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완벽한 거짓말이 잘 먹혀든 것 같아서 나는 굳이 웃으려하지 않아도 웃음이나어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지. 내가 또 요즘 부쩍 연기를 참 잘한다.
"에- 그러면 결국 농담이었다는 소리에요? 농담을 빙자한 추파를 걸어서 죄 없는 15명의 여자 마음 들었다 놨다하는 플레이보이 헤픈 어장남 테츠야군?"
그 대답은 분명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금세 회복하고만다. 무엇보다 이 애칭 참 마음에 든다. 자주자주 이렇게 불러줘야겠다고 나는 다짐한다. 절대 꼽을 주는게 아니고 그냥 단순히 호감의 표시이다. 절대로 꼽을 주는게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외우기 좀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랩하는 듯이 입에 착착 붙고 운율도 있는 것이 과연 가미즈미 디비전에 나가도 손색이 없다.
"그건 그냥 이상형의 사전적 정의 아니냐고요. 그렇게 치면 제 이상형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재미 없어- 플레이보이답게 능수능란하게 여자 마음을 이해해달란 말이야."
나는 의자에 앉아 깡총 올라간 다리를 탈탈 흔들었다. 타력감 잃은 몸이 탁자위로 떨어진다. 팔을 쭉 뻗고 내친김에 아예 엎드려버린다. 얼굴을 돌려 이제는 벚꽃 잔재만이 남은 창밖을 바라본다.
"요즘 사람들은 첫눈에 잘 안 반해요? 이상하네. 넷플릭스에서는 맨날 첫눈에 반하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턱 막혀온다던데."
이쯤되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봐야할 판이다. 인간의 생식? 뭐 그런 걸 보면 되는 걸까? 나는 알 수 없어져서 머리 속이 수세미처럼 엉클리고 말았다. 어렵네, 인간은. 사랑이든 감정이든 어려운 것 투성이었다.
"그래요. 뭐, 사랑은 폭풍이 아니라 가랑비라는 말이 있으니까. 정신차리니까 흠뻑 빠져있었다라는 표현도 흔치 않죠."
나는 검지를 들어올리며 너에게 물어본다. 저 맹한 얼굴로 한 번 안 져주는 거 봐서는 제법 강단 있는 성격임이 틀림없다. 요컨대, 인간 세상에 대한 고찰이 나름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이렇게 진한 양귀비를 내가 잊을리가 없는데! 가 고개를 갸웃이는데도, 코로리는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서 눈치채지 못했다. 검은 눈을 바라보면서 누구인지, 정말 혹시라도 잊은 얼굴이 아닌지 기억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학교에서 봤다거나,길거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거나, 친구의 친구라는 다리 건너 사이까지도 생각해본다. 눈 까맣다, 까만 친구가 누가 있지! 까마귀, 까치, 검은콩, 밤, 세이, 세이?! 새카만 흑색은 코로리의 머리카락이지만, 쌍둥이의 머리카락 색이기도 했다. 서로 신의 모습으로서의 머리색을 인간일 때의 머리색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검은 색을 생각하다가 쌍둥이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쌍둥이와 사쿠라마츠리의 검은 밤에 나누었던 대화까지도 전부 기억해냈다.
"세이 친구야?!"
세이가 알려준 양귀비! 꿈 기사님 데리고 있는거지ー! 드림캡쳐를 갖고 있는게 확실했다. 코로리가 힘을 실어서, 단순히 악몽을 꾸지 않게 지켜준다는 의미를 가진 드림캡쳐가 아니라 잠을 지켜주는 부적이 되었다. 자신의 힘을 지금도 느끼고 있는 코로리는, 어째선지 표정을 찌푸렸다. 미간이 좁아지고 입술을 삐죽인다. 기사님이 약할 리가 없는데! 드림캡쳐를 가지고 있는데도 손님의 꽃단내가 짙었기 때문이었다. 쌍둥이의 친구라고 텃세 부리는 못된 짓으로 보였지만,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용건은, 용건이 보고 싶었어야!"
따지자면 자그마치 3년이나 만나고 싶어했다! 찌푸렸던 표정이 용건을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가, 방긋 웃는다. 그래도 드디어 찾았다아ー! 코로리는 손님에게로 한발짝 두발짝 총총 다가갔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아르바이트할 때 손님한테 존댓말을 써야하지 않던가 싶어진 코로리는 배꼽 인사를 한다!
"에-? 진짜요? 어떻게 저보다 여자랑 안 친해요? 똑바로 서세요. 그렇게 해서 농담을 빙자한 추파를 걸어서 죄 없는 15명의 여자 마음 들었다 놨다하는 플레이보이 헤픈 어장남 테츠야군이라 할 수 있겠어요? 저도 13명정도랑 썸타는데! 자,자, 노력합시다. 고교 시절에 청춘 러브 코메디정도는 꿈꿀 수 있잖아요."
누누히 말했지만 나는 첩실도 인정해주는 쿨한 뱀신이었으므로 "하렘도 문제 없음!" 이라는 소리다. 그와 별개로 결혼해놓고 날 사랑하지 않으면 죽여버릴거지만. 이혼보다는 살해가 쉬우니 당연한 거다.
그나저나 나는 너의 웃음이 다소 어색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너는 왜 그렇게 웃는걸까? 나는 알 수 없어져서 턱을 괴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오-"
생각해보니 나는 귀엽다는 말도 제밥 많이 듣고 머리도 긴데다가 활동적이기까지 하다. 점심시간에 인간 친구들과 배구를 하고 인간 문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사교활동까지. 이정도면 나, 합격점 아니야?
"그거 저 아니에요?"
과연 너는 농담을 빙자한 추파를 걸어서 죄 없는 15명의 여자 마음 들었다 놨다하는 플레이보이 헤픈 어장남 테츠야군답게 밀당도 참 잘한다. 나는 아직도 네가 날 좋아하는 건지 아닌간지 확신이 서지가 않는다. 아- 사랑에 고난이 부족해서 그런가. 어디어디, 후미카가 나에게 그토록 강조하던 '흔들 다리 효과'를 확인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나는 직감한다.
"러브레터? 그거 20년 전 거 아니에요? 음- 테츠야군은 혹시 봉건적인 순정남이신가요? "
내가 나름대로 조사한 결과 그런 순정남 타입은 인기 없다. 친구의 말을 따르면... '초식남은 솔직히 인기 없지 www 뭐,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정도에서 '조금 귀찮지 않아? 귀엽기는 하지만 2주 이상 만나기에는 절대 무리무리.'까지의 평가라 할 수 있겠다. (*미즈미 친구가 편향됐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인기 없는 인간도 문제 없다. 오히려 좋다라 할 수 있겠다. 원래 인기가 없으면 경쟁이 적어서 결혼까지 골인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건 정말로 썸을 타는게 맞는건가?' 라는 미심쩍은 시선을 그녀에게 보냈다. 13명과 썸을 탄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걸까. 분명 맨 마지막의 사람은 '난 12명과 썸을 타고있어!' 라는 소리를 들었을텐데 제정신이면 '오, 그럼 거기에 저도 끼워주세요! 정말 기대되는걸요!' 같은 소리는 안 할텐데.
"적당히 노력하겠습니다ㅡ"
전혀 의욕따윈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도 이것보다는 더 의욕을 내지 않을까.
"에?"
'그거 저 아니에요?' 라는 말에 그게 뭔 소리냐는듯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며 의문이 섞인 소리를 내다가 곰곰히 자신이 내뱉은 말을 검토했다. 그렇구나, 머리가 길어.
"뭐, 일단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뭐 이런 뻔뻔한 사람이, 같은 감상은 떨쳐두고 귀엽다고 한다면 나름대로 귀여운.. 건가? 일단 활발하다는건 맞는 것 같고.
"아니거든요? 전, 그저, 참고 할 만한 영화를, 제시, 한, 거, 거든요?"
응. 아니다. 이런게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머리가 이상해지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뭘 원하는거람. 대뜸 이상형을 물어보다가 그게 나 아니냐고 어필하다가 이제는 봉건적이라고 사람을 면전에서 모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