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진한 양귀비를 내가 잊을리가 없는데! 가 고개를 갸웃이는데도, 코로리는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서 눈치채지 못했다. 검은 눈을 바라보면서 누구인지, 정말 혹시라도 잊은 얼굴이 아닌지 기억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학교에서 봤다거나,길거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거나, 친구의 친구라는 다리 건너 사이까지도 생각해본다. 눈 까맣다, 까만 친구가 누가 있지! 까마귀, 까치, 검은콩, 밤, 세이, 세이?! 새카만 흑색은 코로리의 머리카락이지만, 쌍둥이의 머리카락 색이기도 했다. 서로 신의 모습으로서의 머리색을 인간일 때의 머리색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검은 색을 생각하다가 쌍둥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쌍둥이와 사쿠라마츠리의 검은 밤에 나누었던 대화까지도 전부 기억해냈다.
"세이 친구야?!"
세이가 알려준 양귀비! 꿈 기사님 데리고 있는거지ー! 드림캡쳐를 갖고 있는게 확실했다. 코로리가 힘을 실어서, 단순히 악몽을 꾸지 않게 지켜준다는 의미를 가진 드림캡쳐가 아니라 잠을 지켜주는 부적이 되었다. 자신의 힘을 지금도 느끼고 있는 코로리는, 어째선지 표정을 찌푸렸다. 미간이 좁아지고 입술을 삐죽인다. 기사님이 약할 리가 없는데! 드림캡쳐를 가지고 있는데도 손님의 꽃단내가 짙었기 때문이었다. 쌍둥이의 친구라고 텃세 부리는 못된 짓으로 보였지만,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용건은, 용건이 보고 싶었어야!"
따지자면 자그마치 3년이나 만나고 싶어했다! 찌푸렸던 표정이 용건을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가, 방긋 웃는다. 그래도 드디어 찾았다아ー! 코로리는 손님에게로 한발짝 두발짝 총총 다가갔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아르바이트할 때 손님한테 존댓말을 써야하지 않던가 싶어진 코로리는 배꼽 인사를 한다!
"에-? 진짜요? 어떻게 저보다 여자랑 안 친해요? 똑바로 서세요. 그렇게 해서 농담을 빙자한 추파를 걸어서 죄 없는 15명의 여자 마음 들었다 놨다하는 플레이보이 헤픈 어장남 테츠야군이라 할 수 있겠어요? 저도 13명정도랑 썸타는데! 자,자, 노력합시다. 고교 시절에 청춘 러브 코메디정도는 꿈꿀 수 있잖아요."
누누히 말했지만 나는 첩실도 인정해주는 쿨한 뱀신이었으므로 "하렘도 문제 없음!" 이라는 소리다. 그와 별개로 결혼해놓고 날 사랑하지 않으면 죽여버릴거지만. 이혼보다는 살해가 쉬우니 당연한 거다.
그나저나 나는 너의 웃음이 다소 어색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너는 왜 그렇게 웃는걸까? 나는 알 수 없어져서 턱을 괴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오-"
생각해보니 나는 귀엽다는 말도 제밥 많이 듣고 머리도 긴데다가 활동적이기까지 하다. 점심시간에 인간 친구들과 배구를 하고 인간 문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사교활동까지. 이정도면 나, 합격점 아니야?
"그거 저 아니에요?"
과연 너는 농담을 빙자한 추파를 걸어서 죄 없는 15명의 여자 마음 들었다 놨다하는 플레이보이 헤픈 어장남 테츠야군답게 밀당도 참 잘한다. 나는 아직도 네가 날 좋아하는 건지 아닌간지 확신이 서지가 않는다. 아- 사랑에 고난이 부족해서 그런가. 어디어디, 후미카가 나에게 그토록 강조하던 '흔들 다리 효과'를 확인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나는 직감한다.
"러브레터? 그거 20년 전 거 아니에요? 음- 테츠야군은 혹시 봉건적인 순정남이신가요? "
내가 나름대로 조사한 결과 그런 순정남 타입은 인기 없다. 친구의 말을 따르면... '초식남은 솔직히 인기 없지 www 뭐,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정도에서 '조금 귀찮지 않아? 귀엽기는 하지만 2주 이상 만나기에는 절대 무리무리.'까지의 평가라 할 수 있겠다. (*미즈미 친구가 편향됐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인기 없는 인간도 문제 없다. 오히려 좋다라 할 수 있겠다. 원래 인기가 없으면 경쟁이 적어서 결혼까지 골인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건 정말로 썸을 타는게 맞는건가?' 라는 미심쩍은 시선을 그녀에게 보냈다. 13명과 썸을 탄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걸까. 분명 맨 마지막의 사람은 '난 12명과 썸을 타고있어!' 라는 소리를 들었을텐데 제정신이면 '오, 그럼 거기에 저도 끼워주세요! 정말 기대되는걸요!' 같은 소리는 안 할텐데.
"적당히 노력하겠습니다ㅡ"
전혀 의욕따윈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도 이것보다는 더 의욕을 내지 않을까.
"에?"
'그거 저 아니에요?' 라는 말에 그게 뭔 소리냐는듯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며 의문이 섞인 소리를 내다가 곰곰히 자신이 내뱉은 말을 검토했다. 그렇구나, 머리가 길어.
"뭐, 일단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뭐 이런 뻔뻔한 사람이, 같은 감상은 떨쳐두고 귀엽다고 한다면 나름대로 귀여운.. 건가? 일단 활발하다는건 맞는 것 같고.
"아니거든요? 전, 그저, 참고 할 만한 영화를, 제시, 한, 거, 거든요?"
응. 아니다. 이런게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머리가 이상해지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뭘 원하는거람. 대뜸 이상형을 물어보다가 그게 나 아니냐고 어필하다가 이제는 봉건적이라고 사람을 면전에서 모욕을..!
서로 뚫어져라 마주보고서 하는 생각은 서로 다르다. 요조라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니 애초에 누구인지부터 관심이 없다. 몇번이고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이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지금 신경이 쓰이는 건 그저 이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용건이 있을까 뿐이었다. 그것도 아마 대답을 들으면 이해하고 이 상황은 마무리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대뜸 튀어나온 말부터 예상을 크게 뒤흔들었다.
"네...?"
세이 친구라니, 누가? 요조라가? 단언컨데 가미즈미고교에서 인맥이라곤 실 한가닥만큼도 없다 자부할 수 있는 요조라였기에 그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세이가 코세이를 뜻한다는 걸 요조라가 그리 쉽게 연상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거 아니냐고 되물으려던 요조라는, 또다시 대뜸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직원을 보고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어... 그러니까..."
요조라와 달리 표정이 이랬더 저랬다 휙휙 바뀌는 이 서점 직원, 아마 같은 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이 사람은 요조라에게 총총 다가왔다. 그에 맞춰서 요조라의 걸음도 뒤로 총총 물러났다. 요조라의 표정엔 어렴풋이 경계하는 기색이 드러나고, 그런 상태로 악수를 할 리 만무했다. 요조라는 살짝 치뜬 눈으로 코로리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사람, 잘 못... 보신 거, 같은데요..."
분명히 그렇다. 분명히 그럴거야. 한번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이 왜 자신을 보고 싶어하겠는가? 요조라는 경계하는 기색을 거두지 않은 채로 한걸음 더 슬금 물러났다. 한 손에 가방을 꼭 쥐고, 언제 나가지, 하는 눈으로 문 쪽을 힐끔거리면서.
후유키는 작은 목소리로 네 이름을 발음해 본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잊힐 이름이었지만. 가미아리의 학생으로 있는 지금은 네 이름과 얼굴을 잊을 테니. 그동안은 계속 네 호의를 분명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너를 마주 본 채 후유키는 웃는다. 언젠가 지나가는 길에 널 보게 된다면. 그때에는 그냥 지나쳐가는 타인이 아니라, 네 이름으로 널 불러 세울 수 있겠지. 네가 이름을 물어오자, 후유키는 그 검은색 눈을 깊게 감았다 뜬다.
"유리자와 후유키."
유리자와 후유키야. 잊지 말라는 듯. 후유키는 다시 한번 또박또박 제 이름을 말했을까. 잠시 네 반응을 살피다가, 후유키는 두 발자국 뒷걸음질 치며 멀어진다.
"오늘 고마웠어."
나중에 만나면 꼭 아는 체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여 말하고서 후유키는 네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 막레 이어줘도 괜찮고. 이대로 끝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