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아니 정확히는 인류권이 괴멸하고 간신히 전뇌도시에서 눈치보면 생활을 유지하게 되면서. 인류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어떠한 면에선 그렇게까지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살기위해 하는건 비슷했으니까. 저기를 보라. 클랜 마스터면서도 오늘 할달량을 채우기 귀찮아가지고 부리더에게 바가지를 긁히는 사내도 있지 않은가.
"알았어 알았어, 갈게, 간다니까-"
정말 마지못해 일어난 그는 우연히도 눈에 띈 당신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뭐 애초에 계획이 없는 사내였고. 그냥 그날따라였겠지. 그는 리더의 눈부시지 않은 권한으로 당신들과 함께 공백의 도시로 향하기로 했다. 어차피 할당량을 채워야하는건 당신들도 마찬가지고, 혼자서 밖으로 나가는 대담한 멍청이는 이런 약소 클랜엔 없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자자- 즐겁게 일하러 가자구~"
본인도 못하는걸 남한테 요구하는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당신들을 데리고 거점을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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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번에도 계획 없이 나서는건가. 알케스라는 인간은 근 4년동안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은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선은 지키고 있는 거겠지만, 이 같이 가는 사람마저 맥아리빠지게 하는 언사는 또 뭔간 말인가. 언젠가는 이 클랜을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로 키우고 싶다는, 야망을 가진 겨울로서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이동을 준비하는 그녀의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하아...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일 처리하면 되는데요?"
오퍼로서는 초보,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 있으면수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는 파악한 겨울이었다. 마지막으로 잘 닦아놓은 권총을 챙기면서, 자연스럽게 길드장의 옆쪽쯤에 서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바늘 자국이 늘겠구나. 가방에 든 주사기들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제대로 정리해 둬서, 그럴리 없을 테지만 항상 그런 기분이 들었다. 환청이겠지 아마. 팔에 감긴 붕대를 살살 쓸면서, 익숙한 웃음을 지었다. 으음, 가끔 기분이 우울해지는 건 정말로 어쩔 수 없다. 짝, 양 뺨을 치고 정신을 차렸다. 별로 계획적이게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니니 다칠 일도 있겠지. 가장 후방에 서서 뒤를 따랐다.
"나쁜 분은 아닌데."
흐느적거리는 리더를 가만히 바라보다 뺨을 긁적였다. 자신을 포함하여 항상 어디선가 사람을 주워오는 것도 그렇고,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데 이상하게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정정하자. 항상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행동만 제대로 해줬으면 하는데. ..그래도 항상 싫은 기분이 들지 않아서, 마냥 웃고 말았다.
언제, 어디로, 어떤 일을 하든, 내가 할 것은 변하지 않는다. 걱정인 건, 주사기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겠지?
딱히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고, 능력적으로 관계가 있는것도 아닌. 누가봐도 아무 생각없이 만들어진 급조된 일행들. 물론 이 클랜에는 그렇게 대단한 고정멤버는 없다. 괜히 약소 클랜이 아니니까. 클랜의 멤버조차 그가 어디서 하나 둘 주워온 이들이지 않은가.
"하이하이."
거점을 나서자 회색빛의 보기만해도 침울한 하늘이 보였다. 해는 떠있지만 이래서야 밤이랑 큰 차이도 없겠지. 여전히 다른 클랜들이랑은 친한 그가 적당히 하품을 하며 타클랜의 클랜원들과 실없는 소리를 나누는 와중에 벌써 도시의 입구까지 도착했고.
"아니 아니~ 여전한게 좋은거야. 이 얼마나 좋아 초심이란거잖아?"
원래 초심이란게 좋은거래. 테온의 말에 답하는 그의 말은 그야말로 믿음직하지 않음 레벨 MAX였을터다. 그리고 겨울의 말에 그는 별로 대단한건 아니라며 느긋하게 하품까지 했다.
"오늘은 특별한 경고나 의뢰는 없는듯하고, 언제나처럼 약한 녀석들 몇 조지고 와야지."
특별한 사항이 있을때 조합에서 공고가 뜨기 마련이다. 그는 오늘은 그런게 없으니 느긋하게 하자며 말했지만.. ... 이 사람이 오늘 조합에 들렀던가..?
아 이런, 당연한 의문이 떠오른 시점에 벌써 공백의 도시에 도착하고 말았다. 공백의 도시. 이름 그대로 사는 사람도 없고. 그냥 망해버린 도시를 그럴듯하게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보이는것은 위험도 1의 흔히 보기힘든 가장 낮은 위험도의 디스포들이었다. 크기로 치면 강아지 수준이고. 생긴것은 생물이라기보단 슬라임에 가까운 액체형의 동글거리는 녀석들.
본래 가장 잘 보이는게 위험도 10정도고, 이런 녀석들은 핵의 가격이 싼것도 아니면서 위험도는 매우 낮아서 선수치기 힘든편인데 운이 좋다.
"이야 럭키네~ 역시 내 위엄이랄까?"
여기 개소리하는 사람은 재쳐두고. 그는 시우에게 살짝 뒤쪽에서 대기하자고 눈짓하면서 수호에게 이거면 다칠 사람도 없을거 같다며. 아주 여유롭게 담배에 불까지 붙여가며 당신들에게 눈짓했다.
가끔 일에 나설 때마다 먼저 해두는 말이다. 약소 클랜이라고는 해도 인원들이 모두 각자의 능력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치료 능력을 지녔다는 걸 아는 사람도 적을 것이다. 초심이고 자시고, 조합에 들린 적이 있나 의문이 드는 리더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던졌다. 스을쩍, 뒤로 물러서곤 가방에서 꺼낸 권총을 쥐었다.
"..주사 무서워하는 분은 먼저 말씀해주시고요."
급하면 그냥 꽂겠지만 아니면, 가능한 부탁에 대응해주고 싶다. 음료수도 가져왔으니, 마시는 것도 싫다고 하면 섞어서 먹여야지. 종종 만나왔던 사람들을 떠올리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 그러고보니 말이다. 리더는 분명히 이 클랜에서는 제일 강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이들은 이 남자와 나서는걸 싫어한다. 얼핏 듣기로... 뭐라더라. 이 남자와 같이 다니면 죽지는 않지만 더럽게 힘들다고 하던가?
물론 이제와서 이런게 기억나봐야 의미는 없고. 현재로서 그는 딱히 별 행동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 나설 생각은 없다는걸까? 이 중에서 가장 전선쪽인 테온과 수호쪽으로 먼저 디스포들이 달려든다. 그러나 위험도 1인만큼 그 속도는 여유롭게 보인다. 그럼에도 방심할 순 없다. 왜냐면 위험도 1도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강하고,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도, 지능이 있다.
"어이쿠."
그 목소리에 눈치를 챘을까? 아니면 아직 눈치채지 못했나? 중위정도에 있던 겨울과, 뒤쪽에 있던 시우의 근처에서 다른 디스포가 보인다. 똑같은 위험도 1의 디스포지만 상당히 접근을 허용하고 말았다. 잔해 더미를 슬금슬금 기어온걸까? 이미 사정거리 내에서의 공격 분명 속도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위력은 무시할 수준이 아닐터. 겨울에게는 몸자체를 늘려 뿔같은게 늘어나 질러왔고. 시우에게는 원거리에서 자잘한 검은 탄환ㅡ정확히는 자기 몸이다ㅡ을 산탄마냥 쏘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수호와 테온쪽에서도 정면에서 달려들던 디스포들 이외에 옆에서 한마리씩 튀어나와 몸 자체를 뾰족하게 만들어 기습을 시도했다.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뾰족한 형체를 바라보면 누구나 놀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대로 걸치고 있던 외투를 앞으로 내민 후, 그대로 고정시켜버린것이다. 물론 평범한 천으로 된 옷이 공격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앞쪽으로 내민 상태에서 '고정'되어버린 외투는 잠시동안이나마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그리고 그렇게 번 시간 동안, 그대로 연습한 그대로 총을 쏜다. 잠시동안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준 옷 덕분에 여유있게 한 사격은 그대로 적중했다.
산탄, 이란. 시작점에서 퍼지듯 날아든다. 이런 특성은 근접해 있는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만 비교적 멀리 있는 적에게는 타격이 덜 들어간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그래봤자 왠만한 인간은 산탄총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다. 다만 저 디스포가 쏘는 건 좀, 틈새가 널널해 보이니까- 뒤로 뛰며 몸을 웅크려서 피격을 줄인다.
이상의 생각은 디스포가 산탄을 쏜 뒤 0.03초 만에 한 생각입니다. 아마도. 대응이 늦지 않았으니까.
오늘도 역시 피를 흘리는구나. 쥐고 있는 권총으로 디스포를 겨누고 격발했다. 총성이 이제 익숙하다.
전방에 있던 테온의 검이 전방을 내달렸다. 옆에서 달려들던 디스포는 정통으로, 정면의 디스포는 가까스로 회피한듯 했으나. 그것은 평범한 검이 아닌 진동을 반복하던 검. 피했다고 생각한 디스포마저 한순간에 잘려나갔다. 위험도가 높은 디스포들은 평범한 공격으론 흠집도 안 난다고는 하지만 이 녀석들은 위험도 1. 공격력을 둘째치고 내구는 형편없다.
수호도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접근했던 디스포들을 베어냈고. 그것을 보던 디스포들이 움찔거렸던걸 볼 수도 있을것이다.
겨울이 꽤 괜찮은 대응으로 성공적으로 반격을 성공했다. 내구력이 낮은 디스포는 권총 한발에 산산조각을 내며 핵을 떨궜고. 시우의 권총도 손쉽게 디스포를 박살냈다. 다만 빠르게 반응은 했어도 산탄의 특성상 시우는 최소한 한두발 정도는 스쳤어야할텐데. 이상하게도 한발도 맞은것이 없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걸까?
뭐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남은 디스포들이 작전없이 냅다 달려들었으나 정직하게 달려드는 디스포 몇마리는. 엄호 사격과 함께 몇번 검을 휘두른것으로 금새 정리됐을것이다.
"피해없이 꽁돈이네~ 이야 나오자마자 이런 성과라니. 내가 너무 유능한탓인가?"
여기 아무것도 안하고 짓걸이는 사람이 있다. 뭐 그들은 모험가도 아니고, 굳이 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므로 여기서 돌아가도 될터다. 음.
주변을 경계하던 수호의 귀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돌아갈까?"
보아하니 그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소리는 매우 가까이서 들린다. 정확히 유추해보자면.. 바로앞의 벽 너머일까?
툴툴거리고는 있지만 아마도 딱히 뭘 하지는 않았을것이다. 그의 능력은 강력하지만 그 시간은 고작해야 1초다. 아무도 모르게 적을 처리할 정도는 아니다. 싸운다면 분명히 눈에 띄기는 할테니 말이다.
"응?"
그러나 수호의 말과 함께 벽뒤에서 다들 들릴 정도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순간적으로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선가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던거 같기도 하다. 무슨 소리일까? 무언가, 맞춰지는 소리?
"삑-!!"
벽뒤에서 갑작스레 엄청난 속도로 수호에게 달려들었다. 경계하고 있었음에도 반응하지 못할 속도. 그대로 품으로 돌진했지만.
"삑-, 삐삐."
크기로 치면 위험도 1의 디스포보다도 작은 디스포.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말랑말랑한. 손으로 잡고 늘일 수 있을거 같은 형태. 그것은 디스포... 일것이다. 디스포처럼 생겼으니까. 그러나 위험도는 서치되지 않고 이상하게도 사람에게 공격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디스포는 위험도와 관계없이 생명체를 봤다하면 무조건 죽이고 본다. 근데 이것은 수호의 어깨에 올라타나 싶더니 테온에게도 한번 들렀다가. 시우의 머리위에서 몇번 뛰놀더니 다시 일행의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날개도 없는데 말이다.
"뭐야 이건?"
그러는 와중에 잡을 엄두도 안나는 속도긴 했지만. 신형 디스포라도 되는걸까? 디스포는 진화를 반복하는 생물이긴한데.. 아, 그러나 지금 그러한것에 신경 쓸때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은 디스포에게 너무 신경을 팔린 탓일까 다른 개체가 접근한걸 너무 늦게 깨달았으니까.
[위험도 150]
명백하게 공백의 도시에 있어서는 안 될 위험도의 결정형의 디스포가 지근거리까지 접근하고 말았다. 얼핏보면 인간형 같지만 양팔은 길어서 땅에 닿고 비대하고. 머리의 형태도 이상하다. 키는 3m 정대로 거대형들에 비하면 작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