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시작되면 주인도, 왕도 없어 우리의 달콤한 죄악보다 순결한 무죄는 없어 광기로 더럽혀진 이 슬픈 땅에서 그것만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고, 그것만이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려고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웃음을 참으려는 모습을 보며, 제롬은 잠시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일부러인지 의도하진 않은 건지, 에만의 마지막 하나 남은 이성마저 흔들려는 듯 제롬은 에만의 이마 쪽으로 손가락을 갖다대고는, 딱밤을 날린다. 피할 수도 있었을 정도로 느릿한 움직임이었지만 피하지 않았다면 꽤나 아팠겠지. "그리고 난 시체처리장으로 실려갔을 거고. 하여튼 무정한 놈." 한 판 붙었을 거라는 말에 그가 가볍게 툴툴댔을까. 에만과 붙는다면 아마도... 찌르기 한번만에, 죽었을 것이다. 괜히 그로스만의 개가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떠올라 경동맥 부근을 매만졌다.
"굳이 돌려말할 필요 없다. 나도 네가 나랑 닮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지기 싫어하는 면이라거나... 저렇게, 찌르면 바로 반응이 온다는 면 같은 거. 자신도 피피가 도발했을 때 그대로 넘어간 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이녀석도 내 친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팔을 끌어안는 그의 모습을 키득대며 바라보고는 느긋하게 플라스크를 입으로 갖다댄다.
"좋아. 그럼 요정님이라 불러줄까? 당근요정님?"
하지 말라는 것 대신, 다른 이름으로 불러준다. 예를 들자면 그가 흔히 말하고 다니던(현실이 아닌, 트톡에서) 당근 요정님이라는 이름이라거나. 제롬은 피식 웃으며 곁눈질로 에만을 바라본다. 툭 말을 던진 것에 "다행이네. 내 친구가 그래도 이중인격은 아니라서." 라는 실없는 대답을 했다.
"아직도 윈터본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 나처럼 영세한 정보상인도 알 정도로. 윈터본이라는 이름값은 아직도 건재해."
거물이 아니라니. 한 구역의 지배자였던 사람, 그리고 그 후계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이름값이 큰지 아직도 모르는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가. 괜히 심술이 나서 에만을 노려보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차라리, 그런 이름이라도 가지고 싶었는데. 친구에게 하는 질투만큼 추한 것은 없다. 그리고 아픈 과거사를 타인이 탐내는 것 또한. 그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애써 질투심을 가라앉혔다. 자신의 눈을 에만이 바라볼 때, 그 속에서 탐욕과 질투를 알아차리지 않길 바랬다.
"어쩐지... 그로스만, 그녀석을 파고 올라가는 것과는 다르게, 이상하게 윈터본에 대한 내용은 흐릿했어. 마치, 네가 네 뒷조사를 막았던 것처럼."
그래서 건진게 별로 없다. 신문이라도 있었으면 모를까. 그런 것까지 찾아내기에는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았고...
질문한 이후에는, 윈터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제롬이 모르던 윈터본의 이야기가. 만약 자신이 정보상이었다면 굉장히 탐을 낼만한 정보였으나, 에만의 친구였기에 이 정보가 나왔다는 사실은 마냥 기쁘지 않았다. 고해성사. 취조보다는 그것에 가까웠다. 제롬은 가만히 에만, 아니, 미카엘의 고해성사를 들어주었다. 미카엘은 불쌍한 아이였다. 어머니의 밑에서 갇혀 지냈고, 자유를 원했기에 타인에게 속아넘어간, 불쌍한 아이.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 여기에 내 친구 에만으로 있다. 미카엘은 불쌍한 아이였지만, 에만은...
"멍청이."
멍청하고, 불상한 내 친구. 제롬은 그를 보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있던 그는 플라스크 뚜껑을 닫아 품에 넣고는, 그대로 뒤로 드러누웠다. 푹신한 매트리스 위로 몸이 가볍게 튕기며 술기운이 돌았다.
"그래서, 네가 잘못했다? 결과적으로는 네가 죽인 거니까? 네가 살인자고, 네가 그 모든 일에 책임을 가진다고?"
"정신차려 미카엘. 그 상황 속에서, 얻은 건 없이 잃기만 한 사람은 너뿐이야. 네가 제일 불쌍한 놈이라고."
그는 힘없이 웃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멍청하고, 불쌍한, 그리고 바보같을 정도로 착한 내 친구. 이런 친구가 어떻게 베르셰바에서 살고 있는지. 아니, 나도 그런가? 너와 나는 닮은점이 참 많구나, 친구야.
"그때 네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었을까? 방 안에 갇혀서 살인기계처럼 길러지기? 아니면, 모든 것을 놓고 미쳐버리기? 네가 그 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아니면 지금보다 더 비참했을까?"
상체를 일으켜 에만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의 가슴팍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가볍게 두어번 정도 두드리려고 시도했다.
"쓸데없이 감상에 젖어서 네 탓 하지마. 넌 그때 스스로를 위해 가장 나은 선택을 한 거야. 이 도시에서 그걸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결과로 네 어머니가 죽었다고 해도 그건 그로스만 놈들이 개새끼인 거지, 네 책임이 아니라고."
드물게도 정색하며 낮게 말하던 그는, 얼굴에 진 그늘 속에서 살짝 빛나던 눈으로 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상체를 뒤로 넘겨 드러눕고는 "바보같은 내 친구." 라고 중얼거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