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안그래? 언제 신경질적으로 굴었냐는 듯, 브리엘은 그녀의 행동을 잠깐 바라봤을 뿐이었다. 오래 그 모습을 보지 않는 것에 의미라고는 없었다. 그저 한번 바라봤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돌렸을 뿐. 스톨을 걷어서 어깨 위에 걸친 뒤, 브리엘은 자리에 다시 앉지는 않았다.
자신의 저택에 누군가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게 분명하다. 이 도시에서 자신의 집으로 누구를 불러본 적도, 부를 이유도 없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누가 들어오는 걸 싫어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래서, 브리엘은 아스타로테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둘다 안어울리니까 관둬."
두손을 모으는 시늉을 해보이는 아스타로테의 모습에 브리엘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손사레를 친 뒤 주방으로 걸어갔다. 대부분 손으로 집어먹어도 괜찮은 안주들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먹을 일은 없을테지만 어찌됐든 식기류가 아닌 브리엘은 럼이 아닌 다른 술을 꺼내들었다. 럼으로 시작해서 다른 술로 바꾸기에는 좀 버거울지도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꺼내는데 망설임은 없어보였다.
브리엘은 보드카를 한병 들고 다시 돌아왔다. 물론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아스타로테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고는 자기 잔에 남은 럼을 비워내고 보드카를 한잔 가득 따랐다.
여인은 브리엘이 돌아온 걸 알고도 잠시간 허밍을 이어갔다. 무릎에 걸친 손의 손가락으로 가볍게 박자를 두드리며 가늘게 이어지는 멜로디는 들어본 적이 있을 수도 있고 아예 없을 수도 있었다. 허밍은 그 소절의 끝까지 가서야 멈췄다. 멈춤과 동시에 시선을 들자 검푸른 털의 귀가 같이 쫑긋 일어섰다. 여인의 시선이 브리엘을 한번, 보드카를 한번, 번갈아 보고 눈을 잠깐 가늘게 떴다. 그렇게 나왔나. 하고 말 하듯이.
브리엘이 먼저 잔을 채우는 것을 기다렸다가 여인도 병을 들어 빈 잔을 채우려 했다. 특유의 무색투명한 술을 반 이상 넉넉하게 따르고 조심히 내려놓는 행동에서 아직 취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야 여인도 어지간히 마시는 축이었다. 겨우 럼 두잔으로 잔을 무를 리가 없었다. 럼 향이 희미하게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고서 여인이 말했다.
"샌드위치랑 스콘은 마르기 전에 맛보는게 좋을 거라 생각해. 음. 그래도 이 술엔 육포가 제격이겠는 걸."
꾸러미의 내용물들은 샌드위치를 제외하면 한입 크기로 나뉘어 있거나 한입에 넣기 좋은 크기라 정말 맛보기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인이 먼저 조각난 육포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적당하게 건조되어 질기지 않고 쫄깃하게 씹히는 육포는 보드카의 안주로 제격이었다. 입에 든 걸 삼키고 술로 입가심을 한 여인은 술잔 든 손으로 아직 풀지 않은 일곱 번째 꾸러미를 가리켰다.
"이것들에 영 손이 안 간다면. 그걸 열어보면 어떨까 싶으네."
조금 전 아량을 베푸는 듯한 말을 할 때는 언제고. 이번엔 지나가듯 흘리는 권유의 말투였다. 여인은 달리 의미는 없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보드카를 마시고, 이번엔 봉봉초콜릿을 집어 입에 넣었다. 독한 알콜에 얼얼한 혀 위로 녹아내리는 달콤함은 자칫하면 중독될 것만 같은 조합이었다. 여인은 그걸 음미하고 있는 듯 할 뿐이었고.
제롬의 상태를 그녀가 모를리가 없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하지만, 과연 맞는 말일까. 뉴 베르셰바에 만약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고 한다면 무라사키는 대부분 '가해자'쪽에 서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나 다치면 어떻게 되는지. 그렇게 피를 흘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행하고 몸으로 배워왔다. 무라사키의 눈에 제롬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평소보다도 전심전력으로 칼을 휘둘러가며 여기까지 홀로 밀고 온 것이었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서. 어떻게든 여기서 데리고 나가고 싶어서. 자신을 믿어준다고 말했으니까. 친구라고 말해줬으니까. 그런 사람마저 떠나버리게 둔다면 그때는 정말...
'나는, 정말로 사람을 해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애였잖아...'
그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네에."
위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상이라니... 이러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제롬의 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온 소녀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는 계단을 먼저 오르기 시작했다.
'제롬씨도 포기하지 않고있어... 지금까지 몇 명, 잘랐는지는 몰라도... 남은 조직원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거야. 앞으로 조금. 정말 조금만 힘낸다면...'
그리고 지금, 계단 밑에서 사람 하나가 올라온다. 무라사키 단신으로 여기까지 칼을 휘두르며 왔으니 누군가 총을 들고 있다는 사실따윈 상정하고 있을리가 없겠지.
사실, 제롬 역시 알고는 있었다. 고문 이후 이렇게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몸을 혹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신은 차치하더라도 육체가 문제다. 한계에 도달한지는 오래. 이미 육체를 갉아먹으며 움직이는 것에 가깝다. 어쩌면 이러다가 죽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사인이 타살이 아닌 과다출혈이나 쇼크사가 되는 것이다. 무라사키의 시선처럼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여유가 없다.'
잠시라도 몸을 회복시킬 여유, 무라사키의 체력을 온존할 여유, 이렇게 생각할 여유마저, 지금 상황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선택해야 한다. 움직일지, 말지.
제롬은 무라사키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난간을 붙잡지 않고서야 몸을 지탱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나 억지로 발을 움직여 계단을 오른다. 몸이 무거워 하나하나가 버거웠다.
그리고 이어진 소리에, 제롬은 흘긋 시선만 돌리더니 곧바로 총구를 소리가 난 곳에 향한다.
발포음.
"후우... 얼마나 많은 거야..?"
올라오던 사람은 미간에 총알을 맞고 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아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체력이 바닥난지 오래였지만 다행히도 사격 실력은 그다지 떨어진 것 같지 않다. 제롬은 그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심하며 무라사키를 따라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