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안개와 한 밤의 꿈 깨지 않게 춤추고 싶어 인간다운 일을 강요받아도 굳이 필요하다고는 느끼지 않아 달이 아름다운 밤만이 올바르다 느끼고 있으니까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브리엘이라면 사내도 들어본 적이 있다. 명함을 받아들고, 제 것도 브리엘에게 건넨 피피는 입꼬리 부근을 손 끝으로 꾹꾹 눌러댔다. 3년 만에 간부가 됐다고 했었나, 흐릿한 기억을 더듬었다.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리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태도가 더 유익할 때가 많다. 하지만 몇몇 '치명적인' 정보는 알아두는 게 신상에 더 낫다. 카두케우스의 정보가 그러한 류에 속했다.
"이미 보신 적 있으시겠지만, 견적서를 보면.."
품 안에서 약간 구깃거리는 종이를 꺼냈다. 피피는 손 끝으로 숫자 몇 가지를 짚어냈다.
"내가 대충 이 정도로 추산했었는데 말이지. 직접 살펴보니까 이 쪽으로 나갈 만한 부위 중 성한 게 없어서. 그런 데서도 빠지고.."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서 목을 긁적였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럴 때.
"무엇보다 남자 중 셋 이상이 주요 장기를 찔렸어. 눈이 손상된 건 넷 이상이고.. 그러면 또 이래저래 가격이 깎여나가."
가져온 펜으로 종이 위 숫자 몇 갤 북북 지워나갔다.
"애초에 시체는 시간 지날수록 가격이 훅훅 떨어지니까. 이런 리스크 싫으면, 다음부터는 웬만해선 일찍 불러주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퍽 뻔뻔스럽게 '다음 계약'을 이야기한다.
"그래도 나 정도여서 이 만큼 돈이라도 챙긴 거라고 생각하는데, 브리엘 씨. 어떻게 생각해?"
고집스럽게 일어나는 그를 보며 내심 혀를 차고 싶었다. 그러지 않은 건 순전히 상대가 환자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부축하던 손을 거두었다.
"아프면 웃지 말고 말을 해요. 진통제 놔줄 테니까."
아픈 사람이 웃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역시 천성이 그런 사람이라는 결론을 한 번 더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 가고 싶다면 말리진 않아요. 몸보다 중요한 게 뭔진 모르겠지만요."
그의 어깨 부근에 검지를 올렸다. 천 아래에는 꼼꼼하게 묶어둔 붕대가 있을 것이고, 그 아래에는 겨우 봉합해둔 상처가 있으리라. 손가락에 살포시 힘을 실었다. 아주 살짝 누를 뿐이어도 불같은 고통이 따르리란 것을 안다.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했다는 건 이 상태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어디 움직여보란 의미였다.
"당신도 참⋯."
말끝을 끌며 그의 말을 헤아렸다. 처음 계약을 맺을 때 그가 언젠가 병원을 찾아올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자주 이행할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커넥션의 존재가 매력적일까. 하기야 1인 조직인 주제에 상당히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이미 가치가 증명된 셈이긴 했다. 그도 퍽 골치 아프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생이 많아요. 차라리 경호원을 고용하지 그래요."
그 못지않게 인원도 무력도 부족한 병원이었으므로 다소 동질감이 일었다. 그래도 이쪽은 단골손님들이 있는 덕분에 어찌저찌 위기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었지.
브리엘은 남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구리색 눈동자가 입꼬리 부근을 누르는 손에서, 목으로 내려갔다. 의식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단순한 피부병인가. 그 시선이 다시 움직인 건 피피가 종이를 꺼내며 하는 말 때문이었다. 제기랄.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씹어삼킨 뒤 브리엘은 관자놀이를 엄지로 누르듯이 문지르면서 종이 위로 가리키는 숫자를 내려다봤다.
견적서를 빼곡하게 채운 숫자들을 하나씩 짚어나가면서 설명하는 피피의 목소리를 들으며 브리엘은 무감한 표정이었다. 시체를 거래한다, 라는 것. 닳을대로 닳아버린 인간성과 인간성에서 따라오는 양심이라는 놈이 저리게 뻐근했기 때문에 이 남자와의 약속을 잡았던 날, 거뜬히 럼 한병을 비워내기도 했다. 관자놀이를 손으로 문지르다가 여전히 시선은 종이에 고정한 채 브리엘은 자신의 손을 떼어냈다. 손이 움직이는 방향은 전혀 예상 밖의 방향이다. 브리엘은 목을 긁적이는 피피의 손에 자신의 손등을 대고 밀어내는 것처럼 툭- 쳐보였다.
그만하라는 듯한 움직임이였다.
"시체의 장기 손상이나 눈의 손상에 대해서 지금 알았네. 내가 한 게 아니거든."
종이를 바라보던 시선을 위로 치켜들며, 브리엘은 뒷목과 어깨로 내려가는 근육을 문지르듯 주무르고는 피피의 말에 단조롭게 읊조렸다. 사실 시체를 판매하려는 생각이 없었지만 그대로 썩어서 문드러지고 백골이 나올 때까지 내버려두는 쪽이 더 역겨운 상황이 될 것 같아서 선택한 사항이었다. 견적서를 받아봤을 때는 꽤 자세한 내용들에 스스로가 혐오스럽고 역겨워서 술을 마셨다.
"프로스페로씨."
그런데 시체를 팔아넘길 일이 이제 없을 거라고 단정 짓지 못하는 게 더 싫었다. 아, 싫다. 다음 계약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피피의 말에 브리엘은 구깃한 종이 위를 검지로 가볍게 툭 쳐보이며 시선을 고정했다.
"시체처리를 해준 점,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만한 가격으로 해준 점, 모두 고마워. 그런데 우리쪽에서 시체가 나올 가능성은 0에 가깝거든. 이번에 생긴 일은 부득이하게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 같은 거라서 말이야."
스스로가 말하면서도 모순투성이였다. 브리엘은 비스듬히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나른하게 틀었다.
사내는 제 손 끝을 따라오는 여자의 시선을 느꼈다. 그 너머 있을 감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불결해라, 언젠가의 환청이 들려오는 것을 애써 묵살했다. 대신 한껏 눈웃음 지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걱정 마, 옮는 건 아니니까. 스트레스성이고.."
툭, 쳐내는 손길엔 약간의 동요가 뒤따랐으나 또다시 웃음으로 감추었다. 내가 얼굴 근육을 움직일 수 있음을 감사한다. 이것은 인간이 발명한 것 중 가장 유용하다. 무엇이든 가릴 수 있는 가면이라, 나는 이 것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겠노라 다짐했다. 생각보다 저 여자는 상식적인 축에 속했다. 일단 반말이라 총을 쏴갈기지 않는 점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목을 긁어 신경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 뉴 베르셰바의 간부란 놈들은 정신에 나사가 하나씩 빠진 놈들이 종종 껴 있곤 했으니까. 저 여자가 그런 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조심해 나쁠 것은 없다.
'그렇겠지, 간부시니까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더 이상 나랑 만나기 싫다, 라...'
프로스페로는 마주쳐오는 눈을 피하지 않는 인간에 속했다.
"글쎄, 0에 수렴하는 가능성을 뚫고 성인 남성 시체 6구가 나왔으니까. '0에 수렴한다'는 '0'과 다르다고, 브리엘 씨."
돈가방을 내밀었다. 산 사람은 먹고 살아야지.
"그리고 리스크는... 내 모든 계약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니까. 이번 채팅방 건이 독특한 케이스였고... 대외적으로는 채팅방 건수도 내가 다른 사람한테 넘겼다고 소문냈어."
잠시 침묵하다, 가방 손잡이를 브리엘 쪽으로 돌렸다.
"정확하게 해둘까. 나는 이 바닥에서 입이 무겁기로 유명해. 아직까지 거래처의 신상, 거래한 시체의 신상도 한 번도 털린 적 없고. 그러니까... 카두케우스 측에서 비밀 유지를 잘 해준다면, 내가 지는 리스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단 거야."
"브리엘 씨, 어차피 이런 경우가 또 생기면, 시체 신원 숨겨야 하지 않아? 신원 숨기면서 돈도 벌자는 이야기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