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잘 대었다는말에 뭔가를 깨달았다는듯 소리를 내었다. 나중에 무사캐릭터들의 전투묘사에서 써먹자고 마음먹으며 그녀의 말을 잘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알로 염불보다 잿밥이었다.
"오케이."
죽도를 휘둘러보라는 말에 후들거리던팔을 겨우내려 팔을 쉬어주고 피로가 풀어지는걸 느낀 후에야 마치 머리를 내려치는 동작으로 한 번 죽도를 휘두를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 그는 뭔가 어깨에서 피로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몸에 땀을 흘리는것 보다야 낫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내려진 행운을 눈치채지 못한채 그저 이 정도면 잘 휘둘렀다고 자신 할 뿐이었다.
"이거면 되려나..?"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감과는 조금 멀었다. 그도 그럴게 주변에서 휘두르는것과 비교하면 역시 패기가 없는 것이다.
그때 들려오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있었다. 문학작품에서나 나올 법한, 현실에서 걸어다니는 사람 입에서 직접 듣기에는 너무도 고풍스러운 그대라는 표현까지 염두하지 않아도, 나직한 목소리에 어린 어떤 힘이 그 목소리의 임자가 이 쾌락신만큼이나 컨셉에 잡아먹힌(?)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쾌락신과 그 궤를 같이하는 존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했다. ...비 맞은 몰골을 보이기에 가장 최악의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라도 괜찮다면 쓰도록 하여라."
고개를 들어보면, 그 곳에는 하얀 고사리같은 손에 꼭 쥐어진 차곡차곡 접힌 뽀송뽀송한 손수건 한 장이 보였다. 모서리에 국화 문장이 하나 찍혀있고, 보일 듯 말 듯 아롱아롱 구름무늬가 새겨진 하얀 손수건에서는 부드럽고도 상쾌한 향기가 났다. 갑작스런 봄비에 쫄딱 젖은 쾌락신에게 건네어진 것은 웃음이 아니라 손수건이었다. 시이의 머리 위로 커다란 비닐우산이 드리워져 왔다.
내밀어져온 손수건 너머에는 신이라기에는 좀 많이 짤막한 무언가가 있었다. 서 있는데도 앉아있는 시이와 그렇게 눈높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가미즈미 고교의 교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2학년을 나타내는 빨간 리본을 한 채로, 그 위에 우비를 덧입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있는 모양새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기엔 퍽 어려 보였다. 구름처럼 새하얗고 몽실몽실한 머리카락이 가득 들어찬 후드의 아래로 보이는 눈은 하늘이 비쳐 먹구름처럼 거무튀튀한 회청색이었다. 그 회청색의 눈동자가 염려를 품은 채로 시이를 가만히 바라봐오고 있었다. 시이가 손수건을 받아들지 않는다면 직접 손을 내밀어 시이의 눈가부터 닦아줄 기세였고, 시이가 정말로 손수건을 받아들지 않는다면 실행에 옮기려 했을 것이다.
호시즈키당의 내부는 대단히 심플했다. 크고 깨끗한 화과자 진열 냉장고가 있어서 손님들이 편하게 보고 고를 수 있었다. 요조라가 말한 말차 당고와 벚꽃 앙금 도라야끼도 당연히 진열되어 있었다. 도라야끼는 하나 하나 종이로 포장되어서 봐도 종이 포장의 호시즈키당 문양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말차 당고는 동글동글한 당고알들이 소복히 쌓인 접시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어째, 추천 받은 당고도 도라야끼도 한 종류가 아닌 듯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네에... 잠시만요..."
요조라가 권한 맛보기를 손님이 수락하자 느릿한 대답을 하며 요조라의 몸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으잇차, 하는 작은 소리를 내며 내려선 다음 팔을 밑으로 뻗으며 가볍게 기지개를 켠다. 앉아서 존데다 엎드리기까지 했으니 뻐근할 만 하다. 어느 정도 움직일 만큼 몸을 푼 요조라는 카운터 아래에서 작은 종이 접시와 나무 꼬지를 챙겨들었다. 그리고 진열장 앞으로 걸어갔다. 느릿느릿. 조금은 답답한 속도로 걸어가며 말했다.
"어어... 맞아요... 아빠랑, 엄마가... 지금 주인장... 이에요... 저어는... 가게에 잘, 안 나와서... 어릴 때는... 더 심했거든요..."
딱 거기까지 말하고나니 진열장 앞에 다다른 요조라였다. 말하는 속도에 걸음을 맞춘 건지, 걸음에 말을 맞춘 건지. 어느 쪽이든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건 같지 않았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요조라는 진열장을 열어 제법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진열장은 오래 열어두면 안 되서 그런가 보다. 담기가 끝난 요조라는 진열장을 닫고 접시를 들고서 조금 이동했다. 남은 대답은 이 사이 이어졌다.
"마츠리, 노점은... 낼 건데... 낼 거에요... 아빠엄마랑, 오빠랑... 아, 오빠가 있었지..."
다소 횡설수설 하는 대답을 늘어놓으며 요조라는 진열장과 카운터 사이에 있던 동그랗고 작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아마 맛보기를 할 때 쓰는 듯한 테이블에 접시를 내려 놓고, 손님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오라고. 그리고 가까이 오면 접시에 담아온 것들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거... 는, 그러니까... 말차 당고는 세 종류... 도라야끼는 두 종류... 있어요... 당고는, 기본 말차 경단에, 쿠로미츠 뿌린 거... 초콜릿을 바르고, 말차 파우더 뿌린 거... 안에 말차초코 크림 들은 거... 있고... 도라야끼는... 벚꽃 소금 절임 넣은, 백앙금 들은 거... 이 앙금이랑, 생크림이랑, 반반인 거... 응... 이렇게요..."
접시 위에는 느릿한 설명대로 세 가지 종류의 당고가 한 알씩, 도라야끼는 포장된 낱개가 하나씩 두 개 있었다. 요조라는 설명을 마치고 포장된 도라야끼를 들어 손님이 보는 앞에서 반으로 뚝 잘랐다. 포장지까지 깔끔히 떨어지는 것을 보니 미세한 절취선이 도라야끼 포장지에 있는 듯 하다. 두 개의 도라야끼를 똑같이 반씩 잘라 안이 보이도록 놓은 요조라가 말했다.
"천천히... 맛보세요..."
그리고 도라야끼의 반 쪽 하나를 들고 포장지 사이로 도라야끼를 꺼내서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그걸 보니 맛보기를 권한게 사실 본인이 먹고 싶어서 그런거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지도?
꽤나 느긋한 템포를 지닌 이라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물론 그것이 답답하다거나 조금 빠르게 했으면 좋겠다던가 그런 생각은 그는 하지 않았다. 급할 것은 없었고, 적어도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느리면 느린 것으로도 그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지금 이것이 급한 일도 아니고 단순히 간식거리 좀 사러 온 것 뿐이 아니던가.
별 말 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노점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마츠리 때는 이것저것 사서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가 손짓하고 있는 테이블로 천천히 향했다. 이어지는 설명에 정말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이러니저러니 해도 추천은 정말 열심히 해주고 있다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그녀의 설명에 따라 시선을 하나하나 옮기며 뭐가 더 맛있을지를 나름대로 고민했다. 기본 말차 경단에 쿠로미츠를 뿌린 것. 초콜릿을 바르고 말차 파우더를 뿌린 것. 말차초코크림이 들어있는 것. 벚꽃 소금 절임을 넣은 것과 반반으로 앙금이 들어있는 것. 어느 것도 다 맛있을 것 같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종류가 다양하네요. 마음 같아선 다 사고 싶지만..."
그래도 간식거리를 그렇게 너무 많이 사는 것은 애매한 일이었으며 자신이 사고자 한 것은 어디까지나 각각 한 상자 뿐이었다. 오늘 못 산 것은 다음에 사면 되겠거니 생각하며 그는 천천히 하나하나 집어서 입에 넣어 음미했다. 그 와중에 자신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두 눈을 깜빡이다 싱긋 웃었다.
"부모님이 만든 상품을 정말로 좋아하나봐요? 확실히 이 정도 맛이면 어릴 때부터 먹었다고 해도 질릴래야 질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말 있잖아요? 사탕가게 집의 자식은 사탕이 질려서 사탕만 봐도 치를 떤다던가. 하지만 이 정도 맛과 부드러움이면 질리기도 힘들 것 같네요. 매일매일 세 끼로 이것만 먹는게 아닌 이상은."
가게의 자식이면 좋건 싫건 아무래도 관련 제품을 많이 먹어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신제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먹여볼테고 간식거리도 항상 이런 종류로 나올테니까. 물론 그것이 편견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그의 생각은 그러했다. 일단 별 말 없이 하나하나 제대로 음미를 하던 그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각각 하나씩 선택했다.
"그러면 말차초코 크림이 들어있는 당고와 백앙금이 들어있는 도라야끼로 각각 한 상자씩만 사갈게요. 다른 것은 다음에 오면 사야겠어요. 여기에 자주 와야겠네요. 일하면서 먹는 간식으로는 최고네요."
빈말이 아니라는 듯, 그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와 만족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나 맛이 좋은 것을.
/이 분들 새벽에 또 달리셨군요?! 아무튼 답레를 남기면서 저도 출근하러 가볼게요! 다들 하루 힘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