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돌아다니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같은 공간? 납치라고 한다면 또 꽤나 스케일이 큰 납치일지도. 뺨을 꼬집거나 해봐도 제대로 아픔이 느껴지긴 하는데. 그것과 대조적으로 너무나도 현실같지 않았다.
블럭은 쿠션과 비슷한 감각이었지만 젤리와도 비슷했다. 무중력 공간마냥 떠다니는 모양새가 신기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눈을 깜박여도 보았지만 아무것도 바뀌는건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마침 이제 막 눈을 뜬걸로 보이는 루온이 당신들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는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갑작스레 검은 무언가가 그녀를 내려찍었고 비정상적인 굉음과 충격이 지면을 덮쳤다. ....... 비현실적인 공간에, 비현실적인 상황. 그리고 그것을 깨버린것이 비릿한 향과함께 그 검은 무언가 밑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액체였다.
살짝 고개를 들어봤다면. 동체로 추정되는 검은 마름모 형태의 몸통. 몸통과 이어져있지 않고 각각 떨어져서 떠있는 거대한 양팔. 마찬가지로 동체에 붙어있지 않은 늑대와 사자, 닭을 섞은듯한 이상한 형태의 머리가 보였다. 그 크기는 앵간한 건물급이었다. 어째서 이런게 갑자기 나타난거고, 아니 그 이전에 따질게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있는 걸 확인하고 입을 다물고 으음, 하며 소리를 냈다. 꿈을 공유시켜주는 Os를 가진 사람이 정말 있던 걸까. 그게 아니면 공간 차체를 만들어낸 걸 수도 있고, 또는 환영?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면 이 공간에 대해 분석해보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이걸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텐데. 그러다가 보인 익숙한 얼굴에 손을 흔들어보였다.
"루온 씨!"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보이지 않는 루온에 눈을 깜빡였다. 루온의 Os는 탐지계. 아마 재생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아마 멀쩡하기는 힘들 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품 안에서 총을 꺼내 총구를 디스포에게 향했다. 비상 상황!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무슨 일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그렇게 어리둥절해 하다가 루온이 깨어나 우리쪽으로 다가오는 것에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어..어? 루온씨!!"
갑자기 일어난 일에 잠시 뇌가 정지하고 천천히 상황을 인지해 나갔다.수호는 자신의 후각과 시각을 차지하는 비극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루온에게 다가가려다가 루온을 깔아뭉갰던 것이 거대한 디스포라는 것을 깨닫고는 분노에 동공은 세로로 찢어졌으며 송곳니는 날까롭게 변했고 입에서 으르렁소리가 새어나왔다.당장이라도 뛰쳐나갈것처럼 보였다.
기묘한 비현실이 머릿속을 진창냈다. 무언가, 다리인가, 팔인가, 사람을 으깬 도구. 그 아래서 퍼지는 익숙한 향과 색의 액체. 잔혹하며 이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자, 이상하게도 차분해졌다. 사람이 죽었군요. 익숙한 일입니다. 저렇게 다쳐서는 피를 주입할 수도 없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겠습니다. 전에도 그랬죠.
하늘을 봅니다. 저건 하늘이라고 하기 싫습니다. 거대한 괴물체입니다. 저것을 생명이라 칭하기 싫습니다. 생각보다 걸음이 흔들림 없고 정상적으로 움직입니다. 공간이 이상합니다 상황이 이상합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휘말려 죽을 것이 확실합니다.
"-어쩔까요."
도망쳐봤자, 의미 없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어쩔까요. 애시당초 이건 현실일까요? 다행스럽게도 가방도 주사기도 있습니다. 언제 쓸지 모르니, 주사기로 피를 뽑아둡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섭니다.
진동파는 직격했으나 그 크기는 디스포에 비하면 초라했고, 디스포도 뭘 맞았는지도 모르는 기색이었다. 딱봐도 지금까지 본 디스포중에서 제일 강해보인다. 비록 다들 어느정도 강해지기는 했다지만 그걸로 될까?
보통이라면 도망이라도 칠텐데 이 방에는 나가는 길따윈 보이지 않았다. 저 디스포가 엄청난 위력으로 내리쳤는데도 바닥엔 흠집조차 안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디스포에겐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독탄환, 일반 탄환. 디스포는 그런 공격을 피할 생각도 없다는듯 맞아준다. 독이 돌고는 있는걸까? 아니, 지금 본걸로는 아마 멀쩡할것이다.
디스포는 오히려 아직까지 덤벼들지 않고있는 수호와, 물러나고 있는 시우쪽을 흘끔 바라보곤.
웃었다.
웃었다? 그야 입이 달려있는 디스포는 꽤 있지만 디스포는 어디까지나 파괴본능으로 움직이는거지 딱히 살인에 쾌락을 느낀다거나 하지않다. 굳이 따지자면 생명체보단 기계에 가까운것들. 그런데 저 디스포는 노골적으로 웃었다. '비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팔을 들어서 수호와 시우를 내리찍으려했다.
무언가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개할만한 수가 없을까? 이곳에는 로직 봄의 전원이 있는거 같았다. 그리고 턱 막혀있는 방. 쿠션같은 블록들. 거대한 디스포. 이 정보안에 쓸만한건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