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바로 전의 수업시간은 선생님이 누구냐에 따라 끝나는 시간도 다르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점심시간이 되기 5분전쯤 끝내주시는 선생님을 만났기에 학생들의 점심시간은 5분 정도 늘어날 수 있었다. 물론 학생들이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선생님의 좋지 않은 시선은 누군가를 향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나가고 급식을 먹는 학생들은 급식실로 향하고 도시락을 가져온 학생들은 가방에서 자신들의 도시락을 꺼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엎드려서 미동도 하지 않은채 자고 있는 한 명의 학생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 ... 수업 끝났어? "
나다. 자기 좋은 높이로 쌓여있는 책들을 한번 응시한 나는 창가에 놓아둔 안경을 찾아서 쓰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애들은 대부분 밥을 먹고 있었고 내가 자다가 일어난건 안중에도 없는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바빴다. 나도 그들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 그들도 나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내가 왕따를 당하는건 아니고 그냥저냥 클래스메이트의 관계로 지내고는 있다.
" 오늘도 선생님이 너 노려보고 나가더라. 그렇게 잘 수 있는 네가 부러워~ " " 3년동안 이렇게 지내면 너도 할 수 있어. "
옆을 지나가던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고 아직 잠이 덜깨서 피곤했기에 살짝 인상을 쓴채 답했다. 짜증낸건 아니고 목소리는 평소랑 비슷했으니까 오해하지는 않겠지. 한번 기지개를 켜고 가방에서 도시락 가방을 꺼내든다. 오늘은 가볍게 오니기리를 싸왔기에 도시락통도 평소보다 작았다. 오는 길에 구입한 물 한 병과 도시락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교실을 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나 말고도 점심을 먹는 학생들이 있기에 점심시간에도 사람이 꽤나 있는 편이지만 오늘 옥상 문을 열고 나갔을땐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 한명 빼고.
" 잘 먹겠습니다. "
막 자고 일어난터라 당연히 입맛은 없었지만 이따 일하려면 배는 고프면 안되기 때문에 도시락통을 열어서 오니기리를 한 입 베어물었다. 오늘은 그냥저냥 맛있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살짝 둘러보자 아까 눈에 띄었던 학생이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복잡한 머리장식과 인형 같이 예쁜 외모는 둘째치고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기에 잠시 그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는 했지만,
' 놀러왔나보네. '
같은 생각으로 대충 옆으로 치워버린다. 학교에서는 다시 잠들기 위해서 깨어있을때 뇌의 활동을 최소로 하고싶기 때문이다.
라멘의 부재료를 만드는 과정은 길었지만, 본 요리로 들어가는 과정은 간단합니다. 커다란 그릇에 담겼지만 생긴 것만큼은 여타 라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네 좋은 냄새가 가득 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으니 회가 동합니다. 대체 언제부터 라멘을 좋아했더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완벽한 음식입니다.
"아, 요즘 렌 군의 눈치가 너무 빨라서 걱정이에요. 장난을 곧이곧대로 받아줄 때 참 재밌었는데."
네 농지거리를 하며 덧붙입니다. "알지요, 물론." 그리 말하며 본 것은 커다란 그릇에 담긴만치 제법 많은 양입니다. 다만 두 사람이 먹는 양이 양이기에 이 정도면 딱 적당한 정도임을 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껏 너와 어린 인간에 의해 깨진 점보라멘 챌린지가 몇 개인데요. 아무렴 네 웃으며 먼저 수저를 듭니다.
"잘 먹겠습니다."
요리의 신에게 감사를 올려야 하나? 친분도 없는데 딱히 올릴 필요는 없겠죠. 욕망스럽게 차슈를 올린 라멘의 국물을 먼저 맛본 네 표정은 여전히 은은하나, 점점 미소가 길어지는 걸 보니 네 마음에 제법 든 모양입니다. 따스하고 적당히 기름지며, 짭짤한 국물.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도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되레 더 마음이 편해집니다. 거기다 고기에, 야채에, 탄수화물까지.
"정말 맛있네요. 라멘집에 가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습니다. 렌 군도 어서 드셔야지요."
면도 적당히 익었으니, 씹는 맛이 있습니다. 네 만일 조금만 더 과장적인 사람이었다면 벌써 뺨 위에 손을 얹고 달뜬 한숨부터 쉬었겠지만, 너는 정적이고 고요한 사람이었기에 계속 먹는 것으로 답할 뿐입니다. 숙주 한 번, 면발 한 번, 차슈에 숙주를 감싸 한 번.. 기어이 부처 미소가 올라오고야 맙니다.
앞에 놓인 것은 그저 달콤한 양갱이 아니라, 네게서 처음으로 받은, 온기로 가득한 것. 저를 향한 네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마치 신물(神物)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일까. 누구일까. 너와 나는 조금이나마 아는 사이일까. 아니면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인, 모르는 사이인 것일까. 뒷모습조차 보지 못했으니, 너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어떤 것이 더 좋은 선물 일지 진심으로 고민하며, 고르고 골랐을 너를 상상하는 것뿐. 그리고 그런 너를 상상할수록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걸까. 이 선물을 보낸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