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힘들게 노력했고 멀리까지 도달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몰락해야만 했고 내가 가진 걸 전부 잃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714 13년 전이면 페로사가 16살... 도살자의 서커스가 해체된 것이 그 때네. 맞아. 페로사의 매매계약은 15살 때부터 이미 차근차근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서커스단이 붕괴하면서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배틀리언에 입단하게 됐어. 이건 참고가 되려나 모르겠지만, 도살자의 서커스에는 그 서커스를 거느리고 있는 흑막이 한 명 따로 있으니 추후의 독백을 더 지켜봐달라구.
"뭐, 딱히 정해지거나 생각해둔게 있는건 아니지만 말이야. 보스는 언제나 나한테 '마음이 든다면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니까 가끔 생각해보긴 하는거지. " 이리스는 충고를 해주는 페로사를 잠시 커진 눈으로 응시하다 베시시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고맙다는 듯 말한다. 분명 페로사에게도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이리스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에게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고. 그 살을 이리스는 머릿속 한켠에 고이 모셔둔다. 언젠가 그 살을 꺼내어 붙여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는 법이니까."빵과 계획은 중요하니까. 대책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잖아. 후흐, 그나저나 언니 나 챙겨주는거야? 이거이거 그린라이트~?" 페로사가 챙겨줘서 정말 기쁘다는 듯 해맑은 목소리로 실없는 말을 섞어 말을 이어가는 이리스였다.
"뭐, 예비로 있다면 다행이지만~ 언제든 편하게 부탁해줘. 그정도는 나도 해볼 수 있으니까. " 이리스는 그럼 됐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호의를 받은게 있으니 이리스는 얼마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선 되돌려주고 싶은 모양새였다. 그것이 언제든 페로사가 원한다면 이리스는 들어줄게 분명했다. 그러다 섹시한 포즈를 어설프게 해보이던 이리스는 짜게 식은 얼굴을 하는 페로사를 보며 살짝 볼을 부풀린다. "으, 안그래도 안 어울리는거 알거든~ 언니처럼 대단한 몸도 아니고~ 그래도 그 표정은 너무해~" 이리스는 재잘거리며 투정을 부리면서도 재밌는지 키득거리며 웃어보인다.
" 그러게, 너무나도 낮은 곳에 있다가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오면 행복한 법이지." 이리스는 페로사의 말에 공감이라도 하는건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린다. 이 도시의 가장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온 이리스는 어쩌면 모를래야 모를 수도 없었다. 단지 행복이라는 감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감정인지, 그저 행복하면 미소를 짓고 즐거워 한다는 것을 '보고 익힌'이리스는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이리스 조차 자신이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잘 따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 어, 정말로 도와줄거야? 막 알려달라고 하면 ' 오늘도 안 알려줄거야~' 하고 반긴다거나 그러는거 아니구? 정말로 알려주려구? " 이리스는 이어진 페로사의 말에 놀란 듯 단숨에 잔을 들이키더니 설렘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 막 못 할지도 모르고, 되게 서툴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정말?"
로미가 손을 펼쳐 살랑살랑 흔들어보이는 손 엄지에는 아니나 다를까, 스스로 말했던대로 분홍색 밴드가 감아져있었다. 뭔가 어디서 본듯싶은 마법소녀 프린팅이 되어있는것까지, 그리고 좀 더 세밀하게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자... 기름때까지 주변에 묻어있는걸 보곤 세상에, 라는 탄식섞인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다친 손을 그렇게 막다루시면 곤란한걸요... 애초에 장갑도 안끼고 하시는 건가요? 물론 사람에 따라서 맨손으로 하는게 더 수월한 분도 계신다 하지만~"
상처가 오염이 되지 않게 차단하려 붙이는 것이 반창고이거늘, 그 반창고가 오염이 되어있다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뭐... 사실 저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긴 했지만 그걸 이런식으로 알게 될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베르셰바에 빠싹하고 기계에서도 그 맥락이 비슷한, 스스로 '마스터 엔지니어'라고 이름붙일만한 로미인만큼 그만한 안목은 있었는가보다. 물론 그게 자신을 찾는게 아닌 정말 순수하게 '인간을 배제하기 위한 전투병기'를 찾고 있던 것이었고 자신을 목격하고 정체를 알게 된건 순전히 운이라곤 하지만... 애초에 그런쪽이라면 오히려 로미보단 자신이 나을지도 몰랐다. 일단 상점에서 발을 뗄수 없는 사람인 것도 있거니와 아무리 보조용 유닛이라 한들 인간의 신체능력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그녀가 더 일을 해결하기 쉬울 것이니, 효율적으로도 나름대로 말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 요구가 그녀에게도 딱히 손해거나 불리한 것도 아닌게, 그녀 또한 알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쟁 당시를 포함한 자신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얕은 기대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녀가 지금도 가지고 다니는 누군가의 명찰같은 유류품에 대해서도 단서가 잡힐수 있을테고, 그러면 자신이 이곳에 왔던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부분이라면... 어느정도 도와드릴 수는 있겠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정말 구시대에도 있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들어보니 그럴 가능성도 없잖아 있겠네요~"
충격으로 인한 단편적인 기억상실이긴 해도 영영 잊어버릴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자신이 활동을 멈춘동안 그 메모리가 열화되었다면 본래 모든 기억이 사라져야하기 마련인데 적어도 자신의 이름과 어떤 일이 있었다는것, 그리고 자신은 멀쩡한 인간이 아니라는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정말 구시대의 산물이라면... 자기보호를 위해 당연한듯이 사람을 죽였던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이 아닐테니까,
"'도시의 무궁한 발전', 인가요..."
그 단어가 썩 좋지 않은 형태로 들리는건 왜일까? 분명 지금의 베르셰바는 르메인 패밀리에 의해 굴러가는건 맞다. 하지만 그 르메인 패밀리라는 것이 본디 마피아조직, 애초부터 구 베르셰바에 밀집되어있던 마피아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어난 전쟁인 시티헌트와도 연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찾기전에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할건 있겠죠?"
제 가슴 위에 가지런히 올린 손, 그 손가락 끝이 물결치듯 움직였다. 마치 사색에 잠긴 사람처럼,
"첫번째 궁금한건 대략적인 위치라는거죠. 물론 제가 깨어났던 곳도 가능성이 있다곤 하지만...
적어도 제 기억속에는 저 말고 다른 누군가는 감지되지 않았어요.
어쩌면 르메인의 관할 밖이거나, 영역 내라고 하더라도 신경을 안썼던 것일 수도 있죠."
그리고선 혼자 뛰놀던 손이 별안간 움직임을 멈추고 검지를 뻗어 제 아랫입술을 살짝 훑어냈을까.
"두번째 궁금한것, 만약 그 위치가 있다면 그곳은 그들이 관할하고 감시하는 구역인지 말이죠. ...아, 구태여 말씀하지 않으셔도 될것 같아요. 애초에 제가 첩보용 모델인걸 감안하시고 얘기하시는 거라면...
뚫어야 한다는 거죠? 그들의 유약한 부분을... 다소 피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죠..."
"그린이 뭐? 너이짜아식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아, 당연히 로테한테 배웠겠구나 이런 맙소사." 이리스의 한 마디가 페로사에게 결국 한 방 먹였다. 페로사는 담배를 문 채로 손을 들어서 손바닥으로 자기 얼굴을 팍 쳤다. 그 서슬에 이빨 사이에서 새하얀 연기가 폭 새어나왔다. 한 번 담배를 깊게 빨았다가 연기를 놓은 후에야 페로사는 얼굴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내가 후레자식으로 컸긴 한데, 딱히 귀여운 동생이나 소중한 친구나 귀하신 고객님한테 그런 심부름을 시키는 후레자식은 아니라서." 고약한 농담 한 마디를 곁들인 페로사는 대단한 몸을 운운하는 이리스의 말을 달리 들었던지, 갑자기 목소리에 활력을 붙이며 기세좋게 대답했다. "몸은 만들면 만들어지는 거지!" 그리고 흉물스럽게도 보디빌더의 사이드체스트 자세*를 취하며 근육을 과시했다. "근육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품이 꽤 넉넉하게 남나 싶던 와이셔츠가 팽팽하게 부풀며 그 아래에 놓인 신체의 근육 실루엣을 여과없이 투사한다. 어디선가 근육!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어우. 흉하다.
그녀가 찾은 그녀 나름대로의 일차원적 행복들. 스스로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들. 가볍고 소소한. 그래서. 이리스가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텐딩 정도야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지." 숭하기 그지없던 근육과시 자세를 풀며, 페로사는 이리스의 말에 대답했다. "나도 드럽게 서툴렀다니까. 뭐 물건 엎지르거나 그런 것만 안하면 돼. 보다시피 바에는 깨지기 쉬운 게 많아서." 페로사는 바에 놓여있는 이런저런 잔들이며 술병들을 눈짓으로 휙휙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아까도 위스키 글라스 두 개를 바닥에 깻박을 쳐 버리는 바람에, 오늘 받을 근무수당이 부상을 입어버리고 말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뭐, 그 때 이야기는 그 때 가서 하고. 뭐라도 한 잔 더 마실래?" 하고 페로사는 질문했다.