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이게 끝인가." "이제 피를 존나게 흘려서 죽는 건가..." "네가 존나 잘났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넌 아직 모르고 있어." "뉴 베르셰바는 넓어. '진짜'가 너희들을 없애버릴거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484 전혀 아니었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정말 끝까지 맞아서 놀랐어!ㅋㅋㅋㅋㅋ 나름 클리셰적인 캐릭터이긴 하니까, 칸나는!
"1번 유형의 자경단원은 세상의 불의에 맞써 싸우나 그것은 자신만의 정의로써 모두가 동의하는 정의가 아니다. 자경단원은 편집증적으로 자신의 정의를 추구하는 끝에 주변에서 외면받고 고립되어도 그 인생의 생명의 숨결이 끊어지는 날까지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잃고 모두가 인정해주지 않는 죽음에 이를지라도 추구하는 소름끼칠 정도의 "정의"에 대한 집착은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미묘하게 입꼬리가 내려간 표정에서, 꽃다발을 밀어내는 행동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기색이 쉽게 드러나는 것이다. 당신의 딴지에 시안은 "그런 사파리가 있는 동물원이라 하죠." 하며 어깨를 으쓱이며 답한다. 이어지는 당신의 말에는 침음성을 흘린다. 물어보기에는 오르토프스는 이미 죽었는 걸.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분명 후회 했을 거에요." 불퉁한 어조로 툭 내뱉는다. 그 어떤 후회 없을 사람은 없을테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글쎄요. 당신은 그 외모을 좀 써먹는게 좋을 거 같네요."
가끔 날씨 좋은 날, 밖에 화분을 내놓고 물이라도 주고 있어봐요. 얄미운 목소리로 덧붙여 말한 시안은 현금으로 계산을 마추고선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늘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건넨다.
"선물 고마워요. 하웰." - 이대로 막레 하거나 하면 될 거 같네. 엄청 느린 텀 같이 돌려줘서 고마워 하웰주.
"눈과 같은 연정..." 아스타로테가 던진 키워드에 페로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무언가 더 묻지는 않는다. 잠시 침묵이 오간다. 아스타로테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반드시 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하기 싫은 말은 기필코 입 밖에 내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하고 싶지 않아하는 말을 캐묻기 싫어하는 페로사에게는 더욱 효과적인 방어책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모든 악조건을 떨치고, 자신이 있는 이 앤빌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평화롭기만을 바라던 이 겁쟁이가 마침내 자신이 숨어있던 방패를 박차고 나왔다. 색을 되찾은 페로사의 눈동자가 저렇게나 선명하게 새파란 색이었다는 것을 아스타로테는 너무나 오래간만에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고요한 확신이 있는 무게있는 목소리가 육중한 창처럼 날아왔다.
"걔를 아는구나."
일순간 그 공기가 어찌나 차가우면서도 무겁던지. 그러나 그 공기가 유지되는 것은 정말로 일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페로사는 이내 곧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근거 없는 충동으로 소중한 우정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여전했으니까. "하여간 너는 참 전부터 빙빙 돌려말하는 걸 좋아한단 말야, 로테... 가끔은 좀더 대놓고 이야기해도 좋을 텐데." 하고 말을 꺼냈다가, 페로사는 아스타로테의 반격에 된통 당해버리고 말았다. "그쪽으로 대놓고 이야기하라는 게 아니잖앗." 자기 말을 되섬기며 소녀감성을 예찬하는 말이 쏟아지자, 버티지 못한 페로사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자기 얼굴을 팍팍팍 쳤다. "너 다음 잔은 독한 걸로 줄 줄 알아. 정말이지..."
생각해 보니 음식은 일절 시켜본 적이 없다. 안주도 그렇게 먹는 편이 아니었다. 견과류 두어 개만 깨작거리다 술을 마시고, 그렇게 대화를 하다 기력 없이 돌아가는 편이었다. 셰프가 있는 비스트로 바니 음식이야 시킬 수 있었겠지만 근 5년간 제대로 먹지 않았던 미카엘의 위는 제대로 된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뿐일까, 죄책감으로 인해 먹어도 될 존재가 아니라는 심리적인 문제도 있었다. 때문에 이외의 것을 먹기엔 아직 무리가 많았다. 1인분도 제대로 먹지 못해 반이 넘게 남기기 일쑤고, 어느 날은 그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해 게워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친한 친구인 아스타로테가 달마다 무언가 가져왔고 제롬이 그나마 쿠키라도 가져왔으며, 리아나가 사들고 오는 간식거리가 있는 등. 최소한의 온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없었더라면 무언가를 입에 넣고 씹는다는 시도조차 일절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대로 천천히 몸을 옥죄는, 느린 자살이란 것을 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일절 신경 쓰지 않았는데, 당신이 걱정된다 하니 지금부터 고쳐야겠단 다짐이 든다.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천천히 얘기하고, 새로 좋아하게 될 음식도 알아가고 싶고, 내겐 과분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당신에게 먹여주고도 싶다. 겨울날 낙상홍처럼 붉게 영근 당신의 얼굴이 퍽 사랑에 빠진 소녀 같기에, 그 모습이 귀엽단 생각이 들어 품에 기댔다.
"나도.. 그러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도 좋아해 보고 싶고.. 새빨갛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하늘을 보면서 같이 나들이도 가보고 싶어."
손에 폭 덮인 가면 너머로 자그맣게 입을 뗐다. 늘 그렇듯 목소리는 작고, 어린아이가 귓속말하듯 조곤한 감 없지 않으나 그 사이 희미한 기쁨과 수줍음은 도저히 감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가면을 덮던 손가락 틈이 빼꼼, 마치 낯부끄러운 걸 봤답시고 가렸던 아이가 몰래 훔쳐보듯 미세하게 V자로 벌어진다. 가면 너머 겨울 색 눈동자가 페로사를 내려다본다. 욕망을 마주한 미카엘은 조심스럽게, 들키지 않게 손가락을 다시 좁혔다. 다시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으응, 그러니까.. 그게, 괜찮아. 내가 다시 받아올 수도 있고, 중요한 거래처를 만나는 건데.. 마땅한 예의를 안 지킨 것도 내 쪽이니까.. 네가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카엘은 옅게나마 용왕의 성격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함도.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페로사가 다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용왕의 안위도 걱정이 되었다. 자칫해서 틀어지면, 흥미 위주로 굴러가는 용왕은 그로스만 패밀리를 역으로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가족이라는 정이 있지만 정작 그 의미가 희석되기도 한 사이. 그럴듯해 보여도 뒤집어 보면 역할만 가족. 제대로 되지 못한, 과거의 약조로 이루어진 관계.. 그게 용왕과 자신을 명확하게 지칭하는 말이었다. 어린 미카엘은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자랐다 보니, 안 좋은 쪽으로 눈치가 너무나도 빨랐다. 혀에 추를 달고 납을 매단다. 침묵하며 말을 돌렸다.
벤치는 차가웠지만 모피 덕분인지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손을 고이 모아두고 페로사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미카엘은 일련의 과정을 보다 의문점을 느낀다. 향을 맡아보니 독한 것이다. 담배를 바꾼 걸까? 의문은 금세 해소됐다. 가면을 들췄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도 미카엘의 눈은 시린 겨울 색이다. 그럼에도 그늘 속에서 일렁이는 파도 색의 눈보단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릿한 연초 향, 열대과일, 흐릿한 초콜릿.. 뜨겁고도 황홀하다. 짧지 않게, 긴 욕망에 답하듯 목에 팔을 둘렀다. 직접 피우지 않은 연기일 뿐인데도 묵직하게 들어찬 연초의 향에 정신이 몽롱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지 않을까, 아찔한 감각을 뒤로 입을 떼었을 때, 미카엘의 눈은 짐짓 흐리고도 알기 어려운 고양감에 흥취되어 있었다.
"셀러에게.. 팁이라도 두둑하게 주는 게 좋겠네."
뺨에 닿는 감각이 오싹하리만치 짜릿하다. 가쁜 숨 너머로 늘어지는 듯, 어딘가 탁 풀린 듯 몽롱한 목소리로 한 번 농담을 뱉곤 부스스 웃는다. 그리고 천천히 옷깃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나한테는.. 조금 독해서 희석할 게 필요해." 하며. 몇 번이고 입을 맞추어도 좋았을 것이다. 곧이곧대로 받았을 것이고, 마침내 연초가 재가 될 때까지 그리하였을 테니. 그 순간엔 아마, 또 짐짓 아이처럼 순수하게 미소 지으며 "춥다." 고 말했을 테지.
하고 많은 업종 중에 하필 오락실을 선택한 건 크게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개중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쪽이 안전하다는 주장이 가장 큰 이유였다. 뒤를 잇는 이유는 대부분 가장 큰 이유의 연장선에 가깝지만 어쨌거나 각자 충분한 설득력을 갖췄기 때문에 계획 초기 단계에서 위장용으로 거론되었던 여러 정신 없는 업종들은 모두 리스트에서 삭제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초라한 오락실 하나가 셀렉트 되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끝에 애들람 나졸트 라는 인간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 개월 동안, 애들람은 미리 예상했던 대로 손님이 파리보다 적게 드나드는 이 가게의 실태를 보며 심리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단순히 사장이라면 마인드가 게으르고 불량한 축에 들겠지만 그는 엄연히 본업이 있는 사람. 즉 파리 날리는 가게가 반가운 건 그야말로 당연한 일. 본업에 집중하려면 손님이 없는 편이 좋고, 돈은 이미 썩어 넘칠 만큼 많은데 굳이 여기서 부업 삼아 불릴 이유도 없고.
뭐 그런 이유로,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가끔 2층이나 지하실에 들르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렇게 한둘쯤 손님을 마주치곤 하는데, 보통 때라면 그 손님마저도 어린애들이나 백수 잡배에 가까운 인간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웬 손님이 무려 차까지 끌고 나타난 것이다. 애들람은 카운터에 해파리 처럼 엎드려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키는 동시에 문턱을 넘어오는 손님을 티나지 않게 스캔한다. 시안, 8999위 조직인 민트의 사장.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2대째로 나이는 어린 편. 무역 및 유통업을 담당하며 다루는 물건은 제법 깨끗한 축에 드는.
"아. 이쪽입니다."
=내가 뒤를 캔 인간. 이 상황이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 게임만 하러 온 게 맞을까 의문이 드는데 어느 쪽이든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다. 애들람은 자리에서 나와 시안을 안내한다. 동전변환기는 가게의 구석에 낑겨 있다.
"여기서 바꾸시면 됩니다."
낡았지만 그런대로 깨끗한 구식 기계다. 안내를 마친 애들람의 시선은 이윽고 창밖을 향한다.
"차 가져오시는 손님은 자주 못 봤는데, 조심하세요. 가끔 긁고 가는 양아치들이 있어서."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장면 인용했슴다! 뭔가 익숙하다면 그 때문임! *클리셰적 오글거림 주의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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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같은 건 내리지 않았다. 영화에선, 병실에서 보았던 영화에선 내리던데, 하고, 소년의 아직은 비현실적인 어딘가가 어렴풋이 생각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그런 그를 비웃듯이, 이미 며칠째 마른하늘이었다. 원래 현실의 비극이란 그렇게 일상에서 갑작스레 닥쳐오는 것이므로.
그저 고압적인 붉은 하늘 아래,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져있을 뿐이었다.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가 아직 그의 숨은 붙어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 또한 오래 갈 거란 확신 같은 것 없었다. 그의 머릿가에 서늘한 총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최근 아버지는 이상했었다. 불안한 듯 손톱을 깨물다가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방을 황급히 싸다가도 다시 풀기를 반복하였다. 그럼에도 자신이 걱정을 내비치면, 아버지는 안심시키려는 듯, 힘겹게 미소를 내보이곤 했다. 그 따듯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크려버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을 걸었다.
"너만은 지키마. 너만은 지킬 거야, 내 사랑스러운 아들아."
아버지는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봐도 대답은 없었다. 재촉하기엔 그 답이 두려워, 소년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을 소년은 지금 후회했다.
작은 컨테이너 상자 안은 어두웠고, 그 얇은 문틈 사이로도 밖의 광경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자신은 사실 여기에 없다고, 이 컨테이너 속이 아닌 저 붉은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착각할 것 같았다.
소년이 심장이 작은 가슴속에서 방망이 짓을 했다. 컨테이너 안은 먼지투성이이기도 했다.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필살 적으로 억누르러 입을 두 손으로 내리눌렀다. 불과 몇 시간 전, 갓 깨어나 눈을 비비는 자신에게 아버지는 여기에 있으라 신신당부하였다. 어딘가 급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체념한 표정의 아버지였다. 소년의 작은 두 어깨를 꼭 붙잡고, 다정한 두 눈을 마주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곳에서 계속 숨어있으라고, 흐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가 마지막이야."
총을 든 사람이 나지막이 얘기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 어투는 지나치게 담백했고, 지나치고 냉담했다. 오히려 약간은 귀찮은 일을 한다는 듯이, 혀를 차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옷자락이 문손잡이에 걸리거나, 미는 문을 잘못 당기는 것처럼 사소한 트러블을 마주하는 듯이 가벼웠다. 누군가의 목숨을, 누군가의 세상을 앗아가려는 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권총이 장전하는 소리에 묻혔다.
소년의 숨이 목에 걸린 듯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단란하게 살았던 그였지만, 자신이 퇴원할 때 즈음부터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를 보는 일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모든 설명은 그저 아버지의 씁쓸한 표정으로 대체되었다. 소년에게는, 단 하나 남은 가족이었다는 뜻이었다.
세상에서 단 하나 남은, 끝까지 곁에 있어 주었던 아버지란 말이다.
참을 수 없었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이전에 몸이 뛰쳐나갔다. 아버지가 신신당부하신 행동을 인식해도 절박감이 그의 뜀박질을 재촉할 뿐이었다. 총구를 든 자가 고개를 올렸다. 아버지의 쉰 소리는 낭패감을 담았다.
"제, 제레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총구가 위협적으로 그의 머리통을 짓눌렀다. 소년의 아버지는 신음소리와 함께 그대로 다시 쓰러졌다. 소년의 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몇십 미터 되지 않는 거리임에도 소년의 목에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그럼에도 소년은 계속해서 달렸고, 그 목적지에 도착하자 앞으로 쓰러졌다. 거친 땅에 갈려 무릎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으나, 그 고통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소년의 목적지는 총을 든 자의 발치였기에.
"제레미! 도망치렴, 제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상대는 총을 들고 있었고, 언제나 든든했던 아버지는 이미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소년의 병약한 몸은 조금의 저항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소년이 가진 것은, 이 총을 든 자가 행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소름 끼치게도 잘 깨닫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땅에 얼굴이 박힌 채로, 자신에게 제발 말을 들으라고 울부짖었다.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아버지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절규를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상대의 발치에 몸을 던져 비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신에게 기도하듯, 소년은 끊임없이 되뇌였다. 비 대신 눈물이 그의 뺨을 축복했다. 신 대신 총을 든 자의 차가운 눈이 그에게 당도했다.
땅을 향하는 시야에 그의 구두가 들어왔다. 맑은 하늘임에도 왜인지 흠뻑 젖어 있었다. 이따금식 옷가지를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의 구두 끝에 터지듯 자국을 남겼다.
그자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새까만 복면이 그의 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소년은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호소하였다.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해 말이 횡설수설하게 나왔다.
"부탁이에요, 부탁이에요... 제 아빠 좀 살려주세요..."
흐느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작은 어깨가 흔들렸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비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두 손을 다잡고, 머리를 절하듯 땅에 댄다. 마치 제단에서 기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이곳에 그 들을 지켜보는 신 따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년을 구해줄 신적인 존재는 없었다. 그저 피로 땅을 적시는 아버지와 저의 이성을 잃을 것만 같은 절박감뿐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했다.
단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총을 든 자는 소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총구가 느리게 내려졌다.
아버지의 머리에서 멀어졌다. 그의 팔에 힘이 빠져, 총구는 사람이 아닌 땅을 향했다. 소년의 입이 슬며시 벌어졌다. 믿기지 않는 희망이 소년을 풍선마냥 부풀게 하였다. 헬륨 풍선처럼 두둥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자는 손을 뻗었다.
소년은 저 뒷덜미가 번쩍 들어 올려지는 것을 느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공허함도 잠시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상이 돌았다. 쓰다 버린 솜인형 마냥, 소년의 연약한 몸은 쉽게 던져졌다. 허공에 붕 뜨다 바닥에 처박혀 비명을 질렀다.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여러 번 굴렀다. 귓가에 천둥번개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새 몸은 멈추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몰랐다. 온몸이 고통에 요동쳤다. 드디어 구르는 것을 멈춘 소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수초의 일이었다. 그 수초 후 소년이 고개를 드니,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온몸을 강타한 충격, 이명처럼 메아리치는 천둥번개.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하지만 땅은 이미 소년의 악몽이 되어있었다.
소년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던 곳은 피와 뇌수로 뒤범벅이 된 상태였다.
"아.....아.............."
힘없이 벌려진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 아빠. 아빠. 망가진 카세트처럼 그의 머리가 같은 낱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굴러 다친 몸으로 엉금엉금 몸을 끌고 기어갔다. 상처의 쓰라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손끝이 아버지의 어깨에 닿았다.
울먹이며 소년은 그 어깨를 흔들었다. 든든하던 어깨는 소년의 손짓에 따라 힘없이 흔들렸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버지의 머리에서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년이 똑 닮았다고 웃던 아버지의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아버지의 미소는 더 이상 보지 못한다. 아버지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 남은 것은 피에 절은 차가운 고깃덩이뿐이었다.
뉴 베르샤르에 사는 이상, 총은 그리 보기 힘든 것이 아니었고, 소년은 본인이 총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소년은 이제 와서야 총이라는 흉기를 이해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제작되었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지 이해했다.
얼마나 손쉽게도 소년의 세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제 없었다.
소년은 비명을 질렀다. 아마 질렀을 것이다. 소년은 자신을 행동을 인식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목이 찢어질 듯한 느낌도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절규하며 아버지를 불렀다. 답을 하지 않을 아버지를 불렀고, 미동하지 않을 아버지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아버지는 없어. 이제 이 세상에 없어. 아는 사실이어도 상관없었다. 소년은 절망감에 익사하고 있었다. 폐 속의 물을 토하듯 소년은 단말마와도 같은 비명을 토해냈다.
일상 속에 갑자기 도래한 절망에 인간은 나약했고, 소년은 더더욱 나약했다.
저벅.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덜덜 떠는 소년은 아버지의 살해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둘은 오늘까지 마주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의 이름을 소름 끼치게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공포스레 중얼거리던 이름이었으니까.
케르베로스 블랙.
막혀있던 눈물이 그제서야 폭발 적으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슬픔도, 두려움도 아닌 분노에 의해.
"왜... 왜!!"
소년은 울부짖었다.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총을 한 손에 든 자에게 대든다니, 평소의 소년이라면 생각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평소처럼 행동할 수 없었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못했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자에게 자신의 목숨도 앗아가라는 듯이, 소년은 목청 높이 소리를 질렀다.
"살려달라고 빌었잖아! 뭐든지 하겠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왜, 왜!! 왜 아빠를... 왜 아빠를!!!"
아버지의 살해자, 검은 지옥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총구를 소년에게 겨누는 일도 없었고, 입 다물라 협박하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태연하게도, 손에 든 총기를 확인하고 재장전하였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송두리째 빼앗아 간 자인데, 자신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년은 그것이 너무나도 서러워, 더욱더 크게 울부짖었다.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그런 소년을 케르베로스 블랙은 그저 내려다보았다. 총기를 홀스터에 돌려 넣으며, 냉담하고도 뻔뻔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는 쓰레기였다."
소년은 말없이 흐느낌을 지속하였다. 그가 그러든 말든, 아버지의 살해자는 말을 계속했다. 냉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헤이디즈 하트. 주업은 장기매매. 업계에서는 '미성년자'의 장기를 취급하는 것으로 정평 나 있다. 그 장기들의 출신은 물론, 구매 혹은 납치한 아이들이지."
살벌한 농담 같은 말을 웃음기 하나 없이 얘기한 살해자는 잠시 말을 끊었다. 흠뻑 젖어 있던 외투를 뒤지더니, 그 품속에서 낡은 담뱃갑 하나를 손에 쥐었다. 복면을 코까지 올려, 조용히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며, 살해자는 소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 아버지가 속했던 조직이다. 그래서 그를 죽였다."
이해도 용서도 구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지극히 사무적인, 그저 소년이 알아야 할 것들을 서술해주고 있는 어투였다. 아버지의 시신을 구명줄마냥 붙잡고 있던 소년은 그것을 가만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네 이름은 제레미 홀던. 헤이디즈 하트의 간부, 케빈 홀던의 외아들. 약 3년 전에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지."
그 말을 끝으로 살해자는 입을 닫았다. 더 할 필요가 없었다.
잔혹한 진실이 소년의 심장을 꿰뚫었다. 소년의 심장이면서 이름 모를 누군가의 심장.
소년은 손을 그러쥐었다. 후두둑. 빗방울처럼 눈물이 소년의 손등에 닿고, 아버지의 핏물과 섞여들었다. 그에 공명하듯, 살해자의 외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자비 없는 붉은 하늘을 비추었다. 투명해야 할 것이 새빨간 색에 물들여진 것처럼 보였다. 소년은 작은 어깨를 떨었다.
"그런 거... 그런 거 알 게 뭐야. 그런 거 알 게 뭐야........"
"..."
"아빠는… 아빠는 나를 위해 그랬던 거라고. 조직에 들어간 것도, 그런, 그런 것을 한 것도. 다, 다 나를 위해서란 말야."
"...."
"아빠를 살려네.... 살려내란 말이야... 내 아빠란 말이야. 세계 제일로 다정한 아빠란 말이야..."
살해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긴 침묵에, 소년은 그가 영영 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보니, 살해자의 외투를 적시는 것은 빗물 같은 시답잖은 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알았다. 그의 발밑의 웅덩이는 붉은 하늘을 반사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새빨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듯한 그것은, 빗물도 구정물도 아닌 붉디붉은 혈액이었다. 살해자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피. 그러고 보니, 소년은 그가 한 말을 똑똑히 기억했다. 소년의 아버지가 '마지막'이라고.
소년의 등에 쭈뻣 소름이 돋았다. 이 자는 얼마나 많은 목숨을 스러트린 것일까. 그렇게 무감정한 눈으로, 얼마나 많은 세계를 무너트렸을까.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살해자는 입을 열었다.
"그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해."
그의 생각을 읽고 답이라도 하는 듯이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 살해자는 그리 말하고 입을 닫았다. 살해자에게, 정말로 그런 것은 큰 의미가 되지 못했다. 그는 사람이라는 것은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사람에게는 천사라도 다른 자에게는 괴물이 된다. 머리가 세 개라도 달린 양. 살해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 머리 중 하나가 선을 넘은 악인이자 가해자이자 괴물이라는 점이었다.
"네 이해나 용서는 원하지 않는다. 평생토록 원망해도, 저주해도 좋아."
하지만 복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덤덤하게 말하는 것 치고는 우스운 소리였다. 일그러진 웃음기가 소년의 눈물 젖은 얼굴에 자리를 잡았다.
"네 아버지는 쓰레기였다. 그래서 죽였다. 그뿐이야."
그리고 살해자는 등을 돌렸다.
"쓰레기는..."
소년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그런 입술을 짓씹으며 까지 소년은 울듯이 외쳤다.
"쓰레기는 너도 마찬가지잖아!!!"
소년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을 담은 이 도시에 대한 진실을. 그 진실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너무나도 잔혹한 진리였다.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소년으로서 모를 리가 없었다.
'뉴 베르샤르에 선인은 없다.'
질서 없는 도시의 생태계는 야생의 그것과 같았다. 먹고 먹히며 보잘것없는 생명을 이어가는 법칙. 사자가 늑대를 먹고 늑대가 토끼의 숨통을 끊고 토끼는 아래의 작물을 짓씹듯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의 등에 칼을 찔러넣는 현실.
뉴베르샤르에 선인은 없었다. 남을 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다. 검은색으로 물든 잿빛 인간들만 남을 수 밖에 없는 도시였다. 소년의 아버지도 그랬다. 저 앞의 살해자도 그렇다. 소년도, 그의 아버지도, 그 아버지의 살해자도, 결국엔 같은 쓰레기장에 박힌 같은 회색빛 죄인이었다.
소년의 절규는 살해자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긍정도 부정도 없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떠나지 못하는 소년에게서 말없이 멀어질 뿐이었다.
"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년의 울부짖는 소리는 옅어졌다. 마치 기억이 잊어지는 듯이 어렴풋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멀어지고 멀어져 그의 울음이 실제인지 이명인지 확실치 못하는 거리에 왔을 때, 살해자는 드디어 외투에서 불을 꺼내었다.
손길을 탄 흔적이 보이는, 누가 봐도 낡고 더러운 지포 라이터였다. 익숙한 움직임으로 그는 그것을 꺼내, 한 손으로 부싯돌을 튕겼다. 작은 마찰음과 함께 어두운 복면을 밝히는 작은 불. 살해자는 그것을 향해 고개를 내리 낮추었다.
달칵.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다시 닫혔다. 입에 문 궐련 끝이 새빨갛게 타올랐다. 그 작은 불씨에서 뿜어나오는 연기가 주변을 흐릿하게 비추었다. 그 매캐한 연기를 통해서 주위를 보면, 현실보다는 값싼 텔레비전의 구린 화질을 보는 것만 같았다. 화면 너머의 흑백 인영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관람하듯, 한 걸음 멀리서 현실의 암울한 풍경을 보는 것이다.
「칸나 브라이트」 는 그 연기를 내쉬었다. 현실이 그런 식의 구질구질한 흑백영화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 생각을 비웃듯, 고개를 올려 바라본 하늘은 잿빛 구름 한 점 없는, 지긋지긋하게도 맑은 붉은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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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디즈 하트는 슬슬 '식용'에도 손을 뻗고 있었다. 남은 '재료'들이 아까워서일까나? 그 덕분에 칸나는 드디어 조직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칸나는 굳이 이 부분을 꺼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말하지 않았다. >> 소년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뉴 베르샤르 밖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 지 오래. 죽은 적 없다. 후에 연락을 받고 소년을 데리러 간다. >> 소년과의 이야기는 철저히 소년이 알아야 할 이야기라 한 것으로, 칸나는 대화 내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했으나 수술까지 했던 애 앞이라 꾹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