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힘들게 노력했고 멀리까지 도달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몰락해야만 했고 내가 가진 걸 전부 잃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우에, 우에에~" 페로사에게 꼼짝없이 잡혀선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거리는 미소를 지은체 뭐라고 옹알거리는 이리스였다. 페로사의 반응과 리액션이 마음에 들었는지 키득키득 웃는 웃음소리마저 새어나올 정도였다. 얼굴을 놓아주자 웃느라 호흡이 거칠어졌는지 호흡을 고르던 이리스는 이어진 말에 눈을 깜빡인다. " 꼭 그런 사람이 되라고 말한 건 아닌데 말이야. 내가 챙겨주고 싶어서 챙겨주려는거지, 언니를 그런 사람으로 만드려는건 아니란 말이야." 이리스는 너무 그런 식으로 생각하진 말아달라는 듯 말한다. 이리스 역시 받은게 있으면 갚는 성격이었으니까.
"...그쪽을 말한 건 아니지만, 그쪽도 대단하긴 하네, 우리 언니~ 멋지다~ " 사이드 체스트 자세를 취하는 페로사를 본 이리스는 한순간 표정이 (OㅅO) 로 굳어버렸지만,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짝짝짝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대단하다는 건 근육쪽이 아니긴 했지만 어느쪽이든 대단한 건 맞았으니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얌전히 머릿속으로만 하면서. " 건강함이 아주 흘러넘치는 것 같아서 본받아야겠어~ 하하하 " 가벼운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은 이리스였지만, 왠지 눈 앞에 페로사의 근육이 한동안 아른거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세상에서 그런게 제일 어려운 것 같은데~ 언니도 그랬다니까 조금 안심은 되는걸." 이리스는 호오 하는 표정을 해보이다 물건을 깨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에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웃어보인다. 뭔가 깨는데엔 일가견이 있기도 했으니 꽤 조심을 해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 왠지 끌리는데~ 후흐,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술도 좋아하니까." 이리스는 여지를 남기듯 말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 음, 오늘은 언니를 괴롭혔다간 사이드 체스트 사이에 내 목이 끼어서 나오지 못 할 것 같으니까 입가심을 깔끔하게 할 수 있는 걸로 골라줘. 오늘은 언니 안 괴롭히고 얌전히 돌아갈게. " 그럼 다음에 올 땐 더 반겨줄거지? 이리스는 그렇게 말을 덧붙이며 턱을 괸다.
초면이다. 에만이 가면을 쓴 지 시간이 지난 현재, 가면이 벗겨지고 본성을 드러낸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갈수록 억누르던 것이 풀려만 갔다. 에만은 그게 두려웠다. 자신이 저기 저 무시무시한 셰바의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해왔는데, 그 마지막 구실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정말 삼켜지고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그게 정말 무서워서 가면을 쓰고 다녔다. 한층 어둡고 좁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주변을 보는 것에 급급해 자신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넓었으니, 신경 쓸 것이 없다 보니. 마지막으로 친구라는 확신을 얻었을 때. 가느다란 목소리가 떨렸다. 여성일지 남성일지 도저히 모를 톤이었다. 사랑스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기교 있는 소년 같기도 했다. 맑은 웃음이었다. 이 상황만 아니라면 확실히 사랑스러운 웃음일 것이다. 에만은 당황한 시선에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순수한 기쁨, 공포, 그리고 동시에 에만이라는 존재는 감히 느낄 수 없는 감정이 공존했다.
흥미였다. 심연이 호선을 그어 강한 흥미를 느꼈다. 자신 말고 처음 살아 움직이는 존재를 마주한 야생의 동물처럼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이래서 가면을 벗기 싫었던 건데. "알아." 짧은 숨을 토하듯 속삭였다. 그리고 빌었다.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당연한 감정이 무서워서 그래. 누군가 내게 화낸 적이 없고 공격한 적이 없어서 무서운데 흥미가 가. 셰바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 느끼게 하지 마. 아니, 알려줘. 재밌을 것 같거든. 에만은 눈웃음을 쳤다. "네가 그로스만의 개가 아니라서 너무 기쁘다, 친구야." 하고는 어딘가 풀린 눈으로 덧붙였다. "이번엔 N.D를 부를 생각이 없었거든." 그 말인즉슨 산 채로 누군가에게 넘겼으리라 하는 뜻이었으리. 얼굴을 덮어 가린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랬다면 참을 수 없었을 거야. 상실감에 미쳐버렸겠지. 로즈밀처럼 다 태워버렸을 지도 몰라. 너무 무서워.
"으."
에만은 자신의 멱살을 침대 쪽으로 던지듯 내려놓자 뒤로 털썩 넘어가듯 누워버렸다. 아무리 황홀하고 즐거웠다 해도 그 폭발적인 감정 때문에 체력이 모자란다는 양,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이 즐거워 참을 수 없는지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에만은 순수하게 미소를 지었다. 뭐든 답하겠다 했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닌지. 에만은 마주친 자색 시선에 짧게 생각했다. 치사하긴. 이렇게 되갚고 말이야. 그렇지만 나쁘지 않았다. 에만은 얼굴에 흩어진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눈을 굴렸다. 선명한 겨울의 색채가 고귀하다 일컫는 자색을 꿰뚫듯 쳐다봤다.
"Michael Rosebud Winterborn. 미들네임은 부르지 마. 쪽팔리니까."
짐짓 심통 같은 말을 툭 뱉고 골머리를 앓듯 작게 앓는 소리를 낸다. 으, 하는 소리가 목 사이로 울렸다. 적어도 제롬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에만은 질 수 없는지 눈을 흘겼다. 저 삐죽한 시선을 보니 가면 안에서 지금껏 여러 번 꼬나.. 아니 흘겨봤을 것이 뻔했다.
"……내 이름 들었으니까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지 않아? 나는 로즈밀 윈터본의 자식이야."
에만은, 그러니까- 미카엘은 침묵했다. 잠시 뭔가 추스르듯, 말을 고르듯. 그리고 천천히 더듬대며 입을 뗐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원수. 그로스만이 몰살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5년 전에. 복수 때문에." 뭔 소리야? 네가 죽였잖아. 잠시 숨을 고른다. 더듬대며 뗐던 말이 제법 묵직했다는 듯. 네 실수만 아니었어도 어머니는 살았어. "그로스만의 사생아가, 그로스만 패밀리를 재건 시킬 생각이래. 암살자를 보낸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쓸모 있는 사람인지 떠보려고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신경이 평소보다 날카로워지고 그랬던 것 같네. 그러니까, 그." 대신 에만은 존재하지 않았겠지. 그.. 미안. 마지막 말은 쥐가 기어가듯 작았다.
여인에게 장단을 맞추는 걸 보는 건 누구를 상대로 해도 즐거웠다. 그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만한 사람이 피피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궁금은 하지만 대답을 얼추 알 것 같으니 구태여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여인은 제 능청을 능히 받아주는 피피를 보며 작게 웃을 뿐이었다. 입꼬리를 문질러내리는 손짓을 눈에 담으면서.
제 시간은 비싸다던가. 사탕 한 병으로는 모자를 거라던가. 적당한 대꾸들과 함께 옆에 앉는 피피와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여인이 있었다. 엷은 물색 기모노를 장식하는 은빛 자수가 조금만 움직여도 반짝인다. 물기 머금은 비늘처럼. 특유의 긴 옷자락은 복실한 카펫 위에서도 사락사락 소리를 내고. 즐거운 여인의 웃음 소리가 그 사이 섞여들었다. 그래. 나도 반가워. 필로.
"매일 잠은 잘 잘까. 밥은 잘 먹을까. 네 생각 하면서 지냈지. 보고 싶기도 했고."
저를 향해 벌린 팔 안으로 여인은 주저 없이 암겼다. 서로를 가볍게 안고 온기를 확인하듯이. 잘 지냈느냐고. 다부진 피피의 등을 두어번 두드려주기도 하고. 피피가 사탕병에 손을 뻗자 여인의 손도 같이 나갔다. 거리의 차이인지 손놀림의 차이인지. 먼저 잽싸게 움직인 여인의 손이 사탕병을 가져갔다. 딸강딸강. 사탕이 소리나게 병을 살짝 흔들고 제 뒤로 휙 숨겼다.
"이따 갈 때 줄게. 이건."
키득키득. 피피와 달리 한순간도 숨기지 않은 웃음이 잊을 만 하면 흘러나왔다. 눈을 가늘게 접어가며 잔뜩 얄밉게 웃은 여인이 남은 손으로 소반 위의 접시를 톡톡 두드렸다. 접시엔 새빨간 체리가 한가득 담겨 있었으니. 입이 심심하거든 이거 먹으라는 듯.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바빴을려나. 음. 난 특별히 일은 없었어. 알잖아. 내가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는거."
요즘엔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조직도 없고. 도시가 뒤숭숭해질 만한 일도 없으니. 근래에 여인이 하는 일이라곤 매일 이곳을 지키거나 가끔 술을 마시러 나가는 일이 전부였다. 말하고 보니 참 재미도 없는 일상이다. 여인은 슬슬 움직여 피피에게 툭 기대려 했다. 마치 팔걸이 대신으로 쓰려는 듯.
"네 얘기 먼저 해줘. 듣다가 나도 생각나는거 있으면 얘기 해줄게."
사실 정말 큰 일이 하나 있긴 했지만. 아직은 누구에게도 밝힐 생각이 없었다. 그로 인해 제롬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하니까. 어서 얘기 해달라고 밉지 않게 채근하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기모노에 맞춰 올림머리를 한 덕에 새하얀 목과 목덜미가 살풋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