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반응이 아니라, 아예 반응이 없었다. 기껏 우리 드러머보다 잘 친다고 한 칭찬을 시니카는 그냥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듯 넘겨버렸다. 일단 오토하 쇼가 뜻한 대로 솔직한 감상을 담아서 건네어주는 데에는 분명히 성공했다. 음악이 멎어 조용한 경음부실에서 쇼가 건넨 말이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까. 대답을 하지 않을 뿐이다.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 대답하기 싫은 걸까, 이건 아마 시니카 본인에게 물어봐도 본인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대답하지 않는 게 아니라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제멋대로이기 그지없는 질문에 흔쾌히 허락을 내려준 것에 대해, "땡큐." 하고 대답하고는 팁을 입에 물고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스으읍- 하고 공기 빨려들어가는 소리가 나더니, 누가 봐도 담배연기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새하얗고 창백한 연기가 반쯤 열린 창문으로 빠져나가며 새하얀 궤적을 그리다 스러진다. 향신료로 합성한 인공적인 라임향과 포도향이 엉망으로 엉켜서 경음부실에 옅게 퍼진다. 세 번째로 담배연기를 뿜었을 때쯤에 쇼가 질문해왔다. 이름모를 드러머는 쇼를 빤히 바라보았다. 별 걸 다 묻는다는 투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마디 한다.
"코우사카 시니카."
의외로 흔쾌하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그녀, 코우사카 시니카는 네 번째의 차가운 안개를 슥 들이켜 폐부를 채웠다. 이것도 역겹다. 그나마 제일 덜 역겨운 것이지만. 그녀는 다시 흰 연기를 길게 그리고는, 드러머의 자리에 걸터앉았다.
>>324 아냐아냐 어디까지나 히키주가 돌릴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멀티를 돌리겠단 말이었으니까! 너무 바쁜 게 아니라면 캡틴이 먼저 돌려도 돼!! 아참 그리구... 혹시 '이 기간까지는 인간 캐릭터에게 신의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된다' 하는 기간이 있어? 아니면 러닝 기간 전체 동안 '신은 자신의 정체를 인간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는 철칙이 적용되는 거야? <:3
오빠라고 불렀다고? 요조라는 티 내지 않았지만 잠시 당황했다. 천천히,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어보자, 아까, 아까라면... 아, 떠올랐다. 조금 전, 졸면서 이곳이 집이라고 착각했을 때다. 그 짧은 사이, 이 사람을 오빠라고 착각했나 보다. 최근, 집에서 가장 많이 기대는 사람이 오빠였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 할 뻔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요조라는 차분히 대꾸했다.
"그렇겠네요, 아마..."
모르는 척, 아닌 척 하는게 요조라에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티내지 않는 선에서 대강 얼버무릴 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빠 때문에 이게 뭐람. 요조라는 괜히 오빠에게 애꿎은 화를 돌리면서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는 중에 들린 질문- 올라가봐야 하지 않냐는 물음에 답을 하려다가 예비종이 울리길래 꺼내려던 말을 넣는다. 예비종이 울린 후에 넣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저는, 교실로, 안 가니까... 상관없어요... 늦던, 빠르던..."
이대로 교실로 가면 졸아버리거나 기절하듯 잠들게 뻔하니까, 바로 양호실로 갈 생각이던 요조라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남은 내용을 읽기 위해 잡지만 바라보았다. 제대로 안 보면 귀가했을 때 오빠가 이것저것 묻고 귀찮게 굴게 뻔하다. 그걸 넘기기 위해서라도 본 김에 다 보는게 좋다고, 요조라는 생각했다.
아뇨. 대답이 무척 단호하다. 냉랭한 분위기가 어딘가 무섭기도. 리코는 애둘러 하하 웃으며 대꾸해보지만, 상대의 발치를 서성이는 고양이의 집념은 그럼에도 사그러들 기미가 없다. 나비야, 이제 그만....! 리코는 속으로 다급히 외쳐보지만, 그 목소리가 고양이에게 닿을 턱이 없다. 아이들은 길고양이 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다. 험난한 길바닥에서 살아남기엔 다소 불리한 요건. 개중 겁이 많은 녀석도 이리 금세 경계를 풀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이유. 곤란한듯 고양이와 상대를 번갈아 바리보던 리코가 다시 한 번 쇼핑백 손잡이를 고쳐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가보구나. 이 시간대에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단 생각이 드는 그녀다.
" 츄르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필요는 없으시겠죠... "
잠깐의 환색, 그리고는 다시 의기소침한 웃음. 고양이들의 환심이 필요해보이진 않으니까. 상대의 표정을 살펴 바라보니 그 생각에 동그란 정답 표시를 매기듯 냉랭한 표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 나, 어쩌면 굉장히 민폐처럼 보일지도.
" 제법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사랑이 고픈 아이들이라. 아무래도... 새로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을까, 기대한 것 아닐까요? 무서운 것도 무릅 쓰고. "
독심술을 할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게다가 정확한 답도 아니다. 그저 심증 뿐인 서술. 답안을 직면한 선생님이라면 부분 점수 1점을 남길만한. 리코의 눈길이 상대의 손끝을 따른다. 캔이 두어개 남은 종이 쇼핑백. 누군가를 향한 확실한 관심과 사랑의 증거. 리코가 조심스레 손을 뒤로 돌려 쇼핑백을 감춘다.
" 그 애 이름은 나비예요. "
괜스레 화두를 돌려본다. 애진작 식사가 끝났음에도 고양이들은 이 차가운 풀숲 옆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일어난 해프닝이 그저 재미있는 걸 수도. 당사자는 제법 곤혹스러운 처지인데도 말이다.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물어본 것에 불과한데 반응이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시로하가 당황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인데. 조금 더 놀려볼까하다가 화라도 내면 어쩔까싶어서 일단 보류하기로 마음 먹었다.
" 교복 차림과 사복 차림은 다른거니까. 너도 항상 내 교복 모습만 보잖아? "
그렇다고 카페에 찾아오면 그때는 사복이 아니라 유니폼이니까 조금 다른 모습이더라도 본질적으론 사복은 아니다. 목소리를 올리다가 기침을 하는 시로하를 보고선 책상에 올려두었던 물병을 건네주었다. 역시 몸이 약한 편이라 그런가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저렇게 반동이 오니 ...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다.
" 그냥 놀러가는게 기대 되는거니까. 간만에 여가시간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고. "
학교 갔다가 카페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 신으로써의 업무를 보다보면 가사를 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들은 주말에 몰아서 하게 된다. 주말 하루는 자느라 바쁘니까 나머지 하루는 결국 밀린 일들을 하다보면 그렇게까지 여유 시간이 많이 남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긴 여유도 보통 잠으로 보내기도 했고.
" 도장까지 찍어야겠는걸. "
작은 키에 걸맞는 앙증 맞으면서도 하얀 손에 내 눈 높이까지 올라와 새끼손가락을 치켜보인다. 이런 작은 손으로 검을 잡아서 그렇게 휘두를 수 있다니. 신이란 그런 법인걸까. 그렇기에 더욱 그녀가 신으로써 받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같은 신이니까 딱히 그런건 없고, 그저 새끼 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엄지 손가락으로 도장까지 찍으려해본다.
" 아 참. 오늘 밤에 별똥별이 하나 떨어질꺼야. 시간은 ... 오후 열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구경할꺼면 해도 괜찮아. 아마 남쪽 하늘에서 보이지 않을까 싶네. "
반응은 없다. 예상했던 것이다. 짧은 몇 번의 대화로 파악한 사실은, 상대가 생각보다 많이 무심한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담배 끝에서 퍼져나온, 구별할 수도 없는 과일 냄새가. 동시에 삭막한 기류가 부실 가득 퍼진다. 전자담배에는 저런 향도 있구나, 쓸모없는 지식이 하나 생겼다. 쇼가 의자 옆의 작은 책장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괸다. 그 시선이 연기의 궤적을 따라서 움직인다. 창문 너머로 날아간 연기가 덧없이 흩어진다.
허락도 없이 멋대로 외부인을 들이고, 거기다 담배까지 피는 걸 묵인해줬다는 사실을 누가 알기라도 하면 어떨까. 아마 부장 선배가 불같이 화를 내겠지. 그럴 일도 없는데, 참 쓸데없는 생각이다.
코우사카의 의욕 없는 목소리가, 순순히 제 이름을 알려준다.
"음."
짧은 탄성이 대답 대신 내뱉어진다. 별 의미는 없다. 그냥 그 이름이 이상하리만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오토하, 쇼."
이쪽도 이름을 알려주고 나면, 또 침묵이 이어진다. 갈 곳 잃은 시선이 창문 밖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