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안아들고 두드리면 편안해지기 마련이다……. 평온하게 말하지만 사람에 따라 이유 모를 압박감이 느껴질지도 모르는 발언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려줄 수는 없었다. 인간 심리에 어두운 후미카도 짐작한 것이다. 찰나의 시간 동안 생각을 해 보니, 들기만 해도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이대로 내려준다면 처음처럼 순순히 들려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실랑이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후미카는 팔을 낮추는 대신 남학생을 진정시키려 그를 받쳐들었다. 아이를 어르듯 두어 번 흔드는 그 동작에서 묘한 리듬이 느껴진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천여 년 전의 요령이었다.
"쉿. 소리 지르면 사람들이 보잖니. 공공장소에서 소란 피우면 안 돼."
묘하게 어린애 다루듯한 말투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리라. 제 행동이 이상했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기에 후미카는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사뿐했다. 출입구로 트인 공간을 향하는 걸음이 당당하다. 자신보다 큰 남고생을 들고도 걸음이 낭창한 데 없어 그 보무로부터 역설적인 우아함이 느껴질 지경이다.
후미카는 결연한 태도로 계속해서 발을 옮겨 관측소 밖으로 걸어나가려 했다. 테츠야가 반항하지만 않는다면 그럴 수 있을 테다.
렌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벌을 받았을까. 어렸지만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신이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배신했던 것이라면 천벌이라는 것을 받는 걸까? 사실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던 만큼 그 이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물을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확실히 정해진 것이 아닌 가정일 뿐이더라도 이 정도라도 알아낸 것이 어디랴. 어머니가 자신에게 비밀로 하는 일이라면 굳이 들춰낼 생각도 없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음.... 자신이 없긴 했지만.
제가 말을 돌리자 무거운 분위기는 확연히 밝아졌다. 그런데 렌은 코로리의 뇌물이라는 말에 작게 웃었다.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는 것에 코로리라는 작은 신님은 꽤나 직설적인 성격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저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비밀은 지킬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도 기쁘지 않은 걸요. 내가 못미더워서 계속 무언가 주는구나 생각해버리니까요."
렌이 웃음기를 담아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다른 말을 해보였다.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 그것들을 어마무시하게 가져올 것 같아 두려운 것도 있었고. 그러면서 렌은 빙수 위에 있는 딸기를 쿡 찍어 입 안에 넣었다. 여기 디저트 맛이 꽤 좋았다. 한적한 것에 비해서 말이다.
"약점 잡혔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서로의 비밀을 아는 친구로는 어때요? 뭘 좋아하는지는 친해지면서 차차 알아가는 거니까."
렌이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서로 남들에게 말 못하는 것을 주고 받았으니 비밀을 주고받은 것이 맞겠지 싶었다. 뭐든지 자연스러운게 좋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그걸 억지로 떠안기는 것은 언뜻 보면 좋아보일지 몰라도 자연스럽지는 않은 것이었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언제나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
힘을 준다고 해서 평범한 소녀가 사람 한명을 들 수 있는 세상이라면 나도 힘을 주어서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어떤 상황이든 이런 부끄러운 상황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하며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려 해 보지만 꼼짝달삭을 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무서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볼텐데?"
어차피 결과는 똑같은데 무슨 의미가 있단말인가! 아아, 많은 학생들이 나의 추태를 보고있어! 게다가 이런식으로 애취급이라니! 나보다 연하이면서 뭐가 이렇게 자연스러운걸까! 평소에 애라도 돌봐주는거겠지! 얼마나 착한 학생일지! 하지만 그 상냥함이 나한테 이런식으로 가해지는건 너무나도 싫다!
이건 폭력이야!
"아아아아.."
역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빠져나오긴 힘들어보였다. 정말 진심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면 머리부터 떨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그건 힘들고. 그저 얌전히 빌려온 고양이처럼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코로리는 자신이 신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떠받들어지거나,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안다거나, 성대한 신사로 모시고 축제가 열리거나 하는 신들과 같은 신이라는 것이다. 비록 코로리는 이름도 없고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지만! 고맙대! 도움됐대! 나 상담 잘 했나 봐! 아, 아냐, 아냐ー! 원래 나는 위엄있고 존경받는 신이니까 당연한 거라구. 뿌듯하게 배시시 웃어버리던 코로리가 헛기침을 큼큼 하더니, 묘하게 으스대는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이유였다.
"비밀 지키는 거 때문 아닌ー 맞기는 한데에."
코로리가 렌에게 뇌물을 주는 이유는 비밀을 잘 지켜달라는 것도 있었지만, 친구가 되고 싶어서도 있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답하던 중, 친구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비밀에서부터 비롯됐었다. 렌의 말을 들으니 코로리가 생각하고 있던 속셈이 너무 음험해보인다. 몇 백 몇 천년 살아온 시간이 부끄럽다!
"후링 씨랑 친구하면, 친구 비밀에는 자물쇠가 더 많이 걸릴테니까 친구하자! 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잘 보이려고 했구, 응. 렌 씨 말이 다 맞아ー 하나 빼구. 렌 씨 많이 믿으니까."
그런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양치기라구 했지만, 거짓말쟁이 양치기라구 했지만 진짜 거짓말쟁이 양치기 아니니까! 순순히 속셈을 다 털어놓았다. 이루어질리 없는 속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걸 알면 상담을 아무리 잘 해줬어도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 것 같았다. 코로리는 마주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디저트들로 떨어트리고서 말했다. 맛있게 생긴 디저트들이 얄미웠다. 방금까지만 해도 웃고 있었는데 금방 풀이 죽었지만, 또 다시 금방 표정이 바뀐다.
"친구해도 돼?!"
누가 봐도 기대감 가득찬 표정이다! 하늘에 고래떼 있다 연락하구 그래도 되는거야?! 몰라도 상관없을 것을 같이 알고 싶어서 연락해도 되는 관계, 남이지만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존재가 친구라고 생각했다. 뇌물 공세를 10년 해도 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렌이 먼저 친구는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역시 들뜨고 만다.
우미노카리는... 음. 나중에 더 자세하게 공개를 하겠지만 토너먼트로 벌어지는 일종의 대결 게임이에요. 가미아리는 아무래도 바다가 근처이기에 어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착안해서 파도가 치는 워터파크의 파도풀 속에 들어가 일정시간 내에 로봇 물고기를 많이 소쿠리로 잡아내는 대결이랍니다. 옛날에는 실제 살아있는 물고리를 썼으나 물고기들의 스트레스 문제와 안전상의 문제가 있어 이제는 위험하지 않은 로봇물고기로 대체했어요. 아무튼 일정 시간내에 많이 잡으면 이기는 그런 경기에요.
덧붙여서 대회에 참가하는 경기조가 있고 대회에 참여를 하지 않지만 경기를 보며 누가 이길지 배팅을 해서 포인트를 따내는.. 당연하지만 실제 돈이 아니라 그냥 포인트에요! 아무튼 그런 재미로 하는 작은 도박판 같은 것도 있답니다. 말 그대로 이길 것 같은 사람에게 배팅해서 이기면 포인트를 그만큼 받아내고, 지면 그만큼 포인트를 잃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아키라는 주사를 어릴 때는 무서워했지만 지금은 무서워하진 않아요. 다만 따끔거리는 고통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주사를 맞을 땐 눈을 꽉 감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