다. 더운 날씨에 땀에 젖은 아미카의 모습은 썩 좋지 않아보였다. 아미카는 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털석 주저앉곤 천장에 보이는 별들을 감상한다고 해야하나 그냥 멍을 때리고 있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보고 있었다.
즉시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고개를 홱 돌리며 지나치게 직설적인 반문을 하는데, 표정이 처음부터 내내 무표정하니 초면인 사람에게는 이것이 되받아치는 건지 단순한 물음인지 분간하기 힘들 테다. 후미카의 속내는 당연히 그저 물어본 것일 뿐이지만.
테츠야의 간접적인 원망은 안타깝게도 묵살되었다. 정확히는, 후미카는 눈치채지 못했다. 상대가 괜찮다 하고 넘어간 일이었으니 해결됐겠거니 하고, 조금 전의 일에 더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가 자신을 바라보니 할 말 있냐는 듯 테츠야의 눈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무심한 표정이 참 당당했다. 그것에 보태어 또 한 번 곧이곧대로 묻는 것이다.
"시원한 곳으로 가야겠다는 뜻이니?"
그에게는 아직 맥락의 언어가 어렵다. 사람들이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날씨 이야기를 하는 등의 기본적인 화법은 그도 알고 있지만, 때로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말은 틀리는 일이 잦다. 간접적으로 가겠다 말한 것인지 친교 목적의 의미 없는 푸념인지 헷갈린다. 후미카는 긴 머리를 한쪽 어깨 앞으로 끌어모아 끄트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생각이 필요할 때 나오는 습관이다.
아키라가 안쪽에 앉겠다고 하며 자리를 잡고 앉자 아미카도 바깥쪽에 앉은 뒤 벨트를 맸다. 이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미카는 자신의 핸드폰이 주머니에 제대로 들어 있는지 잠깐 긴장하며 조금 더 깊숙이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가능하면 앞만 보자는 아키라의 말에 아미카는 따르려고 했으나 얼떨결에 아키라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아키라는 손에 강한 힘을 주고 있었다. 그래, 무서워하고 있던 것이다. 아미카는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소리까지 내자 자기가 괜히 같이 타겠다고 못타는 사람을 데려온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상당히 당황했다. 일단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느린 것은 또 아니었다. 공중에 붕 떠서 흔들흔들거리는 놀이기구의 특성상 어떻게 보면 조금 아슬아슬한 면도 있었다. 롤러코스터럼 강한 속도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붕뜨는 무중력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아키라는 이런 놀이기구들에 꽤 약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이 기분이 은근히 짜릿하고 내릴 때의 쾌감이 컸던지라 그는 이런 놀이기구들을 그렇게 강하게 잘 타는 편은 아니었으나 좋아했다.
괜히 줄을 두 손으로 꽈악 잡으면서 아키라는 막 들려오는 말에 겨우겨우 눈동자만 데굴데굴 옆으로 굴렸다. 바로 옆에서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흔들거리는 그네에 타고 있는 아미카의 모습이 아키라의 두 눈에 들어왔다.
"부, 부정은 하지 않겠지만 괘, 괜찮아요! 놀이기구는 원래 이런 맛으로 타는 거니까. 으어어...아아.."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얼굴에 강타할 때마다 그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속도감이 살짝 올라가자 절로 바람과 스쳐지나가는 속도감이 그대로 그의 눈에 전해졌다. 야주 미세하게 떠는 것은 있었으나 그래도 내리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을 똑바로 뜨는 것은 아니었고 팔에 힘만 꽉 주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이타니 씨도 이쪽은 신경쓰지 말고 즐기시는게... 우와아아아!"
이내 줄이 가볍게 흔들리자 그는 괜히 다시 한 번 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웃는 것이 일단은 즐기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