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과 개학이 잦아들고 슬슬 어느정도 정리가 될 때쯤. 3월 14일, 화이트데이가 돌아왔다는 소식과 함께 들려온 소식. 3월 말 즈음에 3월 모의고사가 있다고...?
1. AT필드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상 서로 인사하고 사이좋게 지냅시다. 2. 참치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용합니다. 편파, 캐조종 하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3. 수위는 최대 17금까지로 과한 성적 묘사는 지양해주세요. 풋풋하고 설레는 고등학생다운 연애를 합시다.(연플은 3/11까지 제한됩니다.) 4. 느긋한 템포로 굴러갈 예정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5.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어 일상을 풍성하게 해주세요.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발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물론 그에게는 발소리만 듣고 그게 누구의 발소리인지 파악하는 능력은 없었기 때문에 발소리의 주인공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야 알 수 있었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그는 의자에 앉은채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내 들려오는 바쁘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저번 시간까지는 좀 바쁘긴 했는데 지금은 프리해. 응? 그런데 사탕이야? 오! 땡큐! 잘 먹을게! 역시 살면서 친구가 있으면 이렇게 좋단 말이야. 아. 맞아. 나도 너에게 사탕 줬었는데. 챙겼어? 우주 사탕 있는 그거."
점심시간 무렵에 자신은 분명히 반의 모든 책상에 사탕을 돌렸다. 물론 그녀를 만나서 직접 준 것은 아니었으나 반 책상 전부에게 돌렸으니 당연히 그녀의 자리에도 사탕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안에 들어있는 팝핀캔디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자신도 알 길이 없었지만. 아무튼 어깨를 으쓱하며 그는 가만히 주변을 돌아보며 입에 남아있는 사탕을 가볍게 씹은 다음에 꿀꺽 삼켰고 방금 받은 사탕을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었다.
"음. 김에 왔으니 물어보겠는데 말이야. 이런 날에 검은색 사탕 복면을 쓰고 사탕을 몰래 숨긴 후에, 막 퀴즈 같은 것을 뿌리면서 최종장소에 숨겨뒀던 사탕에다가 플러스로 선물같은 것을 놓아두는 괴도 같은 이가 있으면 어떨 것 같아? 약간 이벤트 느낌으로?"
점심시간 무렵, 살짝 생각했었던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과연 어떨까 생각을 하며 그는 그녀에게 물어봤다. 물론 긍정적인 답이 나올 것 같진 않았으나 그래도 물어서 손해볼 일은 없지 않겠는가.
천사라는 말에 입을 잠시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무언가 반박하려다 만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천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느니 이상한 말 하지 말라느니 주저리주저리 어깃장 놓는 대신 다운은 작게 툭 내뱉었다.
"나는 다운인데..."
딱히 반박하려는 말은 아니었고 혼잣말에 가까웠다. 다운은 사회성도 떨어지고 친구도 몇 없어서 서우 같은 친구를 대할때면 항상 어찌할 바 모르고 쑥맥처럼 굴기 일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는데 같이 밥 먹어줘야한다는 말에 다운은 잠시 사고가 멈춘 것처럼 보였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이다가,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다는 듯 검지를 내민다.
"근데 우리 옛날에 만난 적 있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밥도 같이 먹고 애칭도 정해주고 할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기억을 잃었을지도, 내가 또 까먹었을지도, 아니면 내가 사회성이 떨어진 나머지 아싸처럼 구는 걸지도... 덜컥 겁을 먹은 다운이 심기불편한듯, 침음을 흘린다. 친구 사귀기가 이토록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건 서우가 곧잘 말을 붙여와 대화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잦아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정 안되면 또 지금처럼 농담이라 얼버부리면 그만이다.
"엇, 이름? ..........."
비상이다. 다운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얼굴이 얼마나 진지했는지 하마타면 친구 이름을 까먹은게 아니라 제 어머니 이름을 까먹은 줄 알겠다. 아무튼 나름의 답을 찾은 다운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바빴다고 말하고서야 용케 타이밍이 맞았구나 싶었다. 채린은 매 쉬는 시간마다 사탕 교환하러 다닌다고 바빴기에 그가 자리를 얼마나 비웠는지도 몰랐다. 그냥 대충 비슷한 시간 보냈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화이트데이니까.
“나한테?”
채린은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한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것.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다들 자기도 받았다고만 해서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찾은 모양이다.
“아, 그거. 난 또 산타가 시기를 착각한 줄 알았잖아. 너였구나~ 근데 왜 애들 없을 때 놔뒀어?”
채린은 비밀이 밝혀졌단 게 유쾌해서 웃었다. 사실 채린은 사탕 자체보단 누가 그걸 놔뒀는지가 더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어떻긴. 당연히 재밌겠지! 왜? 어디서 그런 이벤트 열린데?”
채린은 지루한 일상에 찾아올 이벤트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수업 듣는다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야 훨씬 즐거울 테니까. 진짜로 열린다고 하면 친구들이랑 같이 갈까 싶었다. 관심이 생겨 의자를 당겨 앉으려던 채린은 들고 있던 공책을 떨어트렸다. 그제야 제가 이곳에 왔던 목적이 떠올랐다.
채린은 슬쩍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공책을 책상 위에 반쯤 걸쳤다. 그리곤 말을 하는 대신 웃었다.
"어. 뭔가 있을 때 놔두기도 뭐해서 말이야. 지금도 네가 이렇게 사탕 안 줬으면 굳이 말하지도 않았을걸? 좀 그렇잖아? 내가 모두에게 돌렸다! 하면 뭔가 되게 생색내는 것 같고, 애매하고 말이야."
물론 딱히 말을 한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생색내는 분위기는 살짝 피하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방금 말한대로 그녀가 사탕을 주러 온 게 아니라면 그녀에게도 딱히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테니까. 정말로 가볍게 대답하며 그는 두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을 언제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오자 그는 손뼉을 짝 쳤다.
"그치? 그치? 되게 재밌고 즐거울 것 같지 않아? 아. 이벤트가 열린다기보다는...그냥 그런 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그런 일을 꾸미려고 했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며 그는 말을 얼버무렸다. 그야 정말로 하게 되면 아마 내년이 될 텐데 자신의 정체를 미리 밝혀서 좋을 것은 없지 않겠는가.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였다. 고3이 되어서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되면 그런 이벤트성 장난은 치고 싶어도 못 칠 가능성이 높았을테니까.
"아무튼 아저씨는 잘 지내고 있어? 우리 아빠가 가끔은 안부 좀 묻고 그러라는데. 옆집 아저씨도 아니라서 참 애매하단 말이야. 이게. 아. 그런데 그 공책은 뭐야?"
방금 공책이 떨어진 것은 그도 눈으로 확인했다. 저 공책이 갑자기 나왔을린 없고,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분명해보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왜 여기로 공책을 가지고 왔는가. 가만히 생각하던 그는 살짝 의자를 뒤로 빼면서 일어날 채비를 했다.
"말해두는데 모의고사가 다가온다고 쉬는 시간에 공부할 생각 없어. 난. 알지? 채린아? 알잖아. 내가 그런 성향 아닌거 말이야. 우리 엄마가 공부 좀 시키라고 말이라도 한 거야? 아. 하지만 너도 딱히 그런 성향은 아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생각해보면 그녀도 딱히 공부에는 관심이 없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서 갈테니까 따라오면 안됩니다!" "하지만 아가씨..." "유모도 집에 있을때랑 다를게 없네요!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승리는 없다-입니다!!!"
다나의 유모, 헬렌 조는 그저 난처할 뿐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모시기 시작해 어언 17년, 아직까지도 행동패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제대로된 제어법이 식사나 고용주 말고는 없다는 것에 매일 고뇌할 뿐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 여기서는 차를 몰아도 되던가?" "사장님께서 운전은 집안에서만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여기는 아빠가 없는걸요?"
이건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방금 전, 돌연 '그러고보니 아직 바다에 놀러가지 못했다'고 말한 이후에 막무가내로 수영복을 찾아대던 아가씨를 말리고 멀쩡한 옷을 준비해 입힌뒤 차를 대기시켜 해변으로 나오기까지... 2시간. 2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나오는것'에만 2시간이 걸렸는데 그것도 옷이 마음에 안든다던가 하는게 아니라 단순히 아가씨가 쉴새없이 조잘거리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오늘부터는 집안에서 한국어만 쓰십시오." "에?왜요? 학교에서만 배우면 되는게 아닐까요?" "아가씨가 이 학교에 더 빨리 적응하게 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
헬렌은 나쁜사람입니다. 그렇게 정했습니다. 뭐가 마음에 안든건지 언어의 자유를 빼앗아가더니 이제는 한글공부를 마칠때까지는 디저트의 리퀘스트도 받지 않겠다고 하지 뭡니까. ...아예 안받는게 아니라는 잠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원하는게 없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도 이 이해안되는 한글...
"ㄱ...ㅠ...ㄹ... 납득, 안돼입니다."
세상에, 어느 나라 사람이 저걸 '귤'이라고 발음 합니까?! 분명 광고에서는 너도 할수 있다! 초등학생도 한다고 하던데 이 나라 사람들은 어린애한테 도대체 뭘 시키고 다니는 겁니까?! 삐뚤빼뚤 넓은 공책에 한글을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지만, 역시 납득이 안됩니다. 가나다와 아버지, 어머니는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저런 미묘한 발음은... 안되겠습니다. 여기는 도서관, 분명 무언가 답이 있을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마치 '도를 아십니까?' 라거나 '훨칠해보이시네요' 라고 불린 것 같은 그런 아주 수상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이 사람은 외국인 이었으니 그냥 길을 물어보는거라 생각되었다. 이곳도 나름 놀 수 있는 장소도 있으니 관광객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지. 그래도 외국인 치고는 한국어를 매우 잘 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여행을 하면 그 여행지의 언어부터 알아보는 그런 사람인걸까?
"귤..이라 부르지 않을까 싶은데."
당연히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인종 중 한명인 그는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귤' 이라는 단어를 쓴단 말인가.
당연하게도 그의 입에서는 본토사람의 발음 '귤' 이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재현되었고 그는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혹시 무언가의 촬영? 그렇다기에는 카메라가 있는건 아니고. 그렇다기보다 이 항구근처에서는 귤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텐데?
"(이 근처에)귤은 없을거라 생각해."
동네 마트라면 팔지도 모르겠지만. 아아, 혹시 그녀는 갑자기 오렌지나 귤같은 과일을 먹고싶었던걸까? 그거라면 어느정도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글쎄. 뭐, 내년 이 맘쯤에 누군가가 할지도 모르지? 원래 이런 날이 되면 막 활동하고 싶어하는 이가 생기기도 하고 그렇잖아? 당장 나만 해도 방금 전까지 타바스코 사탕을 넣고 번갈아가며 먹으면서 게임을 즐겼는걸. 아. 참고로 6전 4패야."
괜히 입이 얼얼하다는 듯 그는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면서 자신의 입술을 부채질하다가 다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물론 먹는 순간엔 상당히 매웠지만 그 매움이 아직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전 타임에선 매점으로 황급하게 뛰어가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으니 더더욱. 물론 그런 말은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았다.
"앉기야 앉겠는데... 아. 우리 아빠는 여전히 잘 지내. 요즘엔 낚시에 살짝 빠지셨는지 일이 없으면 바다에 낚시하러 간다니까. 그런데 은근히 구경하니까 재밌을 것 같아서 나도 배워볼까 싶지만 뭔가 기다리는 거 되게 지루할 것 같기도 하고..."
미덥지 못한 표정을 지으며 은우는 일단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튼 그렇다면 공책을 가지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곧 그녀의 입과 텅 비어있는 깨끗한 페이지를 보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허나 그녀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은우는 정말로 빤히 채린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런 것치고는 그다지 피곤해보이지 않는데? 너. 아무튼 뭐 때문인진 알 것 같아. 그야 난 당연히 필기했지! 어쨌든 시험을 아예 놓을 수도 없고, 일단 명문고니까 어느 정도는 공부를 해야 하잖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넌 정말 이 학교에 올 자격이 있냐는 말을 듣기도 싫고. 아무튼..."
이어 은우는 바로 옆에 둔 자신의 공책을 펼쳤다. 그래도 공부를 일단 조금은 하는지 페이지에 꽤 깔끔한 필체로 이뤄진 필기가 가득 매워져있었다. 이어 은우는 얼마든지 쓰라는 듯이 피식 웃어보였다.
"오케이.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서비스! 친구 좋을게 뭐겠어. 이럴 때 돕고 돕는거지. 아무튼 다음 시간까지는 돌려줘. 그러니까 3일 뒤였나? 아무튼 그때까진! 나도 계속 필기는 해야 하니 말이야. 아무튼.. 2학년 새학기인데 재밌는 일 겪은 거 있어? 혹시?"
"Thank you!그런데- 당연하다-입니다. 다나, 가지지 않고있다. 한국어, 공부한다-입니다. Two months 전에, 여기 왔다-에요."
어쩐지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은 사람에게 맞장구쳤습니다. 그래도 몇번이고 들어도 저 발음은 익숙해지지않습니다. 게다가 어쩐지 저 사람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친절한데 그럴리가 없지요!!! 적어도 제가 공항에 내려서 지금까지 만난사람... 어... 몇명이나 되죠?! 학교에 들어오고 난 이후에 한 반에 들어간 사람이 제일 많았던 것 같은데?
"아, 그러면, 이건 어떻다- 입니까? Korean, 어렵다-에요. Help me. 도-캐비"
고구마, 도깨비... 뭔가 단어를 연결지으면 '의미'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음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본 드라마도 제목이 이랬는데 헬렌이 어쩐지 이상한 웃음으로 바라보던게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분명 3월에는 모의고사? 라는게 있었을겁니다. 거기서 한국어 점수가 높게나온다면ㅡ 디저트 통제도 풀릴겁니다.
"모든 순갼이 눈부셔따- 맞다입니까?"
제가 느끼기에도 들뜬 것 같았습니다! 그야 이렇게 완벽한 대사를 말해본것도 처음이지만, 이대로라면 머지 않은 미래에 제 사소한 희망사항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거니까요!
“4패... 전적 너무 미묘하잖아. 아직 혀가 붙어있는 게 다행이네. 그보다 그 활동하고 싶어할 만한 사람은 너 아니야?”
채린은 부채질하는 모습을 보며 낯을 흐렸다. 타바스코라면 먹어본 적 있다. 그 매운 걸 굳이 6번씩이나 먹으려 하다니 게임이 좋은 건지, 승부욕이 강한 건지. 어느 쪽이든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앞의 사탕 숨기는 복면 이야기도 풍부한 상상력이더니 타바스코는 한술 더 뜬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었다.
“아저씨도 낚시 하시구나. 하긴 그 나이쯤에 많이 하긴 하더라. 바다면 배 타고 나가시겠네. 뭐, 그거야 해보면 알겠지? 별로면 다음부터 안 하면 되고.”
채린도 낚시는 해본 적이 없어서 무어라 평을 내리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의견을 내보았다.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지루할 것 같긴 하다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으응? 아닌데? 나 피곤한데? 너 말로만 안 한다고 했지 열심히 하구나.”
은우가 앉자 안심했던 채린은 정곡을 찌르는 말에 시선을 피한다. 일단 우겨보지만 어색함까지 숨길 수는 없다. 그러다 필기를 했단 말에 확 표정이 밝아진다. “알았어! 그때까지 돌려줄게.” 상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가져갈 요량으로 채린은 두 권의 공책을 품에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요리부에서 스테이크 만들기로 한 거? 요리부면서 도서실에 상주하는 선배를 만났는데, 요리 못하는 사람도 요리부 와서 요리해도 상관없대.”
채린은 제가 겪은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과적으로 채린의 기준에서 새학기에 겪을 수 있는 재밌는 일이라면 역시 새 친구를 사귀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또 새로운 어휘가 나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자유 거래에서 보통은 선제라고 하면 대부분이 말한다-고 그랬던것 같은데 어쩐지 알 수 없는 거래의 세계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묘하고도 놀라운 한국의 문화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었습니다. 몇년이고 배워온 재패니즈하고는 다르게 겨우 두달이니 괜찮기야 하겠죠!!! ...그쵸!!! 그런데 여기선 이게 문제입니다. 보아하니 '선제반사'같은건가본데... 얼마나 줄수 있나를 하는걸까요? 우선은 지갑을 꺼내 곧바로 안쪽을 살펴보았슺니다.
"어... dollar, 있다-입니다. 원화, 없다에요. Hm..."
그러고보니 지금 한국사 수업의 교수님이 한번에 천달러정도고... 이분은 그건 아닌것 같으니까 빼면... 어...
"Ok!!! 만족하다-입니까?"
400달러정도면 충분하겠죠! 이 정도면 만족할 수 밖에없다는 생각에 한껏 흥이 올라서 자신있게 웃어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말한다면 사실은 제법 고면한 학자일수도 있는거 아닙니까? 아빠가 했던 '능력을 가진 사람에겐 그에 적합한 대가를 주어야한다'는 말에 그대로 위배되는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손발이 덜려왔습니다. 아바의 그런 취급이 싫어 원래 가려던 방도 무시하고 눌러앉은지 두달... 들킨다면 돌이킬수 없어지는게...? 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습니다.
"어. 글쎄? 내키면 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내년에 혹시나 그런 이가 보여도 모르는 척 해주기야. 아. 물론 어지간하면 아는 체는 안 하려나?"
정체를 아는 이라면 아마 같은 부류로 묶이기 싫어서 일부러 모르는 체 하지 않을까 은우는 나름대로 추측했다. 딱히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는 상처받거나 할 일은 없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이라도 그렇게 할 것 같았으니까.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만 작게 내며 낚시에 대한 평에는 특별히 코맨트를 하지 않으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니. 그래도 시험 공부는 하긴 해야하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상위권 차지할 정도로 그렇게 막 열심히 할 생각은 없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문고라서 다들 공부 너무 잘한단 말이야. 애초에 우리 둘 다 다른 학교 갔으면 중상위권은 바로 따지 않았을까?"
물론 다른 학교의 수준을 알지 못했기에 정확한 비교도 하지 못하는 만큼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가까웠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살짝 내비치며 그는 등받이에 등을 살며시 붙이며 조금 편한 자세로 앉았다. 그러면서 그는 요리부와 선배라는 말에 누군지 알 것 같다는 듯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와. 나. 그 선배 누군지 알아. 3학년 선배 말하는 거 맞지? 전에 요리부 나도 갔었거든. 칠면조 고기를 먹었는데 엄청 맛있더라고. 다음에도 놀러오라고 해서 한 번 가볼까 생각 중이긴 한데. 아무튼 너도 아는구나. 아. 근데 스테이크 만드는거야? 내 것도 있어?"
진지하게가 아니라 정말로 가볍게 툭 던지듯 이야기하는 것이 그야말로 분위기상 말하는 드립에 가까웠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별 의미가 담겨있진 않은 가벼운 톤이었다.
"아무리 관광지가 많다지만 달러화를 받아주는 가게는 많지 않다고. 빨리 원화로 바꿔두는게 좋을걸?"
받는 가게를 어느정도는 알고는 있지만 역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이다 보니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쓸데없이 신경쓰는게 많아서 그만큼 가격도 더 나가고. 딱 봐도 오래 있을 것 같은데 계속 그런 곳에서 소비하다가 보면 돈이 남아나지 않을 것 이었다. 그나저나 말은 했지만 당연히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고 고작해야 그냥 김밥천국에서 라면이나 얻어먹을 생각이었던 소박한 그에게 내밀어진 400달러는 하늘이 다르게 보이게 했다.
"아니, 이게 뭔. 자자자, 잠깐."
뭐가 좋다고 웃고 앉아있는거람 이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도로 그 엄청난 양의 지폐를 집어놓도록 그 돈다발을 밀어냈다. 치안이 좋은 한국이라지만 분명 이 맹한 외국인을 호구잡을 사람은 있을거라 생각했다. 저 돈다발이면 감성돔을 몇 마리를 먹을 수 있는걸까.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비밀은 남들 다 알려주는 것보다 혼자 알고 있는 게 더 재미있는 법이다. 그것이 이벤트와 관련된 거라면 더욱 그렇다. 남들처럼 갑작스러운 일에 놀랄 순 없어도 다른 방식으로 즐기면 되고.
“으응, 그렇지. 그러니까 일부러 평범한 학교로 진학하는 애들도 있었겠지. 그래서 다른 학교 갈 걸 그랬다고 후회돼?”
중학교 때와 달리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빠르게 공부를 포기해버린 채린인지라 미묘했다. 물론 다들 공부 잘한다는 것엔 동의했다. 제 성적이 바닥에서 놀게 된 계기에 한몫했으니까. 그런고로 시험 기간과 평상시를 똑같이 살아가는 채린에겐 그의 감정이 완벽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보단 성실한 사람이구나 싶긴 했다.
“응, 미나 선배. 나도 네가 알 줄은 몰랐어. 요리부 진짜 아무나 가도 되구나.”
요리부 아닌 사람을 흔쾌히 요리부에 초대하길래 그러리란 예상은 했지만. 그나저나 선배는 의외로 발이 넓은 편이었나 보다. 아니면 은우가 발이 넓은 걸까?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였다. 어쨌든 지금의 화제는 사람이 아니라 스테이크니까.
“글쎄, 그때 되어봐야 알겠는데. 남으면 줄 수도 있고?”
미나에게 제일 큰 고기를 부탁해서 확답을 받아냈다. 그만큼 확실하게 1인분은 넘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첫 번째는 저고, 두 번째는 미나이므로 과연 세 번째까지 차례가 돌아갈지 확신할 수 없다.
개인자산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만에 하나라는게 있다며 받은겁니다. 원화가 아닌건 아쉽기야 했지만 그래도 달러가 통하지 않는 나라는 드무니까요! 앞에 계신분의 반응을 보면 어쩐지 그것도 아닌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달러를 가지고 다녀서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이 확실히 많았습니다. 묘하게 친절해진다던가. 멋진나라입니다!
"아아아!!! 팔이 빠진다-!!!"
전면 취소!!! 한국은 위험한 나라입니다!!!! 백주대낮에 사람을 납치합니까?! 지금까지는 이런일이 없었는ㄷ... 여긴 라면집 아닙니까? ...아니 납치범의 아지트일수도 있습니다!
어쩐지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나, 포기하는게 좋다입니다- 테러리스트와 흥정, 하지않ㅇ... 공짜? Free?"
아니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수강료는 받는다면서요?! 그래서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아, 그런걸지도 모릅니다. 겨우 이정도 금액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를 모독하는겐가!!! 같은겁니다! 확실해요! 애니에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럴때 필요한건...
"두배까지는... ok!!! 다나 빈트 라시드 알하메드, 거짓말 하지 않는다입니다. 아빠도 그렇다- 우리 가족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에요."
"딱히. 여긴 여기 나름대로 재밌는 것들이 많거든. 물론 덕분에 선도부 사람들은 나를 안 좋게 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때!"
사실 실제로 그런지는 은우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그러지 않을까 예측할 뿐이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끌려가서 징계를 먹거나 한 일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제약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것보단 역시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싶었으니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는 고개를 강하게 양옆으로 세게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만난거야. 그때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선배밖에 없었거든. 아무튼 진짜로 달라는 의미는 아니야. 그냥 나중에 사진이나 한 장 찍어서 보내줘."
딱히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떻게 조리를 할지는 나름대로 궁금했는지 그는 그녀에게 스테이크를 만들면 사진 한 장만 찍어줄 것을 요청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웹툰 소재로 어떻게 어떻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녀에게도 자신의 부업은 비밀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입에 담지 않으며 그는 허공에 손가락으로 스테이크 모양의 그림만 그리다가 살며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 보니 너, 요리 실력이 얼마나 돼? 스테이크 굽는 것도 은근히 기술이 필요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닌가. 그냥 고기 굽듯이 구우면 되는건가?"
간단하게 고기는 구울 수 있었으나 스테이크 수준까지 가면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하며 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철판에 구워진 것은 여러 번 먹어보긴 했으나 자신이 직접 구운 적은 없는 탓이었다.
"아. 그것도 그건데 혹시 타바스코 사탕 도전해볼 생각 없어?"
이어 슬그머니 장난끼가 돌았는지 그는 자신이 가방 속에 넣어둔 그 타바스코 사탕과 일반 사탕이 섞여있는 통을 떠올리며 채린에게 살며시 제안하듯 물어봤다. 기왕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제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물론 거절해도 크게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잇고...나는 내일 일 때문에 슬슬 자러 가야 할 것 같아! 잘 자! 채린주! 그리고 모두들!
팔이 빠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녀였지만 주변에서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정대수 그는 매번 이 항구에서 낚시를 하는 알려질대로 알려진 소년. 게다가 그가 김밥집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기에 아무도 그녀를 도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이야말로 일어날 사건을 막지못하는 안일한-
"free."
고작 고등학생이 뭘 얼마나 잘 가르친다고 400달러를 받을 수 있을까. 저어기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졸업하고나면 어쩌면 받을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무력한 고등학생이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도 없긴 하지만 기초적인건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어째서 가격이 늘어나는거지.."
그런데 그 400달러가 갑자기 800달러가 되어버렸다. 옳거니, 양놈이 아니라 중동놈이었구나. 뭐, 좋다. 그 달러 받는다고 하고 나중에 안 받고 도망치면 그만이지 뭐.
"오케이 땡큐! 4..백 달라!"
말하니 아주머니가 라면과 김밥을 가져왔다. 라면의 표준, 신라면에 계란을 풀고 부재료를 적당히 넣은 스탠다드한 맛..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하디 평범한 기름을 잔뜩 바른 두툼한 김밥.
그게 아니라면 조금 김이 빠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뭐야 납치가 아니었던건가!!! 표정에서 알기 쉬운 실망이 드러나버렸습니다. 어쩐지 주변 사람들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을보면 잘 꾸며진 한편의 연극같은게 아닐까-했지만 그것도 아닌것 같고 아직 의문점 투성이입니다! 게다가 나온 음식은 평범한 라면에 김밥... 솔직히 헬렌이 한것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쁘지않은 향과... 모양...
"젓가락, 못쓴다입니다! 포크를 요구하다!"
저도 모르게 진심을 말해버렸습니다. 우선은 한쪽 손을 들고 종업원분을 기다려 봅시다. 이미 나와버린 음식이라면 거절하는 것은 주방장께 실례가 되니까요!!! 다행히 포크는 금방 받을 수 있었습니다. 스푼에 포크, 이정도면 무난하게 먹을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으음...!!! 맛있다입니다! 이건 팁을 드려야한다입니다!!!"
...? 어쩐지 처음의 공부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지않습니까? 그래도 맛있으니까 괜찮겠죠! 문화를 배우는 것도 훌륭한 학습이다 라고 교수님도 말했었습니다! 중요한건 지금 어떻게 느끼느냐! 여기서 무엇을 배우느냐가 중요한겁니다!!! 우선은 노트를 꺼내서 곧바로 필기하기로 했습니다. 어렵기야 하지만 그래도 그린다고 생각하고 메뉴판을 따라 글을 쓰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당신, 이걸 본다-입니다! 다나, 학교를 다닌다- 시험을 넘기지 않으면, 중요한게 없어진다에요. 잘 썻다입니까?"
설마하니 천사라는 단어에 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서우는 그저 우니가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름 장난으로 우니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이름은 모르려고 해도 어렵다. 그리고 서우는 머리가 나쁘다고 하지도 못했다. 지옥의 정시파이터, 정시만 챙기는 우등생이란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서우는 우니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혼잣말 같기는 했지만 서우의 귀에 들린 이상 혼잣말이 아니다.
“옛날에? 응!”
입학하는 학생이 다 모이는 자리, 그 자리에 서우도 있었고 우니도 있었을 것이다! 우니가 입학식에 오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아니면 예나제나 학교에서 사고치고 다니던 소란 속에 있던 서우를 목격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 가능성을 모조리 포함해서 쉽게도 응이고 답한다. 서로 얼굴을 보고 마주하며 대화를 한 적은 없음에도! 서우는 방글방글 웃으면서 대답하다가, 우니가 방금 말한 뉘앙스의 대사는 주로 작업멘트로 쓰인다는 점을 떠올렸다. 짓궂은 눈웃음이 물결친다.
“우~니가 작업 안 걸어도 난 이미 넘어갔는데―!”
만화였다면 ‘꺄아―’ 같은 효과음이 붙었을 것이다. 이 나잇대에는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까르륵 웃는다는 말을 증명하듯이 웃었다.
“시…우…?”
갑작스레 풀이 죽었다. 그 얼굴이 얼마나 시무룩한지 하마터면 친구가 이름을 까먹은게 아니라 제 어머니가 이름을 까먹은 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