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과 개학이 잦아들고 슬슬 어느정도 정리가 될 때쯤. 3월 14일, 화이트데이가 돌아왔다는 소식과 함께 들려온 소식. 3월 말 즈음에 3월 모의고사가 있다고...?
1. AT필드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상 서로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2. 참치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용합니다. 편파, 캐조종 하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3. 수위는 최대 17금까지로 과한 성적 묘사는 지양해주세요. 풋풋하고 설레는 고등학생다운 연애를 합시다.(연플은 3/11까지 제한됩니다.) 4. 느긋한 템포로 굴러갈 예정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5.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어 일상을 풍성하게 해주세요.
도망가려 했던 게 맞았던 것 같다. 움직이려다 동영상 정지버튼을 누른 것 처럼 어설픈 자세로 멈춰있던 몸을 엉거주춤 고치는 하늘을 더 가늘어진 눈으로 흘겨보려다 말고 대신 '다 이해하니까 난 괜찮아요'의 의미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입술 사이로 살짝 바람이 새어 나왔다. 학교의 터줏대감이나 마찬가지인 고삼 남학생이 막 입학한 신입생을 보고 도망간다니, 묘하게 즐거우면서도 학년과 별개로 한창 감성에 빠져있다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감정을 알기에 공감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남일은 아니었지. 적어도 하늘은 입 밖으로 무언가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다 들으라는 듯이 읽기까지 했다. 등 뒤로 감춘 종이를 쥔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럭저럭 잘 지낸것 같아서 다행이야." 습관적으로 다행이에요를 말하려다 어색하게 고친 해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삼은 많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아직 학기초라 별일은 없나 봐. 라 말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삼학년이란...막 신입생이 된 자신도 이리저리 정신이 없는데 시원하게만 느껴지던 바람이 조금은 서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구름도 얼마 없고 날씨도 이 정도면 따듯하고 사람도 없으니까 머리 아플때 오기에 딱 좋아. 이렇게 말하니까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내가...그 하여튼, 모처럼의 쉬는 시간을 방해한 게 아니지?" 어찌되었건 조용히 쉬는데 들어와서 감성을 깨는 행동을 한 건 맞으니까. 해인은 잠시 머뭇거리며 물어보며 고개를 들었다. 맑고 차가운 늦겨울의 하늘에 걸린 새 봄의 햇살이 느긋하게 바람이 지나간 뒤 온기를 내렸다.
"응. 별 일은 없는 것 같고. 여기저기 친구들하고 돌아다니다가 3학년 교실까지 오게되었나봐. 그래서 겸사겸사 오빠도 찾아봤는데 1반에 없었다고 해서."
벌써 자신의 행동을 보았다면 건수를 잡았다고 신나게 놀릴 지난 중학생때 알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고 해인은 안도하며 차분하게 바다의 일을 전했다. 아마 당사자가 알았다면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며 어이없어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였지만 걱정이 된다는 어투의 물음에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덧붙였다. 저도 동생의 친구가 찾아와서 서해준이 누나 찾던데-로 시작하는 말을 꺼낸다면 비슷한 반응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은우가 은돌이로 고정이 되어버렸잖아?! (갸웃) 딱히 일코라기보다는 은우는 사고를 치고 싶다라기보다는 그냥 재밌을 것 같고 재밌으니까 한다 주의라서 얌전히 놀 때도 많아. 보드게임이라던가 충분히 재밌는걸! 전략형 게임? 아주 좋아하지! 다만 자기가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전략을 짜기보단 판을 혼돈으로 만들어버리는 플레이를 더 즐겨. 분명히 저렇게 하면 1등 못할게 뻔한데 일부러 판을 뒤집어버린다던가? 아이고. 학원이라.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구나. 그렇기에 다른 삶을 조금은 즐겨보고 싶어하는거려나?
은우 은우구리 은돌이~~ 그만큼 잘 어울린다는거지 ㅋㅋㅋㅋ 사고보다는 재밌게 논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구나. 학교안에서는 그럼 재밌게 놀 수 있는게 한정되어 있어서 더 사건을 벌이는 건가() ㅋㅋㅋㅋㅋ 즐겜러 은우랑 클루하다가는 다 같이 혼돈에 빠져버리는 거 아니야??? ㅋㅋㅋ 마피아나 어몽어스도 재밌게 잘 할 것 같아 ㅋㅋㅋ 완벽하지 못한것에 두려움이 많으니까? 다른삶을 즐기고 싶어하지만 성향적으로는 힘든 딜레마지. 그래도 금요일이니 만큼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있어~
제 혼잣말을 들어버린 이상 설명을 해야하는데, 이걸 입 밖으로 말하자니 또 마음이 참 어수선해진다. 이런 상황은 사교활동이 원활하지 않을때나 생기는 일인데 요즘 부쩍 이런 일이 많아진 기분이 든다. 이러다 나는 혼자서 밥 먹는 루저, 외톨이, 아싸가 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들던 차엿다. ...그래 혼밥이 나쁜 것도 아니고 오늘은 이 친구와 함께 먹기로 했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 1학년때 나와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에게 눈치없는 척 합류해도... 그런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다운은 무척 진지해보였다. 평생 중요한 생각만 하고 살 것 같은 얼굴이다.
"...우리가 만나본 적 있다고?"
다운은 진지하게 자기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얼굴에 음영이 지기 시작한것도 그때쯤이다. 먹구름 낀듯이 급격히 어두워진 얼굴을 보자니 그렇게 진중하고 무거워보일 수가 없다. 그러나 제아무리 기억을 뒤지고 뒤져도 다운은 서우와 함께한 기억이 없었다. 당연하다. 입학식에서 한 번 보고 반에서 몇 번 봤을뿐이지 둘이 유의미한 교류활동은 한 적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거였어. 그래서 우리 언제 만났다고?"
작업이라는 말에 다운은 기계처럼 삐걱거린다. 뻣뻣하게 손을 마구 흔들고는 눈을 마주치며 묻더랬다. 진짜로 기억 못하는 거면 다운이 사과해야하는게 맞았다. 다운식으로 표현하자면 울기 직전의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그냥 무표정이다.
"잠깐만, 방금건 농담이었다."
하하하, 무척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머리를 팽팽 돌려본다. 수아? 서아? 수진? 시아? 스쳐지나가는 후보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만 고르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수아?"
다운이 서우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또 아니라 하면 이것도 농담이라고 하고... 그렇게 친구도 잃고.......
>>937 남에게 피해가 주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재밌으니까! 정말로 단순히 그게 이유야. 마피아나 어몽어스라. 마피아를 할 때 한번은 시작부터 내가 마피아니까 날 죽여라! 라고 공개하고 저거 또 트롤하네 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며 정말 하나하나 너무나 손쉽게 죽이고 승리한 후에 내가 마피아라니까. (으쓱) 이런 적도 있었지! 사실 내심 원하는 것과 성향이 항상 같을 순 없을테니까. 은우를 약간 철없는 동생처럼 보는 것도 어쩌면 그게 이유일까..하고 생각해보기도 하고!
>>941 (저거 또 트롤하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얼마나 많이 그랬으면(은은)() 은우가 승리한 후에 친구들 표정이 상상가는것 같아 ㅋㅋㅋ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 지루한 일상을 부수고 즐거운 청춘을 보내고 싶어하는 걸까. 하기야 고삼이 되면 더 이상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기는 힘들테니까. 해인이는 속으로 낭만을 동경하는 면이 있으니까 더 갈등이 심하기도 하고. 그렇지(끄덕) 은우를 철없는 동생처럼 본다라,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해인이 개인은 아이인데 어른인척 하는 편이지
가늘어지던 눈빛 뒤에 이어지는 그녀의 미소, 겉보기엔 마냥 귀여워 보이지만 뭘까,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어깨가 결려오는 듯한 이 느낌은.. 스트레칭을 잘못했나?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했던 것은 내 나름대로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서였지만 어째 내가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미소에 어색한 웃음을 마주 지어 보일 뿐이다.
"아직 그렇게 체감되는 건 없네."
3 학년이 되면 확실히 신경 써야 할 것은 더 많아지겠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아직 학기 초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태평한 것인지 어깨를 으쓱이면서 그렇게 대꾸했다. 사실 1, 2 학년 동안에도 학업에만큼은 성실했던 탓에 내신도 부족하지 않게 챙겨놓았으니 평소처럼 하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나보다는 네가 더 바빠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한 까닭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듣고 보았던 대로 입후보 준비도 하고 있는 것 같고, 필요한 일이 아니면 손 놓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모든 곳에서 강박이라 생각될 정도로 열심히라는 느낌이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항상 여유가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한숨 비슷한 호흡을 내뱉으며 조금은 쉬엄쉬엄하라는 말을 덧붙이고 그녀의 이어진 말에는 고개를 살풋 저어 보였다.
"아니야, 내가 전세 낸 것도 아닌걸."
나야 물론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선호하긴 하지만, 어차피 이 옥상도 학생 교사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오픈 된 장소다. 내가 이곳의 터줏대감도 아니고 지박령도 아닌데, 그녀가 나에게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보잘것없는 내 감성까지 챙겨주다니 참 마음도 넓은 아이란 말이지. 무엇보다 사람 한두 명쯤 늘어난다 해도 식당이나 매점보다는 백배는 낫다. 단순 머릿 수로만 계산해도 백배가 맞으니까.
"굳이 별관까지는 왜 왔대.."
굳이 본관 옥상에 까지오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일단 별일 없다는 것에는 안심이다. 뭐.. 사실, 무슨 일이 있다고 한들 바로 문제를 해결해 줄 만한 믿음직스러운 오빠도 못되고.. 동생이 내게 수학 공식 같은 걸 물으러 오는 것도 아닐테니 말이다. 그럼 굳이 친구들과 3학년들이 쓰는 별관까지 와서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문득 떠오른 잡념에 사로잡혀 생각을 해보던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내었다.
...사탕 구걸하러 왔구먼.. 그러고 보니 오늘 화이트데이였지. 나에겐 평생 동안 기념해 볼 만한 일이 없었던 날이라 깜빡 잊고 있었다. 그 녀석 성격에는 그럴만도 하지. 휴우.. 다행이다.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탕을 뜯길 뻔 했잖아?
딱 그거야!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은우의 삶이야. 물론 자신도 아예 피해를 안 줄 순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도를 넘어선..그러니까 이를테면 일진들이 만만한 애 하나 잡고 막 괴롭히면서 재밌다고 낄낄대는 그런 건 진짜 극혐하는 편이야. 만약 그런 모습이 보이면 정말 태연하게 양동이에 물을 받아와서는 뿌려버리면서 어이고 재밌네. 낄낄낄. 하는 그런 스타일. 물론 이후는 은우가 알아서 하는 걸로! 사실 고3때도 어쩌면 독백에서도 잠깐 나온 캔디맨 짓거리를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의 이야기! 아무튼.. 고등학교 1학년 한해 동안 해인이가 조금은 어깨에 힘을 풀고 약간의 낭만을 즐겼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걸?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했던가. 각자 벽에다 글씨를 쓰고 너머의 상대는 자신의 방식으로 글을 해석한다. 마찬가지로 해인도 하늘의 반응을 자신의 해석으로 아, 멋적어서 자리를 피하려 했다 여기고 은은한 미소를 짓는 현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서로를 배려한다는 의도였지만 보기 좋게 엇갈린 사실을 모르며 해인또한 어색한 기류에 괜스레 "오늘 오래 앉아있었어?" 라 물어보고 바람에 흩날린 머리를 살짝 꼬다가 어깨 넘어로 넘겼다.
"그렇구나. 학원에서 만난 언니는 맨날 앓는 소리를 해서."
"오빠는 1,2학년때도 꾸준히 내신을 챙겨 왔으니까 강도가 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매일같이 학교가 폭파되었으며 좋겠다고 중얼거리는 입시반 언니를 떠올렸다. 그녀는 수시파였던가 정시파였던가. 1학년 때 논 여파로 내신이 목표한 대학에 미치지 못해 정시를 봐야한다며 웅얼거리던 모습이 지나간다. "평소처럼만 해도 아직까지는 시험도 없고 괜찮을 테니까..." 잠시의 침묵이 내려앉고 해인은 그 다음 말에 답을 고르며 머뭇거렸다.
"설마. 내가 바빠도 고삼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자꾸 부담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고삼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 같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해인은 생각한 바를 입 밖으로 내놓았다. 그럼 옥상으로 올라온 이유가 학업은 아닌걸까. 하늘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물어볼까 싶다가도 묘하게 어색한 기분에 질문을 내려놓았다.
"막 입학하고 새로이 고등학생이 되다보니 적응이 필요해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 벌써 이번주만 해도 몇 번을 우왕좌왕 했는 걸."
바보처럼 말이야. 입 안에 맴도는 마지막 말은 다시 삼키면서 옥상의 난간에 팔을 걸쳤다. 연설문이 바람에 팔랑거렸다. 그리고 바로 들려온 한숨 비슷한 긴 호흡과 조금은 쉬엄쉬엄하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하다가 밝게 웃으며 걱정해줘서 고맙다며 말했다. 아직은 그렇게 지치지도 않았고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싶었다. 처음 시작할 때 사람이 제일 긴장하고 점점 가면서 적응이라는 명목으로 늘어져 가니 이 정도면 적절하지 않을까. 새로움이라는 이름의 밀려오는 파도를 즐길수는 없어도 종류를 알면 그럭저럭 대비할 수는 있는 법이었다.
"그러면 잠시 실례할게. 오늘 도서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조용히 연습하기 힘들었기도 하고."
평소 바삐 지내는 만큼 사적인 공간을 중요시 여기는 해인은 살짝 고개를 적당히 기울이며 고맙다고 가볍게 인사했다. 이어진 질문에 몇 초 생각을 하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화이트 데이니까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러 간게 아닐까? 라 답했다. 묘하게 안심을 하는 하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홀로 기억을 더듬어 가니 친구가 고등학생으로서 보내는 첫 화이트데이 기념으로 별관까지 가보겠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 비록 자신은 2학년 선배랑 얼떨결에 사탕내기를 하는 통에 가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살다 온 모양이다. 과연 팁을 준다면 얼마나 주는지 조금은 궁금했으나 이제와서는 늦은 행동이었다. 여전히 살짝 알아먹기 힘든 글자로 글을 쓰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며 이번에는 김밥을 라면국물에 적셔 먹었다. 밥과 그 안의 구성물이 물로인해 사르르 풀려나오며 느껴지는 맛이 일품이었다.
"아니. 여기서는 좀 멀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는 항구이고 집에서 항구까지의 거리는 좀 멀었으니 그렇게 말 했다. 이 녀석도 이 주변에서 거주하는걸까?
"이름은 정대수."
'너는?' 이라는 말을 하지 않음은 그 다운 행동이었다. 말을 마치고 다시 라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입 안으로 옮긴 그는, 순간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맛을 음미했다.
이렇게나 확실하게 말을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제가 잘못한 것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몇 개월간의 현지 생활로 이제는 겉 보기에는 내츄럴한 한국인이 된 건 아닐까 했지만 아무래도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승리자는 존경과 명예를 얻는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 제가 승리를 얻는 것은 조금 요원한 일이 아닐까 해보입니다.
“괜찮다입니다!!! 차로 가면 금방!!!”
이 근처에서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멀리 산다고 하기엔 이 시기에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이것으로 추리는 끝입니다! 강사의 집이 가깝다면 더할나위 없겠죠! 이것으로 헬렌에게 당하는 것도 배로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전대쓰? 멋있는 이름이 멋지다네요! 다나는, 다나 빈트 라시드 빈 무하마드 알하메드이다-입니다? 아버지, 라시드 빈 무하마드 알하메드. 저희 나라에서는, 기름을 캔다-입니다. Don’t worry.”
보통은 이렇게 말하면 괜찮았습니다! 항구에 자주 있다는 건 확실히 이 근방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이건 그건가요? 드라마에 나오던 그 애프터신청?! 여기서는 역시 일단 학생이라고 거절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괜찮다입니다!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본다-입니다!!! Friend!!! 아빠한테 보낼 사진도 필요하다 입니다!!!”
은우의 말대로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만약이란 걸 가정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어차피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결정되었으므로 채린은 빠르게 필요 없는 생각을 다시 머릿속 구석으로 밀어버리기로 했다.
“완성된 거? 보내줄 수야 있는데. 왜?”
어차피 말하지 않았어도 요리를 완성한 후에 반드시 기념 삼아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그걸 보내주는 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 충분히 해줄 수 있다. 다만 남이 만든 음식 사진이 왜 가지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개인 소장을 하든 어디에다 쓰든 상관은 없지만, 어쨌든 제 것이니 이유를 물어볼 권리가 있다.
“글쎄다. 다들 하지 말라고 하긴 하던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스테이크 굽는 거 어렵거든? 원하는 굽기 맞추기가 얼마나 까다로운데.”
요리 실력이 어떻냐는 말에 부루퉁해져 투덜거린다. 객관적으로 채린의 요리 실력은 형편없었다. 본인이야 인정하고 있지 않았지만, 주변인들의 반응이 확실했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대령하거나 바싹 익혀 씹기 힘들 만큼 질겨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니 수많은 요리 중 스테이크를 배우겠다고 나섰지.
타바스코란 말에 채린은 조용해졌다. 잠시 생각에 빠진 탓이다. 굳이 지옥으로 걸어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이성과 재밌을 것 같다는 호기심이 대립했다. 정확히 5초가 지났을 때 채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7전 5패로 만들어주지.”
결국 승리한 건 언제나 그렇듯 호기심이었다. 어차피 이기면 그만이잖아? 채린은 얼른 꺼내보라는 듯 책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말로 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오해를 풀기 위해 혼자 연습하던 걸 누가 보면 머쓱할 테니 내가 은근슬쩍 자리를 피해주려 했어~!라며 구구절절 해명해 내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모른 척 하려고 했다는 목적성과 어긋나는 ㅡ그것을 봤다는 것을 시인하는ㅡ 말임과 동시에 지금보다 어색함만 더해질 것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서로 가벼운 오해를 하고 있는 채로 넘기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나는 그녀의 물음에 ㅡ그러게.. 몸이 좀 뻐근하네.. 하면서 팔만 한 바퀴 더 돌렸다.
"뭐, 그렇지."
그러니까 너도 고3 돼서 편해지려면 나처럼 착실하게 공부하라고. 라며 조금 장난스러운 농담도 덧붙여볼까 싶었지만 그러지 않아도 해인이라는 아이는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잘하면 잘했지 못할 리는 없을 테니까. 생각만 하지 입 밖으로 농담을 잘 하는 성격도 아니고 말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오히려 재수없게 느껴지지 않을까? 아니, 이것도 자의식 과잉인가.. 모르겠다.
"보통 고3들도 너 처럼 바쁘진 않을걸.. 너는 나름대로 입학생 대표였기도 하고,"
그녀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동급생이나 교사들 사이에선 주목받는 입장일 테니까. 막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인 만큼 앞으로 3년 동안의 기대를 그녀에게 걸고 있을 여러 시선들에서 오는 중압감도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어야만 하는 그녀에겐 당연히 감수하며 이겨내야 하는 것일지라도. 나는 새삼 그런 그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내 동생이 네 4분의 1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네."
반도 바라지 않는다. 반의반만 해도 어디인가? 그런데 뭐, 사실 이것도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싶다. 하하.. 그런 잡념을 하다가 옥상 난간에 팔을 걸치고 내가 전한 걱정의 말에 감사를 표해오는 그녀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실례일 건 없어, 나도 여기서 점심을 때울 뿐이니까."
예의 바르게 다시 감사 인사를 해오는 그녀에게 손사래와 같이 하나 남은 빵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답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확실히 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이 내심 불편했겠지만, 안면이 있는 그녀였기에 그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다의 별관 방문 목적에 대한 것은 이미 스스로 해답을 내렸으니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바다 녀석 집에 가는 길에 사탕이라도 하나사줘야지.
"연습에는 방해가 안되게 있을게."
그렇게 말해두고 원래 앉아있던 자리에 도로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대었다. 무슨 연습을 하려는 건지는 알고 있으니까, 조용히 있어야겠지, 원래도 조용했지만..
학생이니 분명 대신 운전해주는 양복입는 집사님이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사는 세계가 엄청나게 다른 부잣집아이가 아닐까? 설마 한글 수업해달라고 찾아오는데 리무진같은 엄청난 차를 타고 오는건... 아닐터다. 2개월이나 이 곳에 머물렀다는데 난 요즘 2개월동안 그런 엄청난 차를 본 적이 없다.
"전. 대. 수."
이상한 발음으로 말하는 모습에 하나하나 띄워서 말해주어 정정시켰다. 그런데, 이름이 뭐.. 뭐라고?
"다나, 빈트, 무하마드 뭐시기? 이, 일단 알았어."
길다. '뱀은 길다' 처럼 짧은 시문으로 했으면 좋으련만. 좋아, 귀찮으니 그냥 다나라고 부르도록 하자. 물론 그녀의 이름을 불러야 할 상황이 있을때의 이야기. 자신의 나라에서 기름을 캔다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탁! 하고 쳤다. 리무진은 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보고싶을지도.
"그으..래...?"
아빠한테 나의 사진을 보낸다고? 어? 이거맞나? 갑자기 양복입은 사람이 찾아와서 권총을 들이밀고 '돵신은 우리 아가쒸에게 어울리는 싸람이 아닙뉘돠.' 하고 말하면서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