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다. 피곤하다. 의무실 소파 위에 늘어지듯 누워서 녹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날입니다. 할당량 채우러 사람들이 나다니는 날 말입니다. 저도 나가야 하는 건 둘째치고, 환자가 잔뜩 생기니 당연히 곤란합니다. 심지어 오늘은 좀 큰 녀석을 만나서 곤란했죠. 다행히 쓰러트리긴 했습니다만. 피곤합니다. 피를 쓰는 능력의 특성상, 상처가 없어도 소모가 큽니다.
오독 오독 오독 오독, 입안에 있는 초콜렛 스틱을 우물거립니다. 단 걸 먹으니까 그나마 머리가 도는 기분입니다. 안 그래도 책상 서랍에는 기성품과 수제가 섞인 간식들이 가득하죠. 살기 위한 선택입니다. 바늘자국을 매만지며 멍하니 있는데, 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곧 문이 열리겠군요.
"어서오세요. 다치셨네요."
익숙하게 웃으며 주사기를 듭니다. 테온, 자주 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주 보고 싶진 않은데 말이죠. 다쳐서 오는 사람 보는 게 좋을 건 뭡니까?
의무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렌에게 시선을 고정하다 불쑥 내밀어진 손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다 어느새 생긴 나이프에 입을 벌리고 렌에게서 나이프로 시선을 옮겼다. 이게 오퍼구나. 본인도 오퍼기는 하지만 초재생능력은 화려한 효과가 있는 능력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보면 신기했다. 그 중에서도 뭔갈 소환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없던 걸 만들어내는건데 당연히 관심이 갔다. 렌의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나이프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성실하게 단련을 한다는 점만 보아도 렌의 성실함이 짐작이 갔다.
"소환한 무기를 타인이 사용하기는 힘들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사용하는 건 재량에 달려있다보니.."
나이프를 살펴보면서 감탄하는 로드의 모습에 렌은 여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웃음기가 없는 얼굴이었지만 한마디를 더 덧붙히는 게 붙임성 있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날이 닿지 않도록 조심스레 나이프를 거둬들이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조심스레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옮기긴 했지만.
"어음, 원래..아예 단련을 하지 않던 사람이 혼자 하기 힘드니까 말입니다. 로드씨,의 능력이 재생능력이라면 더더욱."
친절하다고 말하는 쪽이 더 친절한 거라는 말을 덧붙히며 렌은 슬그머니 애매한 미소를 잠깐 지어보였다.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의 재량보다 더 높은 단계의 재량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 단련하냐는 물음에는 시선을 좌우로 굴리며 생각하던 렌이 어- 하는 반응을 보였다.
"거의 하루종일 하는 것 같습니다만..체력은 뛰는 걸로 채우고 있고 근력이나, 코어단련 같은 건..음, 클라이밍 같은 걸로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일단 아침에 뛰는 것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죠. 초보자는 올바른 단련 방식을 모르니까. 저도 제 수준이 어떤지 정확히 모르고 있고요."
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상태에서 운동을 하면 근육이나 뼈가 망가질 수 있다고 들었다, 자신에겐 해당이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말하자면, 지나친 회복력으로 인해 뼈가 잘못 붙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무식한 방법으로 해결했지만... 운동이나 신체구조에 익숙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더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뼈가 잘못 붙기 전 예방하다거나.
"하루 종일이요?"
예상하지 않은 답변에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기껏해야 매일 이 시간 정도에 한다. 이런 식으로 알려줄 거 같았는데. 하루 종일 같은 일 - 다른 운종을 하기는 하겠지만 - 을 한다는 건 로드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성향이기는 하지만, 게임도 어제 했던 건 하기 싫어지는지라 렌이 마냥 신기했다. 그정도는 해야 Os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로직 봄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본 전투 계열 오퍼들이 탄탄해보였던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렌을 바라보더니 시원스레 대답했다. 렌 씨랑 하면 재밌을 거 같으니까!
내 피가 혈관을 타고 몸속을 흐르며 상처를 지운다. 점점 아물어 가는 상처를 보면서 빙긋 웃어보였습니다. 만능은 절대로 아닙니다만, 도움이 되니까 다행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든 만능이 아니니, 제발 좀 조심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분명 언젠가, 여러분의, 저 아이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요. 건강하게 있어주면 좋겠습니다.
"싸우다 다치는 걸 감수한다면 주사 맞는 것도 감수해야죠."
린, 아도니아 린을 말하는 게 맞겠죠? 그 사람도 자주 다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테온 정도면 좋은 편입니다. 때때로 주사 맞는 게 싫어서 아픈 것도 숨기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제가 경험한 건 아직 아닙니다만,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음, 자랑 좀 할까요? 제가 아니었으면 주사 맞는 게 아니라 살을 꿰맸을 걸요?"
살짝 농담조로 말을 하면서 서랍을 열었습니다. 뭐가 좋을까요? 역시 초콜렛이겠죠? 투명한 봉지에 든 초코칩 쿠키를 꺼내 테온에게 건넵니다.
렌은 로드의 말에 이번에는 꽤 분명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대답하는 모양새가 사교성 좋은 강아지같은 모양새였는데 말을 몇번 주고 받다보니 익숙해진 게 분명하다.
하루종일 운동을 한다는 자신의 말에 되묻는 것또한 렌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반응이였기 때문에 끄덕이던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여보였다. 전투를 담당하고 있는 다른 전투 전력들이 어떤 루틴으로 움직이는지 렌은 알지 못했고 os를 제쳐두더라도 고정적으로 해오던 루틴에 플러스를 시켰을 뿐이라서 적당한 말을 고르기 위해 한참을 고민하다가 렌은 멋쩍게 뒷목을 손으로 문질러보였다. 자신의 os 특성상 사용법을 알아야하고 사용하려면 재량이 뒷받쳐줘야하다보니 하루종일 단련에 투자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 더더욱 그런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운동이 취미기도 하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겠다고 결심하신 이상 반은 오신겁니다.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로드씨. 걱정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