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시작되면 주인도, 왕도 없어 우리의 달콤한 죄악보다 순결한 무죄는 없어 광기로 더럽혀진 이 슬픈 땅에서 그것만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고, 그것만이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에이~ 그건 아니지! 잭슨이라면 모를까 한 음절인 '쥬'에서 두 음절 'J'(제이)가 되는 건 더 불편해질 뿐이잖아~ 위급할 때에는 제이 부르다가 시간 다 갈 걸? 그럴바엔 역시 더 멋있는 '00'(더블오)를 하는 편이 완전 이득이지!"
해괴한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음절이라면서 결국은 멋을 이유로 제일 거창한 코드네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로미 본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단순히 근무만을 뜻하는 건 아냐~ 내가 쥬를 사랑한지 1일 됐다는 거기도 하고, 동거를 시작한지 1일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아니면 세계 평화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일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 헤, 이렇게 말하니까 또 설레네. 꺄아~ 막이래!"
세계 평화따위의 거창하고 위험한 소리를 뱉으며, 그러면서도 금방 소녀의 탈을 뒤집어 쓴 듯 양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 높은 목소리를 낸다. 그 입에 물려있는 궐련과 손을 치운 뺨에 묻어난 기름때가, 그녀가 평범한 '소녀'는 절대 아님을 대신 증명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수납장 어디에선가 권총모양 라이터를 꺼내어 궐련에 불을 붙히고 한 숨 깊게 들이 마셨다가 바깥으로 연(煙)을 뱉는다. 스펙트럼 색깔로 반사되듯이 허공에 투영되는 연기. 그것이 블루 오렌지 상표였다.
"아무튼 쥬, 그건 문제 없어. 네가 어딜 돌아다니는 건, 어떤 그림을 그리던 상관없어. 네 문화 향유를 방해할 생각도 물론 없어."
쥬는 이곳의 직원으로 일하며 사장 로미와 일하게 되지만, 소속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채용 공고(를 빙자할 뿐인 포섭)의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범죄의 성지 뉴 베르셰바에도 불법적인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지배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 일테다. 물론 로미가 지금 하려는 짓도 그런 짓을 일환이었다. 이런 일을 아주 만약에 르메인에서 내려온 사자가 알게 된다면 절대 고운 시선이 오가지는 않겠지만, 로미는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꼬집을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기. 어차피 그게 너희들이 부르짖는 범죄의 본질 아냐?' 그녀는 그러고도 남을 인재였다. 그런 로미가 히죽 웃으면서 궐련을 문 채로 말을 이어갔다.
"단, 말한대로 출근과 퇴근시간 때에는 항상 돌아와 가게에서 지내고, 혹시나 어디 멀리 갈 것 같다 싶으면 나한테 얘기만 해주면 돼~ 간단하지? 모처럼 구한 소중한 직원을 가치도 모르는 얼간이들에게 뺏길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아, 그리고 언제 '출장'가게 될지는 나도 모르니까 부르면 무조건 오기이. 그것도 알아두고. 니시시~"
드르륵 소리나게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로미. 쥬의 눈 앞에는 불쑥 손이 내밀어진다. 깨끗하다고 볼 수는 없는 손. 하지만 이 도시의 대중적인 의미로서는 그건 나름 '깨끗한 편'이었을까.
"―그럼 잘 지내보도록 하지이. '더블오'."
다만 확실한 건 지금 그녀의 얼굴에 걸쳐진 도시의 때를 타지 않은 듯한 느긋한 미소는, 악이 만연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곳만의 전매특허라는 점이었다.
자기가 얄미운 사람인 건 아는지, 아니면 나름 반성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피하지 않았다. 딱! 소리가 이마에서 명쾌하게 울려 퍼지자 바로 이마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가 흘렀다. "아파, 이 자비 없는 녀석아." 무정한 녀석이 자비가 없다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꽤 묘한 상황이었다. 눈을 굴려 이마를 가렸던 손을 내렸을 때,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제법 우스운 꼴이었으나 상황이 우습지 않기에 더 웃음이 튀어나오진 못했다. 서로 닮은 점이 많은 친구다. 그럼에도 살아온 것도 닮았을지. 환경에 의해 갈리는 차이가 명백한 내 친구. 그리고 눈을 홉뜬 건 찰나였다.
"너."
뭔가 말하려다 입을 잠깐 꾹 다물고, 다시 열다 닫기를 반복했다. 뺨이 화끈 달아오르고 말을 더듬다 새된 목소리가 흘렀다. "너, 너 이.. 안 닥쳐? 어떻게 알았.. 아니 진짜. 아.. 미치겠네." 하고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요정님 지금 혀 깨물고 죽고 싶어졌어 힝힝.. 당근 요정은 그저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45년의 술안주와 놀림감이 생기고 말았다. 술만 생각하면 속이 뒤집히고 토할 것 같지만 갑자기 훅, 하고 술이 당기는 느낌이었다. 귀가 뜨겁다. 부끄러운지 발가락을 꽉 오므리곤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너 진짜 그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시체 처리장으로 보내버린다." 하고 살벌한 농담을 한마디 꺼내고는 더 얘기하지 않았다. 아마 윈터본 때문이리.
윈터본의 그림자를 너는 모르겠지. 나도 네 속을 모르는데. 에만은 시선을 옮기는 눈동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다시 천장을 향해 올렸다. 사람은 끝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평생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겠지. 그런 존재니까. 셰바에서 이해를 바라는 건 사치였다. 후계자라는 자리의 부담감도 한순간의 기만이고, 평생의 꼬리표였다. 에만은 차라리 더 얘기하지 않기를 택했다. 나는 아직 겁이 많아요. 그러니까 얘기하는 건 술에 기대거나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할 수 있어. 참 어리고 어려요.
7층 소회의실은 넓고도 좁았다. 이따금씩 어머니가 데려오는 사람은 모두 겁에 질려있었다. 척 모리슨이 날이 무딘 도끼에 여러 번 찍혀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다 죽었기 때문이다. 소회의실은 처형장이고, 한때 투기장이었던 곳과는 또 다른 곳이었다. 투기장이 서로 죽고 죽인다면 7층 소회의실은 단순히 도축을 위한 장소였기에. 미카엘은 그 피비린내가 무서웠다. 그렇지만 더 무서운 것은, 언젠가 자신도 어머니처럼 될까 싶었던 것이었다. 어머니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고 무너져내려 오열할 때는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어머니가 오열할 때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아이 같았다. 달래주어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고, 따뜻한 품을 찾았다. 그 이후에는 늘 같았다. 아이가 갑자기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다. 순수함을 잃고 다시금 누군가를 불태우는 마녀가 됐다. 인간과 마녀. 양립할 수 없는 그 극단적인 차이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하나만 가졌다면, 그래서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해결법을 찾다 만난 친구의 조언을 믿은 자신이 바보였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멍청이. 미카엘은 흐린 미소 뒤로 색채 옅은 눈동자를 잘게 떨었다. 몸이 기울어 이제 마주 볼 수 있게 됐다. 시선을 굴리면 자신의 친구가 있다. 위스키 향이 진한 친구다. 데킬라의 갈증 나던 향이면 더 좋았을 텐데. 미카엘은 우스운 망상을 해 보이곤, 친구의 말을 잠자코 들어주며 입을 쉬이 떼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 튀어나올 때마다 머리에서 수 번의 긍정이 오갔고 부정이 오갔다. 당연하지,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당연하지, 내가 살인자니까, 아니, 나는 죄가 없을 거야. 아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자격 없어."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뭘 알아. 아니구나. 우린 끝내 서로 너무도 어려운 달, 서로 너무도 어려운 달이었어요.* 서로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서로 같고도 다를 수밖에. 나는 유죄를 주장하고, 너는 무죄를 주장하고. 참 우습다, 내가 죄인이라 그런지 네 조언이 참으로 소중하다.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는 자신을 다르게 봐주는 조언이니까. 누군가의 시선에서 적어도 자신이 완전한 죄인은 아니니까, 면죄부를 주는 거니까. 꺼내주는 다른 생각을, 온기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구나. 개 같은 새끼. 조만간 용왕에게 연락해야겠다.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그리고 심연이 순수히 눈을 뜬다. 늘 그렇듯. 좆됐다. 난 결국 윈터본이자 인간이었음을 깨달았으니 좆된 것이다. 강하게 자라긴 글렀구만. 싹 내 손으로 죽여버리려 했는데 망했네.
"..정말?"
우스워라. 흔들지 마. 제발. 가슴팍을 두어 번 두드리자 흘끔 눈이 구른다. 비참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길을 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로스만의 날선 이빨이 어머니와 자신을 같이 꿰뚫었을지도. 최악으로 치닫고 에만이라는 존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카엘은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더듬었다. 그로스만이 개새끼지 내 책임이 아니었다.. 라, 그리고 눈이 천천히 감겼다. 한때 느꼈던 따뜻하고 말랑했던 온기를 떠올리며 몸을 모로 뉘곤 천천히 웅크렸다. 태곳적 생명으로 돌아가듯 한없이 웅크렸다. 판사는 망치를 내리쳤다,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하, 하하.. 내가 바보라면.. 넌 등신이게."
아, 적어도 그 말은 네게서 듣고 싶지 않았어. 작은 원망이 서려 미카엘은 괜히 심통을 낸 것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웅크린 몸이 떨리는 걸 보면, 작은 숨을 잇새로 앙 다물다 내쉬지 않으려 하는 걸 보면. 어쩌면 가장 필요했던 말이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잘못이 없어. 아이는 그간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말에 숨죽여 울었다. 억울하고도 후련했다.
조금 머리가 식고 나서 보니... 내가 좀 많이 바보같은 짓만 골라서 했네. 우선 여러 가지 많이 안 좋은 모습 보여드렸고... 해야 할 말이 더 있지만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 되기에, 일단 지금은 현생 일에 집중하면서 머리를 좀 완전히 식히고 나서 다시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