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는 아주 살짝 왼쪽으로 자신의 몸을 꺾고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다. 아니. 아마 앞으로도 쭉 진지했을 것이다. 이런 춤에서 가장 중요한건 NG를 내지 않기 위해서 표정을 끝까지 진지하게 유지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내 그는 몸의 방향을 번갈아가며 꺾으며 손의 움직임을 번갈아 움직였다. 한쪽으로 얼굴을 가리면 또 한 쪽을 올리고, 또 한쪽을 내리면서 또 한쪽을 올리고.
"사랑은 스릴, 쇼크, 서스펜스~"
뒤이어 손을 살며시 올려 원을 그리다가 오른쪽으로 밀치는 동작을 하며 이어 전방으로 물장구를 치듯 왼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허우적거렸다. 이 과정에서 그의 모습은 상당히 어설픈 모습이었으나 놀랍게도 표정은 처음 지었던 굳어있는 표정 그대로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는 표정을 그대로 굳히며 몸을 양옆으로 흔들흔들 움직이며 왼손을 원을 그리듯 공중에 휘저었고, 이어 오른손을 원을 그리듯 공중에 휘저었다. 그러다 전방으로 손을 가로 형태로 원을 그리면서 행동을 반복했다.
여전히 몸을 흔들흔들, 정말로 격하게 흔들흔들하며 자신의 안경 렌즈 위치 부분에서 손을 번갈아가며 휘저었고 올렸다내렸다를 반복했다. 이 과정 속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임원이 풋- 소리를 내긴 했으나 아키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무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 이후는 그야말로 처음의 행동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후 행동이 살짝 달라지며 아키라는 정말로 힘차게 팔로 X 형태를 그렸고 다시 손을 만세 자세로 올렸다가 다시 교차해서 X를 그려냈고 또 다시 맨 처음의 자세, 허리를 굽힌 후에 얼굴을 가렸다 내렸다, 가렸다 내렸다. 그리고 또 다시 손을 올려 원을 그리다가 왼쪽으로 힘차게 미는 모습을 보였고 다시 팔을 휘저으며 나름대로, 정말로 나름대로 열심히 몸을 양옆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손을 휘저으며 한번씩 X를 그려다가 마지막으로 살며시 몸을 왼쪽으로 숙이고 허리를 굽힌 후에 왼손을 자신의 턱에 올리고 오른손을 힘껏 위로 뻗어내며 마무리 동작을 취했다.
물론 이 과정 속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임원이 나중에 뒷배경으로 가미즈미 스파를 CG 배경으로 넣었다는 것은 아직 아키라는 모르는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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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그래서 이렇게 하면 우리 가미즈미 학교에 학생들이 더 온다고요? (뚱한 표정) 임원1:....... 임원2:....... 아키라:저기요. 왜 다들 시선을 피하고 웃어요? 뭐가 문제에요? 뭐가 문제냐고요! (///)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렌코답게, 오늘은 봉사활동이다. 편히 앉아서 꽃놀이를 하는 명리를 마다하고 손수 집게와 봉투를 들고 나서는 학생은 가미즈미고에 넘쳐나게 많다만, 렌코가 그 사이에 껴 있는 이유는, 물론 선생님이 부탁한 것도 있지만, 다소 불순하게도 '그냥 집에 가도 드러누워 잘 텐데 까짓거 고생하고 말지'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렌코는 종일 간 쓰레기 줍기를 마쳤다.
해가 뉘엿뉘엿하고 넘어가려는데 구름 때문엔가 하늘은 붉은빛보다는 분홍빛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색으로 물들어 있다. 참배객들은 이제 전등이 하나둘 켜져 일렬로 늘어선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돌길에 굽이 따각따각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내려가고 있다. 마츠리 때문엔가 손에는 솜사탕이나 인형 등 신사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더러 들렸다.
'나도... 갈까.' 하고 렌코는, 봉사활동의 보답으로 받은 사쿠라마츠리 기념품이 담긴 봉투를 챙겨들었다. 봉사자들은 모두 같은(혹은 적어도 엇비슷한) 구성의 봉투를 들고 있으므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알아볼 수 있었다.
뭘까, 하고 곁눈질로 살펴본 바 팸플릿인지 브로마이드인지 모를 동그랗게 말린 종이가 한 장. 그리고 사쿠라마츠리 티셔츠... 티셔츠? 타올인가? 하여간 비닐에 네모나게 싸인 면제품 두어 장. 사탕이나 그런 군것질거리가 안에 들어 있는 것도 같은데 나머지는 열어보지 않고는 보이지 않을 듯했다. 집에 갈 때까지 참기도 어려울 정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곧장 렌코는 신사의 토리이를 지나, 등에 분홍색 눈 세례를 맞으며 석계를 내려갔다. 운동화라서인가 돌바닥을 밟는데 푹신푹신한 소리가 났다.
>>872 중매뿐 아니라 '중개자로서 어떤 인간이든 아무튼 연결해줄게!' 하고 굉장히 설칠 것이기 때문에........ 미즈미 보고 잼 바른 식빵 물고 지코쿠다~ 지코쿠~ 하며 모퉁이를 돌라고... 그딴 조언도 하겠다 싶어지고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는데(? 망한 상황 재밌지 재밌지요
사쿠라마츠리도 슬슬 그 마무리를 향하고 있었다. 며칠씩 하는 마츠리라고는 하나 결국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었으니까. 아무튼 아키라는 자신의 일을 마친 후, 가장 오래된 벚꽃나무 근처에 있는 신사에 도착해서 세전을 넣고 참배를 올렸다. 김에 자신이 바라는 소원도 하나 빌어보고. 물론 이런다고 소원이 이뤄질리는 없을 거라고 믿지만 바라는 것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건 정말로 자신이 바라는 소원이기도 했기에. 가능하면 큰 시내로 안 나가고 여기서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기에. 물론 이런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나 싶어 그는 헛웃음소리만 낼 뿐이었다.
아무튼 참배를 올린 후, 그는 슬슬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 그 전에 꽃이나 더 보고 갈까 싶어 일단은 신사 밖으로 나서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시행하는 봉사활동이 오늘이었던가? 잘 보니 기념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여럿 보였다. 아마 자신이 알기로는 봉사활동을 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었다. 학생회장으로서 괜히 뿌듯함을 느끼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와중, 저 앞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렇다는 것은 저 학생도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봉사활동 한다고 수고 많으셨어요. 가미즈미 학교의 분이시죠? 아니라면 죄송하고요."
아무리 그래도 학생회장으로서 이 정도 격려는 문제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말을 하면서도 앞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의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미즈미가 그 천을 붙들고 있는 심정은 욕심이었다. 그 천을 열심히 기우고 있는 시니카의 심정은 무엇일까. 친해지고 싶은 걸까, 스스로를 극복하고 싶은 걸까,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까. 어찌되었건 이것이 찢어지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미즈미가 속삭인 말에, 시니카는 눈을 깜빡이다 나직이 말했다.
"여유만만이네."
글자로만 쓰고 보면 비웃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대답이다만, 시니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비웃는 어투가 아니었다. 조금의 회한, 조금의 자책, 그리고 조금의 질투. 말에서 맛있는 향이 난다고 하면 이상한 표현일까? 애초에 미즈미가 그 향을 어떻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그렇고, 여유만만이라는 말이 묘하게 정곡을 찌르는 것 같기도 하다. 미즈미는 확실히, 시니카보다 시간적 측면에서 훨씬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조그만 손짓과, 괴상한 주문과, 그에 따라 일희일희가 피어나는 미즈미의 표정을 시니카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부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안도하는 것도 같았다. 그나마 찢어지는 건 면했나. 애쓴 보람이 없지는 않아. 그러나 맛있어졌다- 하고 확 피어나는 미즈미의 얼굴을 보고, 시니카는 결국 타고난 성정에 이끌려 태클을 걸어버리고 만다.
"...이런 걸로?"
시니카의 눈빛에 잠깐 시선을 돌렸던 메이드는, 여유를 되찾았는지 용기를 냈는지 다시금 시니카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분명 맛있어졌을 거에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시니카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미즈미의 오믈렛 위에 메이드가 케첩으로 글자를 쓰는 동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저녁노을 아래로 흐드러지는 벚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쪽을 힐끔 바라보는 미즈미의 시선에 ?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온다.
"무슨?"
미즈미의 오므라이스 위에 무슨 글자가 쓰였는지 알아채지 못한 걸까, 봤지만 별 감흥이 없는 걸까. 일부일처... 라고는 하지만 확실히 시니카가 미즈미를 처나 부의 범주에 들여놓을 생각은 아직 없는 듯했다. 인간이란 참 번거롭다. 마침 그 마음에 어떤 모양의 사랑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의 모양에 꼭 들어맞는 사랑이 나타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리는 있는데 모양이 맞지 않아 그 모양을 맞추느라 시간을 소모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마음에 그런 자리마저도 없기에 사랑을 맞이할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느라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어떤 이는 포기하기도 한다. 사랑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에는 마음에 올려둔 것들이 사랑보다도 값지다고 생각해서 포기하거나, 혹은 가슴에 쌓인 묵직하고 구슬픈 노폐물들을 들기도 버거워 도무지 치울 수가 없는 경우다. 그런 이들을 사랑하게 된 이는, 오랜 시간을 그들의 옆에서 함께 보내어주면서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을 거들어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게 되기도 하겠지.
시니카의 경우에는 마음에 너무 많은 노폐물이 쌓여 마음의 그릇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 경우였다. 그릇을 다시 붙여주던가, 새 그릇을 만들어줘야만 한다. 쉽지 않다. 그런 마음을 하고, 시니카는 이젠 제법 아무렇잖은 얼굴을 하고는, 오히려 메이드가 떠나간 것이 홀가분하다는 듯이 카푸치노 잔을 들어올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