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질 것 같이 미칠 것 같이 괴로운 밤에는 몰래 안고 아무도 없는 방 네가 없는 방 괴로운 밤에는 그렇게 중얼거렸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프로스페로는 식도에 가려움증을 앓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식도가 미친 듯이 가려워서 목을 넝마 조각으로 만들었던 단편적인 기억들만 잔존해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이 것은 거짓말이다. 손톱이 목 표면 표피를 파고들기 시작한 때는, 아마 스물 하나의 여름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자연히 프로스페로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미리 와 기다리며, 미친 듯이 목을 긁어대고 있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 사람은 날 알아보지 못할 거야. 아예 모르는 사람일 거야. 분명히 그럴 거야.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그렇지? 젠장할 그로스만, 빌어먹을 인간들...
"..프로스페로입니다."
가면 쓴 이에게 어색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가 저를 애칭으로 소개하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다. 존댓말을 쓰는 것도 드문 일이다. 그가 겁에 질린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 또한, 드문 일이다.
"제 집 주변, CCTV 영상 컨트롤이 필요해서... "
목이 갈라진다.
"그리고, 또,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와 저와 관련된 정보가.. 새나가지 않았으면 해서."
코트자락을 꾹 쥔 손이 떨려왔다. 빌어먹을. 그는 아직 몸에 칼이 열 세 번 드나들었던 그날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당신이 미친 듯이 두려워. 그러나 찾아와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레이스 호텔의 룸서비스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바깥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더 나아가 이 호화스러운 장소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문을 닫았지만 손이 자연스럽게 노트북을 향해 결국 오늘도 의뢰를 수락해버렸고, 칩거는 질렸다. 대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 가리고 한참 앓던 것이 바로 오늘 새벽이었는데, 잠 한숨 들지 못하는 것도 참 익숙한 일인데 모든 것이 낯설고 이유 없는 반항심이 솟구치는 날이다. 사춘기 때도 겪지 못했고, 이 도시에서 드러냈다 어디 가서 총 맞기 딱 좋은. 쉽게 말해 사고 치기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에만은 가면을 얼굴에 썼다. 스마일링 마크의 단순한 가면과 함께 얇은 후드집업으로 머리카락을 덮어 가렸다. 지퍼는 쇄골 근처까지만 내렸고, 편한 루즈핏 차림을 했다. 노트북 한 대를 들고 호텔을 나선다. 그리고 머잖아 쉬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골목에 들어서, 나무로 된 문을 열었다. 여타 룸 카페와 다를 바 없으나 방음이 확실하고 주인이 입 무겁기로 유명한 '카페, 사일런트'는 커피 향이 가득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에만은 능숙하게 주인에게 수화를 건넸다. 주인은 고막을 잃어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13번 룸에 들어선 에만은 의뢰인을 본다.
"..네가 의뢰인이구나. 에만이라고 해. 편하게 불러.."
에만은 작은 손을 내밀어 맞잡았을 뿐이다. 불안한 기색의 남성에 대해 짧게나마 알고 있다. 그마저도 기본적인 정보뿐이다. 에만은 이 사람의 과거에 대해 모르지만, 겁에 질린 눈은 확실하게 가면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쫓기는 신세인 걸까, 왜 저렇게 불안할까. 자리에 앉은 에만은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턱을 괸다.
의뢰 내용은 CCTV 컨트롤과, 정보의 차단과.. 에만은 떨리는 손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남성의 얼굴을 가면 속에서 면밀히 훑었다. 여전히 겁에 질린 눈이었다. 저런 얼굴은 여러 번 봤지만, 지금껏 의뢰인이 이런 행색을 내비친 것은 처음이었다.
"일단 전자 두 개는 300만 벅으로 치고, 정보가 뭐냐에 따라 그 위로 올라갈 수도 있는 점 알아두고.."
이상증세는 그녀에게 고요히 저무는 밤과 같이 찾아왔다. 어느덧 정신을 차렸을 때 페로사는 세상이 색조를 빼앗기고 흑백의 세피아 톤 안에 잠식되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눈이 색을 감지하는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뇌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몸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페로사는 정상이었다. 다만,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 균열이 생겨서 색조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그 균열로 새어나가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어딘가 아픈 것 같다. 그러나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딘가가 갑자기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그 텅 비어버린 공백을 중심으로 마음이 우그러져 찌그러드는 것 같다고 페로사는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어렴풋이 느꼈을 뿐 자각하지는 못했기에, 페로사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주크박스로 로파이 음악을 틀었다. 나슬나슬한 금발머리를 머리 뒤쪽 높은 곳에서 질끈 묶고, 얼음을 꺼내어 깎았으며, 잔들과 집기들을 닦았고, 이따금 핸드폰을 꺼내어보곤 핸드폰 화면을 소독 티슈로 닦은 뒤, 언제나처럼의 느긋한 미소를 얼굴 위에 내걸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들도 별로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하고, 언제나처럼 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안주나 요리를 먹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놓고 돌아갔다. 딱히, 페로사를 더러 오늘따라 이상하다거나 하는 말을 건네는 이가 없었기에 그녀는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녀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것은 초록색에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는 손님이 찾아왔을 때였다. 초록색이 무슨 색이더라? 페로사는 얼굴에 태연한 미소를 건 채로 잠깐 혼란에 빠졌다. 미도리사워를 찾기 위해, 그녀는 색이 아니라 글자를 찾아헤매어야만 했다. 서빙이 약간 지연됐지만, 그녀는 곧 미도리 일루전 한 잔을 내어줄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준 벅. 이 시점에서 손님이 대취해버리는 바람에 페로사는 조금 당황했다. 미도리 일루전이나 준 벅이나 그렇게 도수가 높은 칵테일은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취한 것에 당황했을 뿐, 취한 손님을 대접하는 것에도 페로사는 익숙했기에 마지막 잔으로 버진 모히토를 대접해주고 페로사는 그 손님을, 정확히는 그 일행을 배웅했다. "너무 책망하거나 하진 마세요. 알코올에 익숙하지 않고 자기 주량을 모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니까요."
그들이 떠나고 나자, 페로사는 글라스들을 싱크대에 집어넣지도 않고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오늘 하루가 온통 싸구려 골판지와 마분지로 이루어진 조잡한 연극무대 같았다. 잠에서 깬 채로 시시각각으로 표변하는 백일몽 한가운데로 굴러떨어진 것 같았다. 그제서야 페로사는, 오늘 하루뿐만 아니라 이 며칠 내내 자신이 그런 혼란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마음의 도관 어딘가에 자신도 모르게 균열이 생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페로사는 착잡한 마음을 담아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담배 팩을 꺼내 한 대 빼물고는 불을 붙였다. 입과 코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흉곽 사방에서 연기가 흐릿하게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균열이 어디서부터 생겨 뻗어나오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개비를 다 태우고 나서야, 페로사는 아까의 일행이 두고 간 의문의 선물상자에 시선이 갔다. 진작에 했어야 할 질문이 그제사 튀어나왔다. "그 따거는 누구고 민폐는 무슨 이야긴데요?"
그러나 페로사의 질문은 누구 하나 들어줄 이 없이 허공을 갈랐다. 서버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온 페로사의 말소리를 듣고 '뭐라고요, 페로사?' 하고 물어봐서야 페로사는 정신을 차린 듯 혼탁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하며 페로사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 손을 올리는 시점부터, 그녀는 스스로가 왠지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따거... 중국계 조직에서 주로 쓰는 말인데, 가장 최근에 얽힌 중국계 조직... 그 낯선 손님이 말한 따거가 누구고, 민폐가 무슨 이야기인지 대답을 받지 못했는데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자를 열었을 때, 그녀의 눈은 눈동자가 담긴 목갑도, 흰 비단에 싸인 하몽도 아닌 편지에 가장 먼저 닿았다.
그리고 페로사는 자신의 균열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요 며칠 동안 강박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주기적으로 확인한 핸드폰 화면. 알람 하나 없는 메신저. 오늘 이전. 그 손님들이 선물을 놓고 가기 이전. 오늘 앤빌의 문을 열고 출근하기 이전. 어제 잠들기 이전. 어제 앤빌의 지하실에서 침입자 세 사람을 심문하기 이전. 어제 앤빌의 문을 열고, 아주 미세하지만 불길한 변화를 직감하기 이전. 그 이전. 더 이전. 작고 나어린 연인. 그 연인을 호텔 현관에서 배웅해준 그 순간부터.
나도 내 조카와 연락이 닿지 않는데 자네가 이리 나오면 오해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 배웅을 마지막으로 그 연인이 자신의 삶에서 마치 하룻밤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줄기 담배연기라도 되는 마냥 사라져버린 것.
불안감. 상실감. 단절감. 고립감. 무력감.
선명한 감정의 균열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그녀의 눈 앞에 일련의 풍경이 점멸하는 것 같았다. 그리핀은 분명히 자신의 둥지에 들여놓았다고 생각했던 가장 값진 보물이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후후, 하하하. 저절로 웃음소리가 나와서, 페로사는 고개를 조금 떨며 웃었다. 페로사는 자신의 삶에 발생한 미시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실감했다.
레이스 호텔에도 없다면 오늘 밤은 조금 긴 여행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에, 페로사는 선반 위의 진열대에 걸려있던 산탄총 두 자루를 끌어내렸다. 페로사의 얼굴에 평소의 그것과 같은 느긋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앞치마를 툭 끌러서 바 위에 던져놓고는 서버를 손짓으로 불렀다. "미안한데 셰프님께 오늘 바는 좀 일찍 마감하니까 그렇게 전해드릴래? 내가 어디 급하게 가볼 데가 있어서 말야."
페로사의 얼굴 위에 걸린 미소가 마치 싸구려 골판지와 마분지로 만든 조잡한 가면처럼 느껴져서, 서버는 페로사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블라이던스의 보스와...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서. 그것도 꽤 가까웠던..."
누군가가 스텔라를 인질로 잡고 협박한다면 나는 무력해진다. 그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자신은 크고 작은 원한을 쌓고 다녔다. 셰바의 인간이라면 모두 그렇다. 하지만 피피가 그것에 무던한 이유는, 그 원한들이 다시 제게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킬레스건이 드러난 이후에는 불똥이 스텔라에게 튈 수도 있다. 그 꼴은 볼 수 없다. 그러니 프로스페로는 지금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 앞의 인간이,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신용을 얼마나 귀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는가에 대한 도박이다.
"제 정보는.. 뒤지면 꽤 많이 나올 텐데... 그런 것은 그냥 다 중요치 않은 거니까."
아주 오래, 진득히 앉아 조사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아마 블라인더스 근처에서 찾아내는 게 더 빠를 수도. 아니, 길거리가 더 나을 수도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한숨을 쉬었다.
"금액은.. 내일, 오전에 드릴 거고.. 추가금 발생하면 바로 말해주세요."
에만이 제 이름을 부르자 목이 타들어갔다.
"...용왕은, 용궁의 주인께서는..."
시선을 탁자에 두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식은땀 젖은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는 이것을 확인해야만 한다. 설령 내가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상관없다. 아니, 정말 상관없나? 이렇게 무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