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안개와 한 밤의 꿈 깨지 않게 춤추고 싶어 인간다운 일을 강요받아도 굳이 필요하다고는 느끼지 않아 달이 아름다운 밤만이 올바르다 느끼고 있으니까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친구니까 봐주겠지 하는 생각이 오산이었다. 소동물같은 소녀가 게임에서까지 소동물일 거라는 생각이 오산이었다. 총 게임 특성상 해야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일단, 이 게임에서 무장으로 쓰이는 물총들. 죄다 히트스캔이 아닌 투사체 형식인데다 바로 코 앞에서 총질을 해야 맞을 정도로 거리가 짧다. 거기에 한 두대 맞아야 죽는 것도 아니라, 4~5히트 정도는 해야 킬이 확정이다. 어떻게든 맞췄다고 생각하면 잉크 속으로 첨벙거리며 들어가 금세 뒤를 잡혀버리고 만다. 바로 이런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간의 '교전거리'의 형성이 이 스플래툰의 재미와 밸런스에 큰 관여를 하고 있는 것일테지만 지금의 제롬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문제다. 물론 제롬은 나름대로 역경과 고난을 해쳐 온 탄탄한 게이머일 것이다. 어딘가에선 분대장이었고 어딘가에선 용사였으며 어딘가에선 전설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까지의 그러한 경험이 역으로 고정관념이 되어, 제롬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면서... 그의 캐릭터는 마치 백상아리가 사는 바다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먹이마냥 스폰되는 족족 무라사키에게 먹히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킬이 아닌 바닥을 칠하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 된다는 게임이라고는 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킬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지금 순간조차도, 제롬이 땅을 딛은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챘는지 잉크 안에서부터 펄쩍이며 날아와, 킬링머신처럼 쇄도하며 면전에서 습격해온다. 심지어 그녀의 무기는 총도 아니고 근접무기인 엄청 커다란 붓이다. 헌데 그 타이밍이 정말로 칼같고 빈틈이란게 보이질 않아서- 정말로 살해당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아, 아하하...~ 하하... 으..."
결국은 무라사키가 땅의 87%를 칠하면서 한 게임이 끝났다. 무어라 말할 것도 없는 압도적인 승리. 이 소녀, 역시 제롬을 죽이려고 여기 앉아있는 것이 아닐까?
"여, 역시 그만할까요...!! 다, 다른 것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녀는 자기가 하자고 얘기를 꺼내긴 했지만, 게임이 막상 이렇게 끝나게 되니까 스스로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허둥대며 변명하듯 말한다.
그가 주로 한 게임들은 보통 현대전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즉, 히트스캔 형식이라 탄속이고 사거리고 고민할 필요 없이 에임만 중요시하면 되는 게임들이라는 뜻이다. 몇가지 기믹을 추가하여 게임의 맛을 더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이 게임은 투사체 형식. 이런 형식의 fps라곤 기껏해야 고급시계 정도만 해본 그에게 있어 투사체 형식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리고 투사체 형식과 더불어 잉크 속에 숨는, 이 시스템은 그의 적응에 어려움을 더했다. 무라사키에게 에임을 맞춰놔도 어느새 잉크 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내게 다가와 튀어오르고, 에임을 혼란시킨 틈에 붓으로 후려쳐 죽이는. 그런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만약 내가 총을 들고, 무라사키가 나이프를 든 채 대치하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양학당하는 상황. 게임 내내 압도당했지만 나름대로 즐거웠다. 어차피 패배하는건 크게 자존심 상하지 않아하던 차였다. 무라사키가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꽤나 할만 했나보구나, 무라사키."
허둥대며 변명하듯 말하는 것에 감정변화가 없어보이는, 조용한 미소로 무라사키를 바라보는 제롬. 그냥 지기만 한 거라면 모를까, 상대방에게 '배려'받고도 그냥 넘어간다면 그건 게이머가 아니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오히려 더 자존심을 긁을 때도 있는 법이다.
"다시 한번 하자. 이번에는 안 질테니까."
가장 기본 무기인 슈터가 아닌, 이번엔 머뉴버라는 쌍권총을 든 제롬. 슈터의 경우 압도적인 무라사키의 기동력에 의해 농락당하기만 했으나, 구르기를 가진 머뉴버는 다르다. 무라사키가 잉크 속에서 제롬을 노리며 튀어나오면, 제롬은 구르기를 통해 빠져나온다. 그가 고른 켈빈 특성상 구르기를 사용하면 피해량이 증가하여, 빠르게 에임을 무라사키에게 맞춘 제롬이 두번 연속해서 쏘는 것으로 무라사키는 킬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무라사키와 제롬의 숙련도 차이는 압도적인지라 그렇다고 해서 큰 차이를 벌리지는 못 했으나, 적어도 맵을 종횡무진하며 제롬의 뒤를 잡고, 당황한 나머지 잉크에 빠져 허둥대는 저번 판과 비교하면 기동력이 좋아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차이는 굉장했다.
압도적인 저번 판과는 달리, 이번에는 엎치락 뒤치락 하며 칠한 땅도 50%대에서 접전을 벌이지 않았을까.
그 애칭은 기원은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페로사가 여인을 로테, 라고 부르니 발음을 맞춰서 로시, 라고 붙였다. 처음 그 애칭을 불렀을 때 페로사의 반응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건 되려 여인의 내심을 자극할 뿐이었고. 그 뒤로는 좀 더 발음을 신경 써서, 특히 앞에 악센트를 주어 롯시, 가 된 것이었다. 이 애칭을 입에 담을 땐 목소리는 한 톤 올리고 해맑게 웃는 표정인 건 사소한 디테일이었다.
"후후. 나 예뻐?"
페로사가 눈길로 훑고 휘파람을 불자 여인이 보란 듯이 스툴 위에서 한바퀴 돌았다. 빙글 돌자 보석 여럿 달린 귀걸이와 피어스가 찰랑였다. 여인의 머리칼에 물들은 듯 푸른 보석들이 바의 조명을 받아 반짝였을지도.
미끄러지듯 돌고 멈춘 여인의 앞에 안주 접시가 내려졌다. 하나같이 여인이 좋아하는 것들이고 한켠엔 특별한 서비스도 있었다. 말없는 친절함이란 참 좋은 것이다. 여인은 뭘 먼저 먹을까 고민하듯 손끝으로 안주 접시 위를 방황하며 말했다.
"번화가에 새로운 클럽이 생겼다길래. 간만에 새 거래처 하나 따내왔지. 상대가 상대니만큼 차려입은거고."
라 베르토는 일하기 전엔 상대에 대한 밑조사를 일부 하곤 했다. 어떤 조직이고 어떤 인물이 수장인지 정도일까.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잔가지로 들어오는 정보만 추려도 상당했으니. 여인이 이토록 화려하게 입은 것도 본인의 취향이면서 상대에게 맞춘 것이었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가 가져온 것은 완벽한 계약 체결이었다.
"그렇게 말 하는 거 치곤 늘 내가 보러 오지 않아?"
농담엔 농담으로. 하지만 아주 빈 말도 아니게. 오랜 지기 사이인 둘만 아는 의미가 담겨있도록.
"음. 그러게. 그 정도야 별 일도 아니지. 어떤 간 큰 놈이 그 짓거리를 벌였나 보지 못 한 건 아쉽네."
여인이 자리에 있었다면 지금과 비슷한 자리에 앉아 그 장면을 안주 삼아 한잔 기울였을 터였다. 그걸 상상하며 웃음 짓는 지금과 같은 표정을 하고. 여인은 비스킷을 집어 모서리 한끝을 입술로 물었다. 희미하게 자국이 비스킷에 남고 다물린 입술 안에서 빠각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잠시 오물거리다가 검지와 중지로 비스킷을 들고 주문을 내놓았다.
"술집에 와서 한 잔도 마시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지. 첫 잔이니 달지 않고 가벼운 걸로 부탁해."
얼마나 마시려고 첫잔부터 그리 신경을 쓰는지. 여인은 그저 생글거리는 웃음을 지은 채 비스킷을 마저 먹었다. 오독오독 깨물며 장난스레 몸을 흔들다가 뒤늦게 개방된 무대를 발견하고 물음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