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와 드럼 소리가 어우러진다. 한 폭의 노래에 깊게 심취한 몸이 리듬에 맞춰 까딱까딱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놓치는 일 없이 드럼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화음을 맞추어 그 뒤를 따라간다.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보컬이 춤추는 곡 위를 수놓는다. 성대로 목소리를 쏟아내며, 쇼는 분명히 미소짓고 있었다.
즐거웠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만남. 낯선 이와의 합주. 그 누구도 모를 무대. 이 상황의 모든 것이 즐겁다.
하지만, 저 드러머에게는 어떻게 와닿았을지. 자신과 달리 일말의 열정도, 정열도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기에 냉랭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난타가 이어졌다. 야성적인 울림이다. 그 모습이 꼭 상처입은 짐승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 살기 위한 몸부림은 없었다. 그저 찾아올 죽음을 초탈하게 기다릴 뿐이다. 그녀는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했다. 안타깝다. 안쓰럽다.
우습게도, 그런 감상이 들었다는 것이다. 쓸모없고 과도한 동정이다. 남이 어떻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찰나의 시간, 단순한 흥미로 결성된 세션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 코우사카 시니카라는 사람은 그저 낯선 이일 뿐이다.
악기 소리가 일순간에 멎는다. 두번째 합주는 이렇게 끝이 난다. 쇼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아까 전 스쳐지나갔던 미소는, 다시 사라지며 제 존재를 감춘지 오래다.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첫 입으로 충분했다. 시니카는 눈 앞이 띵해지고 어찔해지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부자연스러운 초콜릿 향은 초콜릿이라기보다 어떻게든 카카오 흉내를 내려고 애쓰는 샴푸 같았고, 바디감이 강한 증기에 서린 민트는 도무지 상쾌하지가 않고 따갑고 쓰라리기만 했다. 도무지 어우러지지 않는 초코와 민트 향기 사이에 과하게 집어넣은 단맛이 어떻게든 두 맛을 화해시켜보려고 용을 썼지만, 그것은 그저 민트가 시니카의 목구멍에 낸 상처에 소금을 치고, 애써 초콜릿인 척하려 드는 향기와 고역스러울 정도로 뉘엿걸은 이중주를 그 위에서 추고 있을 뿐이었다.
시니카는 있는 힘껏 켁켁거리며, 유독한 증기를 펑펑 뿜어냈다. 증기 이상의 것이 나올 것 같았다. 그 화장품향이 어찌나 느끼했는지 이대로 가다간 오늘 점심 급식과 감동의 재회를 하게 될 것 같았다. 시니카는 애써 목구멍에서 치밀어오르는 것을 막으며 억지로 침을 삼키고는,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그 바람에 전자담배 기기가 시니카의 손에서 쑥 미끄러져나갔고, 그만 유리로 된 탱크가 바닥에 메다꽂혀 경통이 와장창 깨졌다.
"아, X...."
쿨럭거리느라 흐려진 시야 사이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시니카의 눈에는 아주 잘 보였다.
"으윽."
그녀는 욕지거리를 욕지기와 함께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갓길의 음습한 도로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경통이 박살나버린 전자담배를 주워들고는 인상을 구겼다. 경통이야 새 것으로 갈아끼면 된다지만, 몸뚱이와 무화기 본체에 또 새로운 기스가 생겼다. 이대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진짜로 점심 급식과 원치 않은 해후를 하게 될 것 같기에 눌러참았다. 그녀는 바닥에 흩어진 유릿조각들을 발로 슥슥 밀어서 아무도 닿지 않을 하수구로 밀어넣었다. 반짝이는 날큼날큼한 유리조각들이 두꺼운 운동화 밑창에 밀려 저 아래로 떨어져간다.
원래라면 저 무엇도 닿지 않을 어두운 구렁텅이로 떨어져가는 반짝이는 파편들이 시니카의 예민한 감성에 또 불쾌한 이미지를 남겼겠지만, 지금 시니카의 오감을 이 빌어먹을 똥같은 액상이 한가득 메우고 있는 판인지라 그런 이미지를 도저히 눈에 주워담을 겨를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크기의 유릿조각들을 다 밀어넣자, 시니카는 가방에서 여행용 티슈 팩을 꺼내어 담배기기 표면과 경통 내부의 코일 침니에 묻은 액상을 꼼꼼히 닦아내고는 짜증이 나는 듯 티슈를 옆에 있던 공공 휴지통에 팩 내팽개쳤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불쾌감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그녀는 경통이 깨져버린 전자담배를 주머니에 넣고는, 주머니에서 다른 것을 꺼냈다. 탐스러운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이 담겨 있는 전자담배 액상 병이었다. 방금 포장을 뜯어, 방금 한 입 먹은 것이었다. 2천4백 엔이나 주고 산 건데. 일단 민초맛 액상인지라 민초단 단원에게만 수요가 있어서, 전자담배 액상 리뷰 사이트에서도 민초단들만이 리뷰를 남기는 액상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 액상에 대해서는 그 결속력 강하기로 유명한 민초단들마저도 액상 리뷰 란에서 이 액상은 민초에 대한 더할나위 없는 모욕이다, 아니다 이 액상이야말로 액상의 형태로 현현한 민초의 신이다 하면서 두 파로 갈리여 장절한 키보드배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평점 분포가 5점 만점에 5점과 1점으로 극과 극으로 갈려 있었지만, 우선 평점 평균 자체는 3.4점으로 준수한 수준이기에 믿고 사봤더니...
시니카는 액상 통을 거리낌없이 휴지통에 쾅 던져넣었다. 피같은 2400엔이 아까웠지만, 인생의 교훈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리뷰에서 싸움이 났는데, 평점 평균이 4점 이상이 아닌 액상은 그냥 거르라는 교훈 말이다. 시니카는 역겨운 냄새가 나는 티슈 뭉치와 액상 통을 집어삼킨 쓰레기통을 빤히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뽑아들고는 거리낌없이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잘 알았다, 이 액상의 수준. 한 입 먹자마자 죽고 싶어졌다. 오늘 점심밥과 예기치 못하게 재회할 뻔했다. 이따위 걸 맛있다고 빠는 놈들은 민초단의 수치이니 어디 가서 나 민초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지 말기 바람...'
>>627 그런 말을 들으면 알아서 할게- 하고 틱틱대는 시니카지만 그런 말을 해주면 시니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호감도가 쌓여서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별로 고깝지 않게 여기게 된 스스로를 보고 충격을 받는 시니카를 볼 수 있으니 많관부(???) 일단.. 시니카주가 입가심이 필요하다........ >83 양치 좀 하고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