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저 아이였고 답을 원했었어 난 커튼을 발견했지 약속된 모험이였어 나는 모든 걸 가졌고 용기를 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난 그저 어린 아이였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그 말을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한 건 아니었다. 그리워 해 마땅하지만 그 때로 돌아가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걸. 비단 여인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에 그리운 시절이니. 여인은 어깨를 살짝 으쓱이며 아니라면 아닌거지, 하고 가볍게 중얼거렸다. 그래. 아니면 된 것이었다.
"은퇴한 사람 괴롭히는 취미는 없는 걸. 네가 나를 위해주는 건, 날 계속 친구라고 불러주는 걸로 충분해. 이렇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언제 와도 반겨주는 거면 돼."
과거와 현재가 어렴풋이 겹쳐진 페로사를 보며 여인이 웃음지었다. 예전과 차림은 달라도 웃는 얼굴, 눈매 만큼은 여전해서. 제대로 현재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색을 흐리게 만드는 세피아 필터 따위 얼마든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페로사의 눈썹이 팍 하니 미간으로 모아지며 나오는 볼멘소리는 여인의 개구진 웃음소리를 불러왔다. 쿡쿡. 후후후!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반박할 줄 알았던 건지.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어대더니 모히또 한모금 마시고 진정되었다. 숨결에서 엷게 꽃향기가 느껴지니 기분이 어찌 좋지 않을까. 찰강찰강 잔을 작게 흔들며 말했다.
"언제는 날 위한게 아닌 것처럼 말하네. 매번 고심해서 만들어주는 거 다 알거든. 이러니까 내가 롯시 칵테일만 마시는거지."
하는 말이 참 밉상이지만 마냥 미운 말만 하는 것도 아닌게 사람 속내를 들었다 놨다 하려나보다. 실제로 여인이 칵테일을, 그것도 바텐더의 재량으로 만들어진 걸 마시는 건 앤빌 뿐이었다. 다른 가게에 가면 온더락 혹은 스트레이트만 마셨다. 입에 들어가는 것에 까다로운 여인이 주는 것을 그대로 먹는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페로사의 경우는 친구라는 의미가 있었으니.
여인의 손이 잔을 들었다. 가장자리를 입술에 걸치고 청보랏빛 술을 물 흐르듯 몇모금 들이켠 후 잔을 내려놓았다. 손의 물기를 가볍게 허공에 털고 좀전에 베어먹었던 무화과 반쪽을 들어 끝을 살짝 물었다. 그 상태로 잘근거리며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요즘이라고 뭐 별거 있나. 하는 일이야 늘 똑같지. 구역 관리하고 애들 관리하고. 그저 그런 일상, 아."
드물게도 뭔가 생각났는지 여인의 말이 끊겼다. 이어지는 건 잠시 고민하는 여인의 표정. 찌익. 입에 문 무화과를 가늘게 찢어 씹어삼키고 나서야 끊겼던 말은 이어졌다.
"최근 재밌는 일이 하나 있긴 했어. 아주 재밌는 일인데. 아직은 시작단계라고 할지. 밖으로 내긴 애매해서. 말할 형태가 갖춰지면 얘기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여인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여태 계속 웃고 있었지만 이 미소만큼은 느낌이 달랐다. 페로사는 그 미소를 한번 본 적이 있었다. 과거, 르메인으로서 제안을 들고 라 베르토에 찾아왔을 때, 제안을 들은 여인이 그런 미소를 지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일을 맡았을 때 말이다.
"롯시는 재촉을 안 하는 그런 느긋한 점이 좋지만. 가끔은 원하는대로 채근하는 것도 보고싶긴 하다. 애인이라도 생겨야 그럴려나?"
여인은 농담조로 말하고 모히또 잔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매끈하게 칠된 손톱이 잔과 부딪히며 티링 하고 맑게 울리는 소리를 내었다.
개인적인 일이라고 말하며 베시시 웃어보이는 스텔라, 그런 스텔라가 약을 탄 술을 한모금 마시는 것을 보며 이리스는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말해주고 싶지 않은걸까. 아니면 그런 걸 말해줄 정도로 가깝지 않다는걸까. 할말은 머릿속에 넘쳐흘렀지만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것은 불안감 떄문이었을 것이다 .
" 몰라... "
이리스에게 가족의 수를 물어본다면 손에 꼽을 수 있겠지만, 스텔라는 자신과 달랐으니까. 스텔라는 수없이 많은 조직원들을 품고 있었으니까 이리스는 그 수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고개를 저으며 스텔라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걸까. 저 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리스는 고민하면서 스텔라의 입술이 마저 열리길 기다렸다.
" 가족이란 그런거야...? 난 잘 모르겠어... "
이리스는 자신의 허리를 톡톡 건드는 스텔라의 손길을 따라 몸을 좀 더 움직여 얼굴을 스텔라와 마주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면서 단 한번도 가족이란 걸 꾸려본 적 없으니까. 가족이란 단어를 제대로 처음 입에 담아본 것도 스텔라를 만난 후였으니까. 그래서 이리스는 아직까지도 가족이란 단어에 대해 온전한 정의를 내리지 못 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에 내려앉는 그 손길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말없이 이리스는 스텔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리스는 살며시 고개를 움직였다.
천천히 스텔라와 이마를 맞댄다. 머리카락 위에 스텔라의 손이 내려앉았을 때 보다도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이마를 맞대고 어리광을 부리듯 몇차례 부벼대곤 살며시 고개를 움직여 코를 맞댄다. 한없이 가까워진 두 사람의 눈동자, 그런 와중에 어딘가 촉촉해진 듯한 이리스의 붉은 눈동자가 크리스의 눈동자 안을 살피듯 똑바로 맞춰온다. 서로의 숨결이 가까워진 거리만큼 잠시 침묵이 흐르지만 천천히 이리스의 입술이 열린다.
마치, 결핍된 애정을 갈구하듯. 자리잡지 못한 비루한 몸을 놓일 곳을 찾으려 매달리듯, 이렇게 하지않으면 자기 자신이 견디다 못해 바스라질 것만 같은 것처럼 이리스의 상처투성이 두 손이 스텔라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 ... 언니는 나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 쭉?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도..? 응? 정말로..? "
떨어진 잔 따위는 관심이 없는 듯, 파르르 떨려오는 목소리로 물음을 던진다. 눈동자 역시 평상시의 해맑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불안한 듯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스텔라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것 만큼은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