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안개와 한 밤의 꿈 깨지 않게 춤추고 싶어 인간다운 일을 강요받아도 굳이 필요하다고는 느끼지 않아 달이 아름다운 밤만이 올바르다 느끼고 있으니까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앞으론 물이라도 같이 마시라고, 페퍼 씨. 술만 때려넣으면 그 꼴 나기 쉬우니까 말이야."
어쨌든 이 쪽은 항상 농담과 진담 사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버릇이다. 의심이라, 사내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인간을 온전히 믿었다. 무엇을 믿었냐 하면은, 상대가 언젠가는 자신을 철저히 버리고 배신할 수 있음을 믿었다. 그러니 사내는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한 티끌 의심도 품지 않았다.
"뭐, 나도 굳이 분류하자면 '평범한' 축은 아닐 수도 있어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맞잡은 손에 마주 힘 주었다.
"그래도 친구 부탁이니 최선을 다해야겠지."
방긋 웃곤 손 놓았다.
"그런 김에, 페퍼 씨. 자고 갈래?"
당신 꼴았어. 당연한 사실을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 차림으로, 술 취해서, 이 시간에 돌아다니면 머리에 바람구멍 네 개 생기기 십상이라고.
전투 능력은 없는 주제에, 의식적으로 주변에 적을 늘리는 사람이 피피와 마주하고 있는 카두세우스의 간부, 브리엘이라는 사람이었다. 브라이언이 없었다면 간부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썩어문드러졌을테지. 브리엘은 어깨를 가볍게 올렸다가 내리고는 이번에는 옆머리를 쓸어올리면서 냉정하게 잘라내듯 그의 말에 대꾸했다. 억양은 역시나, 건조하다.
"-시체를 팔아치우면서 의사라고 해도 되는거야?"
의사라는 말에 동요하기는 했지만 브리엘은 티를 내지 않고 확인하는 것처럼 다시 물음을 던졌다. 의사의 소명이라던가, 하는 것을 물어볼까 싶었지만 이 도시에서 의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된 의사를 본 건 그 의사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사짜였고. 2층, 서재. 시야에 잘 닿지 않는 책장에 놓아둔 면허증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렸다가 지워낸다. 이제 그건 효력을 잃은 종이조각일 뿐이니까.
"아스피린이면 충분히 잡히는 두통일 뿐이야. 당신이 나한테 주려는 게 말기 암환자들이나 불치병인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마약성 진통제라면 필요없다고 미리 이야기해둘게."
신경질적인 헛웃음을 뱉어낸 브리엘은 차분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반박했다. 지나치게 차분하고 동요없는 모습이였다. 다정한 사람에게 약하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주머니에 넣었던 다른 손도 마저 밖으로 꺼냈다. 입을 가렸다가 목에서 손을 떼고 웃는 모양을 구리색 눈동자에 담아내고는 미간을 찌푸려보였다. 밖에서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를 여기에 와서 들을 줄은 몰랐는데.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으로 이렇게까지 올거라는 것도 말이야. 장갑을 낀 엄지로 브리엘은 눈썹과 눈썹 사이, 찌푸려진 미간을 문지르듯 매만지다가 그대로 떨어트리고 그가 방금까지 손톱으로 누르던 부분에 가져다댄 뒤에 그대로 턱을 따라 엄지를 움직이려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싫어해. 다정한 사람에게 약하다는 사람을 쉽게 믿어버릴 정도의 사람도 아니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난, 사람에게 관심 가지는 건 질색이야. 자연스럽게 손을 떼어내서 허공에서 살랑, 흔들어보이는 것은 도발에 가까운 제스처였다.
"하지만 미스 브리엘, 나는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야. 시체를 치료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주 끝장이 나버린다. 산 사람을 위해 소모할 에너지만 따져도 부족하다. 죽은 이에게까지 할당할 몫은 없다. 얼굴, 문신, 점, 손톱과 같은 식별 가능한 모든 부위를 제거한 몸뚱아리를 하루 종일 바라보다 보면, 프로스페로는 막연히 자신의 장례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치루어지리라 상상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모두가 그렇다. 당신도 그렇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설마 당신한테 마약성 진통제를 주겠어."
웃음 터트렸다. 아, 들켰네. 눈치 빠르기는.
"하지만 브리엘 씨, 공적인 자리는.. 우리가 계약을 성사한 이후에 바로 끝났는걸. 지금 여긴 지극히 사적인 장소야."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건 사적인 자리다. 특히 당신이 '카두케우스가 아닌 나와의 계약'이라고 말한 직후라면 더더욱. 궤변이나 신경쓰지 않는다. 알 게 뭐람.
"그럼 곤란한데."
브리엘이 손 댔다가 뗐던 자리를 만지작거렸다. 도발은 자존심을 긁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동전 한 닢에 맞바꾼지 오래다. 멍청한 놈들,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모두 스프 한 그릇보다 못한데. 쓸데없이 그런 것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일을 그르치지.
의사라는 자격은 시험을 치르고 받는 면허증이 있어야만 의사로서 인정받을 수 있나. 시험은 쳤으나 면허증이 없다면 의사라고 할 수 없나. 스스로의 태도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이중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브리엘은 그의 말에 대답을 쉽게 내릴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말로 인해 이 도시에 들어오기 전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의문도 없이 그저 소명에 충실했던 시절의, 브리엘 스카일러의 삶.
"최소한 히포크라테스의 선언은 알고 있는거지?"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존중받아야한다. 그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네바 선언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들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듯이 브리엘은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카두세우스의 조직원들은 의료계에 종사했던 사람들, 혹은 의사였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소문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니 이정도 이야기한다고 의심을 받을리 없다. 자신의 본래 직업을 알고 있는 사람도 이 도시에는 한명뿐이고.
"줄것 같았거든. 왠지 모르게."
브리엘은 버릇처럼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웃는 그와는 정반대의 표정으로 답변하고는 이어지는 말에는 나른한 눈매를 찌푸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궤변, 하고 중얼거리는 폼은 단호하고 냉정하다. 브라이언의 구둣발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살랑 흔들어보였던 손으로 브라이언을 제지했다. 아직까지는 위험하지 않다.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말투가 거슬릴 뿐이다.
"관심이 많다는 건 무슨 의미야? 얼굴에 관심이 많다면 내가 나름 납득은 해볼 수 있는데."
그는 소녀의 모습을 보더니, 근처에 있을 가면을 한번 바라본다. 안쪽을 살펴봐도 그냥 평범한 가면이다. 자신의 가면을 쓰는 친구의 것처럼, 신분을 숨기는 가면보다는 코스프레용에 더 가까워보이는 수많은 가면들. 그럼에도 나이프 때처럼 즐겁게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뭔가 사정이 있는걸까.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면에서 게임기로 시선을 돌렸다. 더 파고들기를 원치 않는 듯 했으니.
"난 네 얘기에 굉장히 관심이 많지만... 이야기하기 싫다면, 캐내진 않을게."
"그래도 나중에 하고싶어지면 꼭 말해줘. '친구'니까." 라며 제롬은 살짝 웃었을까. 받아든 게임기는 상당히 특이한 모양이었다. 아니, 색감이 특이하다고 해야하나... 이런 게임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게임기는 대부분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채도 없는 게임기 뿐이었으니.
아무래도 좋은가. 그는 게임기를 자세히 살피며 조작키를 대충 가늠했다. 자신의 것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비슷한 기종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어떤 게임으로 할까? 나는 다 잘하니까 무라사키에게 선택권을 줄게."
반쯤은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게임을 잘 하는 편이라는 것은 정말이었다. 한때였긴 하지만, 유명 게임의 랭킹권도 찍어본 적 있을 정도로. 나머지 절반의 거짓은... 육체를 쓰는 게임은 정말 못 한다는 것. 예를 들면 링피트라던가, wii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지, 그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무라사키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그걸 알아서 당신도 팔아치우려 한 거 아녔어? 사내는 여자에게서 퍽 수상한 냄새를 맡았다. 뉴 베르셰바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느껴졌다.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인간 냄새가 나지 않아 경멸받았다지만 이 도시는 다르다. 인간 냄새는 약점의 동의어다. 불행히도 사내는 상대의 약점을 쥐고 휘두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철저히 파고들어, 그 나이테의 형상을 바라보길 원하는 축이었다.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
"당신, 왠지는 모르지만... 이 도시에서 살기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여서."
가끔은 절반만 진실인 것이 거짓 정보보다 더 나을 때도 있다.
"나는 날 때부터 밑바닥 인생이었거든. ..뭐, 이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말이야, 내가 못 가진 것에 대해 동경심을 품게 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