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저 아이였고 답을 원했었어 난 커튼을 발견했지 약속된 모험이였어 나는 모든 걸 가졌고 용기를 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난 그저 어린 아이였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소녀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지 게임기를 붙든채 숨을 고르며 어깨를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이, 이겼다아..."
그것은 간발의 차이. 승자는 무라사키. 그녀는 어젯밤까지도 이 게임을 하다 잠들었으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롬은 그 짧은 순간에 게이머로서의 감각을 최대한 살려내 무라사키의 일방적인 냉전 사이에서, 그 틈을 찔러 흐름을 유연하게 뒤틀어 자신에게로 승기를 몰고왔다. 거기에 랭커를 상대로 이정도 스코어를 첫판에 따냈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무엇의 개입없이 1:1로. 이 게임이 본래 팀게임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었다. 무라사키도 그 사실을 알고있는지 제롬을 동경어린 눈으로 올려다 보고있었다.
"..."
...가, 아닌가? 어쩐 일인지 승패가 갈려진 방금 순간부터 얼굴에 그림자를 짙게 깐채로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그녀였다. 랭커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라도 일어난 것일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확실히 게임으로 우정파괴가 일어나는 일은 게임계의 빅뱅이라고 하는 NES시절부터 있었을 정도로 역사적이었고, 또 흔한 것이다. 고작 게임이라고는 쉽게 말할수 있을지 모르나, 게임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모두는 나름의 모든 걸 걸고서 컨트롤러를 붙잡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특히나 격투게임의 경우 앉아있던 의자를 붙잡아들고 상대 머리를 내려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설마 무라사키였다는 말인가!! 그리고 소녀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침대에 있는 것은 게임뿐아니다. 나이프도 널려있다. 그제서야 그것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무라사키가 불쑥, 제롬에게 한 순간에 거리를 좁혀 다가온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도 반짝인다-!!
"제롬씨...! 하, 한 판...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 그것은, 나이프따위가 아닌 아직도 게임 화면이 켜져있는 게임기일뿐. 무라사키는 이내,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천천히. 자신의 안에 떠도는 감정과 말들을 조각 맞추듯 모아, 서투르게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의 기분을 말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저, 처음에는... 소, 솔직히, 제가... 계속 이길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야... 제가 더, 오래했으니까 그런거겠죠... 하, 하지만... 다음 판부터는, 제롬씨의 움직임부터가, 왜인지, 정말 달라져서... 순간, 쫓아갈 수가 없어서... ...저, 그, 그런 기분이, 처, 처음이라서... 그래서, 제, 제롬씨랑... 좀 더... ...오, 오래, 해보고 싶어요...!"
친구와 나란히 앉아 그저 게임을 하는 것. 심지어 간단히 따낸 첫판에도 굴하지 않고, 더 하자고 말해준 것. 그것에 자신이 밀려버린 것... 이러한 경험 자체가, 승과 패를 떠나서 그녀에게 있어선 굉장히 귀하고 값진 것으로 와닿는 것이었다.
"시, 싫으시면... 그게에, 다, 다른 게임, 해도 되지만... 그래도...~"
소녀는 방금처럼 '다른 게임을 하자'고 말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어쩐지 꾹 다문 입술에 옅게 번져있는 미소가, 제롬과의 시간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18 우우 아스의 요망함보단 아니라구..🥰 2차 패션쇼 ㅋㅋㅋㅋㅋ.. 에만이 2차 패션쇼 하면 지쳐서 집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엎어지고 그대로 딥슬립 한다는 후문이 있어.. 지금 뭐 숨겼어..?!😳 우우.. >:0 그래도 예쁜 사랑 한다고 하니까~ 믿어주겠어..>:3!!
situplay>1596426069>985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시는 점이 나쁘자는 건데...(헤실)(볼냠) 뭔진 몰라도 다음 일상에선 미리 청심환을 먹어야겠네요... 사실 저도 아스주를 어떻게 암살할 수 있을까 고민중이기는 해요(?) 음음 아스랑 돌리고 싶은 일상이 너무 많네요... 제가 좀 손이 빨라져야 할텐데(눈물)
선입선출의 원칙에 따라 아스타로테의 답레를 먼저 썼고 지금은 에만의 답레를 작성중인데... 원래는 아스주가 새벽에 별렀던 '그 상황'이 가능하도록 에만의 답레를 올린 뒤에 아스주의 답레를 올리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일단 지금 올려둘게. 아스주도 답레는 느긋하게 써줘.
페로사는 그 애칭을 들을 때마다 레몬을 생으로 씹은 사람의 얼굴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게 그녀가 그 애칭을 듣기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저렇게 질색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은, 이 도시에서 찾아보기 드문 장기간의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온 두 사람간의 어떤 인사 의례 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오히려 이제 와서 아스타로테가 그녀를 페로사라고 부른다면 페로사는 아스타로테에게 무슨 우울한 일이 있는 건지 의심해볼 것이다.
스툴에 앉아 한 바퀴 돌며 반짝이는 차림새를 가지고 아양을 떠는 아스타로테에게 페로사는 얼굴에 짓궂은 웃음을 한가득 띄며 농담을 던졌다. "내가 남자였으면 오늘 잠 못 잤겠는데. 오늘 새 거래처에선 몇 사람이나 밤잠을 설치려나? 오늘도 나쁜 여자셨구만 그래." 그런 옷차림에는 부단히 그런 의도도 있었겠지.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이 바텐더처럼 수더분한 차림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평소처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도 없이, 바지는 데님팬츠를 입고 허리 앞치마 한 장 덜렁 두른. 아스타로테의 것과 비교하면 희미하고 미약한 시트러스향은 향수가 아니라 헤어 에센스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그래서 좋다는 거야." 오며가며 자주 얼굴을 보는 사람들끼리의 사이에 생기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유대감. 그러나 그것이 보통의 것이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세월이 쌓이면서 견고하게 형성된 유대감은 송진이 굳어 호박이 되듯이 어떤 가치가 있는 보석으로 굳어진다. 아스타로테는 이 도시에서 페로사가 당당히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몇 명 중 하나였다. "직관하기엔 좀 위험한 장면이었을걸─" 하며 그때 죽은 불쌍한 배달부와 청부업자 열두 놈을 생각해보다가, 페로사는 아스타로테의 주문에 손가락을 딱 튕겼다. "내가 딱 로테가 생각나서 준비해둔 게 있었는데 잘됐네. 느긋하게 기다려봐."
페로사는 길다란 하이볼 글라스를 꺼내면서, 라임 한 알을 도마 위에 올려 탁 썰다 말고는 아스타로테의 질문에 무대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 저거? 커튼 바깥쪽에도 먼지가 앉길래 보기가 좀 흉해서, 쇠뿔도 단김에 뺄 셈으로 안쪽까지 다 청소했는데 생각보다 큰일이 되더라고. 하루 종일 걸리더라. 뭐 어쨌든 다 청소했고, 다 잘 작동해. 조명도 들어오고. 뭐 딱히 가수나 밴드를 초대할 계획은 아직 없지만- 보기 괜찮아 보이지? 언젠간 누군가 무대 위에 오르지 않겠어?"
>>20 에만이 딥슬립은 당연히 페로사 옆이겠지?(난청) 아무리 요망해도 용왕님보다야.. 이 아스주 언젠가 오만함vs요망함 한번 보고싶은 욕망이 있어... 믿음은....깨져야 제맛(?) 호호호호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볼게
>>21 난 그냥 솔직할 뿐이야. 아스는 아니지만. 청심환도 뚫어버릴 거 준비해뒀지 ㅎㅎ 남은 건 내 브레이크를 잘 잡는거 뿐일려나. 나 암살은 꽤 쉽지 않을까. 벽치기+망플 한방이면 갈거 같은데. 기대하고 있어 ㅎㅎ 손 느린 건 나도 마찬가지고. 음. 괜찮아. 시간은 많아. (쓰담)
>>25 역시 아스는 전부 의도하는 거였어..! 요망해..!! ㅋㅋㅋㅋㅋ 제롬주랑 제롬이 둘 다 미리 무덤파고 있겠습니다 ㅎㅎ 브레이크.. 제 생각엔 아스주는 굉장히 잘 지키신다고 생각했으니 별 문제 없을 거에요 🤔 ㅎㅎㅎㅎ 벽치기+망플+키스 말고도 한가지 더 준비해둘 생각...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응응 시간은 많으니까요. 언젠가 꼭 돌려요!(볼 오물)
제롬은 조금, 불안함을 느꼈다. 설마 무라사키가 그런 무뢰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킬러, 그것도 르메인의 괴물같은 매서커과중 하나라 생각하면, 이렇게 정색할 때마다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소녀가 움직이자 그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잠시, 그리고 직후 위험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왜냐면 눈 앞의 소녀가 뻗은 손 끝에는 나이프가-
"우왓..."
...그럼 그렇지.. 괜히 놀랐네. 그는 속으로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며 눈 앞의 게임기를 내려다보았다. 게임 화면이 켜져있는, 아까까지만 해도 함께 가지고 놀았던 게임기. 한 판 더 해달라는 말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난 또, 뭔가 대단한 부탁을 하는줄 알았네. 이 귀여운 녀석을 어쩐담?"
꾹 다문 입술을 바라보다, 제롬은 스위치를 땅바닥에 내려놓더니 무라사키의 양 볼을 꾹 누르려고 했다. 몇번 누른 상태로 문지르거나 쭉쭉 볼을 늘리며 다시 한번 볼의 감촉을 즐기려고 하기도 했으려나. 매서커과의 암살자라 하더라도 그냥, 그냥 친구가 가지고 싶은 평범한 소녀는... 부탁조차도 귀여우면서, 어딘가 안쓰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제롬은 그런 부탁을,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성격이었다.
"당연히 가능하지. 오늘은 얼마든지 어울려줄게. 어차피 나 할 일도 없거든."
아스네 가게는 내일 오전중에 들려야겠네. 얼마나 놀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기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다시 한번 스플래툰을 켜둔 스위치를 주워들고는 "뭐해? 한판 더 해야지?" 라며, 도발기 있는 미소로 무라사키에게 웃어보였을까.
>>25 어?😳 어버법버법ㅂ..(시선회피) 아니야.. 아스는 최고야.. 우우 부캐 풀리면 오만vs요망 반드시 하고만다.. 우우우 >:3..!! 애초에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거란 말을 실천하면 안 돼..(꼬오옥)(늘어짐) 히히 팝콘 잔뜩 장전하고 기대하겠다구~~!!!🥰🥰🥰
그의 말에 건조하고 무감한 목소리로 브리엘이 중얼거렸다. 그냥 궁금하기 때문에 해봤다는 그런 느낌이 들도록 말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의 말대로 철학적인 질문이기는 했다. 의사가 아니라 평생을 철학에 시간을 투자한 학자도 고민할 것 같은 정도의.
"한때는 살아 있던 생명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죽은 자에게도 예우를 갖추니까."
나른한 눈매를 아래로 내리뜨면서 중얼거리던 브리엘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이 도시에서는 사소한 여러가지가 약점이 될 수 있었다. 닳고 닳아버린 인간성도 약점으로 잡힐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브리엘은 머리를 쓸어올린 자신의 손으로 이번에는 얼굴을 싸쥐듯 감싸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살기 불편하다고 해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시니컬하고 신경질적으로 하, 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브리엘은 그의 말에 대꾸했다. 3년이 지났어도 이 도시의 붉은 하늘에는 익숙해질 수 없으니. 못 가진 것에 대한 동경심이라고? 아, 최악이야. 성가시고 귀찮고 짜증나. 차라리 제롬 발렌타인이랑 식사를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을 정도야. 동경심이라고. 쯧, 하며 혀를 찼다. 성가시고 귀찮다. 사람이라는 건 왜 이렇게 성가신 걸까.
>>60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핍씨가 여러모로 글러먹은 인간이라.. 처음 왔을 때부터 나 쫓기고 있어!! 하면 쫓아내버리고 일상이 단기종결될 가능성이있기때문에(세상에) 미리.. 알려드립니다................. 술꾼모드라면 욕을 좀 할 수도 잇어요 미리.. 주의............ 글러먹은놈임
"하으...! 흐허이하, 항 히여허여...! (아으...! 그러니까, 안 귀여워요...!)"
제롬이 다시금 볼따구를 잡아 감촉을 느끼며 가지고 놀기 시작하자 그 본인 되는 무라사키는 바둥대며 '우으으-'하고 소리낼 뿐이었다. 르메인의 가면살인귀의 볼을 이런 식으로 늘려대며 장난 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제롬뿐... 아니, 제롬을 포함해서 단 두명 뿐이 아닐까.
"네에...! 이, 이번엔 저도 머뉴버, 할거니까요...!"
그가 걸어오는 도발에 지지 않겠다는 듯, 각오의 목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둘은 다시금 게임 삼매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분명히 스플래툰을 다 하면 다른 게임도 하자고 했던 것도 같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은지. 이 이후 엉망진창으로 스플래툰만 해댔다.
. . .
몇 시간 지났을까. 무라사키의 방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쉽사리 가늠할 수 없다. 물론 그들이 게임에 빠진 채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것도 이유이지만... 그녀의 방은 기본적으로 어두운데다, 창문과 베란다는 전부 암막커튼으로 가려져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붉은 어둠이 도사리는 뉴 베르셰바의 하늘에 뜬 해가 중천인지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방의 주인인 무라사키만은 이 방만의 기묘한 시차에 적응되어 있었고, 지금이 10시를 훌쩍 넘은 한 밤중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도 그녀였다.
"제, 제롬씨...!"
제롬이 한 숨 돌리고 있을때, 무라사키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옷 소매를 잡아당기며 주의를 돌렸다.
"저어, 시, 시간이 늦은 것, 같아서요... 괘, 괜찮으신가요...?"
물론 이곳은 르메인 배틀리언의 기숙사.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살인귀의 방. 안전은 보장되어 있는거나 마찬가지일테다. 허나 그런 것과는 별개로,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현재의 그에겐 애인이 있지 않은가. 이곳에서 아침이나 되어서 나가는 건 '그녀'도 원하지 않겠지.
눈을 내리깔았다. 입 가린 손으로 한껏 입꼬리를 뭉갰다. 웃으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왜 이리 웃음이 나올까. 당신은 아무리 봐도 이 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웃음기 한껏 억누른 목소리로 입 열었다.
"-당신, 운이 좋은 삶을 살아왔구나."
도덕이 무의식적 행동 기반이 될 수 있을 만큼의 성장 배경을 가진 이는 이 도시에 드물다. 적어도 이 곳, 혹은 이 곳과 유사한 곳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브리엘 씨, 나는 당신같은 사람을 보면 문득 울고 싶어진답니다. 우스워서 울고, 당신이 불쌍해서도 웁니다. 그런 곳에서 굴러떨어지려면 대체 무슨 일을 겪어야 합니까? 나는 꿈꾸지도 못할 라퓨타에서 진창으로 떨어질 때에는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의사였어?"
자기가 의사였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잖아, 지금.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선적이다.
"..슬프네, 나는 브리엘 씨를 꽤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데 말이야. 첫 만남에서 차이는 건 생각보다 가슴 아프구나."
그냥 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이유라도 묻고 싶은데. 왜 내가 성가셔?"
하나 짚어둘 것이 있다. 사내는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미치기 직전의 선을 항상 밟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일종의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다. 강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는 질색할만한 아양조차 잘 받아넘겨주는 상대는, 특히나 친구라 부를 이는 흔하지 않은 법이었다. 밖이나 안이나 어딜가나. 그 둘 사이에 걸터앉아 교류를 하는 여인은 그걸 너무나 잘 알았다. 사소함으로부터 비롯된 관계가 일상을 이어가는데 얼마나 큰 조각이 되어주는지도.
"내 주변엔 어쩜 이리 말 잘 하는 사람만 있는지. 나도 그렇지만. 음. 그렇게 말하니까 더 아쉬워지는데? 직관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잖아?"
불쌍한 열둘의 시체가 친애하는 업자의 손으로 넘겨지던 날. 그 자리에 여인이 있었다면 분명 현역 시절처럼 한바탕 놀았을 터였다. 그 과정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가정은 얼마든지 붙일 수 있는 법이었다. 여인은 키득키득 웃으며 비스킷을 아그작 씹어넘겼다.
"기다리는 건 내 전매특허지. 기다리는 만큼 기대할게."
페로사의 손이 글라스를 꺼내고 라임을 써는 걸 보며 말린 무화과를 도록도록 굴리고 있었다. 그 사이 던진 물음에 대답이 돌아와 여인의 시선이 다시금 무대로 향했다. 장비 손질까지 끝나있으나 정작 사람은 없었다. 페로사도 아직은 계획이 없다고 했다. 여인은 고개를 비뚜름히 기울이며 무대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다 휙 고개를 돌려 페로사를 보고 말했다.
"오늘 온 김에 한곡 뽑아볼까?"
바에 한 팔을 걸치고 기대 앉은 여인이 다시금 작은 웃음을 흘렸다. 즉흥적이고 즉발적인 행동양상은 페로사도 익히 아는 패턴이었다. 어쩌면 과거에 그로 인해 고생했던 기억 하나 쯤은 있을지도 모르고. 빙긋이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여인의 손끝이 땅콩 한 알을 집어올렸다.
"열심히 청소하고 정비한 롯시에게 포상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페로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여인의 기분내기가 더 클게 뻔 했다. 여인의 태도도 그걸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페로사가 오늘은 아니라고 한다면 여인 역시 멋대로 무대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여인은 술과 대답을 생글거리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옷만 보면 과할 정도로 클래식한데, 너한테는 예쁘게 잘 어울리네." 페로사에게 남의 패션을 평하는 일은 그렇게 능숙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말을 길게 하지 못한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말하는 데에 익숙할 뿐이다. 그 옷을 입고 별 표정없이 서있는 에만과, 선홍빛으로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 응석을 부리는 미카엘의 모습은 엄연히 달랐으니까.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렇게 간드러지게 차려입었어. 예쁘게 굴기는." 그래서 페로사는 답을 아는 질문을 짓궂은 책망삼아서 해버리고 만다. 그 외숙부의 취향이 상당히 고약한 것은 맞다만, 이번만큼은 그의 무례한 코디네이션을 용서해줘도 좋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 외숙부가 금지옥엽같은 조카에게 꼬까옷을 고이 입혀놓았더니 누구에게 갔는지 알면 이마를 칠 노릇이 아닐까.
미카엘은 결국 이 암사자의 앞에 도달했다. 운명처럼 마련된 조용한 가게 한켠에서, 단 둘이서. 그 손가락 사이로 생동감있는 갈기 같은 머리카락이 미카엘의 손가락에 옅은 향기를 묻히며 얽힌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불안해. 네가 어째서 불안해하는지도 알아... 우린 모두 어딘가 한 군데씩 고장난 채로 살아가니까." 가는 숨소리보다도, 심박 소리보다도 위태로워진 말소리이지만, 그것이 잘못 전해지거나 닿지 않고 사라져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카엘. 그렇게 불안했지만... 너는 여기까지 왔잖아. 네 선택으로." 페로사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두려워했음에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두 번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이 지옥 한가운데임에도. 충분한 확신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그래서 그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만한 시간의 유예를 바랐음에도. 그러나 오기를 바라마지 많으면서, 오기를 바라지 않던 그 날에 미카엘은 자신의 발로 도달했다.
그렇기에 미카엘은 스스로의 선택에 아직 당당하지 못했고, 위태로이 흔들리는 눈길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카엘이 도착한 이 곳에는 흔들리는 미카엘을 붙들어줄 이가 있었다. 문득 미카엘은 어딘가 익숙한, 따뜻하고 커다랗고 거친 감촉이 자신의 손등을 부드럽게 푹 덮는 것을 느꼈다.
그 또한 페로사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페로사의 삶은 절망과 고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그만 천국에서 시작해 순식간에 지옥 한가운데로 내팽개쳐지고, 잃고, 잃고, 또 잃어버렸으며, 이젠 정말로 잃어버릴 게 없다 싶은 순간에도 무언가를 잔인하게 빼앗겨 잃어버리기를 되풀이했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가는 그 손아귀를 잡아채어 찢어버리기를 택했고, 그 선택대로 살았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갈 손아귀는 남아있지 않았으나,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 또한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는 그런 흔들리는 순간들과 절망과 두려움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페로사 역시도 자신의 삶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워 온 상실을 두려워했기에 미카엘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페로사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페로사는 쉽지 않은 일을 하는 데에 이골이 난 몸이었다. 포기하기에는 그 희망이 너무도 눈부셨기에. 언젠가는, 밝은 미래 아래에서 달가운 숨을 들이쉴 그 한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그리고 그 밝은 미래가 지금, 아직 작고 여린 이의 모습을 하고 불안감에 떨며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조그만 손에, 오랫동안 자신의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이 작은 희망을 나누어 쥐어주는 날이... 그녀가 바라마지 않던, 또한 바라지 않던 그 날이 당도했다. 페로사는 손을 내밀어, 미카엘의 눈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알아. 네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무엇 때문에 꺼려하는지. 나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삶을 살았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 위해 많은 선택을 해야만 했어."
"우린 모두 X됐고, 이 지옥 한가운데서 꼬락서니는 엉망이 된 데다가, 조금씩 마음에 켕기는 짓을 할 수밖에 없었지."
"그렇지만, 미카엘, 이 지옥 한가운데서라도 우리는 그저 제각기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을 위해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야."
다시 상실의 손아귀가 덮쳐오더라도, 이번에는 괜찮았다. 이제는 그것과 맞서싸우는 데 익숙했으며,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
"나는 네게 많은 것을 요구할 거야. 네가 험한 길을 걸을 때 네 옆자리를 달라고 할 테고, 쏟아지는 비 속에서 입을 맞춰달라고 할 거야. 내 하늘이 되어달라고 할 거야. 여기의 하늘만큼 불그죽죽할 필요도 없고, 저 밖의 하늘만큼 넓고 높고 푸를 필요도 없어. 나 한 사람을 위해서 그만큼 큰 건 필요없잖아- 내가 원하는 건, 딱 이만큼이야. 네가 그것을 나한테 줄 거라고 약속해주면, 나는..."
의식이 시작되면 주인도, 왕도 없어. 우리의 달콤한 죄악보다 순결한 무죄는 없어. 광기로 더럽혀진 이 슬픈 땅에서, 그것만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고, 그것만이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 Hozier - Take me to church
"-그러니까, 말해봐. 꼬맹아." "오늘은 뭐가 하고 싶니?" "한 잔 마실래?" "아니면, 어딘가로 가버릴까."
스스로가 말했지만, 최악이다. 이 도시도, 이 도시에서 이 남자의 말에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스스로도. 최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약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최악이다. 머리가 아프다 못해 어깨와 뒷목까지 뻐근하게 저려오는 기분에 브리엘은 한번 더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는 것처럼 문지르다가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있는 방향과는 반대로 시선을 움직였다.
"운이 좋은 삶이라는 건 보는 사람이 판단하는거지. 살아온 사람이 판단하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
운이 좋은 삶이라는 건 정확히 무슨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아니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삶? 잠시 브리엘은 왼쪽 손목을 천천히 한바퀴 돌렸다. 어느쪽이든, 어떻게 생각하든 어차피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카두세우스의 일원들은 모두 그런 소문쯤은 가지고 있잖아. 의사였다던가, 의료계에 있었다던가. 나는 그냥 판매만 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아이의 웃음소리.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 손바닥의 밑부분으로 브리엘은 다시금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의사자격을 박탈당했으니, 자신은 더이상 의사가 아니니까.
"차였다느니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줄래? 애초에 그런 생각으로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다른 곳, 정확히는 대기하고 있는 브라이언이 있는 쪽을 곁눈질하듯 힐끗 바라보던 브리엘의 구리색 눈동자가 그에게 향했다. 웃어버리는 그와 다르게, 브리엘의 표정은 미간이 찌푸려져 있을 뿐이지 무감할 따름이었다.
"당신 뿐만 아니라, 나한테는 전부 성가신데. 성가시다는 것에 이유는 굳이 필요없지 않아?"
묻고 싶다. 바깥은, 정말 인터넷과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생명이 소중한 곳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무수한 그레고르 잠자*가 흉측한 배를 까뒤집고 바둥거리는 곳이던지요. 하나 확실한 것은, 당신은 그 곳의 얕은 햇살이라도 영위해봤을 가능성이 높고,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다. 또다시 남자의 피해망상이 가속된다. 입을 가려야 해. 목이 가렵다. 나는 눈으로만 웃어야 한다. 나는 오늘 아침 꽃에 물을 주어야 한다. 나는 목을 긁어야 한다. 나는 매일 아침 시리얼을 먹어야 한다. 나는 햇볕 아래 10분 이상 서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식도가 가렵다. 긁고 싶다.
"첫눈에 반한 거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 브리엘 씨."
꼭 연애적인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 헛소리 지껄인다. 뭐라도 말해야 한다. 나는 말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성가시구나.."
퍽 쓸쓸한 투로 중얼거렸다. 사내는 발작처럼 생각을 연장시켜나간다.
"있잖아,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아, 결국 말해버렸다. 말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말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침묵은 내 목을 조른다. 내 질식은 곧 나의 정신적 죽음과도 같다. 나는 육체가 죽었으므로 정신이라도 살아있어야 한다. 아니, 아니, 반대인가? 정신적으로 죽어있던가?
나는 지금 저 여자에게 화가 나 있나? 모르겠다. 일찍이 그런 건 종이학으로 만들어 먹어버린 지 13년이 넘었습니다.
"전부 다 성가시면, 이 도시가 성가시면... 왜 왔어? 왜 안 나가?"
왜 굳이 햇볕에서 진창으로 스스로 걸어들어와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편집증의 폭발적 발현.
메챠쿠챠 스플래툰을 하는 시간이 지난 이후, 제롬은 한숨 돌리며 잠시 침대에 기대 눈을 붙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방에서 밝은 스위치의 화면을 보고 있기도 어느새 수시간째. 그의 눈은 상당히 피로해졌을 것이다. 편히 쉬고있던 그는, 자신의 옷소매를 당기는 무라사키의 말에 슬며시 눈을 떴다.
"시간...시간...?"
그는 자신의 단말기를 통해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시간은 10시를 넘긴 상황. 제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몇시간이고 앉아서 게임만 했으니...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하지 않았기에, 그의 몸이 엄청나게 아플 것은 자명했지.
"더 놀 수 있...아니, 무리려나..."
시간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체력적으로는 무리인 상황이다. 물론 아스도 생각하면 아침까지 있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겠지. 아무리 무라사키가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다른 이성의 집이니까. 애인이 있는 입장에서는 돌아가는게 맞겠지. 그래, 차라리 이 시간에 돌아가서, 아스가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몸을 쭈욱 폈다.
"그럼 슬슬 돌아가볼까. 시간도 늦었으니까."
'연락... 어차피 금방 가니까, 할 필요는 없겠지..?'
그는 아스의 생각을 하며 연락을 할까 고민하다가도, 어차피 금방 도착할테니 가서 놀래켜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단말기를 집어넣는다. 잠시후의 그는 이 선택을 후회했겠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몰랐으니.
>>163 하하하 나는 페 "과잉대응" 로사주라구. 이미 약 다 바르고 반창고도 붙여뒀지롱. 걱정해줘서 고마워.
>>164 오히려 좋아. 나도 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에만과도 가벼운 핑퐁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고. 그리고 어휘력이 모자라다니... (지금까지 독백과 답레를 떠올려봄)...🤔평범한 금손이잖아? 그러니까 난 에만주가 어휘력이니 분량이니 텀이니 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답레를 써주면 제일 좋을 것 같다구. 미카엘의 귀여운 아양 기대하고 있습니다(?)
>>165 걱정마~ (쓰다담) 이미 약 다 바르고 반창고도 붙여놨다구. 걱정해줘서 고마워.
말이 나온 즉시 진통제를 준비했다. 수액백과 수액 세트를 연결한 후 챔버의 절반이 액체로 찼을 때 다시 그에게 향했다. 팔뚝에서 혈관을 찾아 "따끔해요." 말하며 동시에 카테터를 삽입했다. 그리고는 카테터와 수액 세트를 연결하고 드레싱을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연결된 쪽 팔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알죠? 어지럽거나 구역감이 들면 말해요."
바라던 대답을 들었음에도 막상 고통에 겨운 모습을 보니 조금 심했단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힐긋 그의 안색을 살폈다. 진통제 효과가 빨리 돌기를 바라며 "좋은 생각이에요." 대꾸했다.
"그렇다면 누가 지켜줄 필요 없을 만큼 강해지셔야겠네요."
안전보다 신뢰를 추구하는 건 타고난 성정일까, 직업적 소명의식일까. 어느 쪽이든 목숨보다 중요할까. 오늘도 피투성이로 나타난 남자를 벌써 몇 번이나 치료한 입장에서 나온 감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둘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건 그의 몫이니 참견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바라는 바예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뿐이라서요. 이참에 발렌타인 씨가 우리 빌어먹을 대표님 좀 설득해줄래요?"
대표라고 하면 당연히 병원의 하나뿐인 의사이자 제 보호자를 자청하고 있는 이를 뜻했다. 실상 하는 꼴을 보면 보호자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만. 엘레나는 물어보고서도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진짜 설득해달란 건 아니었으니. 일종의 푸념이었다.
잠깐 생각하더니 "일단 리스트는 주고 가요."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들먹이면 설득력이 더해질지도 모르지.
르메인 배틀리언의 숙소의 중앙 홀. 그곳에는 관리자가 있다. 갈색 머리의, 체크 패턴에, 주머니가 많이 달린, 특이한 옷을 입은 그녀. 그녀는 모든 것을 본다. 들어오는 사람을 본다. 나가는 사람을 본다. 언제 들어오는지 본다, 언제 나갔는지 본다. 그리고 그가 801위 커넥션 '제롬 발렌타인'임을 본다. 그를 배웅해준 보라 아가씨가 방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굴지 않으니 운이 좋다는 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다르지 않나. 손목을 돌리던 걸 멈춘 뒤, 브리엘은 왼쪽 손목을 오른손으로 몇번 문지르듯 주무르고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봤다. 자신에게 의사였냐고 묻는, 운이 좋은 삶을 살아왔다고 하는 남자를. 어쩌다가 이렇게 성가시고 귀찮은 상황까지 왔는지 생각하니 자신의 그 빌어먹을 의사로서의 소명이라는 것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행동한 덕택이다. 제기랄. 내가 잘못한거지.
"그럼 당신은 어떤 의미로 반했는데?"
연애적인 의미로 해석하기에는 시기상조였고 동시에 애초에 첫눈에 연애적인 의미로 반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누군가가 들으면 재수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얼굴만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편하기도 했다. 한때는. 시니컬한 생각들은 비관이 아니라 신경질적인 히스테리로 발전하기 마련이라서 시선을 내리뜨는 것으로 관두기로 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선천적으로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은 가라앉히기도 전에 치밀어오르기 마련이다.
굽이 낮은 구두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결코 경쾌하지 않았다. 브라이언이 다가오기도 전에 브리엘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장갑을 끼고 있는 오른손으로 브리엘은 그의 가슴팍을 툭 밀어내듯 건드렸다가 바짝 거리를 좁히더니 엄지와 검지만 사용해서 옷자락을 붙들어 끌어내렸을 것이다.
"당신, 웃기지도 않아. 제대로 판단하는 게 좋을거야. 피피. 화를 내야할 쪽이 정말로 당신이야?"
싫은 상대를 밀어내듯, 안아 들었던 꽃다발을 품에서 놓으려다 만다. 당신에게는 유감이지만. 아름다운 꽃들이 자신과 어울린다는 말에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도시 밖의 하늘을 연상케 하는, 푸르고 흰 이 꽃들이 정말 자신과 어울릴까. 아니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은 꽃말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더더욱 단호해진다. 숙명이라는 건 결국 자신의 선택이고, 자유로운 삶의 대가는 고독이다. 그 누구도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는 것들에서 자유롭기는 힘드니. 자유로움을 바랄수록 안으로 갇히고, 체념하게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랬다.
"마치 동물원 같은 곳이요?"
이어진 당신의 물음에 시안은 그리 묻는다. '그들만의 룰'이라는 울타리가 둘러진 세계에서, 욕망을 자유로이 발산하는. 야만적인 폭력과 공포가 만연한 공간. 기분 나쁜 감정에 빠져들던 시안은 동화를 읊는듯한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돌고래를 닮은 꽃. 그와 얽힌 이야기. 이야기가 끝나갈 즘. 델피리움을 바라보고 있던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들며 당신을 본다. 중얼거리듯 말한다.
"오르토프스는 죽기 전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러다 당신이 꽃다발을 안겨주면, 시안은 당황하며 두 꽃다발을 같이 안아든다. 이내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말한다.
"당신, 영업이 많이 서투른 거 알고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정말 서투른 건 아닌데. 웃으며 덧붙여 말하고, 카운터로 가자는 듯. 그 방향으로 고개를 슬쩍 기울인다.
싱글벙글 하던 이리스가 급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은 스텔라가 부상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평소의 싱글벙글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심각해진 얼굴을 한 체 성큼성큼 나아간 이리스는 거리의 분위기를 살핀다.
" ...소문은 진짜인 것 같은데.. "
얼굴을 익혀둔 스텔라의 조직원들이 지나가며 흘리는 이야기가 귀로 들어올수록 소문에 대한 진위가 더욱 진실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리스는 걸음에 좀 더 속도를 붙였다. 오늘은 정장을 입고 오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검정가죽자켓과 흰색탱크탑, 그리고 짧은 검정 가죽팬츠를 입은 이리스는 골목을 요리조리 움직여 스텔라의 저택으로 향했다.
" 언니...? 언니...! "
지난번에 주의를 들었던 것이 있었기에, 이리스는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누르며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마치 얼른 보지 못하먼 그텔라가 부셔져서 사라지기라도 할 것 처럼 다급한 모습이었다. 이리스의 얼굴에 근심과 초조함이 잔뜩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엘레나가 죄책감이 들락말락 할 때 즈음, 제롬은 자신의 팔을 가리키며 엘레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그것으로 엘레나의 너무 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은 싹 사라졌을지도. 이 환자는, 자신이 환자인지,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였다. 그러니까 수액까진 너무 과하지 않나 같은 말이나 꺼내지.
"그게... 모종의 사정이 있어서, 강해지는 것도 무리..."
제롬은 잠시 핑계를 대듯 중얼거리다가, 머리를 파바박 긁는다. "알아, 나도.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되는게 대체 뭐인지. 근데 나도 그것 때문에 미치겠어." 라며, 투덜거리기도 했을까.
이런 도시에서 전투에 천부적으로 재능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고도, 괴로운 사실이었다.
"난 너희 대표랑 커넥션을 맺은게 아니라서- 라기보단, 네가 설득 못 했다고 하면 나도 자신이 없거든."
어깨를 으쓱거리며 엘레나를 바라보는 제롬. 자신보다 병원 사정을 더 잘 아는 엘레나가 실패했다면, 자신도 별로 가능성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차라리 협상의 귀재가 온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엘레나의 말에 잠시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신이 아는 사람 몇명을 추천해주기로 한다. 마이클, 프랭클린이라는, 흔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 실력은 이 베르셰바에서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 내세울만한 실력은 아니겠지만 일손 보충이라는 면에서는 도움이 되겠지.
"그런데, 있잖아... 리스트도 제공해줬으니, 그에 대한 대가로 간단한 부탁 하나만 하고 가도 될까?"
리스트가 적힌 단말기를 건네주기 직전에, 그는 살짝 단말기를 까딱이며 줄 듯 말 듯 엘레나를 바라보았으려나.
더 쉬었다 가야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었으니까. 그럼에도 스텔라가 밤중에 몰래 그 개인 병원을 빠져나와 집으로 온 이유에는 그 곳에 더 있고싶지 않다는 이유와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적들은 그리 한가로운 사람들이 아니다. 조직의 보스가 오래도록 자리를 비우면 주변에서 피냄새를 맡은 들개들이 달려들기 마련이다. 일단 돌아오긴 했지만, 스텔라는 우선 요양중이었다. 말마따나 한 동안 격한 움직임은 할 수 없었으니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벨소리. 스텔라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는 크리스탈 잔이 들려있었고 그 안에는, 당연히 술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여기에는 조언을 좀 받아서 술에 아편을 조금 섞어두었다. 너무 아플때 마시면 고통이 사라지고 금새 견딜만해진다. 단점이라면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는데도 자꾸 찾게 된다는거.
" 누구야? "
문을 열고 나온 스텔라는 평소와 다름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도 늘 생기있고 실없는 소리나 해대는 스텔라였지만 오늘은 어딘가 생기가 많이 없어보이는 느낌. 지쳐보이는 스텔라는 이리스를 보자마자 미소를 띄웠다. 너라서 다행이야. 스텔라는 '들어와.' 하고 넉살좋게 말하며 안으로 들이고 문을 닫았다.
"그건 당신 해석 나름이지만.. 뭐, 당신을 더 알아가고 싶다는 의미의 '반했다'라고 하자."
애매하게 웃어버렸다. 애초에 그의 말은 빵 한 조각 값도 못 된다.
누군가 프로스페로의 일생을 책으로 엮는다면, 첫 문장은 아마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그는 같잖은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렇게 이어질테다.
그래서 그는 그에 걸맞는 삶을 살다가 죽었다.
광인도 되지 못한 이의 사고가 폭주한다. 당신은 당신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나같은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나. 하지만 당신은 나보다 더 질이 나쁘다. 나는 태어나길 곤충으로 태어났으나 당신은 햇볕 아래서 태어나 진창으로 기어들어와 놓고선 진창의 주민들을 성가시다 표현한다. 사랑하는 브리엘 씨, 사랑해 마지않는 브리엘 씨, 나는 당신에게 분노해야 합니까? 하지만 그건 13년 전에 자존심과 함께 동전 한 닢에 팔아버린 감정인걸요.
"난 화 안 냈어."
그러니 이 말에는 한 줌 거짓도 없다. 사내는 멱살 들린 채로 구릿빛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안광도, 감정도 없는 눈이다. 벌레의 겹눈과 유사한 것이 인간 눈구멍에 박혀 있다. 누군가는 이것에 생리적 혐오감을 느껴 침을 뱉었다.
"지금 화난 건 당신이지. 당신 감정을 나한테 투영하지 마."
멱살 굳이 떼어내지도 않았다. 그 행동에 감흥 없으니 그럴 필요성 못 느꼈다.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브리엘 씨. 지금 나만 당신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고 있잖아."
>>240 처음에는 스레가 좀 어지러울 수도 있으니 이해 안 가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페로사는 아마 정부요원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애들람을 적대하진 않을지도? 베르셰바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멀쩡하게 바텐더와 손님으로 만날 수도 있고. 애들람이 술은 좋아하던가?
문이 열리고 드러난 스텔라의 모습, 평소랑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그 모습들이 이리스의 눈에는 또렷이 보였다. 그 누구보다도 사람의 모습에 민감한 사람이 이리스였으니까. 사랑들을 늘 살피며 익히는 사람이 민감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언니...? "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넉살좋게 반기는 스텔라를 보며 이리스는 입을 연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망설임 없이 스텔라를 끌어안았다. 다쳤다는 것을 알기에 스텔라의 몸에는 무리가 가지 않게 살며시, 그러면서도 마치 놓쳤다간 스텔라가 부셔지기라도 할까봐 걱정스러운 듯 감싸안는다.
" 다쳤다며.. 아팠다며.. 근데 왜 나 안 불렀어.. 응? "
이리스는 올망거리는 눈으로 스텔라를 올려다보며 조금은 원말섞인 눈을 해보인다. 잃고 싶지 않아, 내가 지켜야해. 이리스의 눈에는 그런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정도 잠시, 스텔라의 몸상태가 염려된 이리스가 한숨을 푹 내쉰다.
스텔라는 실실 웃으며 술을 비워냈다. 쭉 마시고 나선 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듯 보였다.
" 다쳤지. 아팠지. 근데 누굴 부를 정도는 아니었어. 봐봐~ 멀쩡하잖아? "
스텔라는 여기 서있지말고 네 말대로, 들어가자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문을 닫고 걸어가는 동안 술 한 잔을 더 비운 것은 덤이었다. 진지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족으로서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정도도 느끼지 못할만큼의 바보는 아니었다. 스텔라는 슬며시 웃으며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버리고 떠났지만 스텔라는 자기가 만들어낸 이 가족의 결속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가족이기에 서로를 믿고, 가족이기에 서로를 챙긴다.
" 이리스. 우리는 가족이야, 그렇지? "
많은 것이 내포된 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스텔라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가족이니까 서로를 믿어야하고 가족이기에 서로를 챙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 가족의 말이 옳으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믿고 아끼고 사랑해야한다면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 사람의 말도 믿어야하는것이고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 사람을 용서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
" 가족이니까.. "
스텔라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선 기다랗고 넓직한 소파에 눕듯이 앉았다. 그리곤 하- 하고 길게 숨을 내쉬며 느리게 눈을 꿈뻑이곤 이 쪽에 누우라는듯 자기 가슴께를 톡톡 쳤다. 그 날 그 때, 잃어버린 자신의 오빠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텔라는 그 이를 증오한다. 증오하고 분노하고 그토록 싫어하는데 잃어버린 가족이기에 가족으로서 아끼고 믿고 사랑하고있다. 복잡하다.
합리적인 선택이네, 아슬란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슬란 또한 어떤 조직을 이끄는 위치에 있기에 이해 가능하다. 당신은 여하간 한 조직의 간부라는 직급에 있는 이다. 그런 자리에 있다면 작은 행동처럼 보이는 것이더라도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 조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어떤 정보는 숨기는 편이 나은 법이다. 입매의 미소가 느슨히 풀린다.
"그럼, 그 정도는 얼마든지."
선선한 대답이 흘러나온다. 습관적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던 아슬란은 곧이어 말을 잇는다.
"대가는- 지금 당장은 생각나는 것이 없는데, 후에 받는 것으로 해도 될까?"
더없이 나긋나긋하며 친절한 어투다. 마치 오래된 지인이나 친우에게 하듯, 이해관계 없이 친밀함만 존재하는 이와 안부인사를 건네듯. 자신이 잡은 것이 잘 휘두르기만 한다면 날카로운 흉기 될 수 있다는 사실 모를 리 없는 이다. 그럼에도 마치 그 무게 모르는 것처럼, 무기 될 수 있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처럼 당신을 대한다. 그가 말하는 것을 듣자면 당신에게도 어떠한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이리저리 조건을 걸며 뻗대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처럼 군다. 뉴 베르셰바에 썩 어울리는 태도는 아니다...분명하게도.
"그렇다면 받아들여, 자기."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낄낄대며 웃는다. 역시 이런 것을 보자면 마냥 성격 좋은 종자는 아니다.
"내 아이들도 처음에는 뭐라 하다 이제는 포기하고 살거든. 물론 갑과 을의 관계라 더 그런 것도 있겠다마는."
갑을관계에서 쓰긴 상당히 허물없는 호칭이다. 그 뿐이랴, 숨기지조차 않는 확고한 애정이 드러나는 지칭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인간성이 약점이 될 수 있는 진창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한다. 지나치게 튄다.
"슬프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네. 마음대로 해."
입 밖에 내는 내용과는 다르게 웃고 있다. 물론 모든 미소가 슬픔이라는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것은 그럴 테다. 뒤따른 말 역시 장난스럽다.
>>248 캡틴 피드백 보고 젤 먼저 본 시트였지... 오케 필요하다면 참고할게! 고마워!
>>249 다정해라 고마워 페로사주~ 오 그리고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애들람 다행이다. 성격이랑 포지션 덕에 약간 걱정이었는데 친구 사귈 수도 있겠네.(안심) 술은 주량이 되는 편은 아니라 자주 마시진 않는데 한번 마실 때 좀 과음하는 편! 페로사 바에 언제 한번 가야겠다. 설레버려~
>>250 사려깊구만 고마워 제롬주~ 속도는 며칠 놀다보면 적응되지 않을까 라고 기대중이야. 혹시 그럴 일 있으면 바로 말할게! 분위기 따뜻해서 걱정은 안하는 중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말에 대해서는 거절할게. 일방적으로 알아가고 싶다고 반했다는 단어를 쓰는 남자는 최악이라고 생각하니까."
애매한 웃음에도 예의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목소리와 무감하고 건조한 표정으로 브리엘은 읊조리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니, 최악이라는 단어는 그가 아니라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였지. 이제껏 만나오고 부딪혀온 사람들의 목록에서 이런 타입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밖에서 교양으로 심리학이라도 배웠어야했나 하고 생각했다. 눈썹 한쪽을 치켜올렸다가 내리는 게 브리엘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감정 표현이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는 화를 내지 않고 있다. 곤충과 닮은 눈동자를 잠시 바라보던 브리엘은 그의 옷자락에서 손을 떼어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도 이정도까지는 아닐텐데. 닳고 닳아버린 인간성과 남아있던 의사로서 무언가가 건드려지는 순간, 그것은 이 도시로 들어와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로 변질되어 있었다. 브리엘은 손바닥 전체로 얼굴을 싸쥐듯이 감싸면서 그의 앞에서 한발자국 물러났다가 상체를 틀면서 자신의 입가를 덮기에 이르렀다. 변덕스럽게도 그의 말대로 투영했던 신경질적인 분노가 깨끗하게 없어지고 남은 건 무기력에 가까운 것들이 켜켜히 쌓인 잿더미 뿐이다. 브리엘은 어느새 다가온 브라이언이 그의 멱살을 쥐려는 것을 입가를 덮지 않은 손으로 막아냈다.
"질문. - 왜 안나가냐는 질문으로 기억하는데. 맞아?"
한뼘 위에서 브라이언이 숨을 가다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내리면서 브리엘은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봤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방을 향해 걸어가던 스텔라의 말에 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스텔라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리스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스텔라를 위해서라면 평소처럼 웃어보여야 할텐데, 오히려 위태로워 보이는 스텔라를 보면 볼수록 웃음을 떠올릴 수 없었다.
" 가족이라서... "
술에 아편까지 타서 마실 정도가 되어서도 억지로 웃어보여야 하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하다고 묻고 싶었다. 술에서 흘러나오는 향에 뒤섞인 불쾌한 향, 평소 같았으면 향긋하다고 자신도 한잔 달라고 했을 그 술에 섞인 불순물을 이리스의 코는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옆을 나란히 걷는 스켈라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저 표정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걸까. 왜 나는 이럴 때 마저 온전히 알지 못하는 걸까. 이토록 자신은 망가지고 무쓸모인 존재일까.
" .. 무슨 일인건데.. 언니가 말해주지 않으면 난 몰라. "
이리스는 방에 들어선 스텔라가 쇼파에 몸을 뉘이곤 자신을 바라보자 차분히 물음을 던진다. 걸음은 천천히 스텔라에게로 향해 거치적거린다는 듯 가죽자켓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곤 스텔라의 품으로 파고들어 안겼다. 어리광을 피듯 가슴팍과 목덜미에 살며시 부빈 이리스가 고개를 살짝 들어선 눈을 마주했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까? 이미 답은 나왔지만 미카엘은 그저 부스스 웃으며 답했다. "알면서." 시트러스 향이 났다. 레몬 향일까, 어쩌면 데킬라 향일지도. 불안함은 잊고자 해도 찾아오곤 한다. 고장 난 사람이 과연 정상적인 행복을 영위할 수 있을까? 일상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 당신은 불안감에 막혀 제대로 나오지 않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줬다. 당장의 불안함을 상쇄시키듯 나지막이 돌아오는 답에 입술을 작게 다물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누군가를 믿는 건 아주 무서운 일이다. 소중한 걸 얻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내가 이런 행복을 얻고 살아도 되는 걸까? 머뭇거리며 두려움에 젖었다. 그야 미카엘은 큰 죄를 가졌고, 아직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영영 헤맬 거라 생각했는데. 손등을 부드럽게 덮는 온기에 옅은 눈동자가 물기에 젖었던 건 아마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이 온기에 기댄다면 당장의 불안함을 상쇄시키는 것을 넘어서 앞으로의 불안도 상쇄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죄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의 절망도, 지금의 고통도. 어쩌면 과거에 겪었기 때문에 꽁꽁 빗장을 걸어 잠근, 아직도 그 틈새를 열어보면 큰 못이 이곳저곳 박혀 피가 흐르는 마음도. 그래서 욕심을 내고 싶었다. 살아오며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행복을 가져보고 싶었다. 불신은 이골이 나고 절망은 치가 떨린다. 이렇게 커다란 암사자가 있는데, 앞길을 함께해 줄 사람이 있는데.. 내겐 아직도 과분하지만, 나는 이제 망설이고 싶지 않아. 내 곁에 함께 있어주면 좋겠고, 나는 더 이상 아이로 남고 싶지 않아.
커다란 엄지가 눈가를 쓸었다. 후드득 쏟아지던 투명한 눈물이 번져나갔다.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눈을 깜빡, 하고 감았다 떴다.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있잖아, 나는 정말 무서웠어. 내가 실수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지금도 쫓기고 있으니까. 이 지옥에서 선택하기엔 너무 가혹한 일 투성이니까. 그런데 너마저 이렇게 말해주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나의 죄는 그것뿐이구나. 어쩌면 동화에서나 보았던 구원이라는 단어가 이걸 지도 모르겠다. 미카엘은 천천히 손을 떼었다. 그리고 뺨 위에 양손을 얹어주려 했고, 이내 천천히 고개를 기울여 이마를 맞대려 했다. 눈을 천천히 감고 나직이 속삭였다.
"페로사,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해 줘. 네가 내 곁에 있다는 걸 표현해 줘.. 나는- 미카엘 로즈버드 윈터본이야. 너의 천사, 꽃망울, 그리고 겨울이 되어줄게. 내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할게. 봄을 그리워 앓던 가을이 지나서 겨울이 온다고 해도, 내가 곁에 있어줄게. 그러니까."
겨울 색 눈동자를 천천히 뜨며, 당신을 마주하고. 눈물에 얼룩졌지만 천사처럼 환히 미소지었다. 어쩌면 나는 천사일지도 모르지만, 셰바의 천사니까 샛별*일지도 모르지.
1. 『이제 만족해?』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넘긴 아슬란은 품에서 지포 라이터 하나를 꺼내든다. 탁상 위 담배갑 쥐곤 남은 것 중 하나 입으로 문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짓으로 두어번 불을 켜려다 실패한다. 그 다음에서야 불이 켜지자 담배 끄트머리에 라이터를 갖다대었다. 일련의 동작이 퍽 신경질적이다.
당신과 시선 한 번 마주치지도 않고 입에 머금은 연기 뱉어낸다. 힘없는 웃음소리 바닥으로 처박힌다.
"그래서, 이제는 만족하니, 아가?"
2. 『정말 짜증나』 "아-아, 정말 짜증나게들 구시네. 내가 자기, 자기, 하고 불러주니까 진짜 뭐라도 된 줄 아셨어요?" "뭐해, 시선 안 까니? 아니면 눈깔부터 파달라는 신호인데 내가 눈치없게 구는 건가? 그렇데 원하신다면야 해주지 않을 이유도 없지..."
3. 『자유를 원해』 "...나에게 모든 걸 끝낼 자격이나 있을까?" 당신만의 개성을 듬뿍 담아서 표현해주세요! #shindanmaker #당신의_대사 https://kr.shindanmaker.com/893740
할 말이 많았지만, 환자 상대로 열을 올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서 간략하게 말하며 수액을 가리켰다. 이게 바로 당신이 바란 진통제라고 알려주듯이. 약이나 주사의 형태로 주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래야 함부로 움직일 생각 못하겠다 싶었지.
"그러면⋯."
그러면 해결책이 있나. 하는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도로 들어갔다. 곰곰이 생각하던 엘레나는 또 다른 대안책을 던져보기로 했다.
"호신용품이라도 들고 다니시던지요. 총 말고 가까이에서 쓸 수 있는 거요."
그의 사격 실력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 언젠가 도움받기로 한 적도 있었고. 하나 그 뛰어난 실력조차 근거리에서라면 의미가 있을지. 오늘만 해도 자상을 입고 오지 않았는가. 그러한 사고과정을 거쳐 나온 대안책이었다. 도움이 될지는 미묘하다만.
"유감이네요. 그럼 대신 설득할 사람이라도 소개해줄래요."
말하고는 곧바로 "농담이에요." 덧붙였다. 어차피 누가 오든 그녀를 설득하지 못하리란 건 가까이에서 보고 자란 제가 가장 잘 알았다. 가능성 없는 일에 매달릴 바에야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은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게 낫다. 단말기를 향해 뻗어진 손이 허공을 잡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엘레나의 시선이 단말기에서 손으로, 손에서 얼굴로 향했다.
"들어보고 판단하죠."
평범하게 흘러가던 대화가 순간 거래로 변모했다. 엘레나는 빈손을 거두어 팔짱을 꼈다. 어디 당신이 바라는 게 무엇인가 보자.
" 왜 다쳤냐니~ 이런게 일상이잖아~ 기억안나? 너랑 나랑 처음 만난 날. 그 날은 네가 이 꼴이었어. "
아니, 이보다 심했지. 스텔라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고개를 부비는 이리스를 꼭 끌어안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가족이라면 원래 이런것이다.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편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무언가 믿을 수 있는 따뜻함. 스텔라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이리스를 보며 왜? 하고 고개를 갸웃하곤 또 그냥 웃어보였다.
" 개인적인 일이야. "
그렇게 일축했다. 별로 좋은 일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말할만한 일도 아니다.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부정적인 기운을 뿜어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가족에게라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스텔라는 가만히 이리스를 바라보다가 조금 더 곡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쉬었다.
브리엘은 아슬란의 선선한 대답보다, 그녀가 보여주는 태도를 주의깊게 살폈다. 이해관계가 없는 친우에게 하는 것 같은 태도.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 차라리 가지고 있는 것들을 무기로 사용하고 겁박하고 압박할 줄 아는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다. 친절함을 가장하다가 내리꽂히는 것들이 끔찍하게 고통스럽다는 것도. 주의깊게 살피듯 아슬란을 비스듬한 시선으로 살피던 브리엘의 구리색 눈동자가 나른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이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밖에서 묻히고 들어온 것들의 흔적을 이 사람은 가지고 있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허들이 너무 높아서 거절할게. 이름만 부른다면 모를까."
속이 복잡하다. 방금까지는 뒤틀릴 것 같았는데 지금은 거북함이 느껴졌다. 모순이라고 함부로 지적할 수도 없는 태도라서 더더욱 그랬다.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브리엘은 몸을 잠깐 움직이며 양 무릎을 올리고 끌어당겨 안았다. 인간성이 약점이 되는 이 도시에서,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정신은 멀쩡하지만 머리가 좀 아파서 아스피린 좀 받을 수 있을까? 안정을 더 취하지 않아도 되면 슬슬 돌아가고 싶은데."
아슬란의 말에 대꾸하면서 브리엘은 자신의 팔에 꽂혀 있는 링거 주사를 눈짓으로 가리켜보였다. 자신도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이질적인 사람을 볼 줄 몰랐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었다.
"물론 로테 너와 같이 신나게 날뛰던 옛날이 나도 그리울 때가 있긴 한데, 그건 그거고 내 바에 들어온 손님은 아무도 손 못 대." 페로사는 웃는 얼굴 그대로 눈썹 한 쪽을 들어보이며 바의 위쪽에 내걸린 현판을 손가락질로 가리켜보였다. 기본적인 매너를 지킬 것. 앤빌에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히지 말 것. 앤빌의 손님을 악의적으로 공격하지 말 것. 3가지의 룰이 쓰여있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술에 취해 주먹다짐을 시작한 주정뱅이들이 있어도, 페로사는 한꺼번에 그 주정뱅이들의 멱살을 잡아서는 바 밖에서 싸우고 들어오라고 그들을 한꺼번에 바 밖으로 내던져버리곤 했다. 페로사는 앤빌 안의 소란을 진압하거나 내쫓는 것을 자기 소임으로 여기고 있었고, 덕분에 적어도 앤빌 안에서는 어떤 소란이 있어도 곧 잦아들 것이라 기대할 수 있었다.
"응? 한 곡? 뭘 부를 건데? 포상이라니 기쁘다만." 설탕을 담은 잔에 라임을 던져넣고 머들러로 으깨던 페로사는 아스타로테가 별안간 건넨 제안에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페로사는 고개를 들어 앤빌을 바라보았다. 저녁 시간대였고, 앤빌에는 다른 손님들도 꽤 있었다. 아스타로테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자 한다면 페로사에게만 들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반주는 주크박스로 넣으면 될 테고-" 페로사는 웃어보였다. "말리지는 않겠다만. 먼 길을 와서 방금 바에 앉았는데 목이라도 축이고 부르라구."
그리고 페로사의 손이 움직이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랙 한쪽에 생뚱맞게 놓여있는 화분에서 애플민트 잎을 톡톡 뜯어서는 손바닥으로 가볍게 팡 내리쳐서 잎맥을 터뜨린 뒤 잔 안에 던져넣는다. 아, 페로사가 아스타로테에게 대접해주려는 것은 모히또인 모양이다. 그러나 보통으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히또다. 잘게 부순 얼음을 잔에 반만 채운 뒤, 탄산수를 채운다. 라임즙 위로 탄산수를 붓고는 젓는다. 잔에 럼은 아직 넣지 않았다. 그러나 잔을 반쯤 채운 그 위로 처음 보는 낯선 것이 등장했다. 얼음은 얼음인데, 그녀의 눈동자만큼이나 선명하고 청량감있는 푸른색을 띈 얼음인 것이다. 그 잘게 부순 얼음을 위에 붓고 나서, 페로사는 조그만 병을 하나 꺼낸다. 그 안에는 꽃봉오리로 보이는 무언가가 동동 떠 있는, 잉크를 연상케 하는 짙푸른 액체가 담겨 있었다. 잔 위에 스트레이너를 얹고, 페로사는 잔 위에 그 푸르른 액체를 따랐다. 그제서야 알싸한 럼의 향기가 그윽한 꽃향기와 함께 잔 주변으로 퍼져나왔다.
그리고 잔에 떨어진 그 짙푸른 액체는 잔에 담겨있던 액체와 섞이면서, 극적인 색깔 변화를 일으켰다. 푸른 럼과 미리 만들어놓은 라임에이드가 섞이면서, 럼에 물들어있던 푸른 색이 보라색으로 그라데이션을 그리며 낯선 하늘을 잔 안에 한가득 그려낸 것이다. 페로사는 아스타로테 앞에 코스터를 하나 깔아주고는 그 위에 특이한 색의 모히또가 담긴 글라스를 올려주었다.
"자. 나비꽃 차를 인퓨즈한 모히또.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한 잔 적시고 나서 부르자구."
그것은 단지 품질 좋은 모히또일 뿐만 아니라, 페로사가 항상 이야기하는 행복의 한 방식을 담은 잔이기도 했다. 시큼쌉쌀한 라임의 맛과 향이 럼의 향과 설탕맛, 민트의 알싸한 기운과 어우러지는 흔히 아는 모히또 맛이면서도, 낯설고 이국적인 꽃향기가 익숙한 4중주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아름다운 화음을 그린다.
아스타로테가 첫번째 잔을 음미하는 동안, 페로사는 바에서 나와 무대장치에 전원을 넣고 조명을 킨 뒤 주크박스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아스타로테의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뭔가 재밌는 일을 즐기는 데에는 페로사 자신도 꽤 자신있었지만, 자신에게 행복을 쫓는 법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아스타로테 아니던가. 마음에 드는 일이 있으면 행동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눈썹 아래로 내리며 부러 불쌍한 표정 지어보였다. 사실 그에게 있어선 저 여자가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 것만 해도 퍽 괜찮은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저 여자가 포식자 위치에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평생토록 피식자를 자처했으니 익숙한 일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런' 걸 시작하게 된 이유까지 물었지."
'이렇다' 라는 말은 상당히 함축적이다. 프로스페로는 이미 브리엘이 외부에서 온 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그러니 얼버무리는 편이 더 낫다. 입가 가린 손에 시선을 두었다. 우리, 같은 버릇이 있네? 가슴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이죽이며 낄낄댔다. 어쩌면 프로스페로는 브리엘과 자신의 유사점을 쥐어짜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둘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당신이 나와 같아졌으면 한다. 종국엔 인간성을 아주 값싼 가격에 팔아버릴 날을 고대하게 되어버린다.
브리엘은 그가 지어보이는 불쌍한 표정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시니컬한 태도로 대답을 읊조려보였다. 사교성은 없지만 사회성이 있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 이유는 그가 했던 말과는 다르게, 지금 이 자리가 공적인 자리의 연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을 시작하게 된 이유. 브리엘은 브라이언이 참지 못하고 다가온 이유를 몇가지라도 들 수 있었지만 브라이언을 말렸다. 자신에 의해 잠깐동안 가로 막힌 채로 숨을 가다듬던 브라이언은 브리엘이 팔짱을 낀 채 정강이 근처를 구두굽으로 툭 건드리자 그제서야 다시 본인이 있어야할 자리로 되돌아갔다. 여기에서 나가지 않는 이유와 이런 것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브리엘은 어깨를 가볍게 움직여보였다.
"나가지 않는 이유는 당신도 알다시피 나가기가 쉽지 않으니까. 이런 것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글쎄. 이게 가장 나아보였으니까."
이정도의 대답이면 됐어? 라고 되묻지 않은 채 브리엘의 대답은 썩 차분했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순순히 대답하는 꼴이 방금전에 보여주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고 브리엘은 그의 어린애같은 웃음을 마주하다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흘렸다.
그 모든 불안과, 자책과, 자기혐오와 의심을 딛고, 천사는 한 발짝 한 발짝 붉은 하늘을 걸어내려와 낮은 곳에 발을 디뎠다. 그 곳에는 그녀가 천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깊이 숨을 들이쉬면 냄새가 난다. 머리카락에서 나는 시트러스 냄새. 손끝에서 나는 이런저런 술 냄새와 비누 냄새. 얼굴에 바르는 로션 냄새. 입술에서 나는 립밤 냄새와... 그녀가 좋아하는 데킬라 냄새. 그녀의 냄새. 페로사의 냄새. 지금 이 순간, 미카엘의 것이 되기로 한 이 여인이 이 곳에 실존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그 모든 것들이 체온과 같은 온도를 띄고 미카엘에게 선명했다. 벗어나지 못할 원죄. 뉴 베르셰바의 심연을 운명으로 선고받은 이들의 죄.
죄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헤매는 건, 페로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아직 헤매는 게 익숙하지 않은 미카엘에게 페로사는 손을 내밀어주기로 했다. 자신은 어떻게 헤매어야 할지 안다. 절망을 같이 견뎌줄 줄 알고, 고통을 싸매어줄 줄도 안다. 대못이 뽑혀나간 자리에 자신의 마음을 잘라 채워넣을 줄도 안다. 이 순간을 위해, 미카엘은 자신의 발목을 붙드는 그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페로사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페로사 역시도 안다. 행복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행복의 상실이라는 고통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미카엘이 고민에 빠지면 페로사 자신도 안절부절못하게 될 테고, 미카엘이 수심에 빠지면 그것은 그녀의 근심이 될 것이다. 때로는 오히려 미카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어 무력감에 울부짖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홀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손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공허함보다 더 생동감있을 것임을 알기에. 기약없는 희망을 바라보며 지갑에 품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힘있을 것음을 알기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줄 것을 믿기에. 고통만큼의 행복이 존재한다는 증거임을 믿기에. 살아오면서 줄곧 잃기만 해왔으니, 이런 마음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는가.
페로사는 미카엘에게 자신의 강철 흉골을 열어주기로 했다.
"오늘 밤뿐이야?" 네가 외로워한 게 오늘 밤뿐이야? 네가 나를 바라는 게 오늘 밤뿐이야? 하나의 질문이 둘의 뜻을 품고 미카엘에게 내밀어져왔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하나의 질문에는, 대답 역시 하나로 충분할 테니까.
"그래. 혼자서 외로워하는 것보단, 둘이서 외로워하는 게 낫지. 적어도, 외롭다고 말할 상대가 있으니까." "얼마든지, 얼마든지 질릴 때까지 외롭다고 말해. 다 들어줄게." "이제, 나는 네 거니까. 네가 내 것이듯이." "내 새벽별아."
페로사는 미카엘에게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해주듯이-어쩌면 그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마음껏 입맞춤을 남겼다.
"그래서,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낼래- 아니면 어디서 보낼까? 몰래 다른 바에를 가버릴까? 아니면, 레이스 호텔에 나를 초대해줄래. 레이스 호텔보다는 조촐하지만 내 오피스텔에서 보낼까. 아니면, 우리가 알던 세상은 뒤로 해놓고 어디로든 떠나버릴까."
설마 이것까지 다 계산이 된 건가. 제롬은 수액을 가리키는 엘레나를 무섭다는 눈치로 쳐다보았다. 이것까지 계산하다니... 무서운 아이...! 사실, 절대안정이라며 전신구속을 안 하는게 어딘가 싶었지만 말이다. 자신이 이전에 경험했던 곳은 중상이면 무조건 환자를 수술 후에 전신구속을 시키기도 했으니까. 한번 가고선 다시는 안 갔다.
"총 말고라면 딱히 떠오르는게 없는데... 나이프는 이미 있으니... 추천 받아볼게?"
근거리 대응책이라면 나이프가 있긴 했다. 무라사키가 추천해준 나이프가. 물론 근거리 전투에 대한 재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그였기에 나이프는 들고는 다녀도 쓰기는 애매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엘레나의 비상한 머리라면 혹시라도 좋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그였다.
"설득할 사람? 내 앞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뭐하러."
농담이에요. 라며 덧붙이는 것에 답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농담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그에게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엘레나의 말에 그는 잠시 고민하듯 손가락으로 침대의 손잡이 부분을 톡 톡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한번만. 한번만 내가 부르면, 와줄 수 있어? 이동책은 내가 마련해줄테니까, 단 한번."
그는 손가락을 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은 어쩌면 터무니없을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병원을 벗어나 와달라니. 딱 한번이라고는 해도, 그 단 한번에 다른 사람들을 모두 놔두고 와달라는 거였다.
A-13 구역을 지배하는 조직인 용궁. 그 조직의 수장인 용왕이 기거하는 곳이자 주 수입원은 카지노를 표방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은 드높고 웅장하며, 조명은 화려하다. 위 층에서 아래를 구경할 수 있는 난간이 있고, 그 외에도 개인적인 게임이나 당구를 위한 룸, 담배를 물고 칩을 밀어놓는 딜러, 그리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혀 암울하지 않고 파티장을 방불케 한다. 1층부터 시작해 모든 층을 아울러 올라가고 왕래할 수 있는 높고 넓은 계단은 여전히 다른 사람이 쓸 수 없도록 군데군데 경호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그 끝은 통칭 옥좌와 알현실로 통할 수 있는 웅장한 문이 있다. 그러나 오늘 용왕은 알현실에 있지 않다. 화려한 조명과 대비되게 오로지 암울한 등색 조명만 의지하고 있는 플레이룸의 소파에 앉아, 마주 앉은 남성에게 비싼 양주를 잔에 가득 담아줄 뿐이었다. 용왕은 천천히 입을 뗐다.
"자, 마셔. 그래서- 용건은?" "난 분명 혈전을 신청한다 했을 텐데, 네 졸개는 왜 알현실이 아닌 여기로 안내했지?" "그야 내가 여기서 쉬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피라미 놀아주는 것에 과연 알현이 필요할까. 대화나 하다 가지." "지금 장난해? 이 구역을 지배한다길래 얼마나 대단한 녀석일까 했는데, 지금 꼬리 내리고 피하는 건가?" "자기. 혀가 기네."
용왕은 소맷단에서 무언가를 주섬거리다 꺼냈다. 어둠 속의 윤곽으로 은빛 선득 한 리볼버의 총신이 보였다. 마주 앉은 남성은 본능적으로 주머니를 더듬었다. 공교롭게도 카지노의 입장 규칙 때문에 무기를 빼앗겼으니, 걸쭉한 욕설을 뱉을 뿐이었다.
"졸렬한 새끼. 다른 혈전 신청자도 이렇게 죽였나?" "아니. 그때는 내 형제들의 무기를 쥐는 영광을 누리게 했지. 너무 두려워 말아."
탁, 소리와 함께 총알이 손바닥 위로 우수수 쏟아진다. 그리고 다시금 장전한다. 펼쳐 보여주는 손바닥에는 총알이 다섯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용왕이 금빛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제안했다.
"게임 한 판 하지.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당신이 이 용궁을 가지고, 당신이 죽으면 혈전에서 패배한 결과나 마찬가지니." "미쳤나?" "셰바에선 흔한 일이지. 내가 오늘은 조카 때문에 사람 안 죽이고 넘어가려 했는데, 계속 죽겠다 달려드니 천운에 맡겨야 하지 않겠어." "그래,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지." "그럼 나 먼저."
용왕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남성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피는 튀지 않았다. "자, 이제 당신 차례." 하고 총을 겨누자 남성은 미심쩍은 눈으로 용왕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고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쐈다. 살아남았다. 남은 기회는 4번뿐이었다. 용왕은 총을 다시금 건네받았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왜 웃지?" "흥분돼서." "뭐?" "되묻지 마. 멍청한 새끼에게도 흥분하는 타입이라 길게 말 안 한단 말이야."
이번엔 관자놀이가 아니었다. 총구를 정면으로 바라보게끔 겨눈 용왕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다시금 비어있었고, 남성은 슬슬 초조해졌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남은 기회는 3번. 이번에도 넘어간다면 자신이 죽거나, 용왕이 죽는다. 남성은 긴장해 핏줄이 돋은 손으로 총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뜸을 들이다 방아쇠를 당겼다. 확률의 신이 승리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제 누가 죽느냐의 싸움이다. 남성은 총을 건네주려 했으나, 긴장된 손은 총을 쉽게 놓지 못했다. 용왕이 핏줄 돋힌 손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어지간히 두려운가 봐. 이 정도는 각오하고 왔을 줄 알았는데.. 꼬리 내리고 피하지 말라 한 건 당신이었잖아?" ".. 한 가지 질문해도 되나?" "얼마든지." "지금까지 이 게임을 얼마나 해왔지?" "열 번은 넘었지." "전부 살아남았고?" "물론이지. 내가 기회도 안 주고 여섯 발 다 겨눠서 쐈거든. 자기는 운이 좋은 거야." "잠깐, 지금 뭐하자는 거지?" "말했잖아, 흥분했다고. 그러니까 네가 쏴 봐."
용왕이 소파 중간의 테이블에 무릎을 대며 불쑥 넘어온다. 그리곤 총신을 손으로 덥석 붙잡고 눈을 홉떴다. 고 양감에 취한 금빛 눈동자가 눈부시게 일렁였고, 등색 조명에 비친 뺨은 붉다. 이내 총신을 입에 물자 남성은 팔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거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용왕은 앞으로 쏟아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손을 들어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해 보이자 남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쐈는데 발사된다면 어쩌지? 두렵지도 않나? 이게 애당초 정상적인 상황인가? 발사된다면 끔찍하겠지만 발사되지 않으면 더 끔찍하리.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 남성은 심호흡을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장이 곤두박질 쳤다. 절망어린 시선을 올려다보던 용왕이 눈웃음을 치고는 총신을 입에서 뺐다. 고양감에 격취된 웃음소리가 룸을 가득 채웠다.
"아. 내가 이겼네.. 어쩜 좋아." "……이, 이럴.. 리가…." "아까 뭐라고 했지?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지..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자기, 피하지 말아. 선고한다. 혈전은 용왕의 승리, 그러니 목숨을 받아 가도록 하지." "자, 잠깐.." "잠깐이 어디 있어, 자기가 먼저 시작한 일이잖아."
용왕은 절망 어린 시선을 만끽하며 소맷단에서 비수를 꺼냈다. 은빛 선득하게 빛나는 날을 보자 남성은 총을 겨눴지만, 용왕이 비수를 휘둘렀다. 일격에 피가 튀고 누군가 숨을 쉬지 못하는지 끅끅대며 바람이 빠지는 기괴한 소리를 뒤로 용왕이 손을 내렸다. 소맷단에 숨겨둔 마지막 여섯 번째 탄환이 바닥을 굴러떨어졌다. 피가 튄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용왕이 혀를 찼다.
"자기야, 죽은 김에 말할게. 내가 거짓말한 게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이 총알이고, 다른 하나는 내 오늘은 조카 때문에 피를 안 묻히려 했다고 말한 거야. 내 귀여운 조카가 글쎄, 지금 꼬까옷 사서 입혀줬더니 좋다고 바에 갔다지 뭐야? 애가 성인이니 뭘 하든 상관은 없지만 그 바텐더가 감히 우리 사랑스러운 조카한테 반하기라도 하면 어째. 그러다 정분이라도 나면?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지는 꼴 내가 오른쪽 안구에 왼쪽 안구가 쑤셔 박혀도 못 본다. 그것 때문에 심기가 굉장히 불편했는데, 덕분에 잘 놀았어."
시체는 답이 없었다.
"형제, 왕 형제!" "부르셨습니까?" "이거 대충 카지노 입구에 걸어둬. 오늘 혈전의 결과임을 공표하고, 난 다시 쉬러 갈 테니 청소는 대충 아무나 불러서 시켜." "어느 정도 걸어두면 됩니까?" "내 조카가 그 앤빌인지 뭔지 하는 곳 안 다닐 때까지."
>>357 왈라비는 르메인 배틀리언 숙소의 관리자 상냥하고 넉살좋고 산뜻한 성격이라 배틀리언 내에서 인기가 좋다 엄청 주머니 많은 옷을 입고 있는데 여기서 열쇠를 비롯한 상상하지도 못한 물건들이 계속 나온다 본래는 르메인 HQ 소속의 사람 전투 스타일은 닌자 모노크롬의 체크패턴 옷으로 투명하게 되어 카메라를 속인다 (png)
가볍게 중얼거리고 페로사가 가리킨 곳으로 여인의 시선이 향했다. 바의 위쪽, 고개만 조금 올리면 누구나 볼 수 있게 걸어놓은 현판은 여인이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부터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내용이 지켜지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싸움이나 소란이 날라 치면 페로사의 거침없는 중재가 바로 대응했었으니. 그 장면을 보며 한모금 마시는 것도 참 좋지만. 여인 역시 이 평온함을 좀더 선호했다. 지금만큼은.
"음. 물론 그래야지. 롯시의 한잔이 없으면 내 가창력도 평소의 반의 반도 안 나올테니까."
주문을 해놓고 홀랑 자리를 비우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여인은 처음부터 첫 잔을 마신 후에 무대에 오르던가 할 참이었다. 그래서 한 팔을 테이블에 올려 팔꿈치를 괴고 그 손에 살짝 턱을 괴고서 얌전히 페로사가 칵테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민트잎을 손바닥으로 내리칠 땐 제가 맞기라도 한 듯 어깨를 움찔하며 키득거리고. 새로운 색채의 얼음을 보자 아이처럼 눈이 동그래졌다. 시선은 얼음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또다른 새로운 것, 짙푸른 액체의 등장에 새로이 관심을 드러냈다. 얼음과 액체가 섞여 자아내는 색의 향연을 눈도 깜빡 안 하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리 데굴. 저리 데굴. 열심히 굴러다니던 두 눈은 이윽고 제 앞에 놓여지는 잔으로 이어졌다.
"아핫. 이거 진짜 모히또 맞아? 내가 그동안 마셨던 모히또는 다 가짜였나 봐!"
일반적으로 알려진 라임과 민트의 초록빛 모히또와는 전혀 다른 색감과 비주얼이 여인의 관심을 통째로 사로잡았다. 은은히 올라오는 꽃향기 또한 마음에 들었다. 조심히 푸른 보랏빛 가득한 하이볼 잔을 살짝 들어 조명을 비추어보자 더더욱 마음에 드는지 환한 미소가 만면에 한가득 떠올랐다. 감상이 끝나자 다시 조심히 내려 잔의 가장자리에 입술을 대었다.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향과 함께 천천히 목으로 흘려보내자 색감이 맛과 향이 되어 몸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첫 잔인데 이렇게 맛있어서야. 다음 잔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하며 무대를 준비하는 페로사를 보았다.
칵테일을 만드는 손길도, 주크박스를 세팅하는 모습도. 여인이 처음 봤던 그 때와는 참 달랐다. 흰 정장에 가면과 건틀렛을 낀 페로사는 지금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친분은 그 시절부터 시작이었지만. 여인의 기억 속 모습과 겹쳐보면 어쩐지 많이 달랐다. 세피아 필터를 끼운 듯이. 분명 지금이 미래이고 현재일텐데.
여인은 페로사가 세팅을 마치고 바로 돌아올 때까지 스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제법 요염하게 자세를 잡고 앉아서 점점 보랏빛이 짙어지는 모히또를 마시고 말린 무화과를 입에 물다가 돌아오는 페로사를 보고 싱긋 눈웃음을 지었을 터였다. 그리고 가차없이 무화과를 반토막내어 오물오물 씹어먹고 약간 줄어든 잔을 흔들었을 것이다. 찰그랑. 맑은 소리 나게끔.
"이거 다 마시면 부를 거니까 천천히 해도 됐는데. 그렇게 내 노래가 듣고 싶었던 거야?"
스텔라는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리곤 다시 술을 한 모금. 약에 의존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 쯤은 알고있다. 그래도 지금은 필요하다. 술에 약을 타서 준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아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면 마시라고, 그럼 아픈게 가실거고 조금 견딜만해질것이라고. 스텔라는 그 말을 다시 떠올렸다. 자신을 생각해서 해준 말이었겠지. 가족이니까. 그리곤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한 차례 갸웃했다.
" 별 볼일 없다라 - "
별 볼일 없다. 스텔라는 한 번 더 그 말을 되내이곤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꼭 안고있었다.
" 호라이즌 블라인더스, 내 가족이 몇 명이나 있는지 알아? "
스텔라는 미소를 지었다.
" 나도 몰라. 몇 명인지. 뭐, 엄청 많은 것 정도는 알 수 있지. 몇 명인지는 모르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은 다 알고있어. 이름, 나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전부 알고있어. "
스텔라는 '가족이니까' 하고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요점은 그것이었다. 가족이 가족으로 남아있는 데에는 필요성이라던가, 이유나 효율따위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기에 서로의 오점은 덮어준다. 혼자 안고 갈 수 있는 것이라면 남들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지 않게 혼자서 안고간다. 그것은 가족이기에, 그리고 그 이전에 호라이즌 블라인더스 라는 사업체의 사장이기 때문이다. 스텔라는 조금 더 가까이 올라오라는듯 이리스의 허리를 톡톡 치곤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 필요하지않아. 왜냐면 가족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니까. 필요에 의해서 묶어두었다면 그건 가족이 아니야. "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잔을 비워낸 스텔라는 아슬아슬하게 손에 들고 있던 잔을 툭 하고 바닥에 떨어트렸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으나 빙글빙글 돌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잔은 이내 소리가 잦아들었다.
" 필요하니까 곁에 두는게 아니야. 그 이전에, 가족이니까 같이 있고 싶은거지. 이해하니? "
미처 몰랐다는 듯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일부러 수액을 가져온 주제에 지나치게 뻔뻔한 작태였다. 어차피 그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얌전히 수액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거리를 벌리려면 긴 게 좋지 않을까요. 삼단봉 같은 건 어때요?"
무게가 약간 나간다는 게 흠이지만, 접을 수 있으니 휴대하기 편하고 나이프에 비하면 상대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근접전에 자신이 없다면 최대한 가까이 붙지 않는 편이 좋을 테니까.
"정작 그 사람이 매주 설득에 실패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용기가 생기네요. 까짓것 한 번 더 해보죠."
남 이야기하듯 푸념을 늘어놓고는 그의 요구를 들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진 않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병원을 하루 비운다면 그만큼 돈이나 단골을 잃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차피 제가 대표도 아니고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정도로 해고당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으니까. 그런데도 망설이는 건 그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셰바에서 신뢰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오늘 친근하게 다가온 이가 내일이 되면 돌변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즉 부르는 대로 따라갔다가 뒤통수를 맞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 기준에서 그는 호인 축에 드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무한한 신뢰를 보낼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내가 필요한 계획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나중을 위한 대비책?"
한발 물러서서 의도를 파악하고자 했다. 어차피 당장 거래를 성사해야 할 만큼 급하지도 않다.
딛고 본 것은 진실된 것이리라. 당신이 여기 실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듯 향기와 온기가 선명하다. 불안도, 사무치던 슬픔도, 모두 뒤로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죄를 고합니다, 감히 이곳에 내려와 당신에게 손 뻗고 길을 나아가고자 합니다. 비록 지옥 한복판이라고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란 기분이 들었다. 비록 앞으로 헤맬 장소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혼자가 아니니 이리저리 헤매다 외로이 남겨지고 스러져 흩어지지 않을 수 있다. 베르셰바의 가장 순수한 악의가 선의로 혼탁해진다 하던들 이제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이후의 일이 가시밭길이라 해도 인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통받는다 해도, 상처 준다 해도. 그럼에도 길 걷기에 그 순간마저 견디고 굳셀 수 있으리. 우리는 같은 선을 나란히 걷되 평행하며 수직이고, 결국 그 끝에서 하나의 점이 될 테니.
어린아이가 빗장 너머로 속삭였다. 나- 이제 가져도 돼? 이제 그래도 돼? 그야 아저씨들도 안 주던 거라 정말 받아도 되는 건가 싶지만 그래도 갖고 싶은걸! 나 이제 내 맘대로 해도 돼? 그러니까.. 행복해지는 거 말이야! 그러니까- 나도 이제 욕심내도 되는 거 맞지? 그럼 다행이다. 이제 됐어. 물론 어렵긴 할 거야. 나는 엄마를 슬프게 했지만, 그래도 엄마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조금 덜어둬. 지금은 현재에 집중하라고, 이 바보야. 외로워 하지 마! 이제 사람이 있잖냐. 어때, 나 아저씨들처럼 좀 어른-스럽게 얘기한 것 같지?
"아니."
바스스 웃었다. 나는 모든 밤이 외로울 거야. 삼켜낸 말 대신 겨울 색의 호선이 그어졌다. 나는 늘 외롭다. 밤은 끔찍하고 두려운 시간이라, 웅크리고 한참을 떨며 어서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온기가 실재하기에 외롭고 두려운 밤을 이겨낼 수 있으니 참 다행이에요. 결국 나는 이 셰바에 발 디뎠구나. 떨어져 새벽별 되고 금성이 되었구나. 그럼에도 사자가 내 곁에 있구나. 고개를 기울이자 천천히 눈을 감고 팔을 뻗었다. 목덜미를 끌어안고 증명 받고자 했다. 그리고 증명했다. 입술을 떼냈을 때 말갛게 미소짓는 것은 필히 꼬리침이 분명하나 이젠 거리낌도 없다. 아, 그런데 호텔이라. 아무리 꼬리치고자 한들 아직 자신의 방을 보여줄 준비는 안 됐다. 내가 쌓아둔 몬스터 에너지 탑을 치웠나? 그렇기에, 또 나름의 응석을 부리는 것이다.
"나아, 어디든 좋아. 그렇지만- 아직 나는 호텔이 부끄러운 걸.. 부디 페로사가 날 이끌어주면 안 될까? 여기를 독차지 해도 좋고, 페로사의 공간으로 이끌어도 좋아. 멀리멀리 떠나도 좋지만.. 밤은 한정적이야, 펠."
호텔은 부끄러워, 여러 의미를 담아낸 농담을 던지며 살살 눈웃음 쳤다. 낭랑하고도 리듬감 있는 목소리로 사랑스럽게 뱉은 말 치고는 제법 매콤한 것이 문제였지만.
>>459 (에만주도? 나도...)말 안듣는 기계 현대인의 공감대를 형성한다^-ㅠ 에만이도 짱짱귀엽다구~ 아 둘다 너무 맘에 들어. 넷상에서는 전자 현실에서는 후자같은 관계로 해도 좋을지도? 물론 현실에서 만나면 서로 알아보진 못하겠지만ㅋㅋㅋ 업계인의 아우라로 동질감 형성은 되지 않을까(?)
>>460 >>463 >>468 이게 느껴진다니 그래도 애들람주가 캐어필을 똑바로 하고 있구나 확신을 줘서 고마워 피피주 페로사주 엘레나주야~~~!!!^-^
실수로 수액을 꽂았다거나, 하는 이유 등으로 자신에게 어떻게든 수액을 꽂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위해주는 것은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과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지만 엘레나에게 수액 하나를 더 달릴까봐 차마 말은 못 하고 침묵할 분이었을까.
"삼단봉이라. 나중에 아는 친구에게 주문해볼까. 전기가 나오는 옵션을 달아서..?"
그럼 꽤나 쓸만할지도 모르겠다. 삼단봉으로 거리를 벌리고, 전기로 위협하고, 총으로 쏘는... 오, 괜찮은데? 그는 속으로 감탄하다가 역시 엘레나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에 대한 깊은 신뢰감은, 아마 그를 몇번이고 사경에서 구해줬기 때문에 엘레나도 모르는 새에 생겨난 것이겠지.
"나중을 위한 대비책이야. 널 계획에 끼우는 일은 아마... 드물 걸. 네가 죽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건."
계획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지에 가까운 환경을 조성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사지에서, 엘레나와 같은 의료인들은 언제나 적의 타겟 1순위다. 엘레나 같은 사람 한명만 다치게 만들어도, 분위기를 완전히 꺾어버릴 수 있었으니.
"이번 같은 일이 한번이 아닐 거야. 아마도지만... 미리 대비를 하고싶어서."
가능해? 라며, 엘레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수락해도, 수락하지 않아도, 그는 엘레나의 선택을 존중해줄 것이다.
에만이 10살..?(덜그럭) 에만이 10살이면 작은 미카엘(빅스비 같은 프로그램) 만들고 있었을 듯.. 덤으로 용왕님 10살 때 칼로 사람 이미 하나 쑤셨다.. 이유는 내가 지금 살고 싶은데 저새끼가 방해하잖아. 였고,,
>>492 오호 궁금하시다 이 말이지?
미카엘: 뭐 보는 거야..? 미카엘: 숨기지 않기로 했잖아.. 잠깐만, 나 키 작은 거 놀리는 거지, 그렇지..! (폴짝폴짝)(빙글빙글)(심리전 끝에 얻어냄) (잠깐 정적) 미카엘: Honey, You.. surprisingly shy ya. (부스스 웃으면서 볼 콕 찌름)
"그런 소련 개그 들어봤어?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거고, 소련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뇌가 없는 거라는 거. 그리워해 마땅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는 건 멍청한 짓인 그거. 내겐 그게 그 시절이야." 페로사는 웃어보였다. 그 웃음은 분명히 느른한 행복을 띄고 있는 것이었으나, 이 정적이고 고요하게 고여 있는 바 한가운데서 짓는 그 미소는 묘하게 색이 바랜 필터가 씌워져 있었다. 그 모든 시절들을 뒤로 하고. 그녀는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었다. 과거의 인물이 아스타로테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그거랑은 별개로, 로테, 네가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안 그래?" 하며 웃는 그녀의 모습에, 문득 새하얀 양복과 새까만 셔츠를 입고 옆머리는 박박 밀어버린 채로 검붉은 빛깔의 마스크를 쓴 그녀가 눈웃음을 치는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모히또를 맛보고 툭 내놓은 아스타로테의 평에, 페로사는 >:D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지금까지 내가 너한테 말아준 모히또가 뭐가 되냐!" 그러나 그도 잠시, "뭐 그만큼 이번에는 널 위해서 아주 조그만 변화를 더 주어봤는데, 신경써서 준비한 보람이 있나 보네." 하면서 편안한 웃음을 다시 짓는다.
일상. 평범하고 평화로운 날것의 일상 속에서 그녀는 조금씩 바래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스타로테가 장난스레 하는 말에, 페로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항살 말하잖아, 로테. 재촉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준비된 무대를 곁눈질하며, 페로사는 덧붙였다. "그냥 원래 세팅에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뿐이야. 아무튼- 그래, 이거야 뭐 항상 하는 질문이지만. 오늘 그 거래처 이야기는 들었으니 됐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 로테."
쓰으으읍 쓸때없는 소리지만, 진단이나 그런거 반응해주고 잡담에도 앵커달면서 떠들고 싶은데 지금 그러질 못해서. 진단, 잡담, 썰반응 등등 다 보면서 귀여워귀여워하고 있으니까 내가 반응이 느리거나 스루하는 건 악의없는 거라고 봐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될때마다 걱정되거든. 아무도 그렇게 생각ㅅ
>>523 ((공감의 격한 끄덕끄덕)) 이거 나도 잡담플로우에 쓸려가다보면 반응같은거 잘 못할 수 있으니까... 브리엘주의 마음 잘 알아. 그리고 나도 답레쓰다 보면 잡담플로우를 못 따라가서 반응 못하거나 놓치거나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으니 내가 놓쳤는데 나한테 반응을 얻고 싶은 게 있거든 거리낌없이 나한테 앵커를 달아줘.
이래서 이런 자리에는 브라이언을 동행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을 3년동안 보다보니 브라이언에게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건, 이야기가 이런 방향성으로 흐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피곤하고 지쳤다. 평소에 하던 거래들도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편에 속하지만 이 남자와의 만남이 유독 피곤하게 느껴졌다.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탈력감이 있는대로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어느쪽이 나쁘냐고 묻는다면 둘다 나쁜 것 아니야? 후자가 더 나쁘다고 했어? 베르셰바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되 그에 대한 부작용과 복용방법이 알려진 것들과 다르다는걸 충분히 고지했으니 그 이후는 구입한 사람들의 몫이야."
카두세우스는 중독자들과 거래하지 않고 사람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카두세우스에 소속된 이들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직접적`으로 생명을 해치는 일에 손대지 않는다는 유일한 규율은 계속 지켜지고 있었다.
"이야기는 아까 다 끝났으니까 이제 돌아가도 될까? 아니 돌아갈게. 이제."
가치관이 다르다는 말 뒤에 이어져 오는 비슷하다는 말에, 브리엘은 무감한 얼굴로 단호하고 냉정하게 말을 씹어뱉었다. 내가, 당신과? 도시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걸 알아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가치관을 납득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모순적이고 이중적이여서 말도 안되는 가치관을 납득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비슷하다는 말은 아니잖아.
#막레식으로 받아줘도 되고, 막레를 줘도 좋을 것 같은 분위기가 나왔으니 편한 시간에 편하게 줘.
"나는 너를 모두 품어줄 거야." 가면을 쓴 에만부터, 가면을 벗은 미카엘, 네 마음속 빗장 너머에 있는 어린아이까지, 모두 다. 너는 네가 끌어안을 사람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갖고 싶어하고, 네 것이 되고 싶어하는 페로사 몬테까를로는 어떤 것도 마음속에 남길 겨를이 없었기에, 여기 있는 나를 안아주면 너는 나를 다 안아준 거야. "시작부터 네가 내게 너를 모두 쥐어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거야말로 내가 말했던 거지... 익숙해질 시간. 그렇지만, 나는 이제부터 네 옆에 계속 있을 테니까. 너도 성급해하지 않아도 돼."
발이 땅에 닿고, 천사는 이 사자를 품기로 했고, 이 사자는 천사의 것이 되기로 했다. 그러나 어떤 하나의 사건을 기점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다. 어떤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도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물드는 것도 모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서로를 단골손님과 바텐더로 여기던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무게감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페로사는 조용한 앤빌의 풍경을 한 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 오늘 밤은 얼마든지 기대게 해줄게... 그렇지만 이 바를 떠나자. 나 말이지. 여기서 너랑 오늘 밤을 보내버리면..." 그리고 그녀는 손을 들어서 미카엘의 턱을 조심스레 싸쥐며 시선을 맞춘다. 야릇한 눈웃음. 말했던가, 희망은 탐욕을 가장 아름답게 포장한 말이라고. "내일 아침까지 여길 다 치워놓을 자신이 없거든."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언제 그런 눈웃음을 지었냐는 듯, 쾌활한 웃음을 얼굴에 감은 채로 미카엘의 턱에서 손을 떼었다. 그녀는 바에 올려두었던 미카엘의 외투를 어깨에 걸어주고는, 여우가면은 미카엘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의 끈을 팍 하고 잡아당겨 앞치마를 끌러내렸다. 그리고는 바 뒤편에 걸려있는 자신의 외투를 한 팔에 걸고는, 그 자리에 앞치마를 걸어놓고 외투를 마저 입었다.
"일단, 바 문은 잠그고 나서 떠나자."
페로사는 방을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편인데, 보통 헬스장이나 체육관 스케줄이 없을 때 청소를 하는 편이었다. 마침 그게 오늘이었고, 페로사가 오늘 방을 나설 때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잠자리와 빈틈없이 정리된 이런저런 공구들, 정해진 위치에 깔끔하게 개어져 수납된 옷가지들, 쓰레기는커녕 먼지 한 점 없는 깔끔한 방이 되어있었다. 하룻밤 손님 초대하기에는 괜찮은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어줍잖은 숙소에를 가봐야 즐길 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페로사의 오피스텔에는 그녀가 바 업무와는 달리 개인적으로 사모으는 술들도 있었으니까.
분명 하리보는 언젠가 당근요정에게 오토바이를 한 번 태워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만나버린 하리보와의 저녁은, 오토바이 여행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저번에도 해봤듯이, 페로사는 익숙하게 미카엘에게 바이저 없는 헬멧을 내밀었다. 가면이 거슬릴지 아닐지는 써봐야 알겠지만 아마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을 것이다. 페로사는 패치가 몇 장인가 수놓인 가죽 점퍼의 지퍼를 지익 끌어올렸다.
"그럼, 꼬맹아..."
그리고 미카엘에게 다가와서는, 말도 없이 불시에 미카엘의 무릎 뒤쪽 오금과 어깨를 양 팔로 부여잡더니 가볍게 휙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품 안에 아기처럼 들려안긴 모습이 되었다. 뜻하지 않은 공중부양은 얼마 가지 않아 페로사가 미카엘을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올려놓으면서 끝났다. 미카엘이 균형을 잘 잡았는지 확인한 페로사는 앞자리에 올라탔다.
제롬의 말은 정확했다. 주사라고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했어도 다 썼다는 핑계를 대며 수액을 가져왔을 것이다. 애초에 다른 것은 선택지에 없었지. 그렇기에 엘레나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척 행동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정말 갖게 되면 실물 보여주러 와요."
평범한 삼단봉을 제시했더니 창의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건 썩 괜찮은 생각 같았다. 멍청하지 않고서야 감전당할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리라. 삼단봉 위로 전류가 흐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꽤 멋진 모양새가 떠오른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대비책이라는 것도 목숨 보장될까 싶지만요."
어쨌든 엘레나는 나름대로 보잘것없는 제 삶을 아끼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죽는 건 둘째치고 제 보금자리에 해를 끼칠 만한 일이 생기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요구도 영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아무렴 그가 다칠 때마다 치료해준 게 누구인데. 엘레나는 팔짱 낀 팔뚝 위로 손가락을 두드렸다.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두드림이 여섯 번째가 되었을 때 입을 열었다.
"명함은 다시 주지 않아도 되죠?"
돌려 말하긴 했으나 수락하겠단 의미였다. 제 연락처 가지고 있으니 필요할 때 연락하란 뜻이었지.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언제 이 병원이 환자를 가려서 받았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어쩌면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한한 신뢰를 줄 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죽으면 찝찝할 정도의 익숙함은 쌓여버렸더라고.
"나 좀 손해 보는 것 같은데요. 원래 출장 비용은 두 배로 받아야 하는데."
말은 그렇게 했어도 돈 받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대신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단말기를 내놓으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 말을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한 건 아니었다. 그리워 해 마땅하지만 그 때로 돌아가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걸. 비단 여인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에 그리운 시절이니. 여인은 어깨를 살짝 으쓱이며 아니라면 아닌거지, 하고 가볍게 중얼거렸다. 그래. 아니면 된 것이었다.
"은퇴한 사람 괴롭히는 취미는 없는 걸. 네가 나를 위해주는 건, 날 계속 친구라고 불러주는 걸로 충분해. 이렇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언제 와도 반겨주는 거면 돼."
과거와 현재가 어렴풋이 겹쳐진 페로사를 보며 여인이 웃음지었다. 예전과 차림은 달라도 웃는 얼굴, 눈매 만큼은 여전해서. 제대로 현재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색을 흐리게 만드는 세피아 필터 따위 얼마든지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페로사의 눈썹이 팍 하니 미간으로 모아지며 나오는 볼멘소리는 여인의 개구진 웃음소리를 불러왔다. 쿡쿡. 후후후!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반박할 줄 알았던 건지. 재밌어 죽겠다는 듯 웃어대더니 모히또 한모금 마시고 진정되었다. 숨결에서 엷게 꽃향기가 느껴지니 기분이 어찌 좋지 않을까. 찰강찰강 잔을 작게 흔들며 말했다.
"언제는 날 위한게 아닌 것처럼 말하네. 매번 고심해서 만들어주는 거 다 알거든. 이러니까 내가 롯시 칵테일만 마시는거지."
하는 말이 참 밉상이지만 마냥 미운 말만 하는 것도 아닌게 사람 속내를 들었다 놨다 하려나보다. 실제로 여인이 칵테일을, 그것도 바텐더의 재량으로 만들어진 걸 마시는 건 앤빌 뿐이었다. 다른 가게에 가면 온더락 혹은 스트레이트만 마셨다. 입에 들어가는 것에 까다로운 여인이 주는 것을 그대로 먹는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페로사의 경우는 친구라는 의미가 있었으니.
여인의 손이 잔을 들었다. 가장자리를 입술에 걸치고 청보랏빛 술을 물 흐르듯 몇모금 들이켠 후 잔을 내려놓았다. 손의 물기를 가볍게 허공에 털고 좀전에 베어먹었던 무화과 반쪽을 들어 끝을 살짝 물었다. 그 상태로 잘근거리며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요즘이라고 뭐 별거 있나. 하는 일이야 늘 똑같지. 구역 관리하고 애들 관리하고. 그저 그런 일상, 아."
드물게도 뭔가 생각났는지 여인의 말이 끊겼다. 이어지는 건 잠시 고민하는 여인의 표정. 찌익. 입에 문 무화과를 가늘게 찢어 씹어삼키고 나서야 끊겼던 말은 이어졌다.
"최근 재밌는 일이 하나 있긴 했어. 아주 재밌는 일인데. 아직은 시작단계라고 할지. 밖으로 내긴 애매해서. 말할 형태가 갖춰지면 얘기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여인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여태 계속 웃고 있었지만 이 미소만큼은 느낌이 달랐다. 페로사는 그 미소를 한번 본 적이 있었다. 과거, 르메인으로서 제안을 들고 라 베르토에 찾아왔을 때, 제안을 들은 여인이 그런 미소를 지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일을 맡았을 때 말이다.
"롯시는 재촉을 안 하는 그런 느긋한 점이 좋지만. 가끔은 원하는대로 채근하는 것도 보고싶긴 하다. 애인이라도 생겨야 그럴려나?"
여인은 농담조로 말하고 모히또 잔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매끈하게 칠된 손톱이 잔과 부딪히며 티링 하고 맑게 울리는 소리를 내었다.
개인적인 일이라고 말하며 베시시 웃어보이는 스텔라, 그런 스텔라가 약을 탄 술을 한모금 마시는 것을 보며 이리스는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말해주고 싶지 않은걸까. 아니면 그런 걸 말해줄 정도로 가깝지 않다는걸까. 할말은 머릿속에 넘쳐흘렀지만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것은 불안감 떄문이었을 것이다 .
" 몰라... "
이리스에게 가족의 수를 물어본다면 손에 꼽을 수 있겠지만, 스텔라는 자신과 달랐으니까. 스텔라는 수없이 많은 조직원들을 품고 있었으니까 이리스는 그 수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고개를 저으며 스텔라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걸까. 저 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리스는 고민하면서 스텔라의 입술이 마저 열리길 기다렸다.
" 가족이란 그런거야...? 난 잘 모르겠어... "
이리스는 자신의 허리를 톡톡 건드는 스텔라의 손길을 따라 몸을 좀 더 움직여 얼굴을 스텔라와 마주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면서 단 한번도 가족이란 걸 꾸려본 적 없으니까. 가족이란 단어를 제대로 처음 입에 담아본 것도 스텔라를 만난 후였으니까. 그래서 이리스는 아직까지도 가족이란 단어에 대해 온전한 정의를 내리지 못 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에 내려앉는 그 손길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말없이 이리스는 스텔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리스는 살며시 고개를 움직였다.
천천히 스텔라와 이마를 맞댄다. 머리카락 위에 스텔라의 손이 내려앉았을 때 보다도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이마를 맞대고 어리광을 부리듯 몇차례 부벼대곤 살며시 고개를 움직여 코를 맞댄다. 한없이 가까워진 두 사람의 눈동자, 그런 와중에 어딘가 촉촉해진 듯한 이리스의 붉은 눈동자가 크리스의 눈동자 안을 살피듯 똑바로 맞춰온다. 서로의 숨결이 가까워진 거리만큼 잠시 침묵이 흐르지만 천천히 이리스의 입술이 열린다.
마치, 결핍된 애정을 갈구하듯. 자리잡지 못한 비루한 몸을 놓일 곳을 찾으려 매달리듯, 이렇게 하지않으면 자기 자신이 견디다 못해 바스라질 것만 같은 것처럼 이리스의 상처투성이 두 손이 스텔라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 ... 언니는 나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 쭉?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도..? 응? 정말로..? "
떨어진 잔 따위는 관심이 없는 듯, 파르르 떨려오는 목소리로 물음을 던진다. 눈동자 역시 평상시의 해맑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불안한 듯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스텔라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것 만큼은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1. 『얼마 줄건데?』 "그런 건 수뢰인이나 판매자 쪽에서 먼저 제시를 해야지. 대놓고 바가지씌우는 거만 아니면 가격 맞춰줄게." "아니면 내 수집품 중에 네가 흥미있는 걸 골라보던가."
2. 『나와 함께해줄거지?』 * 일반적 경우 "글쎄- 네 말이 맞다손 쳐도 그런다고 끝이 좋아지진 않을 거야. 음, 그렇지만..." "좋아. 알았어. 일단 여기에서 뜨자고." * ??? "응? 새삼스럽게. 외로워졌어?" "자. 안아줄게. 이리 와." "걱정 마. 나는 네 거니까... 네가 내 것이듯."
3. 『다른 사람을 부탁해』 * 일반적 경우 "이봐...... 이거 느낌이 안 좋다는 거 알잖아..." "젠장, 그래, 확실히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지."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버티고 있어." * ??? "내게는 너뿐인 걸 알잖아." "다른 모든 것들이 남는다고 해도 네가 떠나버리면 그게 나한테 무슨 의미인데?" "같이 살았으니, 같이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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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품어주고, 천천히 받아들일 시간. 인간의 삶은 유한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나 적어도 아직, 시간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다. 더 안정적인 시간을 위해서 오늘도 살아가고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미카엘은 그런 사람이었다. 가면을 쓰고, 자신의 정보기록을 아예 말소시켜 숨어 도망쳤던 에만이 되었고, 사람의 온기를 부정하던 꼬맹이가 되었으며, 지금은 온기를 받아들이고 한 발 내디딘다. 턱을 조심스레 싸쥐며 시선을 맞추자 겨울 색 눈동자가 동그란 윤곽을 보이다 눈가 밑부터 천천히 봄 색으로 물든다. "짓궂어." 하고는 살살 웃는다. 당신은 참 짓궂은 사람이야.
외투를 어깨에 걸어주자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여민다. 허벅지의 3분의 1 정도 덮는 너른 케이프 코트를 뒤로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쓴다. 평소라면 후드를 뒤집어써서 셰바의 뒷골목에 상주할 마약상 내지 브로커 같은 인상을 풍겼다면 지금은 시대에 조금 맞지 않지만 누군가의 삶을 끝장내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본인도 익숙하지는 않은지 조심조심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런 재주는 어디서 배웠는지 높은 굽과 달리 발 소리도 잘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부터는 또각거리는 소리가 선명해졌다. 그렇게 한 번 봤다고 눈에 익어버린 길을 걸었다.
언젠가- 오토바이를 타고 말겠다며 당근 요정은 약속을 받아낸 적이 있다. 이전에도 한 번 탔지만, 이번에도 약속을 지켜내긴 한 것 같다.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일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를 사실이긴 하지만- 이 작은 당근 요정은 자신의 정체를 절대 밝히지 않으리 다짐한 바 있다. 이미 요정님 소리와 더불어 제롬에게 45년의 술안주와 놀림감이 되었으니 더더욱. 죽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눈앞의 암사자에겐 들키지 않으리라. 바를 나서고 다시금 주차장으로 향할 때, 또 각 대는 소리가 불안정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헛디뎌 걸음의 박자가 잠깐 빨라졌다 느려질 때도 있었다. 넘어지지 않은 게 용했다. 이윽고 헬멧을 무리 없이 써내곤 생각했다. 용왕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어지간히 화내겠구나.
"아?"
가면 속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쉽게 들리는 것이었나? 어릴 적 거들떠보지도 않던 인형을 가끔 사무치게 외로워 안아올릴 때면 이렇게 들곤 했는데, 이젠 인형이 됐다. "나, 나 안 무거워?" 하고는 뒷좌석에 앉을 때까지 뻣뻣하게 굳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했다. 미카엘은 페로사를 짐짓 놀랍게 바라보다 손을 모았다. 평소의 행동을 조합해 보면 아마 가면 안의 입술을 작게 오물거리며 시선을 왼쪽 아래로 내리깔고 있을 것이다. 앞자리에 올라탔을 때, 장갑 낀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감싸 안았다. 고작 며칠 느끼지 못했다고 그리웠던 온기다. 눈을 내리감고 아이처럼 고개를 가볍게 등에 부비곤 속삭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고 하던가. 달리 말하면 봄은 겨울과 함께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겨울마저 닿지 않은 회색의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삶에 마침내 계절이 찾아온 그 자체가 페로사에게는 이미 분에 넘치는 기적이었으니까. 새벽별의 눈밑에 든 연연한 빛깔이 어쩌다 들었는지도 제쳐두고, 페로사는 살살 웃는 미카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 새벽별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네가 너무 가벼워서 오히려 걱정인걸." 페로사의 허리를 끌어안고 등에 파묻자 푹신한 재킷 너머로 그녀의 신체 굴곡이 느껴진다. 근육질에, 단단하다. 옷 너머로도 따뜻한 온기가 슬그머니 올라와 미카엘을 적시는 게 느껴진다. 오늘 밤은 저 온기가 열기가 되도록 흠뻑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 이전으로는 영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기에는 늦었다. 페로사도 문득 그 비슷한 생각을 한 걸까. 등 뒤에 기대이는 조그맣고 서늘한 온기가 애틋해서, 조금 참기 힘들어졌다고 페로사는 생각했다. 바로 출발하지 않고는 자신의 허리를 붙들고 등 뒤에 기댄 미카엘을 돌아다보았다. "출발하기 전에 잠깐만 그거 놔볼래?"
그녀의 말대로 허리를 잠깐 놓아주면, 페로사는 고개뿐 아니라 허리까지 뒤로 돌려 미카엘을 돌아본 뒤에 미카엘의 여우 가면 주둥이 위에 짧지만 선명한 입맞춤을 쪽, 하고 남겼을 것이다. 참지 못한 욕망을 한껏 담아서. "나머지는." 페로사는 미카엘의 여우가면을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뒤로 틀었던 몸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시선만은 곁눈질로 미카엘을 돌아보며, "좀 있다." 하고, 페로사는 참으로 얄밉게도 눈웃음을 치고는 헬멧의 바이저를 탁 내려버렸다. "허리 꽉 잡아."
그리고 다시 한 번 뉴 베르셰바의 밤을 향해서, 오토바이는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유령처럼 내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오토바이는 잘 구성된 사설경호대가 경비를 서고 있는 오피스텔 단지로 들어섰다. 정문 경비는 페로사가 바이저를 벗어보이자 그녀의 얼굴만 보고도 좋은 저녁 되세요, 하고 친절하게 웃으며, 뒷좌석의 동행인에 대해서 별 질문도 언급도 하지 않고 차단봉을 올려주었다. 언젠가 에만이 호기심에서, 혹은 알아두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검색해서 알아두었을 주소, 에만에게 있어서는 몇 마디의 지명과 일련번호의 나열로 이루어진 정보에 불과했던 그것이, 지금 미카엘의 앞에는 현실감있는 무언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페로사가 사는 곳.
높다란 담장 안에 4~5층 규모의 오피스텔이 몇 동인가 뭉쳐 있는 작은 단지의 어느 한 동에서 페로사의 오토바이는 멈춰섰다. 그녀는 스탠드를 덜컥 내리고, 이제 허리를 놔도 좋다고 말한 다음 오토바이에서 먼저 내렸다. 왠지 그녀의 다음 행동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잘못 생각한 게 아닐 것이다. 그것은 금방 증명됐다. 한 팔이 어깨를 감싸안고 다른 팔이 시트 뒤쪽을 파고들어 엉덩이를 거쳐 허벅지를 감싸안더니, 다시 한 번 미카엘의 몸을 공주님 들듯 가볍게 들어올려 품 안에 폭 안은 것이다. 활짝 열어둔 앞섶에서 아까 재킷 너머로 느꼈던 것보다 더 선명한 온기가 미카엘을 감싸안는다.
"오늘은 힐을 신고 왔더라." 아까 미카엘의 발걸음이 썩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 페로사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대로 들어갈래, 아니면 담배라도 한 대씩 피고 갈까?" 그녀는 흡연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실외 흡연장을 턱짓해보였다.
치료현장에서 삼단봉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녀를 부를만한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뜻... 그는 진심으로 다음에는 사적인 자리에서 엘레나를 만나길 바랬다. 예를 들면 술이라거나, 사격장이라거나. 어찌되었든 간에 평범하고 좋아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네 목숨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최대한 보장해주려고 할 거야. 그 운전책이라는 양반에게도 네 목숨을 우선하라 일러놓을게."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남의 목숨을 가져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그가 지금처럼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는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도 아스타로테 그녀 때문이지, 자신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번처럼 다쳤을 때도 제발로 걸어왔겠지.
"좋아, 고마워 엘레나.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돌려 말하는 그녀를 향해 희미하게 웃으며 단말기를 넘겨주었다. 마이클, 프랭클린의 프로필이 화면에 떠있었다. 사실...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이건 그녀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 확률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겠지만 0%는 되지 못 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을까.
"내 앞으로 달아둬. 손해본건 나중에 갚을테니까."
아마 돈 받을 생각은 없어보였으니 대신 나중에 그녀를 위한 '호의'를 베풀어 갚겠다는 의미겠지. 이번에 진 빚까지 얹어서, 전부 말이다.
"그래. 나도 널 계속 앤빌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페로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얕게만 들으면 그저 친구의 안전을 비는 상투적인 인사로 들리겠지만, 아스타로테의 귀에는 혹시나 자신이 위기에 빠지거나 하면 자신은 도움의 손길을 거리낌없이 내밀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도 들렸다. 친근하면서 약점이 될 걱정은 없는(아스타로테의 약점으로 잡으려고 페로사를 목표로 삼는다면 아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을 당하지 않을까) 편안하고 달가운 관계. 적어도, 아스타로테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술 마시는 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언젠가 아스타로테가 그녀를 숨겨주었듯 페로사도 당연히 그렇게 할 테니까.
"알면서 모른 척하니 그렇지." 까르륵 웃는 아스타로테의 낭랑한 웃음소리에 페로사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저 기집애를 데려갈지 몰라도 마음고생깨나 하겠네." 친구라는 의미가 있어서 자신이 준비한 술을 곧잘 마시는 것을 알았기에, 페로사도 아스타로테가 마실 것에는 다른 고객들에 손색없는 정성을 들여서, 때로는 다른 고객들에게는 들이지 않는 만큼의 정성을 들여서 내어주곤 했다. 구하기 힘든 특이한 꽃차를 구해서 차를 우려내 얼음을 만들고, 몇 잎은 럼에 떨어뜨려 인퓨즈해둔다던가 하는 그런 정성 말이다. 그리고 그게 아스타로테의 취향을 꽤 잘 맞춘 것 같아, 페로사는 내심 뿌듯했다.
"사업 이야기 말고. 뭐 어딜 놀러갔다거나, 누구 마음에 든 사람이 생겼다거나-" 요컨대 개인사가 궁금했던 건지 예시를 들던 페로사는, 눈빛이 변하는 아스타로테를 보고 "그것도 사업 이야기지?" 하고 웃으며 되물었다. 그러나 역시, 그 웃음은 한창때의 '나도 한몫 끼워주는 거지?' 하는 호승심어린 웃음이 아니라 그렇구나, 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의 웃음 정도로 옅어져 있었다. 그녀가 한창 때 겪어야만 했던 엄청난 사건들을 생각해보자면, 지금 이 곳에서 그녀가 이렇게 타성에 젖어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혀 의외의 방향에서, 아스타로테는 뜻하지 않게 그녀가 모든 가능성을 잃고 완전히 사그러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애인이라도 생겨야, 하는 상투적이고 별것없는 가벼운 말 한 마디에, 분명 형상만이 남아있을 뿐 색을 잃고 흐려져가던 페로사의 얼굴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너무도 선명한 토마토색이 불길 일듯이 화르르 피어나는 것이 아닌가.
"ㅁ,몰라. 내 알 바 아니잖아, 그런 거."
저번에 비슷한 이야길 했을 때는 쓸쓸하게 웃으며 애석하게도 그런 걸 바라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면서 청승떨며 대뜸 데킬라 한 잔을 꺼내마셔버렸는데. 저번과는 반응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1. 『잘 있어』 그 말에, 브리엘은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서서당신의 어깨에 자신의 이마를 기댔다. 사락,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서 브리엘의 얼굴을 반쯤 덮었다."조심해서 가."이걸로 당신과는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
2. 『뭔가 말해줘, 제발』 "앞으로는 더 잘될 거야. 더 좋은 일이 있을거야라는 말들은 낙관론자들이 자주 하는 말인데. 나는 도통 그런 말에 익숙하지도 않고 해주지도 못해." 하지만- 크리스탈 잔에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잠시 들렸다. 장갑을 낀 브리엘의 손이 당신에게 향했다가 어깨를 부드럽게 눌렀다. "그런건, 소용없잖아."
3. 『쓸쓸해』 "아, 그래?" "-이리와. 위로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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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하고 조금은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스텔라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마도 두 팔을 벌려서 자신이 이룩해놓은 호라이즌 블라인더스라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자 사업체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것만큼 제대로 대답이 되는것도 없을테니까. 스텔라는 이리스가 아직은 다른 조직에 있더라도 자신의 동생으로, 가족으로 인정했으니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 이리스, 만약 네가 누군가한테 금괴를 옮기라고 했어. 총 100를 말이야. 옮기기 전까지 100개가 있는걸 확인했고 그 사람에게 옮기라고 한 다음에 금괴가 99개로 줄어있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그 사람을 의심하겠지? 금괴를 하나 빼돌렸다고 말이야. "
스텔라는 자신의 옷깃을 꼭 잡는 두 손을 바라보곤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술이 떨어졌다. 한 잔 더 마시고 싶은데.
" 나였다면 말이야. 그 금괴를 옮긴 사람이 우리 가족이었다면, 그 상자에는 처음부터 99개의 금괴만 들어있던거라고 말할거야. 왜냐고? 가족이니까. 우리는 가족이니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이고 정말로 하나를 빼돌렸다면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거야. "
가족이란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면 스텔라는 이렇게 대답했겠지. 100개의 금괴가 들어있던 상자에는 처음부터 99개밖에 없었고 원래부터 그랬다고. 스텔라는 이해가 되냐고 굳이 묻지는 않았다. 계속 같이 있고 싶냐는 질문에 스텔라는 고개를 한 차례 갸웃하곤 두 손으로 허리를 잡아 조금 더 가까이 끌어와 더욱 가까이에서 마주보았다.
" 이리스는 나랑 같이 있기 싫어? "
스텔라는 웃으면서 물었다.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를 살짝 들춰 가볍게 입술을 맞추곤 그러니? 하고 한 번 더 물었다. 그리고는 이마에 다시 한 번. 스텔라는 미소를 짓다가 양쪽 볼에 번갈아 한 번씩 가볍게 입술을 맞추곤 떨어졌다. 이탈리아 마피아 녀석들이 이렇게 인사하던데.
" 이미 말했지만 가족이니까 같이 있고 싶은건 당연한거야. 이리스가 어떤 상황이고를 떠나서 가족이니까 계속 같이 있고싶은거야. "
이리스는 허리를 두손으로 잡아 가까이 끌어당기는 스텔라에게 얌전히 끌려가 몸을 마주했다 . 온전히 서로의 온기가 오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마주 한 체 자신에게 던져오는 말을 들은 이리스는 옷깃을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준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새하얗게 변할 것만 같은 손을 한 체로 미소를 지어보인 체로 자신을 바라보는 스텔라에게 자그맣게 속삭였다. 절대로 같이 있기 싫은게 아니라는 듯 휙휙 저어보인다. 워낙 자신이 바보 같아서 스텔라에게 자신의 마음이 이상하게 전달이라도 될까봐 힘껏 고개를 저어보이는 이리스였다.
" 나도.. 나도.. 언니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 이렇게 언니 옆에서 있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언니가 안아주는 것도 좋고...언니가 이렇게 해주는 것도 좋고.. "
이리스는 자신의 이마와 볼에 연달아 입을 맞춰준 스텔라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아까보다 더 떨리고 흔들리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마디 꺼낸다. 마치 거세게 부는 태풍 앞의 가녀린 나뭇가지라도 되는 것처럼,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말하려는 것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정도로 이리스는 어딘가에 속해있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바래지길 원했고, 정착할 수 있길 바랬다. 스텔라의 옆에선 그게 가능할 것만 같아서 이리스의 마음에는 거센 파문이 퍼져나갔다.
" 내가 옆에 있으면 언니가 이렇게 아플 일도 없게 할 수 있을텐데.. 언니가 외롭게 술로 밤을 보낼 생각도 하지 않게 해줄 수 있을텐데.. "
입술을 꾹 깨문다. 아스타로테가 떠올랐다. 그녀에겐 분명 목숨을 구원 받았지만, 스텔라처럼 자신에게 말해줄 것 같지 않았다. 분명, 지난번처럼 똑같이 알아서 하라는, 몇번이나 들었던 대답만을 들을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 속에 울려퍼지는 파문을 막을 도리가 없어보였다. 자신의 삶에서 이토록 자신을 원해주던 사람이 있었던가. 이리스는 자신에게 내려온 그 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이 줄을 놓치게 된다면 자신은 더이상 태풍 속에서 버티지 못하고 꺾여버릴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차라리 이런 감정과 이런 따스함이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면 괜찮았을까.
살면서 살아가는 것 이외에 미련을 갖게 될 줄은 몰랐는데, 눈 앞에서 자신에게 몇번이고 다정하게 가족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스텔라를 보면 볼수록 또다른 미련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스텔라가 했던 것처럼, 긴장감에 말라버린 입술을 스텔라에게 가까이 했다. 스텔라가 가장 먼저 가져다댔던 이마에 한번,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떨어지다 한번 더 그 부드러운 이마에 한번 더 입술을 부비곤 천천히 내려와 스텔라의 볼을 감싸곤 보물을 다루듯 살며시 양 볼에 입술을 맞춰준다. 그리곤 잠시 눈을 맞추었다 코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춘 이리스는 떨리는 숨을 뱉어낸다.
" ..... 언니 옆에 있어도 될까, 오늘부터? 적어도 언니가 다 나을 때까진... 반쯤은 숨어있는 것처럼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지만... "
무단으로 조직에 출근하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왠지 지금은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마치 그곳에 갔다가는 원치 않은 상처를 받을 것만 같아서. 다치는 것을 여태껏 두려워 하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왠지 두려워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 옆에 붙어있고 싶었다. 물론 그저 도피를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스텔라는 이리스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지키고 돌보고 싶은 것 또한 진심이었으니까. 스텔라의 두뺨을 길거리에서 닳고 닳아 조금은 투박해져버린 자그마한 두 손으로 감싸쥔 체 속삭이듯 물었다. 어쩌면 이리스의 얼굴은 지금 울상이었을지도 몰랐다.
관계란 때로 서로의 심장을 담보로 하는 무서운 것이 되기도 했다. 자신으로 인해 상대를 위험하게 만들 수도, 상대로 인해 자신이 곤란해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이었다. 특히나 이 작은 도시 안에서는 그것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곤 했으나. 여인은 제게 내밀어진 손을 단 한번도 거절한 적 없고. 먼저 내친 적도 없었다. 다만 먼저 내민 적은.
"별 걱정을 다 해. 정말."
누가 저 기집애를 데려갈까, 하는 말에 여인은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굴었다. 당황, 당혹, 그런 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다지 찔리지 않았다. 여인의 안에서 그 일은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래서 얘기해줄 것도 나중으로 미루었는데. 이 눈 앞의 친구는 아니었나보다.
여인이 손익을 따질 때 같은 표정을 지으니 페로사도 그 일이 사업인 줄로만 알은 듯 했다. 그렇냐는 표정으로 웃는 페로사를 보며 여인은 대답 대신 무화과 반쪽을 입에 쏙 넣고 오물거렸다. 예전이었으면 한발 걸치려 했을텐데. 이제는 저런 빛바랜 표정을 짓는게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페로사의 반응으로 인해 싸악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호기심, 놀람, 기쁨 등등의 반짝반짝한 감정들로 한가득 차올랐다. 전에는 같은 농담을 던져도 씁쓸하게 반응하더니. 저 새빨개진 얼굴은 대체 뭐람! 여인이 그 부분을 놓칠 리 없었다. 당장 자세를 고쳐 바 너머로 넘어갈 듯이 몸을 기울이고서 페로사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 입이랑 다르게 몸은 솔직한 걸? 로옷시? 너 지금 얼굴 어떤지 알아? 나 거울 있는데. 보여줄까?"
생글거리는 얼굴로 이게 놀리는 건지 정말 그냥 거울을 보여주겠단 건지 모를 말들을 하더니 결국은 또 웃어버렸다. 후후! 잔뜩 즐거워 죽겠다는 웃음소리가 둘 사이에만 짧게 울렸다. 여인은 가능한 한껏 바에 상체를 기대고서 한 손에 잔을 들고 흔들거리며 말로 페로사를 콕콕 건드려대었다.
"그런 얼굴 하고 발뺌해봤자 안 통하는 거 알지? 대체 어느 누우가 우리 사자님 갈기에 손을 대었을까. 후후. 나 너무너무 궁금한데에. 롯시이, 으응?"
깃털로 건들듯 아양을 떨며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하게 한 뒤 눈을 깜빡깜빡 하는 표정까지 완벽했다. 바가 아니라 같이 앉아있었다면 옆에서 팔이라도 안으며 한술 더 떴을 터였다. 그리고 여인이 그런 말투 그런 표정을 할 때는, 얼마나 끈질긴지, 페로사는 잘 알 것이었다.
1. 『죽지 말아요! 제발!』 "그렇지만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나봐. 응.. 그렇지, 나는 죄 같은 걸 짓기 싫어해놓고 누구보다 큰 죄를 지었으니까.. 그 값을 치른 거야.. 그니까.. 어지러우니까.. 잠깐만 쉴게.. 응. 쉬는 거야. 그런 거야.. 봄이 오면 눈은 녹기 마련이니까.. 다시금 겨울이 올 거야.. 응.." "그러니까.. 있잖아.. 안 죽어. 응. ..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먼저 가."
"제발! 아니야, 으, 으으.. 죽지 마, 제발.. 나는, 나는.. 친구가 죽는 건 싫어.. 네가 없으면.." "제발 날 떠나지 말아요, 언니, 날 떠나지 마.. 제발, 누나.. 나랑 약속 했잖아, 같이 있어준다며.. 조금만 참아줘, 곧 의사가 이쪽으로 올 거야. 응? 제발.. 그러니까.."
"그로스만의 개야, 죽지 마. 네가 해줄 일이 아직 많으니까 죽으면 곤란해.."
2. 『두 번 다시는』 "알았어.. 안 할게. 두 번 다시는.. 그.. 손 대지 않을게. 그래도.. 미리 말 좀 하지 그랬어. 네 오목눈이에.. 음.. 그래. 그.. 흡.. 으흐흑.. 미.. 미안. 그런 취향인 줄은.. 으흐흐흑.. 내 의뢰인 중에서 네가 제일.. 최고였.. 아하하하!"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좋겠어.."
"내 말에 토 달지마."
3. 『좋아』 "해보지 뭐.. 그 정도야 쉬운 일이니까.." "네 말이라면 무엇이든 좋은 걸." "계약은 이걸로 체결이야. 그러면 약속한 값을 주었으면 해.. 그로스만의 아이들을.. 그.. 네가 늘 즐기는.. 것 말이야.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난 관여 안 할 거야. 보여줄 생각도 마. 그.. 사육하는 거 보여줄 생각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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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저질스런 농담이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인간의 천성이라는 것은 어디가지 않는 모양이렷다. 같이 있고 싶다는 말에도 굳이 대답을 하진 않았다.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는 잘 알고 있을테니까. 스텔라는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은 모양의 입맞춤에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것도 전부, 가족이니까.
" 외로워서 술을 마시는 건 아닌데. "
스텔라는 장난스레 웃으며 이리스를 꼭 끌어안고 가만히 등을 토닥였다. 술을 마시는 것은, 그냥 술이 좋기 때문이야. 굳이 그 안에 약을 섞어 마신건 고통을 잊기 위함이었고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스텔라는 외롭지 않았다. 어딜 가던 가족이 있고 고개를 돌리는 모든 곳에서 인사를 해오고, 받아줄 가족이 있으니까.
" 오늘부터, 네가 있고 싶을때까지. "
굳이 기한을 정할 것은 없겠지. 스텔라는 미소를 지었다.
" 기한은 필요없어. 가족이고, 가족의 집이니까. 네가 오고싶을때 와서 얼마든지 있다 가도 괜찮아. "
외적으로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쪽 조직에서 추궁을 할 수 있고 정식적인 답변을 요구할 수도 있다. 상대와 이 쪽의 랭킹차이는 엄청나지만 그 차이가 스텔라의 가족을 향한 마음보다 크냐고 묻는다면 스텔라는 당당하게 고개를 젓고 그렇진 않을것이라고 말할것이다. 가족이 여기 있고 싶다고 한다면 이 가족의 가장 큰 언니가 되는 사람으로써 그 정도는 이루어줘야지. 스텔라는 한 번더 있고 싶을 만큼 있으라고 말하고는 장난스런 목소리와, 조금은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 By order of The Horizon Blinders. " "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의 명령이야. "
이리스는 여유있게 얼마든지, 지내고 싶은 만큼 지내라고 말하는 스텔라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스텔라를 불렀다. 코 앞에, 고개만 살짝 숙여도 닿을 거리에 있음에도 왠지 부르고 싶었다. 여기선 자신을 보내려 하지 않아. 오히려 얼마든지 이곳에 있게 만들어줘. 이리스는 그 사실 하나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천천히 심호흡을 하던 이리스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스텔라를 자신의 가슴팍에 끌어안았다. 스텔라에 비해선 볼품 없는 몸이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 ...언니 옆에 꼭 붙어있을게. 언니가 그래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럴거야 "
이리스는 스텔라의 머리를 꼭 감싸안은 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응, 이번에는 분명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맞다고 생각했다. 스텔라의 옆에서, 스텔라를 지켜주는 것, 그 누구도 자신의 사람에게 손 댈 수 없게 하는 것. 지금은 그것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이리스는 그러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을 찾을지 모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여기에만 신경쓰고 싶었다.
" 쇼파에서 쉬는건 불편하지 않아, 언니..? 같이 침대로 갈까? "
이리스는 살며시 스텔라의 뺨을 어루만지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한다. 하고자 하는 일이 정해졌으니, 이리스의 행동도 망설임이 없었다. 지금은 스텔라를 돌보는데에 힘쓰면 될테니까. 이리스는 흘러내린 자신의 금발을 쓸어넘기며 고개를 살짝 기울여 스텔라를 바라본다.
얼마나 마셨더라. 장갑을 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면서 세어보던 브리엘은 이내 세는 걸 포기하고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 전체로 감싸며 앓는 소리를 냈다. 빈속에 양동이째 럼을 들이키는 게 차라리 나았다. 일어나자마자 반겨줄 끔찍한 숙취가 저절로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안어울리게 다른 손에는 얼음도 없이 그득하게 채워져 있는 술잔이 들려있었다. 아, 내일은 진짜 죽었다고 복창해야겠네. 붉은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잔에 가득 채워져 있는 술을 입술에 가져다대려다가 잘게 어깨를 들썩였다.
우븝, 이상하기 짝이 없는 소리에 상대의 얼굴을 있는 힘껏 밀어내던 브리엘은 놀라서 멈췄던 잔을 기울여서 술을 비워냈다. 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멀쩡해보이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브리엘의 손에 의해 구겨져 있던 얼굴을 떼어내고 술잔을 비우느냐고 언뜻 드러나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윽-!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져서 브리엘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한참 이어지던 실랑이는 브리엘이 구두로 상대의 정강이를 걷어차고나서야 끝이 보였다. 진짜로 걷어차는 게 어딨어! 항의하는 목소리에 발버둥을 치느냐고 차오른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