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등 위로 무너져 내리는 도시 다들 아무것도 몰라 그저 걸어야 해 거리를 가득 매운 너희들, 아주 볼만해 너흰 벗어나지 못해, 구속돼 자유로우니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변화무쌍한 하늘처럼, 실로 변덕스런 날씨였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추위에, 다리가 살짝 들리는 정도의 속도로 바람이 불어오니 추위는 가속되어간다. 행인들은 모두 발을 동동 구르지만, 유난히 한 사람만은 평온을 가장한다. 저 얇아뵈는 차림새에도. 그래, 저 괴상하고 엉성한, 열경화성 플라스틱 계열 재질의 노란 보호복을 입고 있음에도.
그는 바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조금 쌀쌀하다는 듯 양 어깨를 두어번 문지른다. 천정마감 없는 높은 천정고. 온통 검은색 보온재로 둘러싸인 배관과 파이프들. 낮게 내려온 독특한 매력을 지닌 조명들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듯 하다. "흠." 그는 바 쪽으로 곧장 향하여 높은 스톨의자에 걸터앉고, 제법 멋들어진 모양으로 칵테일을 대접중인 바텐더에게 말을 건다. "이번이 두 번째인가."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버번을 한 잔 주십시오." 제법 정중한 말투이다. 이는 그가 결코 얕잡아볼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인걸까. 아니면, 이 추위에 내쫓기는 건 결코 사양이기 때문인걸까.
무라사키는 내밀어지는 그의 손을 잡아 부축하려 하지만 제롬은 이내 빈혈증세 앞에 중심을 잃고 무릎을 꿇어버린다. 의식은 희미하고 시야가 점멸하고 있었다. 타일에 고인 핏물에 찰박이는 소리를 내며 파문이 일었다. 반사되는 제롬의 얼굴은 빈말로라도 영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녀는 힘이 없어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댔지만, 다시 평정을 되찾고 그를 부축해주려 손을 건네었다.
"......"
그리고 그런 제롬이 한 가지 의문을 내놓자,
"...저도... 모, 모르겠어요..."
소녀는 어찌된 영문인지 설명이 하나도 되지 않는 이런 황당한 답변을 꺼낸다. 분명 무라사키는 그를 보내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으니 제롬의 여부에 대해선 모르고 있는 것이 맞을테다. 그리고, 방금 거기서 돼지에게 죽었어야 했던 것이 원래 맞는 인과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무라사키는 제롬이 혼란스러워 할 것을 생각했는지, 이어서 이렇게 덧붙여주었다.
"가,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서... 좌표와 함께, '제롬 발렌타인을 납치했다'고... 그래서, 와봤더니... 진짜로..."
스스로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단어를 고르고 있는듯 우물쭈물대는 기색이 역력한 소녀. 어두운 방 안의 조명탓일까, 아니면 흐려진 시야탓일까. 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 때, 바깥이 급격히 어수선해지는 소리가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새어들어온다. 그것이 둘이 처해있는 상황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보다, 제, 제롬씨...! 시간이 없어요... 저, 선배님들께 보고하지도 않고 급하게 나온거라... 저희, 움직여야 해요. 여기서, 빠, 빨리 나가야 해요... 안 그러면..." "포기해라..."
방의 한 구석에서 이젠 없어야 할 목소리가 울려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롬에게는 이미 익은 목소리일 것이다. 저쪽 한 켠에 갈라져서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말머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희... 너흰 글렀어..." "애초부터... 제롬 발렌타인... 네가 살아 나갈 수 있는 조건은 없었어... 알고 있었잖아...?" "그리고, 가면살인귀... 너도, 죽으러 온 거나 마찬가지야... 크흑." "바깥에는... 100명도 넘는 애들이 무장을 하고 있을거다... 하하... 아주, 그득하다고...!"
마치 한 마디 한 마디. 단어 하나하나에 마지막 숨결을 불어 넣는것처럼, 말하는 것 조차도 아주 힘들어 보인다. 유언으로 저주의 말을 택하면서 까지,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그들에게 저주를 안겨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말머리의 말을 마냥 거짓으로 볼 수도 없을 테다.. 이렇게 잘 준비되어 있는 밀실이 있을 법한 곳은 어디 조직의 지하 혹은 중추밖에 없다. 다시말해 제롬과 무라사키는 타 조직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밀실과 바깥을 나누는 경계인 저 철문. 그 밖에는 소위 '심문실'이라 불리우는 이 안쪽보다 몇 배에 달하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저것을 열지 않는편이 더 안전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대로 투항하는 편이 조금 더 명을 늘리는 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기서 죽는 편이 더 편안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상관, 없어요... 그런거..."
하지만 그럼에도, 왜일까. 소녀는 그런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말한다. 기꺼이 죽음의 문을 열고 도망치겠다고 했다. 도시의 룰에 정면으로 대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라사키가 고개 위로 올려두었던 가면을 다시금 내려 뒤집어 썼다. 마치-
그녀는 아무데서나 쉬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아무리 '휴식하지 않아도 일의 능률이 떨어질 리 없는 몸'이라 할지라도 그녀 스스로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행동패턴을 고수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능률을 따지기 이전에 적당한 휴식은 기분전환에 의외로 도움을 주곤 했다.
지금도 아마 그 이유와 똑같지 않을까? 애초에 누울 자리를 생각지 않는 그녀의 잠버릇이란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에겐 당연한 요소처럼 와닿았다. 다만 조금 예외라고 할수 있는 거라면... 자신이 쉬어가던 곳이 그녀도 잘 알고 있을만한 곳인데다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보는 것일까?
"...입은 돌아가지 않으니 걱정 안하셔도 ㄷ... 어라?"
벤치에 익숙하고 태평하게 누워서 잠을 청하던 그녀를 다시금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은 익숙한 이의 목소리였다. 눈을 깜박이며 초점을 되찾아가고 있었을까, 익숙한 푸른 실루엣에 그녀는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후후후~ 설마 이런 곳에서 뵐줄은 몰랐네요~"
단순히 그동안의 그녀의 거리 활보에 우연찮게도 동선이 겹치지 않은 당신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었다. 다만 전해져오는 분위기에 따라선 후자의 경우가 가까울까, 그때서야 그녀는 자신이 눈을 감고 있던 장소가 어디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그러고보니 여기서 자고 있었네요~ 이래선 우연히 마주친게 아니라 당연히 만날 곳에서 만나버린 느낌이네요~"
기억을 되짚어 생각해보면 그녀가 이쪽의 빵을 즐기는 일도 많았기에 아마 평소같이 들렀다가 잠깐 쉰답시고 눈을 감았던게 세상 모르고 잠들어버렸던 모양이다.
브리엘이 방금 마신게 물이 아니라 술이라는 건 여인이 눈 앞에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알약이 아스피린 이란 것도. 영 좋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여인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지켜보다가 훗, 하고 웃는 소리와 함께 눈매를 휘었을 뿐이었다.
"이 도시에, 그런 '할 법한' 이라는 수식어가 통하는게 몇이나 될 거 같니."
킥킥! 짜증이 다분한 브리엘에 대조적인 웃음소리가 짧게 울렸다. 여인은 소파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대고 느긋하게 럼을 마셨다. 향도 맛도 제법 입에 맞는지라 나른해진 기분을 따라 여우 귀 역시 경계를 푼 듯 아래로 접혀졌다. 볼을 간질이던 꼬리는 여인의 허리에 감겨 얼핏 보면 그런 장식처럼 보이게 되었다. 곧 비워진 잔을 테이블에 놓고 병을 기울이며 여인이 말을 받았다.
"정말로 늦었는지는 더 캐보지 않으면 모를 거 같은데. 이엘의 의향이 그렇다니 그건 넘어가자. 음. 왜 찾아왔느냐 말이지."
달캉. 눈에 띄게 줄어 든 병을 옆에 내려놓고 몸을 살짝 앞으로 끌었다. 테이블로 조금 더 가까워지도록. 그런 다음 손을 뻗어 미리 테이블에 올려 둔 종이봉투를 열고 여러개의 작은 꾸러미들을 꺼내놓았다. 열 때부터 여러 먹을 것의 냄새가 났을테니 저게 그 안주인가 할 수 있었을지도. 여섯개의 잘 포장된 꾸러미를 꺼낸 다음 앞선 것들과는 다른 포장의 일곱번째 꾸러미를 그 옆에 두었다. 용도를 다 한 종이봉투를 치우고 꾸러미들을 하나 하나 열며 짤막한 설명이 이어졌다.
"내 관리 하에 있는 백화점의 푸드코트에 새로운 매장들이 열릴 건데. 오픈 전에 상품평을 좀 받아볼 수 있을까 해서. 왜 이엘인가 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진행 하고 있다고만 해둘게."
크기가 손바닥만한 꾸러미들은 각각 안에 롤샌드위치, 플레인 스콘, 까눌레, 봉봉초콜릿, 육포, 견과류 정과가 담겨 있었다. 각 꾸러미마다 두개 이상 들어있었으니 두 사람 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여인의 손은 딱 거기까지만 열고 일곱번째는 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대로 태연하게 다시 소파에 몸을 묻으며 한 손을 들어 그것들을 권유하는 손짓을 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