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안되는 일이지만 지금 테이블에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걸 남기는건 우리 가게에서도 좋은 일은 아니다. 이걸 다시 팔 수는 없으니 고스란히 버려야하는 일이니까. 아마 점장님께 말씀 드려도 이해는 하실 것이다.
" 이렇게 포장해서 가져가시는건 냉장 보관하셔도 2~3일 내로 빠르게 드셔야 ... "
그래도 한여름은 아니니까 그것보단 조금 더 오래 가겠지만 괜히 탈나면 우리만 손해니까. 그렇게 주의사항을 말해주고 있으니 눈 앞의 소녀는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말싸움을 하는지 조금 언성이 높아졌고 무언가 서러운 일이 있었는지 코를 훌쩍거리다가 이내 내 앞치마를 붙잡고 눈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 저,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 ... "
이래서야 내가 울린것 같은 모양새잖아! 아까 쑥덕대던 그룹은 이쪽의 상황을 살피더니 또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쑥덕대고 있었다. 정말 내용은 하나도 안들리는데 어째서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는걸까. 여기고 저기고 하나 같이 골치 아프단 생각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핸드폰을 던지려는 제스처를 보고선 떨어지는 것을 받아내기 위해 움찔했다. 물론 결국 테이블 위에 얌전히 엎어졌지만.
" 여기서 이러는건 좀 곤란하겠네. 잠깐 따라와봐요. 짐은 여기 둬도 누가 안가져가니까. "
다른 알바생에게 여기 짐 좀 잘 봐달라고한 나는 소녀에게 직원휴게실을 가리키며 저기로 잠깐 가자고 얘기했다. 여기는 사람들 이목도 너무 쏠리는데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사람이 엄청 많은 시간은 아니라서 내가 빠진다고 일이 밀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히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대답을 하자 렌은 그래도 조금 걱정했었는지 안도의 표정이 슬쩍 스쳤다 지나갔다. 렌은 히키와 발을 맞추어 걸으며 평소에 자주 가는 마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례라뇨. 사실 한 번 쯤은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음, 집이 조금 외진 편이라서 볼거리 같은 것도 없긴 하지만요. 히키 선배에게는 도움 받은 것도 많아서….”
렌은 조금 말을 하면서도 민망한 듯 볼을 긁적였다. 렌에게 집은 소중한 공간이고, 그런 공간을 공개한다는 것은 히키가 렌에게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리 멘토 시스템으로 맺어진 것이긴 했지만서도 이것저것 알려주고 챙겨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도 했고. 그래서 평소에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사야하는 건 돼지고기, 쪽파 한 줌, 숙주 나물 한 봉지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렌이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정육점이 안에 있는 마트였기 때문에 따로 정육점을 들를 필요성이 없어서 이 마트에 자주 오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고기가 신선하기도 했고.
“사실 선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저야 집에서 자주 해먹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마트에 들어서서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고는 그렇게 말을 하며 빈 손으로 제 목덜미를 쓸듯 만졌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해준다는 것이 민망하긴 한 모양이었다. 혼자 해 먹는 일은 많아도 남에게 대접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는 걸까. 살 물건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구니는 금방 채워졌다.
>>77 12시마다 신선한 질문 좋구 1. 좀 취한다 싶으면 아무도 없는 곳을 찾으려고 한다 >:3 애초에 마신다면 혼자 마신다는 느낌일까. 수학여행날 같은 날 객기로 마시는 걸 빼면 애초에 아예 안 마시지만. 시니카는 술에 취해도 행동이 좀 둔해질 뿐이지 정신은 말짱한 편.
미즈미는 가차가 없었다. 우디르급 태세 전환은 단지 아부성은 아니었고 '새로운 걸 알아갑니다, 하하하'의 의미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즈미가 착실하게 경찰에 신고했다는 점일까. 잡혔는지 안 잡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미즈미 마을이 마냥 녹록치 않다는 점은 깨달았을 것이다.
"네? 그렇지만... 의료 기술이 발달했잖아요? 100살까지 살잖아요?"
미즈미는 마치 '과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1800년대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면 제가 주문한 할인 특가 단돈 1990원짜리 게르마늄도 전부 거짓부렁이였단 말인가. 과연 인간놈들의 마음 알기가 바다 깊이 알기보다 어렵다. 대체 뭘 하고 살았길래 손만 대면 따뜻한 물 나오는 것도 발명하고 눈에 끼면 앞이 잘 보이는 투명 렌즈도 만들어내놓고 손에 차면 건강이 좋아지는 거 하나 못 만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조금 불퉁해진 미즈미가 아까보다는 조금 덜 명랑한 얼굴로 물을 받아 마신다. 엉클어진 심사와 달리 감사하다는 말은 착실히 한다.
"사랑이 유행이라고요? 다들 벌써 손 잡고 얼굴 붉히면서 사랑을 하고 다닌단 말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1학년 할 걸! 미즈미는 급격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당고를 하나 더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저희는 잘 모르겠네요. 다들 뒷산에 꽃 구경 가자는 이야기는 하더라고요. 음, 그리고 반 내에서 사귀는 애들은 아직 없고... 아, 3학년은 좀 어때요? 듣기로는 3학년이 되면 다들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다던데요."
>>77 A1. 어느 감정 하나가 엄청나게 북받쳐오를 거 같아요. 과도하게 신나서 이미 취했는데 들어가는 대로 계속 마시거나, 울적함이 터져서 가방을 붙들고 하소연을 한다던가, 말하다가 갑자기 계속 화나서 허공에 대고 억울해한다던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말이 없어지고 평소같은 상대로 돌아오는데 일어서서 한 세 걸음 걸으면 비틀대다가 풀썩.
A2. 맨 처음으로 나서서 병나발 부는 퍼포먼스를 해요. 신이라면 숙취도 없을테니 무책임하게 마시고 먹이는 참여자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