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매번 일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오늘 같은 날은 특별히 일이 없었다. 회장으로서도, 시미즈로서도. 허나 바로 집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지 학생회실에 앉아있는 아키라는 카페에서 산 얼그레이 티를 입에 담았다. 입에 가득 퍼지는 홍차 특유의 향과 맛은 피곤함을 달래주기 딱 좋은 느낌이었다. 요 근래에는 일도 많을 뿐더러, 공부를 해야하는 시간도 있었으니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적게 자고 있었기에 이런 피로를 달래주는 차는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행복한 음료였다.
'...그렇다고 해도 내일부턴 또 바빠지겠지만.'
오늘은 운 좋게 처리해야할 서류가 적었다고는 하나, 조만간에 동아리들이 본격적으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그에 대한 예산을 검토하고 통과시키고 또 관련 서류를 체크하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책상 저쪽에 쌓아둔 장부 사본은 모두 그것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직접 장부를 받은 후에 즉석에서 복사해서 돌려주고 그간 운용에 문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체크하기 위한 작업 또한 절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한동안은 자는 시간이 조금 더 줄어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아키라의 입가에 쓴 미소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 정도도 못해서는 장차 시미즈의 이름을 내걸 수 없겠지.'
지역 유지. 그것은 딱히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시미즈 가문은 이 가미즈미의 근원이기도 한 성스러운 샘이 흐르는 동굴과 그 옆에 세워진 낡은 신사. 아오노미즈류카미를 모셨다고 전해지는 그 신사를 관리하고 있었다. 마을의 근원을 관리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와 동시에 그만한 책임을 지녀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 일을 하고 있으나 그 아래의 자식이 자신밖에 없으니 결국 그 모든 것은 자신이 맡아야 할 것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집에서 대대로 하고 있는 가미즈미 온천과 가미즈미 스파도 결국 자신이 관리를 해야만 했다. 학생회장으로서의 일은 그에 비하면 차라리 쉬운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지금 이 학생회장이라는 자리는 자신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그야말로 실전에 가까운 시험대에 가까웠다.
'물론 내 역량을 확인하는 걸로 끝낼 생각은 없지만...'
3년에 한 번 가게 되는 수학여행 계획서를 살며시 옆으로 치우며 그는 빨대로 다시 홍차를 천천히 빨아들였다. 전통 홍차는 아니긴 하나, 카페산 역시 나름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 인스턴트가 무조건 나쁘다고 누가 그랬던가. 때로는 인스턴트도 괜찮은 편이었다. 너무 한 곳에 치우치지만 않는 것. 그 정신을 잊지 않으며 그는 빨대에서 입을 천천히 떼어냈다.
'일단 조금만 더 쉬었다가 돌아갈까.'
부회장도, 다른 임원들도 없이 자신 혼자만 남은 적막한 공간 속에서 그의 작은 숨소리가 울렸다. 가장 외롭고 쓸쓸한 공간일지도 모르나, 그와 동시에 가장 숨을 내뱉고 아키라가 아닌 아키라로서 있을 수 있는 자리였다.
으흐흑 ( ˘•灬•˘ ) 나도 모든 레스에 세 줄짜리 주책 반응을... 모든 참치에게 볼쭈왑과 허그를 곁들인 인사를... 하고 싶... 어... 그러나 오늘도 머나먼 새벽근무의 길을 떠나야 하죠 진단 하나만 슬쩍 던져 두고... 아침에 와서 흩뿌려진 진단을 주워 먹을게요! 모바모바
98 자캐는_독서를_좋아하는가_싫어하는가 별 감정 없다! 중요한 건 내용을 머릿속에 받아들이는 게 괴롭냐 아니냐는 것이라... 굳이 고르라면 독서가는 아닌 편.
무료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이 trpg동아리실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예 안 들어오는건 아니었지만 가끔 사람 1명이 왔다가 가는 수준이었고 그나마 머무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trpg동아리 자체가 부원이 오든말든 신경을 잘 안쓰는 동아리였기에 오늘은 동아리원.. 부원도 없었다. 그냥 조기종료하고 집에가서 쉬는게 좋을까 생각하는 찰나에 밖에서 평소와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들짐승의 소리였으며, 당신은 그 소리가 복수의 소리임을 눈치챘습니다. 당신은 신중히 움직여 그 짐승이 당신의 냄새를 맡지 않도록 바람을 등지지 않도록 하여 창문을 통해 그 짐승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하늘 위의 태양의 빛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똑바로 그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수의 들짐승들의 사이에 갇힌 한 명의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은밀행동.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그만두자.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동아리실에서 나와 그 소리가 나는 장소로 몸을 움직였다. 당연히 그 여성은 들짐승들에게 공격받는건 아니었고 오히려 그 동물에게 음식을 베풀고 있었다. 흠, 상황적으로는 그리 다른 것은 아닐지도.
그녀의 드럼은 마치 짐승의 소리처럼 광포하게 꽝꽝 울려대고 있었으되, 그것을 두드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못해 무심했다. 마치 그렇게 북 두드리는 법을 배우는 기계와도 같이 영혼이 없었다. 그 연주는 난폭하고도 훌륭했으되 공허했다. '뭐라도 두들겨패고 싶다'라는 조금 과격하기까지 그지없는 표현을 했는데 성에 차지 않는 걸까, 아니면 얼굴에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이미 무언가 열의라거나 만족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느끼는 법을 다 잃어버리고 만 걸까.
바로 무대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만한 합주였건만, 온 경음부실을 꽝꽝 울리는 기타 소리와 드럼 소리가 그치고 나서도 박수갈채는 없었다. 아무 감정 없는 텅 빈 침묵만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을 뿐이다. 시니카는 드럼스틱을 쥔 채로 드럼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쇼에게로 시선을 들었다. 잠깐 쇼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나올 법했다. 쇼의 연주는 분명히 선명한 열정이 한가득 담긴 멋진 기타 연주였으니까. 너 보컬이라더니 기타도 좀 치네? 라거나 보컬이랑 기타를 동시에 하는 거야? 하고 물어봐도 될 만한 상황이었건만 시니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역시나, 하는 태도 같았다, 여기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는 듯이. 그래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질문은 영 엉뚱하기 그지없는 질문이었다.
"담배 좀 피워도 될까?"
그녀는 드럼스틱을 주머니에 꽂고는, 주머니에서 아무렇지 않게 웬 이상한 기계를 꺼냈다. 담뱃갑만했지만 담뱃갑은 확실히 아니었는데, 액체가 들어찬 원통 같은 게 그 기계에 달려 있었다. 쇼는 문득 코끝에 걸려오는 라임과 포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 그러면 그녀의 몸에서 났던 그 엉망진창으로 정체성 잃고 뒤섞인 과일냄새들은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